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9장. 나도 모르겠다.
‘피똥? 미친놈 아냐?’
한걸음 물러나 지켜보고 있던 모든 이들의 하나같은 생각.
중국에서 황제 아래 왕으로 살아가는 상무위원 아들 이광.
그에게 면전에서 피똥 싸고 싶냐는 말도 안 되는 일갈을 내뱉는 장립.
마치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보였다.
당장 비밀 공안의 손에 끌려가 온갖 장기가 적출된 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중에서도 작업을 걸고 있던 제갈소소의 놀라움은 더 컸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온갖 예상된 상황에 대한 특별 교육을 받아왔다.
무공 수련은 물론이고 미인계, 납치에 대비한 대응 방법까지 내로라하는 비법을 다 수련했다.
과거 미혼공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특별한 미인계 수법은 제갈소소의 전매특허였다.
당연히 그 수법은 장립에게도 통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좋아하는 청순하고 순수한 스타일로 접근했다.
1차 접촉은 완벽했다.
숙부의 명을 완수할 수 있을 거라 의심치 않았다.
숙부인 제갈유량은 집안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국민당 정부 시절 가문은 재기할 수 없을 만큼 무너져 내렸다.
공산당을 지지했던 선조들.
당시 줄을 잘못 선 대가는 참혹했다.
제갈공명의 적통 후예로 대접받던 특권이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
멸문에 가까운 화를 당하고 가족들 모두 공산당에 투신했다.
그렇게 제갈 가문은 다시 한 번의 재기를 꿈꾸며 천지회의 두뇌를 책임지게 됐다.
가문 아이들 중에서도 특출한 재능을 보이는 이들은 따로 선발돼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
그중 한 명이 제갈소소였다.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제정신이 아닌 듯 보였던 장립이 합장을 하며 주변에 둘러선 모두를 향해 정중하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입가에는 걸린 장립의 자신만만한 미소는 덤.
더 길게 말을 잇지는 않았다.
그 때문인지 그의 말에 더욱 힘이 실렸다.
나서서 대꾸하지는 못했지만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 장립의 남다른 배포를 인정하는 듯했다.
보기 좋게 이광을 무릎 꿇리고도 저렇듯 태평할 수 있는 장립.
모르긴 몰라도 모두가 그런 그의 정신 상태에 경의를 표하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예의 바른 행동까지.
베이다이허에 모인 이들 대부분은 꽤나 자존심이 강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홍색 귀족들.
장립처럼 고개를 숙이는 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이광 못지않게 다들 곳곳에서 온갖 형태의 갑질을 부리며 살았다.
‘목숨이 세 개쯤 되는 거야?’
당황한 류미는 여유 만만한 장립을 어이없는 시선으로 바라봤다.
간이 커도 너무 컸고 심지어 밖으로 튀어나온 사람 같았다.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장립은 처음 만남부터 이런 식이었다.
면전에 두고 자신을 협박했던 장립.
역시 이광을 상대해도 그는 마찬가지였다.
한 치도 주눅이 들거나 기죽은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너…… 너!”
이광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에 치욕을 느끼며 이를 갈았다.
몸이 절로 부들부들 떨렸다.
폼을 보아하니 절대 용서 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을 듯했다.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굴욕을 당했으니 당분간 얼굴 들고 다니기가 힘들 게 빤했다.
게다가 곧 베이다이허에 소문이 쫙 퍼질 터였다.
서빙을 보고 있는 웨이터들마저도 상당수가 각 세력에 매수된 정보원들이 대부분이다.
“립. 돌아가자.”
류미는 이대로 기대했던 파티가 끝났음을 직감했다.
속히 돌아가 이 사태를 부모님과 상의해야만 했다.
“보고 싶으면 언제든 찾아와.”
장립은 끝까지 이광을 향해 이죽거렸다.
그때.
타다다다다닥.
수영장으로 갑자기 들이닥친 일단의 경호원들.
처처척!
일단의 무리는 이광의 앞을 막아섰다.
누군가 대기 중이던 경호원들에게 알린 것 같았다.
“왜 이제 와!”
이광이 제 편을 만난 듯 버럭버럭 화를 쏟아냈다.
중앙규율검사위원회 서기인 아버지 이악산의 수족들.
“저 자식 잡아! 당장!”
이광이 장립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이글거리는 이광의 살기어린 시선과 흥분에 찬 목소리.
차작.
당연히 경호원들이 움직였다.
누구도 그들의 앞을 막아서지 못했다.
여차하면 그들은 총을 뽑아 들 기세였다.
한두 명은 이미 옷섶에 손을 집어넣고 있었다.
“이거 참.”
급박한 상황에도 태연하기만 한 장립.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거야?’
제갈소소는 장립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장립이 잘났다는 것은 알겠으나 아무래도 상대를 잘못 건드린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끌려가면 다시 세상 빛을 볼 수 있을지조차 의문이었다.
‘포섭하라고 했는데…….’
제갈소소는 숙부의 명을 완수하지 못하게 됐다.
갑작스럽게 통제 불가능의 상황으로 치닫게 돼 버린 현장.
“멈춰.”
그때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류미가 장립의 앞을 당당하게 막아서며 나섰다.
***
순간 고민에 빠졌다.
마나는 이미 충분히 모아둔 상태.
일단의 경호원들과 이광을 마법으로 통구이나 만들어 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하는 싹수로 보아 평생 가도 고쳐 쓰기는 불가능해 보이는 이광.
딱히 조상신들의 가피도 느껴지지 않았다.
경고 알림 같은 것도 울리지 않았다.
악행의 업이 많아 제거하면 포인트도 쏠쏠하게 떨어질 것 같았다.
경호원들의 눈빛도 하나같이 사악했다.
사람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놈들이 확실했다.
이쯤에서 정리하기에 장립이라는 탈이 아까웠지만 놓을 생각까지 했다.
어차피 홍콩에서 굴리고 있는 자금은 전화 한 통으로 바로 처리가 가능한 시스템 안에 있었다.
아쉬운 건 중국 권력층 내부 인사들을 이간질로 갈라놓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일.
이광의 하는 짓거리를 그냥 참을 수 없었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놈이 세상사람 모두가 제 발아래 있는 양 치부했다.
던져주면 이계 오크들이 좋아할만한 지방덩어리가 입만 살아서 나댔다.
갈등하는 순간 예상치 못하게 류미가 나서 버렸다.
이 누나…… 생각보다 깡 좋다.
슬쩍 마나를 거뒀다.
“류미! 지금 너 미쳤어!”
이광의 불똥이 류미에게로 튀었다.
“남자가 경호원들 뒤에 숨어서 지금 뭐 하는 거야!”
류미가 버럭버럭 소리를 쳤다.
“이이이!”
틀린 말이 아니어서 그런지 이를 가는 이광.
아픈 부분을 콕콕 찌르는 류미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그리고 네가 먼저 잘못 했잖아. 왜 멀쩡히 있는 내 손님을 건드려? 네 아버지 권력이 네 권력이라도 돼?”
류미가 객관적 사실을 다시 한 번 짚으며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젊은 아가씨인데도 포스가 장난 아니다.
전 중국 총리를 외할아버지로 둔 류미만이 할 수 있는 행동.
파이팅! 류미!
“저 자식이 뭔데! 네 약혼자가 아니라면 절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어!”
이광이 눈을 치뜨며 발악했다.
류미를 염두하고 던지는 협박.
내 신변에 대한 가치를 두고 원자바오를 비롯해 류미의 가문이 나설 만한가를 확인하려는 말이었다.
어린놈이 약았다.
당장 달려들어 싸다구를 날려버릴까 고민하던 그때.
“어.”
류미의 간단명료한 대답 한마디.
“???”
저기 류미 누님.
지금 누구 마음대로 약혼자를 만드는 겁니까?
그리고 이곳은 베이다이허입니다.
괜히 위기를 모면하겠다고 불리한 위증을 하시면 나중에 시집도 못 가요.
“뭐, 뭐라고?”
이광의 얼굴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눈치로 보아 류미를 좋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봐도 류미의 미모는 여기 모인 여인들 전부를 다 합쳐도 단연코 탑이다.
제갈소소가 한국형 미인에 든다면 류미는 전형적인 중국의 미인상이었다.
“류미…….”
양소려가 류미를 부르려다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은 눈치다.
“안 들려? 여기 장립이 내 약혼자가 될 거라고!”
류미가 다시 한 번 확인사살을 가했다.
“세상에…….”
“장립이 누군데 류미가 저렇게 나서?”
“진짜 약혼자인 거야?”
“소문 못 들었는데…….”
병풍처럼 몰려 서 있던 사람들이 사방에서 수군거렸다.
순간 골치가 지끈 아파왔다.
류미와는 적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친하지도 않았다.
앞으로 내가 이용해야 할 대상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런 류미가 이 구역 또라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으드득.
이광이 눈을 번득이며 이를 갈았다.
눈에서 발사되는 레이저가 한층 더 강렬해졌다.
나를 꿰뚫어 단숨에 아작을 내고도 남을 만한 고출력 살상 눈빛.
“억울하면 찾아와.”
“류미이이이이!!!”
이광이 류미의 이름을 거칠게 불렀다.
“네 아버지 이악산 상무위원님과 대동해도 상관없어.”
이악산……? 으아! 설마 그 이악산?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진핑 주석의 오른팔로 불리는 이악산 상무위원.
그자로 인해 쓰러져 간 중국 고위 공산당원이 한둘이 아니었다.
일명 시진핑의 칼이자 저승사자.
몰골로 엉망이 된 이광의 얼굴을 다시 살폈다.
왜 저 자식이 그렇게 날뛰었는지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그 표정은 뭐야? 이광 정체를 몰랐어?”
내 옆으로 슬쩍 다가온 양소려가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어.”
역시 짧은 대답.
“미친!”
나의 대답에 양소려가 욕을 내뱉다 입을 다물었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불로 태울 건 다 태워버린 상황.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돌려 말하면 이악산 상무위원이 중국에서는 대단한 인물임은 맞지만 나에게는 일개 인간일 뿐.
그의 뒤에 조상신과 악신만 빵빵하지 않다면 포인트 덩어리에 불과하다.
내가 알고 있는 이악산은 악인 중의 악인이다.
“류미. 네가 한 말 반드시 책임져야 할 거다!”
이광은 병적으로 끈질겼다.
“내가 장립은 책임질 테니까 너도 네 몸뚱이는 남자답게 스스로 책임지면 안 될까?”
류미도 뒤끝 작렬이다.
그녀의 눈동자가 노골적으로 이광의 뱃살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훑었다.
이광의 못난 곳만 콕콕 찍어 잘도 자극했다.
“…….”
어처구니가 없는 듯 입을 떡 벌리고 아무 말도 잇지 못하는 이광.
“푸웃.”
“크크크.”
대신 사방에서 소리 죽인 웃음이 터졌다.
누구도 이광을 위해 앞으로 나서는 이가 없었다.
경호원들도 류미 앞에서는 경거망동하지 않았다.
권력이 참 좋다.
특히 중국에서는 힘이 곧 삶의 질이었다.
“닥쳐!!!”
이광이 웅성거리는 주변을 향해 버럭 소리쳤다.
“…….”
침묵에 잠긴 주변 공기.
그러나 난 분명 확인할 수 있었다.
이광을 향해 드러나는 보이지 않는 적의가 주변에 쫙 깔렸다.
파바밧.
이광을 노려보는 거친 시선들이 무척 많았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이광의 아버지 또한 상무위원에 오래 있지 못할 것.
그때 오늘 던진 이광의 말에 이자가 붙어 그에게 되돌아 갈 것이다.
그 무게도 모른 채 내뱉은 괘씸한 말은 끊임없이 새싹을 틔워 다시 본인의 숨통을 조일 폭탄이 될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흐뭇했다.
나의 적들이 서로를 미워하기 시작하는 베이다이허의 낮.
“하아.”
양소려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내 앞을 막아선 채 당당하게 버티고 있지만 머릿속이 복잡해 보이는 류미.
그녀의 가냘픈 뒷모습이 생각보다 든든해 보였다.
“류미.”
조용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가만히 돌아보는 류미.
눈동자가 떨리고 있다.
그녀도 이 일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장담할 수 없었다.
강한 척했지만 그녀 역시 나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인이었다.
스윽.
손을 내밀어 류미의 손을 잡았다.
이미 선포되어 버린 가짜 약혼자 신분.
나도 모르겠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벗어나는 순간 순식간에 쫙 퍼져버릴 소문.
아니 땐 굴뚝에 연기 좀 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역시 이럴 때는 피할 수 없으면 차라리 즐기라던 옛 선인들의 가르침이 답이다.
“이제 돌아가자.”
류미의 두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졌다.
그런 그녀의 눈을 조용히 바라봤다.
그리고.
“이후에 벌어지는 일은…… 오빠가 다 알아서 할게.”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