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8장. 피똥 한번 싸 볼래?
“여전히 그대로네. 불로초라도 먹었어?”
“자기가 더 젊어 보이는데. 피부가 고운 걸 보니 새로운 애인이 잘해주나 봐.”
“호호호. 소문이 홍콩까지 났어?”
“황 상장이 뭐라고 안 해?”
“내가 아들을 딱 낳아줬는데 지가 뭐라고~.”
대단한 자부심을 보이는 여인.
“부러워.”
홍린이 진심으로 부럽다는 듯 말을 건넸다.
“그럼 자기도 떡하니 하나 낳아. 대우가 완전 달라져.”
“됐어. 이 나이에 애 키우면서 살기에는 인생이 아까워.”
홍린은 말을 끊고 마저 와인을 마셨다.
요즘 들어 부쩍 술이 늘었다.
굴리는 자금 규모도 꽤 늘었지만 반면 마음은 더 헛헛했다.
도박장을 드나들고 명품 쇼핑을 즐겨 봐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빈자리.
건장한 애인을 둬 보기도 했지만 모두가 다 하나같이 홍린이 굴리는 돈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들일 뿐이었다.
오늘따라 눈앞에 있는 중앙 군사위 부주석 황용 상장의 첩이 부럽기까지 했다.
한때 자신과 처지가 가장 비슷했지만 애를 낳는 순간부터 그녀의 인생은 전혀 다르게 펼쳐졌다.
시진핑 체제하에서 무서운 것 없이 승승장구했다.
중국 군대 고위 계급인 상장의 첩 진원원.
귀하디귀한 아들을 낳고부터 기세가 등등해졌다.
아들은 고사하고 딸 하나도 낳지 못한 본처는 하루아침에 그녀 앞에서 고개마저 들지 못하게 됐다.
아직도 봉건사회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중국.
“린……. 그런데 그 소문 사실이야?”
“무슨 소문?”
베이다이허의 낮은 여자들의 전쟁이 치러지는 시간.
첩들끼리 모여 은밀히 퍼져 있는 소문들을 나눴다.
대개 본처들은 남편과 함께 현실적인 정치 부분을 다뤘고 첩들은 은밀히 진행되는 공작을 전문으로 다뤘다.
정치적으로 소비되는 자극적인 소문 대부분이 이렇게 첩들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젯밤에 리장창과 류평이 만났대.”
‘벌써 소문이 돌았네.’
전반적으로 돌아가는 모든 사안들에 다 예민한 시기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정보 채널들을 가동하고 있을 건 빤했다.
“대충 얘기는 들었어.”
“홍린. 그래서 묻는 건데…….”
의도적으로 말을 흐리는 진원원.
“괜찮아. 말해봐.”
진원원의 남편 황용 상장은 대표적인 지방 군구 수장이다.
군벌이라 불리는 과거와 연관이 되어 있는 지역의 패자.
21세기 중국에서도 군벌은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누리고 있었다.
꽌시를 맺기에 괜찮은 대상이었다.
“장립이 누구야?”
진원원이 한껏 목소리를 낮춰 은밀하게 물었다.
호기심을 넘어 진짜 그의 정체를 궁금해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우연이 인연이 닿은 남자야.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장 주석이 챙기고 있어.”
홍린은 적당히 선을 긋고 과하지 않게 정보를 풀었다.
어차피 어느 선까지는 이미 알고 묻는 것이다. 여기서 모른 척하면 괜한 신뢰를 잃을 수도 있다.
“그래? 자기와도 친하다고 하던데.”
“같이 마카오에서 만난 적이 있어. 얘기는 몇 번 나눴는데…… 상당히 괜찮아.”
“그렇게 잘생겼다며?”
“돈도 많아.”
“으흐흐. 나도 만나보고 싶은데?”
진원원이 색기를 드러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남자를 무척 좋아하는 진원원.
“한번 보여줘?”
“그래 줄 수 있어?”
“그 정도는…….”
홍린이 적극적으로 인심을 썼다.
아닌 게 아니라 장립은 이번 베이다이허에서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인물이다.
첫날부터 류평과 리장창 두 사람과 한자리에서 인연을 튼 인재였다.
“은근히 다른 언니들도 궁금해하는 것 같던데…… 같이 볼 수 있어?”
“그럼~.”
진원원은 홍린을 통해 장립에 대한 정보를 더 캐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이 정도의 적극성이라면 분명 황용 상장이 뒤에 있을 게 빤했다.
다른 고위 공산당원 첩들도 본격적으로 정보전에 뛰어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하나라도 더 유익한 정보를 캐는 자가 베이다이허의 승자가 되는 셈이다.
남편과 아내, 정부까지 삼위일체로 움직였을 때 승산이 높았다.
똑똑.
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끼릭.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서는 진원원의 여 비서.
“부인,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진원원의 비서가 홍린의 눈치를 보며 입을 뗐다.
“괜찮아. 여기 계시는 분은 내 친언니와도 같아. 얘기해.”
“……지금 수영장에서 사건이 터졌다 합니다.”
“사건? 무슨?”
“장립이라는 자와 이광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답니다.”
“뭐라고 장립!!!”
얘기를 듣고 있던 홍린이 크게 놀라며 흥분했다.
“분위기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합니다.”
“아…….”
띵 하고 울리는 머리를 짚으며 신음을 흘리는 홍린.
‘하필…… 이광이야!!!’
***
‘너희 아버지?’
이광은 귀를 의심케 하는 물음에 어이가 없었다.
여기 베이다이허에 모인 자제들 중에 감히 자신을 모르는 이가 있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승승장구한 아버지 덕분에 중국에서 소황제로 살았다.
시진핑 주석의 최측근 중의 한 명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
이악산 상무위원.
중앙규율검사위원회 서기다.
중국 정부와 지방 공무원 모두에 대한 감찰 부문을 지휘하고, 중앙군사위원회와 함께 인민무장경찰을 지휘했다.
사법부 장관과 최고인민법원 원장 등을 통솔하는 최고의 위치에 있고, 그 권력은 절대적이었다.
휘하에 두고 있는 아홉 명의 부서기들이 수족처럼 움직였다.
과거 황제를 최측근에서 보좌했던 황실 금위위 수장과 같은 위치.
시진핑의 최측근 중의 최측근이었다.
총비서인 중앙판공청 주임과 함께 시진핑이 가장 신뢰하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이악산이 늦게 얻은 아들이 이광으로 가히 목숨처럼 여겼다.
이광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학교 폭력은 물론이고 온갖 악독한 짓을 서슴지 않았지만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고위 공산당 고위 당원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문제없이 대학교까지 졸업하고 지금은 사업체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런 이광에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도 모르고 아버지의 신분을 묻는 어리석은 놈.
‘밟아버리겠어!’
이광의 눈에 살기가 스쳤다.
오래 전부터 자신이 눈여겨보고 찍어두었던 류미와 함께 이 자리에 나타난 순간부터 눈엣가시였다.
진작부터 류미와 이광 사이에 혼사 얘기가 오갔다.
아무리 아버지가 현 최고 권력자라 해도 공청단 막후 실력자인 원자바오의 외손녀인 류미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이광.
치졸하게 자존심이 상했다.
처음 보는 얼굴의 그놈 옆에 의기양양하게 자리를 잡고 재력을 과시했다.
계속 지켜봤지만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멋대로 굴던 재수 없는 놈.
인정하긴 싫지만 얼굴 천재에 키도 컸다.
같은 남자가 봐도 부러울 만큼 근육도 멋지게 발달했다.
반면 눈에 띄게 키가 작고 배까지 툭 튀어나온 이광의 모습.
신체 조건에서부터 열등감에 휩싸여 화가 폭발하기 일보직전에 먹잇감이 나타났다.
역시 처음 보는 미모의 여성이 딱 그놈 앞에서 꼬리를 쳤다.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마침 의식해야 할 류미도 보이지 않았다.
호기롭게 시비를 털었다.
사건이 커지면 커질수록 이광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건 자명했다.
근처에 있는 모두가 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윽박질렀다.
예상대로 놈이 걸려들었다.
겁 대가리를 상실한 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다.
“흐흐흐. 집을 잘못 찾아든 유기견이였군.”
이광은 상대에 대해 확실하게 파악을 끝냈다.
자신과 자신의 아버지 신분을 모르는 것만으로도 베이다이허에 처음 왔음을 증명했다.
이제야 겨우 중앙 권력의 맛을 보기 시작한 공청단의 신출내기 집안 자제 정도로 파악했다.
“유기견이라……. 하긴 개 눈에는 개밖에 안 보이는 법이니까. 쯧.”
상황 파악 못 한 채 혀를 놀리는 놈.
“개……? 너 이 새끼 죽여 버리겠어! 으아아아아!”
이광이 제 세상을 만난 듯 악을 썼다.
이 자리에서 근본 없는 놈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만큼 체면을 구기게 된다.
쇄애액.
먼저 주먹을 날렸다.
“죽어 이 새끼!!!”
주변 분위기를 살피며 눈치를 보고 있던 이광의 친구도 이광의 기세에 힘입어 함께 발길질을 날렸다.
나름 온 힘을 실어 발을 날렸지만 장립에게는 한없이 느린 어린아이의 주먹과 발길질에 불과했다.
턱!
이광의 손목이 먼저 잡혔다.
“!!!”
전혀 움직일 수가 없을 만큼 강한 힘에 의해 저지됐다.
퍽!
날아들던 발길질도 막히긴 마찬가지.
“으아아아아악!”
이광이 손에 전해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괴성을 질렀다.
“악!”
한순간 정강이를 붙잡고 바닥을 뒹구는 이광의 친구.
감히 무력으로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잔 근육으로 단단하게 다져진 장립의 몸에 비해 한없이 물렁하고 형편없는 체격의 두 남자는 비루해 보이기까지 했다.
“!!!”
“어떡해…….”
“큰일 터졌네.”
주변에 모여든 모두가 당황했다.
그들의 시선은 한결같이 상무위원의 아들 이광의 손목을 붙들고 있는 장립을 안타깝게 바라봤다.
다행히 경호원들이 밖에 있어 망정이지 이 상황을 봤다면 당장 총을 꺼냈을 사태였다.
“이광이라고 했지.”
“놔! 이 손 놔! 이 새끼……. 악!”
이광은 악을 쓰다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장립은 손에 힘을 좀 더 불어넣었다.
인상이 험상궂게 일그러지는 이광의 표정을 보고도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천천히 바닥으로 몸이 무너져 내리는 이광.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손목이 잡힌 채 무릎을 꿇는 자세가 되고 말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주르륵 흘러내리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살았던 중국 귀족가문의 소황제 이광.
정신을 무너뜨리는 낯선 고통에 그는 전신이 마비 직전이었다.
“립! 그만!!!”
그때 다급하게 들려오는 류미의 당황한 목소리.
타다닥.
류미와 양소려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이 사태에 크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낯선 묘령의 여인이 장립 앞에 나타났을 때만 해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상황이 어이가 없었을 뿐.
2층에서 여인의 수작을 지켜보고 있던 찰나 예상치 못하게 이광이 끼어들었다.
한순간 큰 소리가 났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렀다.
일이 커질까 봐 다급하게 현장으로 왔지만 그사이 이미 사건은 손쓸 수 없을 만큼 악화되고 말았다.
‘하필 이악산의…….’
류미는 눈앞이 어지러울 만큼 정신이 혼미해졌다.
냉혈한으로 성격이 차갑고 음험하기가 극에 달한 이악산 중앙규율검사위원회 서기.
누구든 그에게 걸리면 망가지고 만다.
살아남은 가문이 없을 정도.
사유 재산 몰수는 물론 빠져나올 수 없는 올무에 걸려 극형에 처해진다.
그의 손아귀에 잡혔다가 사라진 자들이 수두룩했다.
비밀리에 작업되어 사라진 이들도 수백 명.
시진핑의 망나니 칼로 불리는 자가 바로 이악산 상무위원이었다.
그런 이악산이 목숨처럼 아끼는 외아들 이광이 무수한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것도 눈 뜨고 봐주기 힘들 정도의 몰골을 한 채 말이다.
이 사태는 부풀려질 대로 부풀려져 금방 퍼질 게 자명한 일.
대노할 이악산의 얼굴이 류미의 눈앞에 생생이 그려졌다.
이 정도 사건은 아버지 류평도 해결하지 못할 수준.
최소 외할아버지가 나서줘야 겨우 무마될 것이다.
게다가 빈손으로는 가당치도 않았다.
적어도 큰 덩어리로 뭔가 챙겨줘야 지나갈 수 있다.
“하아.”
옆에 있던 양소려도 한숨을 내쉬기는 마찬가지.
권력에서 밀려난 상해방 입장에서는 도저히 장립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악산은 상해방 고위 당원들의 목을 노리고 있는 인물.
그런 상황에 천금 같은 이악산의 아들에게 모욕을 안겨준 장립.
이 일은 두고두고 이악산과 그 가문에 치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만 놔줘.”
류미가 마음을 진정시키며 겨우 입을 뗐다.
어떻게든 이 사태를 진정시켜야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왠지 속이 시원했다.
주제도 모르고 자신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던 이광.
외면을 떠나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결코 자신의 짝이 될 수 없는 인사였다.
바람둥이에 폭력적인 성향까지 갖고 있는 그의 아내가 되는 일은 죽기보다 싫었다.
척.
장립이 손에 힘을 빼며 이광의 손목을 놓았다.
“으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와장창창창.
분이 꼭지까지 차오른 이광이 선 베드 옆에 있던 탁자를 뒤집어엎었다.
사방으로 쏟아지면서 흐트러지는 물건들.
“아악!”
“피해!”
주변에 몰려 상황을 구경하던 사람들이 뒤로 주춤주춤 발을 뺐다.
미친 이광에게 걸려 좋을 게 전혀 없었다.
“……너 이 새끼, 갈가리 찢어 개한테 던져주고 말겠어!”
얼굴이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고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된 이광의 몰골.
찢어 죽일 듯한 살기 가득한 눈으로 장립을 노려보았다.
피식.
하지만 장립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런 이광을 비웃듯 가볍게 웃기까지 했다.
그리고.
“피똥…… 한번 싸 볼래?”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