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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0장. 나도 모르겠다.(2) (856/1,284)

860장. 나도 모르겠다.(2)

“죽여 버리겠어! 그 개자식!!!”

이광은 이성을 잃고 눈이 돌아간 상태였다.

쉽게 풀릴 화가 아니었다.

아버지가 고위 권력자가 된 이후로는 베이다이허에서 그 누구도 이광을 무시하지 못했다.

권력자의 가족은 권력자와 동등한 계급으로 대우받는 게 중국식 사고방식이었다.

그런 틀을 깨고 오늘 무참히 짓밟혔다.

그것도 일면식도 없는 놈에게 당했다.

“이름은 장립. 홍콩 상해방의 주요 인사인 양광과 몇 달 전 접촉한 유럽 화교입니다. 투자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장 주석의 비호를 받아 베이다이허에 온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광을 보필하는 비서가 수집한 정보를 앵무새처럼 읊어댔다.

“그게 다야? 그 자식 아버지는?”

“고아입니다.”

“고아? 그럼 도대체 뭘 믿고 장 주석은 그런 놈을 신성한 이곳에 끌고 왔다는 거야! 벌써 노망이라도 난 거 아냐?”

이광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과거 같았다면 바로 공안에 끌려가도 할 말이 없는 상황.

그러나 그동안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시진핑과 태자당원들은 떠오르는 태양이고 장 전(前) 주석은 지는 해와 같았다.

아버지 이악산이 부패 혐의로 잡아들인 상해방 관료들이 수십 명을 넘었다.

대부분 재산을 빼앗기고 감옥에 갇혔다.

손발이 잘려나가고 있는 장택민은 이렇다 할 저항을 하지 못했다.

권력의 한 축인 공청단과의 연합으로 태자당의 기세는 하늘에 닿을 정도다.

“여러 추측이 돌고 있습니다.”

“추측? 무슨?”

화를 삭이지 못하고 술을 마셔대던 이광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미국 쪽 스파이라는 설과 장 주석 쪽에서 키워낸 고급 인재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어린놈이던데, 그 정도야?”

“투자금 유치 금액이 수백억 위안을 넘습니다.”

“흐음.”

이광 역시 어리석지만은 않았다.

혼탁한 그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건 그렇고……. 류미가 진짜 그놈하고 약혼한 게 맞아?”

“아직은 아닙니다.”

“그렇지?”

“하지만 장립 그자가 어젯밤 류평의 집에서 리장창 대인과 함께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뭐라고?”

이광이 예상치 못한 비서의 말에 깜짝 놀랐다.

류미가 그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으리라는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장립이 류평과 리장창을 한자리에서 만났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었다.

이광도 아직은 아버지의 후광 없이는 그들과 한자리에서 술자리를 가질 수 없었다.

공청단의 중요 인사인 류평과 태자당의 책사인 천지회의 리장창 단주.

“오고 간 대화 내용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만……. 여러 쪽에서 장립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으음…….”

머릿속이 복잡해진 이광이 신음을 흘렸다.

자신의 신분을 밝혔음에도 그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굴었던 장립의 태도.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만큼 뒷배가 탄탄했던 장립.

‘그래도 없애 버릴 거야!’

명예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복수를 해야만 앞으로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었다.

“다른 건 없어?”

“특별한 사항은 없습니다.”

“……그럼 준비해.”

“알겠습니다.”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준비하라는 말의 뜻은 하나였다.

장립을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하라는 명령.

“그놈이 죽어줘야 내가 살아. 반드시…… 죽여!”

“넵!”

***

“그게 사실이냐?”

“무슨 말씀이세요?”

“장립이 이광을…….”

“네. 무릎 꿇렸어요.”

“이런!”

류미의 말에 온수려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베이다이허에서는 아주 작은 정보도 돌풍 같은 바람을 타고 흘렀다.

“눈물 콧물 흘리고 아주 가관이었어요. 흐흐.”

“네가 막았다면서?”

“장립은 제 손님이에요.”

“상대는 이광이야.”

“천하의 개자식이죠.”

류미는 다른 때 같지 않게 저돌적이고 당당했다.

장립이 수영장에서 보여준 용기와 패기에 마음이 만족스럽고 흡족했다.

지금까지 류미는 본 적이 없었던 상남자 스타일.

“약혼자라고 했다더구나?”

“이광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잖아요.”

“시집 안 갈 거야?”

온수려가 딸을 채근하듯 조용하게 물었다.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자칫 치기를 넘어 행동 단계까지 문제가 커지면 제대로 손을 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혼자 살면 안 돼요?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결혼에 목숨을 걸어요. 전…… 베이다이허가 지긋지긋해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 류미의 고백.

가장 가까운 이들도 믿지 못하고 의심을 해야 하는 베이다이허.

피붙이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적 또는 이용 대상자로 취급될 뿐이다.

환한 웃음 뒤에 감춰진 갖가지 복잡한 계산들은 매번 류미를 힘들게 했다.

“우리 아버지를 납득시킬 자신이 있으면 그래도 좋아.”

온수려가 넌지시 류미에게 압박을 가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내 말이.”

온수려의 한마디 말에 류미는 금세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

누구보다 욕심 많은 원자바오 전 총리.

“저 좀 쉴게요.”

“저녁에 할아버지 오실 거야. 약속 잡지 마.”

“네…….”

“그리고 장립에 대해서 물어보면……. 현명하게 대답해.”

온수려가 어디로 튈지 모를 딸에게 주의를 줬다.

여자로서 자신은 누구보다 딸을 이해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장립이 저질러 놓은 사건으로 벌써 시끄러워진 베이다이허.

아닌 게 아니라 사방이 벌집을 쑤셔 놓은 듯 소란스러웠다.

***

“도대체 무슨 생각이죠?”

“뭐가 말입니까?”

“이광에게 그렇게 행동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럼 가만히 놔둬요?”

“……당신 때문에 여러 사람이 곤란하게 됐단 말이에요.”

그건 당신들 사정이고.

나는 모르는 일이다.

양소려와 양광의 별장으로 돌아왔다.

생각이 많은 듯 복잡한 표정으로 양소려가 따졌다.

내가 일부러 싸움을 건 것도 아니고 그 나쁜 놈이 먼저 시비를 털었다.

“만약 제가 살던 곳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그 자식은 오늘 향냄새를 맡게 되었을 겁니다.”

“이광이 움직일 거라고요!”

그 정도는 나도 예상한다.

나한테 당하고 이광이 가만히 앉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지겹기까지 한 악인들과의 만남 패턴.

당장 날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나 있을 것이다.

“그럼 확실히 마무리 하죠.”

“립!!!”

내년을 위해 나도 베이다이허에 별장 하나를 따로 얻어야 할 것 같다.

류미를 통해 물건을 찾아보면 간단할 것이다.

매사 복잡한 양소려와 달리 단순한 성정의 류미는 상대하기 편했다.

적당히 세상이 권태로운 홍색 귀족 류미와 어울리는 게 나았다.

“이곳이 굴러가는 방식, 나와 상관없습니다. 최대한 노력은 하겠지만 내게 함부로 하는 자에게 지금껏 자비를 베푼 적은 없습니다.”

나의 목소리는 더없이 차분하고 조용했다.

경고인 셈이다.

뜻을 알아들은 듯 입술을 깨무는 양소려.

“이악산은 잔인한 자에요. 그를 따르는 무장병력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에요.”

상상 같은 거 안 한다.

나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중국 비밀 공권력.

웬만한 국가는 한 수 아래였다.

“무섭군요.”

“농담 아니에요.”

“저도 목숨 가지고 농담하지 않습니다.”

“수습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가서 무릎이라도 꿇어요?”

“이미 늦었어요.”

“그럼요?”

“……대가를 내줘야 해요.”

“돈?”

“이광과 이악산을 만족시킬 만한 대가여야 해요.”

중국식 계산방식은 참 복잡하고 철두철미했다.

온갖 비열한 죄도 돈이면 다 해결됐다.

꽌시라는 것도 알고 보면 그런 복잡한 이익 계산이 만들어 낸 인간관계였다.

“전 가진 게 없습니다. 여유가 있다면 당신이 책임져 주십시오.”

“하아…….”

답답한 듯 한숨을 토하는 양소려.

“왕정 상무위원님에게 부탁해 보십시오.”

“같은 상무위원이지만 실권이 없어요.”

“안타깝군요.”

“당신 목숨이에요.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류미가 제 약혼자입니다.”

“뭐라고요?”

진담 같은 농담에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양소려 모습이 볼 만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배 째라 태도로 나갔다.

이광 그 개자식에게 목숨 값으로 내 줄 돈은커녕 그 밖의 선물로 줄 것도, 아무것도 없다.

“대인들이 다칠 수 있어요. 이악산은 이 일에 대해 반드시 복수할 겁니다!”

“상해방의 저력을 믿어보죠.”

느긋하고 태평한 자세로 나갔다.

어차피 어느 순간에 가서는 모두 나의 적이 될 이들이다.

중국 공산당은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악성 종양 같은 존재들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벌일 수 있는 존재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과 ‘1984’가 결합한 전제주의 국가의 현실판 버전이 바로 중국 공산당이다.

자국민이 미물처럼 죽어 나가도 자신들의 권력이 보장되는 정권을 유지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다.

통신과 정보가 자유롭게 소통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토피아를 가장한 디스토피아를 꿈꾸는 자들이다.

태자당이나 상해방, 공청단 모두 권력을 놓치지 않는 데만 혈안이 됐다.

그들끼리 치고받을 수 있게만 할 수 있다면 난 기꺼이 이곳에서 난장판의 불쏘시개가 될 의향이 있었다.

“당신……. 진짜 원하는 게 뭐죠?”

양소려가 의외로 차분한 나를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이 정도면 눈치가 빠른 편.

곁에 가장 가깝게 머물면서 나를 제대로 파악했다.

“인류 평화.”

“뭐라고요?”

“진심입니다.”

공산당만 사라지면 당장 이루어질 수도 있는 인류평화.

폐쇄적 깡패 국가 중국 정부로 인해 미래에는 전인류가 고통을 받게 된다.

내수 경쟁력을 바탕으로 약소국을 협박하는 중국 정부.

2020년에 그들이 전세계에 끼친 해악은 인류의 재앙 수준이었다.

세계공황과 제2의 IMF를 일으킨 주범국.

충분히 자국 내에서 통제할 수 있는 일들도 시진핑과 통치자들이 방만하게 대응해 전세계를 혼란에 빠뜨린다.

미국과의 사이에서 벌어진 무역전쟁도 한몫했다.

그 일로 중국의 막대한 흑자를 바탕으로 그나마 버티던 한국 경제가 직격타를 입고 곤두박질친다.

결국 어떤 인물이 대한민국의 수장이 되어도 수습 불가능한 상황에 내몰린다.

고래 싸움에 움츠려 있던 새우 등이 터진 격이다.

그 사태를 막아내기 위해 이 몸이 회귀했다.

“당신 위험해요.”

양소려가 나를 걱정하는 듯한 눈빛을 내비쳤다.

이제 알았어?

“당신도 위험한 여자입니다.”

지긋한 시선으로 양소려를 바라봤다.

“…….”

심각한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는 나를 화난 고양이처럼 흘겨보는 양소려.

이유 없이 나를 건들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녀도 몰랐다.

띵동.

그때 벨소리가 들렸다.

양소려가 한숨을 내쉬며 현관 쪽으로 다가갔다.

“누구세요?”

벨소리가 울렸다는 건 경호원이 제지하지 못할 만한 인물이 찾아왔다는 걸 의미했다.

“나다.”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덜컹.

양소려가 서둘러 문을 열었다.

저벅저벅.

하지만 양광 외에도 다른 사람이 더 있는 듯 여러 개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이구나.”

먼저 나이 지긋한 목소리의 사내가 인사를 건넸다.

“아!”

놀라는 기색이 역력한 양소려.

일단의 무리가 들어서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차례로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

그중 한 남자에게 시선이 멈췄다.

뉴스에서 자주 봤던 세계적인 유명인사.

파바밧.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자네가…… 장립인가?”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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