874장. 갈 때 가더라도(2).
“장립을?”
“네. 단주님.”
“흐음……. 이악산이 그럴 리 없는데…….”
“아들 이광의 지시인 것 같습니다.”
제갈유량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쯧. 호랑이가 개자식을 낳았군.”
리장창이 인상을 찌푸렸다.
장립에 대한 중요도가 급상승했다.
시진핑도 장립을 은근히 감싸고 돌았다.
뭔가 무척 찝찝했지만 리장창도 장립이 필요했다.
묘하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었다.
장택민과 원자바오도 장립과의 관계를 무척 중시했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세 세력의 구심점이 되어 버린 장립.
리장창 선에서도 이제는 함부로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장택민이 어느 시점부터 장립을 일러 자신의 목숨과 같다고 몇 번이나 천명했다.
이빨 몇 개가 빠진 장택민이지만 그는 아직 대호였다.
감히 장택민을 거스를 만한 간 큰 인물이 없었다.
다들 눈치를 보고 있는 마당에 상황 파악 못 한 이광이 나섰다.
‘이악산이 무덤을 파는구나.’
요즘 들어 더 오만해진 이악산.
시진핑이 주석이 될 때까지 보였던 충정이 오염되어 탐욕으로 변질됐다.
강한 칼을 손에 쥔만큼 위험도 크다는 것을 간과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 시진핑이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소문도 돌았다.
천지회에서도 그런 이악산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는 상황.
조직에 조금이라도 누가 된다면 당장 끌어내려야 했다.
오늘이 그 시발점.
“그래서 장립은?”
“……이광이 보낸 자들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위험하지 않겠나?”
“이광도 바보는 아니니 생각이 있다면 적당한 선에서 겁만 주고 끝낼 겁니다.”
“유량.”
리장창이 자신의 핵심 참모인 제갈유량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
“넵! 대인!”
“자네도 늙었나?”
“네?”
“쯧쯧. 상황파악을 이렇게 못 해서야.”
“…….”
“이광은 미친 개자식이야. 그런 놈이 올바른 이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나?”
“죄, 죄송합니다.”
“요즘 실망이 커.”
제갈유량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여쁜 조카를 투입했지만 장립을 포섭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고 보니 여러모로 판단이 흐려진 것도 사실이다.
‘장립이 나타난 이후로…… 모든 게 엉망이야.’
장립과 성정이 맞지 않다는 걸 제갈유량은 스스로 느끼고 있었다.
지금까지 만나본 적이 없는 독특한 놈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방식으로 움직이는 탓에 자신이 계획한 여러 방법들이 매번 틀어졌다.
“일이 복잡해졌어. 이광이 적당히 손을 본다면 상관없겠지만 일이 커지기라도 한다면……. 이악산이 다쳐.”
리장창은 느껴지는 불안감을 확신했다.
시진핑과 여러 정치 원로들이 장립에게 보이는 신뢰는 일정 수준을 넘어선 상태다.
모두가 진심은 아니겠지만 뽑아 먹을 것이 많은 장립에게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그 여파가 어디로 튈지 몰랐다.
“막을까요?”
“자신은 있고?”
“…….”
제갈유량은 다시 한 번 입을 다물었다.
리장창도 이악산의 권력에는 한 수 밀렸다.
천지회가 태자당에 기대 이상의 도움을 주고 동반자와 같은 존재로 걷고 있지만 분명한 건 결이 다르다는 사실이었다.
절대적으로 회주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는 천지회.
그에 반해 태자당은 객관적인 이익을 좇아 움직이는 정치집단이었다.
한목소리로 중국몽을 외쳤지만 목표하고 바라보는 시각에는 명확한 차이가 있었다.
“지켜봐. 이번 일을 돌파하지 못한다면……. 운도 없는 거겠지만 그만큼 가치도 없었다는 것이겠지.”
리장창은 냉정하게 상황을 평가했다.
강자는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의 실력을 증명하며 성장하는 법이다.
이광의 수하들에 의해 붙들려간 장립.
베이다이허의 수장들이 다음을 기약하며 한자리에 모여 파티를 즐기는 틈을 타 이 사달이 벌어졌다.
거대한 폭풍의 마지막 끝자락.
마지막까지도 모두의 신경이 장립에게 쏠렸다.
***
“오고 있다고?”
“지금 끌고 온답니다.”
“잘했어. 으흐흐흐.”
베이다이허의 고위 공무원들의 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창고.
이광이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채 전해진 보고를 받았다.
장립에게 치욕을 당하던 순간부터 오늘만을 학수고대했다.
아버지 수하에 있는 자들 중에서 충성심이 강한 자들로만 몇 명 선별했다.
회의가 끝날 때까지 분을 삭이며 차분하게 기다렸다.
다른 베이다이허 기간이었다면 이곳저곳에서 이광을 불러냈겠지만 이번 회의 기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약속이나 한 듯 모두들 장립의 눈치를 살폈다.
게다가 대부분 이광의 괴팍한 성격을 알고 있기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했다.
앞서 이광은 아버지로부터 경고를 들었다.
그 뒤부터 별장에 틀어박혀 술을 마시며 때를 기다려온 이광.
어른들 모두가 각자의 꽌시에 정신이 팔리는 시간을 정확하게 맞춰 장립을 쳤다.
베이다이허의 마지막 날은 광란의 축제가 사방에서 벌어졌다.
살아남은 권력자들이 한껏 욕망을 발산하는 시간이었다.
아버지의 경고가 가볍지 않았지만 장립을 처리하고 시체까지 완벽하게 정리해 버리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더라도 다른 추궁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이악산은 아들 이광보다 더 자존심이 세고 사회적 명예를 중하게 여겼다.
꿀꺽 꿀꺽.
이광은 양주를 병째 들고 마셨다.
장립의 살가죽을 벗겨낼 생각에 이광의 피는 한껏 들끓었다.
충혈된 눈동자, 흥분으로 바들바들 떨리는 손.
이광의 이런 행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자신을 거스른 자를 용서한 적이 없었다.
끼이이익.
그때 창고 밖에서 들려오는 거친 브레이크 음.
“이제 도착했군.”
공장 안은 비어 있었다.
수산물을 가공하던 곳으로 오래 묵은 비릿한 냄새가 가득했다.
간이 의자 위에 앉아 문 쪽을 쳐다보는 이광.
그의 옆에는 살인 선수 두 명이 대기했다.
아버지 이악산 밑에서 온갖 더러운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사냥개들이었다.
콰드드드드득.
그때 느닷없이 들려온 굉음.
“뭐야!”
이광이 놀라며 소리쳤다.
지진이라도 난 듯 한차례 지반이 들썩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끼리릭.
두툼한 공장 정문 쪽 철문이 열렸다.
그리고.
긴 그림자와 함께 공장 안으로 들어서는 남자.
“어?”
이광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장립을 끌고 오기 위해 보냈던 수하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공장 문 앞에 홀로 서 있는 놈은 장립.
저벅저벅.
놈이 웃는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너……!”
이광이 불길함을 느끼고 손가락으로 장립을 가리켰다.
“왜? 형님 보니까 심장이 쫄려?”
장립의 비웃는 얼굴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겨, 경호원들은 다 어딨어!”
“그 살인 병기들? 바로 여기.”
장립이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가리켰다.
“!!!”
“깊게 묻어서 아무도 못 찾아. 그러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장립의 입가에 번지는 잔인한 미소.
“저 새끼 죽여!!!”
이광이 들고 있던 술병을 내던졌다.
타다닷!
그 순간 기다리고 있던 두 명의 선수가 곧장 앞으로 튀어나갔다.
스릉.
가슴에 품고 있던 얇고 짧은 도를 뽑아 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장립과의 거리를 좁혀 갔다.
***
약이나 팔고 조용히 떠나려던 계획이 여지없이 틀어졌다.
이광이 나를 가만 놔두지 않을 거라는 예상은 했다.
타인을 고통스럽게 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자들일수록 자신들에게 가해진 고통과 피해는 조금도 참을 줄 모른다.
상황을 자초하고도 결코 그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의 일상적인 행태.
눈이 벌겋게 충혈된 이광이 하수인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타협은 있을 없는 일.
시진핑과 여러 고위 권력자들의 의중은 안중에도 없는 그의 태도가 곧 그의 미래였다.
오늘 이 일로 인해 그의 부친도 핵심 권력자들의 눈밖에 날 것이다.
그전에 지금 당장 치워야 할 똥덩어리.
쇄애앳.
달려드는 자들은 제법 도를 쓰는 살수들이었다.
여름 날씨에도 블랙 슈트를 제대로 갖춰 입은 놈들은 나름 멋있었다.
도를 뽑고 들고 달려드는 자세가 영락없이 고수들의 모습이다.
알게 모르게 중국에는 인재가 많다.
내공을 사용하는 살수들은 어느새 곁에 바짝 다가왔다.
목과 다리를 공격해 들어오는 합동 공세.
사람 좀 베어 넘어뜨려 본 솜씨다.
하지만.
내 눈에는 느려도 너무 느리다.
아공간을 열어 검을 꺼낼 일까지도 필요 없었다.
턱!
목을 공격해 들어오는 놈의 도를 오른손으로 낚아챘다.
이미 손은 강철 같은 내기로 코팅 되어 전혀 상해를 입을 우려가 없었다.
“!!!”
눈에 띄게 놀라는 살수들.
원심력을 이용해 낚아챈 도의 방향을 그대로 돌려줬다.
뻑!
살수의 이마에 박혀드는 날카로운 도.
발도 함께 움직였다.
마법을 사용하면 손끝 하나 대지 않고 처리할 수 있지만 간만에 몸 좀 풀고 싶었다.
휘잇!
번개처럼 빠르게 뻗어나간 발이 하체를 공격해 들어오던 놈의 면상을 후려 갈겼다.
퍼억!
제대로 느껴지는 타격감.
“컥!”
강력한 일격에 짧은 신음을 토하며 나가떨어지는 두 명의 살수.
막상 뭣도 아닌 것들이 폼만 잡다 쓰러졌다.
“으헉!”
상황을 지켜보던 이광이 당황해 신음을 흘렸다.
“이제 제대로 느낌 와?”
“너, 너 지금!”
이광이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너 거기서 오줌 쌀 건 아니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콰드드드드드득.
속으로 시현한 마법.
창고 밑바닥이 양쪽으로 쩍 갈라지며 시커먼 속살을 드러냈다.
상당히 깊다.
퍼억! 퍽!
내동댕이쳐져 있던 살수들 몸뚱이가 미끄러지듯 갈라진 탕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 생에서는 착하게 살아라.”
사후 복을 빌어줄 만한 자비심은 없었다.
콰드듯.
땅이 본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살수들의 것으로 생각되는 피비린내만이 진득하게 공간에 퍼졌다.
털썩.
“으으으으…….”
모든 걸 지켜보던 이광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금세 축축하게 바닥에 흐르는 물줄기.
“그러게 판단을 잘했어야지. 쯧.”
혀를 찼다.
나를 제거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이다.
“나와.”
“사, 살려줘! 돈! 줄게! 뭐든 다 줄게!!!”
스윽.
손으로 이광을 가리켰다.
그의 몸뚱이가 가볍게 허공에 떴다.
마법도 아닌 내공으로 만들어 낸 허공섭물이라는 고급 기술.
“어어! 으어어어어!”
이광이 허공에서 발버둥 쳤다.
저벅저벅.
그를 허공에 둥둥 띄운 채 밖으로 끌고 나왔다.
딸깍.
놈의 스포츠카 문을 열었다.
부르르릉.
안에 있던 키를 이용해 시동을 걸었다.
“너도 붉은 거 좋아하지? 관으로 쓰기에 딱 좋네.”
빨간색 람씨 형님.
녀석을 안에 구겨 넣었다.
“날…… 어떻게 하려고…….”
벌벌 떨며 잔뜩 쫄아서 묻는 이광.
“밟아. 그리고 내 눈앞에서 사라져. 최대한 빠르게.”
“!!!”
이광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이 은혜는…….”
“개소리 말고 꺼져.”
은혜는 개뿔.
악인들의 대사빨은 언제나 같다.
부아아아아앙!
말이 끝나기 무섭게 풀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람씨 형님이 튀어 나갔다.
“야! 이 개새끼야! 내가 너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
창문이 열려 있어서 차 안에서 내뱉는 이광의 욕이 찰지게 들려왔다.
“자식……. 지옥 가는 길인데…… 저렇게 밟고 싶을까.”
창고에서 멀지 않은 곳이 바다다.
도로는 직진 코스.
람씨 형님은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는 듯 쭉 바다를 향해 돌진했다.
콰아아아아앙!
200km는 가뿐하게 넘었을 스포츠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어설픈 해변 도로 가림막을 뚫고 날았다.
파지지직.
폭죽처럼 불꽃도 튀었다.
그리고.
퍼어어어엉! 퍼엉!
안타깝지만 도로 끝은 절벽이다.
허공으로 날아오른 날개 없는 스포츠카의 운명은 빤했다.
놈은 당황했겠지만 내공을 사용해 브레이크를 망가뜨려 버렸다.
화르르르르르.
붉은 화염이 섞인 시커먼 연기가 절벽 쪽에서 피어올랐다.
깔끔한 마무리다.
뒷일은 걱정하지 않는다.
심증은 넘칠지라도 물증은 없는 상태.
“이제…… 집에 가볼까.”
2014년 베이다이허에서 보낸 휴가가 이렇게 끝났다.
- 카르마 포인트를 강력하게 획득했습니다.
넉넉한 포인트와 함께.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