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6장. 인싸(2).
“뭐라고? 아버님을 초대한다고?”
“네. 립이 그렇게 말했어요.”
“허어.”
류평은 류미의 말에 할 말을 잃어 버렸다.
“호호. 정말 배짱이 대단한 청년이야.”
온수려가 그 모습을 지켜보며 가볍게 웃었다.
“당신은 지금 웃음이 나와? 아버님 성격에 가만히 계실 것 같아? 이건 예의가 아니잖아. 화를 내실 거야.”
류평의 얼굴은 심각하게 어두워졌다.
“아마 가실 걸요?”
“뭐라고?”
온수려의 확신에 찬 말에 류평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보다 원자바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내였다.
그래서 아내의 태도가 더 이해되지 않았다.
보통 베이다이허에서는 권력자들이 휘하의 아랫사람들을 초대하는 형식이었다.
그게 바로 현실 권력이고 권위였다.
더욱이 장립은 나이도 한참 어린데다 베이다이허에는 처음 참석하는 자였다.
그런 그에게 원자바오가 초청받아 걸음한다는 것 자체가 격에 맞지 않았다.
“제가 조금 전 따끈한 정보를 들었지 뭐예요.”
온수려가 눈동자를 반짝이며 말했다.
“정보? 뭐?”
류평이 귀를 쫑긋 세우며 온수려를 바라봤다.
베이다이허의 중요한 정보들은 낮의 여자들이 더 빨리 수집했다.
밤의 남자들은 체면 때문에 여자들처럼 이런저런 얘기들을 떠벌리지 못했다.
“류미야. 장립이 장 주석과 선약이 있다고 했지?”
“네.”
“어제도 만났는데 오늘은 왜 만날까요? 장 주석이 그렇게 한가한 분도 아니고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말이에요.”
온수려가 수수께끼 같은 말들을 늘어놓았다.
“장립과 중요한 사업 얘기를 나눴지 않을까? 이악산 상무위원 문제도 있고 말이야.”
류평은 제 선에서 짐작 가능한 수준의 말들로 답했다.
이광에게 모욕을 준 장립은 현재 상해방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당연히 상해방의 수장인 장 주석이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떠안은 셈이다.
현재 베이다이허에서는 모두들 장 주석의 상해방이 이악산에게 어떤 조건의 배상을 할지에 관해 내기가 오갈 정도였다.
까다롭기로 소문이 자자한 이악산을 달래기 위해 상해방 측은 머리가 복잡할 터였다.
“전혀요. 장 주석이 이악산이 드러낸 이빨에 물릴 거였다면 진작 사라졌겠죠.”
온수려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럼?”
“약이에요.”
“약? 그게 무슨…….”
“장 주석이 복용하는 단약에 대해서 당신도 알고 있죠?”
“물론이지. 나도 한 알 먹어봤잖아.”
장 주석이 인맥 관리를 위해 과거에도 종종 측근 중심으로 뿌렸던 단약.
류평 역시 그와 친분이 있을 당시 우연히 단약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기막힌 약성이 떠올라 당장 류평의 입안에 침이 고일 정도였다.
그러나 결코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홍위병 난동 때 당시 유명한 한의사들도 많이 죽임을 당했다.
그들이 가졌던 귀한 의약서적과 약재 기술도 무지한 자들의 의해 훼멸됐다.
그 틈에도 장 주석은 목숨을 연장시켜 주고 건강을 지켜주는 단약을 수중에 넣었다.
장 주석이 지금까지 꺾이지 않고 든든하게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였다.
“그게…… 풀렸어요.”
“풀려? 단약이?”
아직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류평.
“장립. 그 녀석이 단약을 갖고 있다네요.”
“뭐라고!!!”
류평이 크게 놀라며 소리쳤다.
상상도 하지 못한 정보였다.
“아! 그래서 장립이…… 그렇게 당당했던 거군요.”
류미도 그제야 온수려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대하기 어려운 외할아버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초대하던 장립.
“우리 아빠도 건강을 무척 중요시해요. 그 무엇보다도 더.”
“이거…… 잘만 하면.”
류평이 눈빛을 빛내면 빠르게 계산에 들어갔다.
지금쯤이면 베이다이허 곳곳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을 것이다.
“시 주석도 오늘 온다던데…… 잘못하면 식은 죽 신세가 되겠네요.”
온수려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며 미소를 지었다.
베이다이허에서 가장 주목을 받아야 할 중국 주석.
그러나 이번 년도에는 뭔가 분위기가 다르게 흘러갔다.
권력자들도 눈치를 봐야 할 단약 제조사.
베이다이허의 구석구석이 그렇게 시끄러워지고 있었다.
느닷없이 출현한 장립이라는 한 사람과 단약.
그 어느 해보다 뜨거운 인기 몰이가 시작됐다.
***
타다다다다다닥.
날카로운 중식도가 현란하게 도마 위를 누볐다.
스윽 스으윽.
두툼한 돼지고기가 결대로 잘려 나갔다.
치이이이잇.
한쪽에서는 물이 끓어올랐다.
화르르르르르르.
센 불을 일으키는 화덕에는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기 위한 불이 붙었다.
달그락달그락.
기름으로 코팅한 웍에 불이 붙으며 한편의 불 쇼가 시작됐다
출장 요리사들을 불렀을 때나 볼 수 있는 요리의 향연.
‘도대체 이 남자 정체는…….’
양소려는 경이로운 시선으로 요리에 전념하고 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오늘도 예상했던 대로 제대로 사고를 쳤다.
장택민 주석과 저녁식사를 약속해 놓고 그 자리에 원자바오를 초대했다.
과거에는 사이가 좋았지만 지금은 앙숙 관계가 돼 있는 두 사람.
원자바오가 이 사태를 알게 되면 불같이 화를 낼 게 뻔했다.
그런데 장립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최고급 식재료들을 주문하는가 하면 아예 부엌을 독차지했다.
‘저 요리 솜씨는…… 뭔데?’
장립의 손 위로 움직이는 칼놀림에서 양소려는 현묘한 내공이 담긴 무술을 보는 듯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규칙적인 리듬에 맞춰 잘리고 썰려 나가는 재료들.
일정한 리듬을 타는 그의 칼질에는 기가 깃들어 있다.
요리 하나로 도를 이룬 장인의 모습이었다.
장립은 요리를 시작한 후 한마디 말도 없었다.
요리사가 입는 의복을 갖추고 진짜 전문 요리사처럼 부엌을 종횡무진 누볐다.
송화단과, 장복, 새우, 해파리, 오이를 넣고 만든 오품냉채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모습을 드러낸 오품냉채는 화려하고 모양도 아름다웠다.
슥슥 칼이 몇 번 춤을 추고 나면 금세 꽃으로 피어나는 오이.
그냥 먹어 없애기에는 아까울 만큼 아름다웠다.
냉채 소스는 냄새만으로도 침이 꼴깍꼴깍 넘어갈 만큼 군침 돌게 했다.
게살제비집 요리는 말해 봐야 입만 아팠다.
제비집과 백모기를 따뜻한 물에 불려 깔끔하게 손질해 내는 솜씨는 수준급이었다.
금방 요리해서 나갈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맞췄다.
건강에 좋은 전가복, 매콤한 사천식 돼지불고기, 만들기 어렵다는 동파육도 동시에 준비했다.
양도 푸짐하고 넉넉했다.
족히 10여 명 이상이 한자리에 모여도 절대 부족할 것 같지 않는 풍성한 식재료들.
뚝.
화려하게 움직이던 장립의 손이 멈췄다.
“립. 원자바오 전 총리가 올까요?”
때를 기다렸다는 듯 양소려가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네.”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죠?”
“미끼를 물었거든요.”
“네???”
양소려는 돌아보지도 않고 서서 답하는 장립의 말을 이해되지 않았다.
‘설마 소문이?’
양소려는 ‘미끼’라는 말에 바로 단약을 떠올렸다.
‘모든 게 계획적이었던 거야? 그런데 누가 소문을…….’
“장 주석 도미찜 좋아하죠?”
“네…….”
“준비는 끝났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들은 짧은 시간 조리해 나갈 수 있도록 세팅을 해놓은 상태였다.
마치 집주인처럼 진심을 다하는 장립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요리사를 부르면 될 텐데 이렇게 직접 하는 이유가 있나요?”
“먹어보고 얘기해요.”
보기에는 그럴싸하고 냄새도 끝내줬지만 맛까지 완벽할 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베이다이허에 모인 고위 공산당원들은 아예 집에 전문 요리사들을 상주시켜 놓고 매 끼니를 해결했다.
웬만한 요리들로는 그런 그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그것도 모르고 자신만만하기만 한 장립.
띵똥.
밖에서 벨소리가 들렸다.
띠릭.
문이 열리는 소리가 뒤이어 들렸다.
“어서 오십시오. 주석님.”
“하하. 오늘도 내가 왔네.”
장택민 주석의 밝은 목소리가 주방까지 들렸다.
“영광입니다.”
“오늘도 신세를 지겠습니다.”
장립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왕정의 목소리도 들렸다.
“아닙니다. 상무위원님.”
“오랜만입니다. 양 대협.”
“부주석님을 뵙습니다.”
새로운 손님이 등장했다.
“립! 어디 있나!”
장택민이 친근한 목소리로 장립을 찾았다.
평소 과묵한 장 주석의 행동과 사뭇 달랐다.
들떠 있는 목소리는 친아우를 부르는 듯 다정하고 정이 넘쳤다.
“여기 있습니다.”
요리사복을 입은 채로 손님들을 맞으러 나온 장립.
“하아.”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양소려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장립에게 단약 때문에 제대로 코가 꿰였다.
이제는 의심도 의미가 없었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때.
진정한 성장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장립의 도움.
지금은 의심을 거두고 그를 돕는 게 최선이었다.
***
“립! 보고 싶었네.”
와락.
헐!
키가 작은 장택민이 나를 덥석 안았다.
온몸을 던진 포옹이었지만, 그래봐야 허리를 껴안은 수준.
어젯밤 내가 준 단약을 바로 섭취한 모양이다.
얼굴에 보기 좋은 대춧빛 혈색이 돌았다.
피부도 탱탱해지고 생기 넘치는 에너지가 물씬 풍겼다.
이토록 격하게 나를 반기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주석님……. 저도.”
나도 장택민을 넉넉한 품에 안았다.
정말 싫은데……. 상황이 자꾸 이렇게 꼬였다.
인싸가 마냥 좋은 건 아니다.
“…….”
잠시 주변을 감돈 어색한 침묵.
다들 격한 포옹을 보고도 못 본 척 시선을 돌렸다.
“주석님. 이 친구가 그 친구입니까?”
체격이 좋은 오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아는 체했다.
타이밍 센스가 괜찮다.
“하하. 기분이 좋아서 내가 감정이 격해졌군. 립. 인사하게. 내가 아끼는 후배이자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인 조평 상장일세.”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상장님.”
잠깐 스치듯 왕정 상무위원과 눈이 마주쳤지만 쌩 깠다.
대신 초면인 조평과 진득한 인사를 나눴다.
‘권력의 힘은 총칼에서 나온다’라는 중국 공산당의 격언.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라면 대단한 신분이었다.
2014년도만 해도 아직 시진핑이 마수를 뻗치지 못한 군부였다.
그만큼 장택민 라인이 짱짱했다.
특히 여기 있는 조평 상장은 중국 군부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자였다.
장택민이 그만큼 귀한 인맥을 나에게 연결해 줬다.
“칭찬 많이 들었네. 장 주석께서 자네를 높이 평가하고 계시더군.”
꾸욱.
악수한 손에 힘이 실렸다.
장군답게 아귀힘이 무척 좋았다.
얼굴도 고집스런 사각턱.
눈빛도 강건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몇 년 뒤 시진핑에 의해 이 남자가 실각한다는 것.
고민이 됐다.
시진핑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상해방의 힘이 필요했다.
적의 적은 나의 동지라는 공식이 성립됐다.
“그런데 장립 그 복장은 뭔가?”
장택민이 요리사복 차림인 나를 보며 의아해했다.
“주석님께 요리를 대접하고 싶다고 직접 주방에 들어갔습니다.”
양광이 설명에 나섰다.
“요리?”
“할머니가 요리사셨습니다. 취미로 어린 시절 많이 배웠습니다.”
이것도 다 장립의 신상 정보에 있던 내용으로 엄연히 사실이다.
“하하. 그럼 기대해 보도록 하지!”
장택민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럼 바로 준비하게. 주석께서 식사를 아직 하지 않았네.”
왕정이 차가운 말투로 한마디 내뱉었다.
보아하니 나를 요리사 취급 정도로 생각하는 말투였다.
숨길 수 없는 그의 속마음이 훤히 보여 웃음이 나올 뻔했다.
단약 하나에 제대로 삐쳐 있었다.
“아직 손님이 다 오시지 않았습니다.”
“손님? 누구?”
양광은 물론 장택민과 함께 온 이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특별히 양소려를 입단속 시킨 효과가 있었다.
양광도 모르고 있는 초대 손님.
띵동.
마침 벨소리가 들렸다.
“???”
밖에 있을 장택민 주석 경호원들도 당황했을 거물의 등장.
입가에 미소를 베어 물었다.
“오신 것 같습니다.”
“누구기에…….”
띠릭.
집주인 양광이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순간 앞에 보이는 노회한 남자.
“허억!”
양광이 귀신을 본 듯 깜짝 놀랐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