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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1장. 뜻밖의 조우. (847/1,284)

851장. 뜻밖의 조우.

“여전히 두 분이 건강하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인민들의 홍복입니다.”

“장 비서관의 말은 언제 들어도 듣기가 좋아요.”

원자바오 총리가 조용히 대꾸했다.

두툼한 안경 너머로 투명하게 반짝이는 눈동자.

좀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노회한 정치인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장 비서관이야말로 갈수록 안색이 좋아지는 것 같아.”

장택민이 툭 몇 마디를 뱉었다.

가시가 담긴 말투였다.

시진핑과 태자당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 장문량 덕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중국몽을 꿈꾸는 천지회의 천단 단주 장문량.

“두 대인께서 아량을 베풀어 주신 덕분입니다.”

장문량은 결코 고개를 치켜들지 않았다.

포권 자세를 취하고 한결같은 겸손함을 보였다.

권력을 잡은 몸이었지만 언제 물거품처럼 무너질지 몰랐다.

원자바오와 장택민이 손을 잡는다면 태자당의 힘으로는 버틸 수 없었다.

아직 손에 쥔 권력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최대한 조심 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이른 초대는 무슨 이유 때문입니까?”

나이와 지위, 경륜이 높은 원자바오였지만 조심스럽게 의문을 표했다.

아직 아랫사람들끼리 논의하고 처리해야 할 이야기도 채 끝나지 않았다.

조율할 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상황이라 벌써 대장들이 만나야 할 이유가 없었다.

“나도 그게 궁금해.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나?”

장택민도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정치적으로 적수인 관계이지만 장문량의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가 이렇게 따로 불렀다면 그만한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 판단했다.

“두 대인께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제안?”

“흐음.”

‘이 너구리가 무슨 꿍꿍이인 거지?’

장택민은 색안경을 꼈다.

막상 당할 때까지 몰랐던 장문량의 치밀한 수법.

그의 제안을 덥석 물 필요가 없다.

원자바오 또한 짧게 신음을 흘렸다.

“이번 베이다이허 회의를 예정보다 며칠 빨리 끝냈으면 합니다.”

감춰진 속내를 은근히 드러내는 장문량.

“이유는?”

장택민이 바로 그 연유를 물었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다.

장문량에 대한 암살 시도도 몇 번 있었다.

물론 장택민을 향한 살수도 수십 번 자행됐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일종의 휴전 제의였다.

“나도 궁금하군요. 갑작스럽게 전통을 엎을 만큼 중대한 일이라도 있나요?”

진짜 의중을 드러내지 않고 원자바오가 물었다.

겉모습과 속이 완전히 다른 중국 전 총리.

공청단을 지금까지 키워 온 저력이 그의 안에 숨어 있었다.

“……공동의 적이 나타나면 예로부터 내부는 힘을 합치는 법입니다. 국공합작과 같은 개념입니다.”

“공동의 적? 누구?”

장택민이 의아한 듯 물었다.

가장 유력한 방해꾼인 미국 정부는 현재 조용했다.

파견된 로비스트들이 일을 잘해준 덕이다.

러시아와는 적절한 선에서 이익을 주고받았다.

인도와는 시시때때로 부딪쳤지만 아직 걱정할 만한 상대는 아니다.

여러 국가가 합쳐진 유럽도 이간질만 하면 상대하기 쉬운 대상이다.

결국 중국에는 현재 적이랄 만한 상대가 없었다.

그런데 국공합작이라는 말까지 언급하는 장문량.

표정으로 보아 농담은 아닌 듯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우리 쪽 중요한 인사인 리장창 단주가 습격을 받았습니다.”

서로에 대해 잘 파악하고 있음을 감안하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

“개인적 원한 관계가 있었던 것 아닌가요?”

원자바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중요한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꺼내기에는 사건의 비중이 다소 작았다.

리장창이 천지회의 중요한 재원이긴 하지만 세 사람이 미리 모여 회의 안건으로 논의하기에는 중량감이 떨어졌다.

“아닙니다. 중화 인민을 위해 막강한 적을 제거하던 중이었습니다.”

“적이 누군데?”

장택민이 답답한 듯 대놓고 물었다.

원자바오도 안경을 슬쩍 매만지며 같은 시선으로 장문량을 바라봤다.

“장태산이라는 한국인입니다.”

“장태산?”

장택민은 처음 듣는 이름인 듯 다시 물었다.

“…….”

원자바오는 아는 이름인 듯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나타난 천재 투자자입니다.”

“일개 투자자가 우리의 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장택민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채근했다.

중화 인민의 공동의 적으로 명명한다는 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자신은 이름도 처음 들었다.

그것도 한국인.

“로버트 라이언이라는 월가 투자자와 친구입니다. 그리고 백악관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으며 차일드 가문의 적통과도 매우 친분이 두텁습니다.”

“뭐라고?”

장택민이 예상치 못한 대답에 놀라 되물었다.

그가 아는 한국인들 중에 그렇게 네트워크가 좋고 힘 있는 인물은 없었다.

“우리 중화인민공화국의 성장에 큰 걸림돌이 될 자입니다. 몇 번이나 살수를 보냈지만 실패했습니다. 소유한 재산은 수조 달러에 달할 거라는 첩보도 받았습니다.”

“수조 달러!!!”

대범하기로 따라올 자가 없는 장택민이 깜짝 놀랐다.

수조 달러는 그도 운용 못 해본 거금이었다.

그런 자를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워낙 평소에도 은밀하게 행동하는 자입니다. 문제는 겁도 없이 홍콩에 나타나 리장창을 협박했을 만큼 배포와 실력이 출중하다는 겁니다. 소유하고 있는 기술 연구소의 가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미래를 위협하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장문량은 목소리에 힘을 더 실었다.

장태산 때문에 아들이 아직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개인적 원한을 떠나 중국몽 자체를 위협하는 악성 세균이 확실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뭉쳐야 할 이유로는…….”

장택민이 은근이 부정적 의사를 밝혔다.

무엇보다 빼앗긴 권력 회복이 그에게는 첫 번째 목표였고 풀어야 할 과제였다.

“…….”

반면 여전히 말이 없는 원자바오.

가늘게 실눈을 뜨고 생각에 빠졌다.

마침 그때.

“그자는…… 치우의 후계자입니다!”

“헛!”

“아!!!”

***

‘리장창!’

류평은 방문자를 확인하고 크게 놀랐다.

홍콩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태자당의 막후 실력자.

천지회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단주 직책을 맡고 있는 인물.

한때는 가깝게 지내기도 했던 사람이었다.

형, 동생 할 만큼 친분을 나눈 사이였지만 지금은 때가 좋지 않았다.

적수 관계가 되어 버린 태자당과 상해방.

그렇다고 문밖에 세워두고 매정하게 박대할 수도 없었다.

만약 여기서 방문을 거절한다면 남은 여생 동안 리장창과 원수로 지내야 할 것이다.

경호원들이 선뜻 제지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베이다이허 기간에 파견된 공안들과 경호원들은 중요 인물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숙지한다.

자신들 선에서 어떻게 할 수 없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접촉을 피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정치적 행보는 언제나 은밀해야 그 효과가 큰 법.

‘하필.’

류평은 거실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장립과 가족들을 돌아봤다.

장립은 자신도 오늘 처음 만나는 자.

장택민이 초청한 손님임을 밝히고 리장창에게 소개했다가는 소문이 어떻게 퍼질지 몰랐다.

끄덕.

그때 장립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류평의 난처한 모습에 자신은 괜찮다는 의사를 전한 것이다.

아내 온수려와 딸 류미도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보였다.

“동생?”

리장창의 두 번째 부름이 이어졌다.

집 밖에 더 세워두었다가는 엄청난 실례가 될 터였다.

끼릭.

결심을 한 류평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하하. 어서 오십시오. 형님!”

류평은 문 바로 앞에 서 있는 리장창을 반기며 활짝 웃었다.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태자당의 중요 인물에게 밉보여 좋을 게 없었다.

어느 순간 비밀 공안에 끌려가 재산을 다 빼앗길 수도 있었다.

“동생이 너무 보고 싶어 이렇게 갑작스럽게 방문하게 됐네.”

뻔한 거짓만을 아무렇지 않게 입에 올리는 리장창.

“제가 먼저 찾아뵈어야 했는데 실례가 큽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먼저 술을 받게나.”

마오타이주 8병이 들어 있는 가방을 건네는 리장창.

“감사합니다.”

술을 받아들고 류평은 리장창을 안으로 인도했다.

“어서 오십시오.”

온수려가 화사하게 웃으며 그를 맞았다.

“오! 제수씨. 미모가 여전하십니다.”

리장창은 진짜 친하기라도 한 듯 온수려에게 친근한 멘트를 건넸다.

“큰아저씨께 인사드립니다.”

까칠한 류미도 예의바른 숙녀가 되어 인사를 전했다.

그녀도 리장창의 입지를 잘 알았다.

“류미! 이렇게 아름다운 미인이 되었구나. 클라라와 같이 봤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성숙한 여인이 되다니.”

“언니는 프랑스에 잘 계시죠?”

“한번 놀러가렴. 애 엄마가 돼서 그런지 고국이 그립다고 얼마나 징징거리는지 모른단다.”

리장창 가족과 베이다이허에서 몇 번 어울린 적이 있는 류미.

“조만간 언니를 보러 가야겠어요.”

류미가 특유의 싹싹함으로 어색한 분위기를 녹였다.

이 자리에서만큼은 가문과 아버지를 위해 말괄량이처럼 행동하지 않았다.

“그래. 클라라에게 연락해 두마.”

인자한 미소를 짓는 리장창.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장립에게 향했다.

“!!!”

장립을 보고 리장창은 내심 깜짝 놀랐다.

생각지도 못한 낯선 자와의 만남.

‘저자는 왜?’

류평과 접점이 전혀 없는 장립.

베이다이허에 초청 받았다는 정보는 익히 알고 있지만 실세 권력자 중 한 명인 류평의 집에 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시는…… 사이입니까?”

류평이 눈치 빠르게 물었다.

리장창의 안색 변화는 금방 표가 났다.

“아, 아니네. 어디서 본 것 같아서…….”

리장창은 교묘히 말끝을 흐렸다.

오늘 처음 직접 대면하는 장립.

사진으로 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기시감도 함께 전해졌다.

꼭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한 눈빛과 자세.

뚜벅뚜벅.

장립이 가까이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장립이라고 합니다.”

먼저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인사를 건네오는 장립.

행동은 절제되고 목소리는 듣기 좋았다.

어디 하나 흠잡을 것 없이 예의범절이 몸에 깊이 묻어 있었다.

“제 딸아이가 초청한 손님입니다. 오늘 처음 만났는데 예전부터 알던 것처럼 편안한 친구입니다.”

류평이 장립에 대한 인상을 먼저 전했다.

“그래요? 만나서 반가워요. 리장창이라고 합니다.”

리장창이 손을 내밀었다.

콰득.

맞잡는 두 사람의 손.

장립의 손에 생각보다 강한 힘이 실렸다.

“???”

리장창은 더 이상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이 왠지 낯설지 않았다.

마치 잘 알고 있는 청년을 만난 듯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장립이 부드러운 인상에 웃음을 띠며 입을 열었다.

그 순간 리장창의 머릿속을 스치는 한 남자의 얼굴.

‘장태산을 닮았어…… 장태산을!’

장립을 마주하며 느낀 그 감정의 정체를 확실히 깨달았다.

하지만 분명 장립은 장태산이 아니다.

키가 장태산보다 좀 작았고 얼굴 형태나 체격도 달랐다.

고작 몇 달 전 만났던 장태산을 리장창이 착각할 리 만무했다.

마주한 채 오고가는 두 남자의 눈빛.

파바밧.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시퍼런 전류가 스파크를 일으키며 사방으로 튀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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