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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5장. 인싸. (859/1,284)

865장. 인싸.

“건방진 놈! 감히 날 희롱해! 내가 네놈을 용서치 않을 것이야!”

꿀꺽 꿀꺽.

독한 백주를 연거푸 들이켜는 왕정.

화가 많이 났다.

그 자리에서도 술을 꽤 많이 마셨지만 어찌된 일인지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장립이 건넨 단약을 받은 장택민과 양광은 더 없이 만족해하는 눈치였다.

장립의 집에 있다는 50개의 단약.

나이 많은 장택민의 목줄이 됐다.

그에 반해 장립에게 희롱당한 왕정은 화를 꾹꾹 누르느라 애를 먹었다.

급기야 장택민은 장립의 목숨이 자신과 같다고까지 말했다.

모든 상황은 그 한마디로 정리돼 버렸다.

요사를 부리던 장립은 단약을 건넨 자리에서 완벽하게 장택민의 사람이 됐다.

쉽게 구할 수 없는 단약으로 인해 벌어진 어이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도대체 왜 그래요?”

맞은편에 앉아 와인을 마시던 홍린이 물었다.

베이다이허에서는 보통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다.

다른 때는 몰라도 이런 날 첩 신분인 홍린을 찾지 않는 게 관례였다.

그걸 무시하고 왕정이 홍린의 별장으로 발걸음을 했다.

오자마자 술을 찾았다.

홍린은 왕정이 취한 틈을 잘 노렸다.

평소와 달리 잔뜩 화가 난 왕정은 이성을 잃은 듯 보였다.

“너도 그 자식 좋아하지?”

느닷없이 불똥이 튀었다.

“누구요?”

“장립!”

“네?”

홍린이 어이가 없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왕정을 바라봤다.

풋내 나는 사랑에 영혼을 팔 만큼 순수한 나이가 아니다.

장립이 괜찮은 사내인 것은 맞지만 홍린과는 코드가 맞지 않았다.

인간이 추구하는 이 세상 욕망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을 노리고 있는 게 분명한 장립.

여자의 촉은 그를 볼 때마다 말했다.

위험한 자라고 말이다.

“멋있잖아! 잘생기고! 돈도 많고!”

왕정이 점점 더 추한 꼴을 보였다.

그동안 의연히 감춰왔던 질투를 술에 취해 그대로 드러냈다.

중국을 대표하는 상무위원도 한낱 남자에 불과했다.

옆에 끼고 있던 첩이 다른 남자에게 눈길을 돌리자 질투심이 폭발했다.

“호호호호호호호 호호호호호호호.”

갑자기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트리는 홍린.

스윽.

말없이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다.

그리고 요즘 들어 잘 품어 주지 않았던 왕정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동안 외로웠어요?”

왕정의 얼굴을 홍린이 부드러운 손으로 매만졌다.

홍린을 바라보는 왕정의 얼굴에 천천히 가슴을 밀착해 뜨거운 기운을 보냈다.

“……다들 장립! 장립!”

지금 홍린의 눈에 왕정은 술에 취해 애처럼 투정을 부리는 것으로 보였다.

“말해 봐요. 당신의 애첩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다 말해 봐요.”

홍린이 듣기 좋은 목소리로 최면을 걸 듯 왕정의 귓가에 속삭였다.

왕정의 태도로 보아 중요한 첩보가 섞여 있음을 홍린은 직감했다.

“장립 그 자식이…… 단약을 가지고 있었어.”

“단약요?”

“장 주석이 평소 복용하던 그 단약 말이야.”

“정말요???”

홍린은 무척 깜짝 놀랐다.

장택민의 단약 복용설. 베이다이허는 물론 북경 정치권 사이에 쫙 퍼진 이야기였다.

나이가 적지 않음에도 장택민은 누구보다 강건하고 정정했다.

첩들 관리도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고 했다.

그 모든 게 단약 때문이라고 모두들 암암리에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장립이 그 단약을 갖고 있다 했다. 생각지 못한 고급 정보였다.

아무리 권력을 다 쥐었다 해도 몸이 건강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진시황처럼 불로초를 원하는 중국인들이 사방에 널렸다.

특히 권력을 쥔 위정자들의 탐욕은 끝을 달렸다.

“나도 믿기지 않는데…… 장 주석이 확인했어. 진짜 단약이라고.”

“아…….”

의심의 시선을 보내던 홍린이 기어이 탄성을 터트렸다.

“그 새끼가 단약 네 개를 갖고 있다가 세 개를 장 주석과 양광, 양소려에게 뿌렸어. 그런데 나에게는…….”

눈을 부릅뜨며 으드득 이를 가는 왕정.

그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단약의 효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왕정.

“아직 장립이 그 단약을 가지고 있어요?”

홍린이 왕정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집에 50개나 더 있다고 하더군.”

“!!!”

‘50개!’

돈보다 더한 보물이었다.

단약 50개면 웬만한 편의는 다 얻을 수 있었다.

단약 효과가 진짜라면 더욱.

“린……. 부탁이 있다.”

“말해 봐요.”

홍린의 가슴에 파묻혀 위로를 받던 왕정이 입을 열었다.

“장립의 단약을……. 최대한 빼내 줄 수 있어?”

목소리와 달리 이글거리는 왕정의 눈빛.

홍린은 남자의 눈동자에서 또 다른 욕망을 읽어냈다.

‘아직 원하는 꿈이 남아 있는 거야?’

홍린은 왕정의 부탁이 싫지 않았다.

왕정은 아직 홍린의 정치적 운명을 함께하고 있는 동반자였다.

그의 성공은 홍린의 권력 기반과도 연결됐다.

“알았어요. 내일부터 알아볼게요. 그전에 우선…….”

홍린이 왕정의 술잔을 들었다.

꿀꺽.

단숨에 입안에 술을 털어 넣는 홍린.

그리고.

천천히 왕정의 입술에 입을 맞춰갔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뜨거워졌다.

베이다이허의 또 다른 욕망들이 불꽃을 밝히며 깨어나는 시간이었다.

***

휘리리리리리링.

처어얼썩……. 처어얼썩.

베이다이허에 바람이 불면서 파도가 거세졌다.

산책을 나왔다.

어젯밤 오랜만에 신나게 달렸다.

내공 증진용 단약을 건강 보조 식품으로 복용하는 장택민 주석.

그에게 약 값을 확 땡겼다.

건강과 죽음 앞에서는 성자가 아닌 이상 누구라도 초라해지게 마련.

천하의 장택민도 단약 앞에서 약점이 잡혔다.

그를 봐주는 이도 단약을 제조하는 것 같지만 나에게 밀렸다.

화타표 단약은 전설이다.

거기에 이계에서만 자생하는 신선한 약초들은 그 자체가 명약이었다.

“이거 제대로 약 좀 팔게 생겼네.”

수확이 많았다.

적들의 약점이 하나 둘 드러났다.

중국몽을 한목소리로 주장하는 게 아니었다.

어둠과 태양, 음과 양처럼 모든 국가와 인간 집단 간에 끼어 있는 기름과 물 같은 반목.

베이다이허에서 중국 권력의 빈틈들을 속속 파악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다.

열심히 살다가 얻게 된 귀한 정보들에 마음이 절로 훈훈해졌다.

사박사박.

한 여인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뭐 해요…….”

하룻밤 사이에 순한 양이 된 양소려.

옆에 다가선 그녀를 바라봤다.

단약을 복용한 듯 기세가 달라져 있었다.

어젯밤 그녀 방에서 느껴지던 내공의 기운.

넘지 못하고 있던 벽을 넘어 목표를 이룬 듯했다.

“보시다시피 산책합니다.”

“……고마워요.”

“뭐가 말입니까?”

알면서 물었다.

“단약 말이에요. 귀한 물건인데 저까지 신경 써줘서 감사해요.”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아무리 귀한 물건이어도 가치를 알아주는 이에게서 빛이 나는 법입니다. 양 소저께 갈 운명이었습니다.”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양소려는 지금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녀의 경계 어린 마음을 단약 하나로 녹아내리게 할 수 있다면 이미 대성공이다.

“그런데 진짜에요?”

“네?”

“단약이 50개나 더 있다는 말이…….”

양소려도 꿈틀대는 욕망이 남아 있는 인간이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내공 수련을 더 깊이 하기 위해 자존심 따위 내려놓고 물었다.

“아닙니다.”

“네??? 아, 아니라고요? 그럼 어제 그 말은 모두 거짓말?”

양소려가 기대를 많이 했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놀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주석께서 철석같이 믿고 계시는데 거짓이라니요. 그러다 사실이 밝혀지면 정말 큰일 나요!”

양소려가 내 걱정을 한다.

이것도 진심.

“50개보다 많아요.”

“헛!”

양소려가 좀 전보다 더 놀란다.

“얼마나…… 더 있는데요?”

심하게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

“저희 집에서는 소화제처럼 먹습니다.”

“!!!”

양소려가 할 말을 잃고 입을 떡 벌렸다.

귀한 단약을 소화제처럼 먹는다는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다.

부모님과 쌍둥이한테 진짜 내가 상비약으로 챙겨주는 약이다.

명절 선물용 말고 평소 복용할 수 있는 단약은 냉장고에 보관 중이다.

다들 귀한 줄 모르고 공진단처럼 복용하고 있다는 게 좀 아쉽지만.

처방전이 없는 한약이라서 타인에게는 함부로 건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부모님과 쌍둥이는 나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따랐다.

“아! 우리 집 개들도 가끔 먹습니다.”

“…….”

본가에 있는 진돗개 개돌이도 수시로 먹였다.

복날 전후로 날이 더울 때, 한 겨울에 추위가 심할 때 날을 정해 개밥에 섞어 준다.

“그…… 집 개가 부럽네요.”

이 말도 진심으로 느껴졌다.

“한 알 더 드려요?”

“……정말요?”

양소려의 눈에 처음 보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경지를 돌파했다고 해도 안정화는 또 다른 문제였다.

약빨로 키워진 내공은 당연히 완벽하게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다.

천천히 음미하듯 내공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흡수시키는 과정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때 단약 하나 더 먹어준다면 약효는 즉빵.

스윽.

품에서 단약 하나를 꺼냈다.

어제 왕정을 놀리느라 약 올리던 그 단약.

작은 초콜릿 하나를 넘기듯 가볍게 건넸다.

“이건…….”

금박이 살짝 벗겨진 걸 그녀도 안다.

“이거 비밀입니다. 왕정 상무위원이 알면 화낼 겁니다.”

“네…….”

갈등하는 기색은 없었다.

으레 고개를 끄덕이며 양소려가 단약을 받았다.

공식적으로 양소려와 공범이 됐다.

앞으로는 양소려의 눈치를 덜 봐도 된다.

“오늘도 바쁠 것 같군요?”

“네?”

저 멀리서 누군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차자작.

경호원들을 대동하고 의기양양하게 다가오는 여인.

“리이이입!!!”

류미였다.

어제보다 더 가벼운 발걸음이 눈에 띈다.

“류미…….”

양소려가 은근히 인상을 찡그렸다.

나와의 시간을 방해하는 류미가 싫은 눈치다.

“아침부터 뭐야? 둘이 데이트해?”

솔직함이 매력인 류미가 나와 양소려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보면 몰라?”

어라? 이건 또 뭐야?

양소려가 다른 때 같지 않게 강하게 나왔다.

“후훗. 미안하지만 소려. 넌 내 상대가 아냐.”

류미가 가볍게 무시했다.

그리고.

“립! 기쁜 소식이 있어요!”

류미의 얼굴 표정이 환했다.

“무슨 소식 말입니까?”

“……외할아버지가 당신을 저녁식사에 초대했어요!”

“아!”

나보다 더 놀라는 양소려였다.

중국 전 국무총리 원자바오.

그가 날 보고 싶은 모양이다.

베이다이허의 인싸가 되는 순간.

“그 표정은 뭐죠? 전혀 기쁘지 않은 것 같은데…….”

류미가 덤덤한 반응의 나를 보며 당황했다.

크게 놀라지 않는 내가 이해가 안 되는 듯했다.

“선약이 있습니다.”

“선약요? 그거 취소해요! 이거 엄청난 기회란 말이에요!”

류미의 목소리가 한톤 올라갔다.

나도 원자바오 만나보고 싶다.

그녀 말대로 기회인 것도 안다.

“장 주석과 선약이 있습니다.”

“네? 장 주석님이요???”

크게 놀라는 류미.

오늘도 술 약속이 있다.

원자바오보다는 장 주석 쪽 권력이 아직 세다.

“류미, 다음 기회를 잡아.”

양소려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한껏 득의양양해진 모습이 볼만했다.

“립…….”

류미의 눈동자에서 밝았던 빛이 빠르게 사라졌다.

그녀가 날 위해 중간에서 나름 노력을 한 것 같다.

그렇다면.

“원자바오 총리님께 전해 드리십시오.”

“???”

“오늘 저녁 만찬에…… 총리님도 초청한다고 말입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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