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4장. 베이다이허의 낮과 밤(2).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분주히 움직이던 온수려의 손이 멈췄다.
한창 요리를 만들던 류미와 온수려는 움직임을 멈추고 몸이 경직 됐다.
신경이 온통 남자들의 대화에 쏠렸다.
최대한 대화 내용을 귀에 담아야 나중에 남편에게 필요한 조언을 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마련된 술자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화기애애했다.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순간도 간간이 있었지만 장립은 꽤나 잘 넘어갔다.
그렇게 흘러가던 대화 자리에서 생각지도 못한 폭탄이 터졌다.
다음 대 미국 대통령에 관한 이야기에 중국의 미래를 함께 논하기 시작한 장립.
장립의 얘기는 가볍게 흘려들을 만한 농담이 아니었다.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 나이의 청년이 하는 말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었다.
홍콩에 들어와 그가 굴리기 시작한 자금 규모가 상당히 컸다.
중국에서는 굴리는 돈의 규모가 바로 실력을 대변했다.
세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대화가 가히 충격적이었다.
목숨과 전 재산을 걸겠다며 장립은 리장창과 류평에게 내기 조건을 물었다.
베이다이허에서는 누구도 저렇게 무모한 내기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한번 입 밖으로 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함이 불문율이었다.
그 상대가 설사 당대 주석이라고 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만약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퇴출은 물론 죽음까지 감수해야 했다.
처음 초대된 장립이라고 해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지금 장립이 상대하고 있는 두 사람 모두 중국을 움직이는 권력층의 보이지 않는 핵심자들.
‘류미가 제대로 당했군.’
온수려는 복잡한 생각으로 딸을 바라봤다.
장난으로 끌어들인 게 애완견이 아니라 범인 꼴이었다.
류미 역시 자신이 생각 없이 집안으로 끌어들인 폭탄에 안절부절못했다.
오늘 이 사태는 딸 류미 인생에도 꽤 중요한 전환점이 될 터였다.
그래도 크게 긴장할 것까지는 없다고 온수려는 애써 차분함을 유지했다.
말 한마디면 밖에 대기하고 있는 무장 경호원들이 움직일 것이다.
“뜸 들이지 말고 말해봐.”
리장창이 장립의 조건을 물었다.
누가 들어도 내기 조건에서 손해 볼 일은 없었다.
‘그래. 장립. 네가 원하는 게 뭔지 이제 드러내 봐.’
온수려는 흥미가 동했다.
장립 같은 청년을 요즘 같은 세상에는 만나기가 어려웠다.
실세 권력자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패기 넘치게 말할 수 있는 남자.
온수려의 호감도는 계속 치솟았다.
이미 태생부터가 야심찬 정치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성장해 온 온수려였다.
그래서인지 온수려의 안목은 탁월했다. 남편 류평 역시 수많은 구혼자 중 그녀가 고른 남자였다.
이번 장립 역시 지금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일대일로(一帶一路).”
“헛!”
“아!”
세 사람의 대화 자리에서 터진 리장창과 류평의 신음.
“저…… 자식 미친 거 아니에요!”
류미가 입을 비집고 터져 나오는 신음을 삼키며 황당하다는 듯 온수려를 쳐다봤다.
‘일대일로라니…….’
온수려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신 실크로드 개척 계획.
일개 개인이 이런 자리에서 입에 담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시진핑 주석이 주창하고 있는 사업 계획이지만 상해방과 공청단도 동조하는 정책이었다.
과거 칭기즈칸 시대처럼 경제로 세상을 정복해 보고자 만들어 냈다.
그런 사안을 장립이 내기 조건으로 언급했다.
“자네 지금 제정신인가?”
평소 생각을 깊게 하는 습관을 가진 류평이 장립을 보며 놀라 물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조건이었다.
“물론입니다.”
“술에 취한 건 아닌 것 같고…….”
리장창의 목소리는 눈에 띄게 가라앉았다.
이번 베이다이허에서 권력자들에게 허락 받아야 할 내용 중 하나가 일대일로 집행 자금 부분이었다.
미래를 위해 투자를 하긴 하지만 단시간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는 없었다.
당장 이익이 되지 않았다.
중국 외환보유고를 헐어야 가능한 대사업.
“이 정도로 취한다면…… 남자가 큰일을 할 수 없죠.”
장립의 목소리에서는 열기가 넘쳤다.
“무슨 말인지 알겠네만 립, 자네가 감당할 수 있는 자금이 아니야.”
리장창이 조심스럽게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일대일로 사업에 함께할 기업들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자금은 일대일로 국가에 빌려주되 자금과 인부, 재료는 모두 중국산이어야 했다.
장립은 아직 정체가 확인되지 않는 해외 화교일 뿐이었다.
“투자를 받기로 했습니다.”
“투자?”
사업가인 류평이 재빨리 되물었다.
“우연히 알게 된 월가 친구들이 사업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확실하게 보장만 된다면……. 1차로 100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의사도 밝혔습니다.”
“뭐, 뭐라고! 1000억 달러!”
류평은 장립으로 인해 오늘 여러 번 놀랐다.
장립의 입에서 너무 쉽게 나온 1000억이라는 금액.
아직 서른도 안 된 청년이 움직일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그…… 투자자가 누군가?”
리장창이 신중하게 물었다.
여전히 얼굴 가득 여유가 넘치는 장립.
“월가의 투자 황제……. 로버트 라이언입니다.”
“!!!”
***
다들 많이 놀랐지? 흐흐.
표정들이 아주 가관이다.
내가 제시한 내기 조건에 한 번, 자금 규모에 두 번.
그리고 로버트 라이언이라는 이름에 세 번.
듣고 있던 두 사람의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자…… 네가 로버트 라이언을 어떻게 아나?”
류평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확인에 들어왔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만남을 가졌습니다.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다 홍콩 투자회사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방금 전 말을 저에게 흘렸습니다. 일대일로에 투자하고 싶은데 방법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류평의 몸이 바짝 달아올랐다.
말이 좋아 1000억 달러지 중국 권력층에게도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이런 걸 못 먹으면 천하에 얼굴도 못 들 멍청한 인사였다.
“제가 주선해 보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로버트 라이언이 믿었다고?”
리장창이 의심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소문보다 더 화통하더군요.”
“흐음…….”
리장창은 의심이 참 많았다.
“확인해 드릴까요?”
“뭘 말인가?”
“통화해서 제 말이 사실인지 확인시켜 드리는 게 의심을 날리는 데 가장 빠른 방법 같아서요?”
말과 함께 스마트폰을 들었다.
새로 개통한 장립 전용 스마트폰.
로버트 라이언과는 이미 말을 맞춰 놓은 상황이었다.
“농담이 아닌 것 같군…….”
류평이 믿음을 보였다.
여기서 한발 더.
“이곳은 베이다이허입니다. 허언이 있을 수 없다고 들었습니다.”
목소리와 분위로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
“허어.”
리장창이 크게 심호흡을 했다.
두 사람에게 배운 것을 현장에서 그대로 써먹고 있는 나를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립. 일대일로가 무슨 사업인 줄은 아나?”
류평이 자세를 고쳐 잡으며 신중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썰을 풀어야 할 때.
증권회사 시절 정직원이 되기 위해 공부했던 중국 현대 키워드 지식이 제대로 빛을 발할 타이밍이었다.
“새로운 실크로드 전략 구상. 고대 동서양의 중심축인 실크로드를 다시 구축해 하나의 경제밸트로 묶는 국가적 사업 계획으로 투자 기간은 최소 30년, 관련 국가는 100여 개 국으로 내륙 3개, 해양 2개 노선으로 추진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 만난 물고기마냥 실크로드에 대한 지식을 유창하게 풀어놓았다.
내 암기 실력은 나도 놀랄 정도.
회귀 뒤 업그레이드된 두뇌와 합쳐져 오차 하나 없이 정리된 지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대일로는 중국의 힘을 외부에 과시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이제 과거의 가난하고 인구만 많은 국가가 아니라 미국의 뒤를 이어 세계 2인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만방에 고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과거 중화민족의 황제들처럼 조공 문화를 부활시키고 싶은 욕망의 실체였다.
함께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있겠지만 거절하는 국가에는 고립과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시진핑 주석이 작년부터 주창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천지회의 오래 묵은 계획이 확실했다.
“이를 위해서는 인접한 국가들부터 도로와 항만 같은 사회간접시설 지원을 통해 인프라 건설을 촉발시켜야 합니다. 중국 정부에 우호적인 권력자들로 교체할 필요가 있는 거지요.”
내가 이렇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상당수 인접 국가들 수장은 중국에 포섭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후손들에게 엄청난 피해로 돌아갈 분에 넘치는 사회간접자본 투자.
결국은 국가 재정을 좀먹고 몇 년 뒤에는 파탄이 나게 된다.
물론 뒤로 오고가는 정치 자금 규모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엄청났다.
원래 음흉하기가 첫 번째 가는 중국이 아닌가.
공산당 일당 독제체제이다 보니 법과 사회로부터 전혀 감시가 되지 않았다.
“음.”
리장창이 또 다시 신음을 흘렸다.
자신들이 계획한 사안이지만 나의 입을 통해 듣는 맛이 다를 것이다.
“이를 위한 조치들로 빠른 시간 안에 경제협력체를 구축하고 실크로드 기금 및 인프라 투자은행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곳에 들어갈 자금은 최소 500억 달러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자네…….”
나를 보는 류평의 시선도 180도 변했다.
처음 이 집에 들어설 때만 해도 나를 재롱둥이처럼 봤었다면 이제는 아니었다.
경외감과 약간의 두려움이 눈빛에서 비쳤다.
무시하지 못할 대상임을 확실하게 인식한 눈치다.
이럴 때일수록 쐐기를 박아야 했다.
이 정도 썰로 이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런 자금으로 5개 노선에 자금이 지속적으로 투자된다면 거대한 시장이 탄생하게 될 것입니다. 계획이 성공만 한다면 세계 인구의 60%인 40억 명 이상, GDP 21조 달러를 차지하게 되는 거대한 경제 회랑이 완성됩니다. 그리하면…… 웬만한 외세의 바람에도 거뜬하게 버텨낼 것입니다.”
메시지를 전하는 목소리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했다.
내 입으로 말하고 있지만 현실화 된다면 진짜 두려운 중국의 저력.
이웃집 개라고 막무가내 무시할 수 없다.
경제성장 동력을 급격하게 끌어올리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었다.
동시에 지속적 성장과 안정적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 경제의 질적 성장과 지역경제의 통합 수장을 노리는 게 가능했다.
아시아를 넘어 유럽에까지 패권 행사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바다 건너 미국의 힘을 빼는 데는 협동만큼 중요한 게 없었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계획들은 일장춘몽으로 끝날 뿐 중국인들은 실패하게 된다.
있는 대로 돈을 퍼부어 경제는 어느 정도 성장하지만 결국 주변국으로부터 민심을 잃는다.
공산당 권력자들부터 시작해 인민들은 과거 시대 잘나가던 중화사상의 허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일명 중화 졸부병.
돈이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빠져 사는 민족답게 그 과정을 다시 밟는다.
하지만 세상 이치가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지혜와 인품이 그들의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그들이 노린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더럽고 치사해도 졸부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인간사와 상황이 똑같았다.
중국이라는 거대 패권국에 도전할 주변 국가가 거의 없다.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손을 빌려 방패 노릇을 하긴 했지만 그것도 한계에 봉착한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직후부터 우방 국가는 미국의 호주머니 신세가 된다.
자국 우선주의를 명목으로 내세워 중요한 신의를 헐값에 팔아먹어 버리는 트럼프.
그나마 미국이 지금까지 쌓아왔던 국제신뢰를 아주 탈탈 털어 먹어 버린다.
피할 수 없는 각자도생의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전에 일대일로에 지뢰를 넓게 깔아야만 한다.
이웃집 개의 마수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
다된 밥에 침도 뱉고 소금을 뿌려야 한다.
계획하고 있던 일들을 이제야 실행할 수 있는 기회를 하늘이 주신 것이다.
“대단하군!”
류평이 나를 향해 엄지척을 내밀었다.
그만큼 나를 확실하게 인정한다는 표시.
“부족할 따름입니다.”
고개를 숙여 겸손한 제세를 유지했다.
낱알이 많고 익은 벼일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이곳은 여우들의 회의 장소인 베이다이허.
가만히 침묵하는 리장창을 바라봤다.
“언제부터 이런 계획을 세우고 있었나?”
담담하게 리장창이 건네는 마지막 관문 같은 물음.
이 시험을 무사히 통과해야 적의 성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어느 날 문득…… 신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신?”
류평의 눈이 툭 튀어나올 듯 커졌다.
두 사람에게는 유감스럽지만 중국신이 아니라 한민족을 수호하는 태백산 조상신의 계시다.
“신이 뭐라고 하던가?”
리장창의 눈빛이 더할 나위 없이 신중해졌다.
이제는 결판을 볼 타이밍.
베이다이허의 밤은 깊어져만 갔다.
“그분께서 말하셨습니다.”
최대한 묵직하고 조용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그리고.
“말 안 듣고 비웃는 이웃집 개들을…… 확실히 때려잡으라!”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