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0장. 여우굴에 가다(5).
“류미에게 진짜 그런 말을 했다고? 원자바오 총리도 어쩌지 못한다는 그 말괄량이를?”
“당황해서 혼났어요. 경호원들이 총알을 날릴 기세였다니까요.”
“미친놈은 아닌 것 같은데…….”
상해방의 거두인 상무위원 왕정이 머물고 있는 별장.
장립을 내려주고 양소려는 곧장 이곳으로 왔다.
“두둑한 배짱이라고 해둬요~.”
홍린이 배시시 웃으며 끼어들었다.
“언니가 못 봐서 그런다니까. 내가 살다가 류미에게 그런 막말 던지는 남자는 처음 봤어. 아무리 화교라지만 본토에서 그러면 칼 맞지.”
양소려가 평소와 달리 빠른 말로 심정을 쏟아냈다.
장립과 함께한 짧은 시간 동안 심장이 몇 번이나 녹아내릴 뻔했다.
권력을 빼앗긴 상해방과 손을 잡은 태자당과 공청단.
이제 겨우 전쟁이 끝나고 숨을 고르는 타이밍인데 생각지 못한 폭탄이 나타났다.
장택민 주석의 명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곳 근처에도 올 수 없었던 장립.
몇 번의 게임으로 대단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다 이곳에 오자마자 류미와 인연이 닿았다.
총리에서 물러난 원자바오였지만 그 영향력은 여전히 대단했다.
과거부터 한쪽 편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적 위치에서 과실을 따먹어온 공청단.
태자당과 손을 잡았지만 언제 변심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만큼 공청단 핵심 원로들의 가족과 인연을 맺는 일은 무척 중요했다.
그 점에서 류미는 0순위로 만나야 할 대상.
“주의는 줬나?”
“여러 차례 주의를 줬지만…….”
양소려가 말을 흐렸다.
장립이 누구 말을 들을 남자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장립은 길들여지지 않는 맹수 같은 남자랍니다.”
어둠이 내리자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홍린.
볼이 불콰하게 달궈진 상태에서 장립에 대해 나름 평가를 했다.
“위험한 자가 확실한데…….”
왕정은 답답했다.
본인이었다면 절대 장립을 이곳에 초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장주석도 어찌할 수 없는 진선의 명령.
입맛을 다시며 소식을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주석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원로들을 만나고 있다.”
“벌써요?”
양소려가 놀라서 물었다.
보통 아랫사람들이 대화의 물코를 트며 베이다이허는 시작됐다.
이것저것 작은 권력을 나누며 점점 큰것에 대해 논의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가장 큰 덩어리나 조율이 되지 않는 권력은 원로들이 만나 담판을 졌다.
그 자리에서 한 번 결정되면 반드시 따라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해도 내전이 벌어질 수 있었다.
저우융캉 사건도 타협으로 결말이 났다.
장택민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중국은 세 조각으로 나눠졌을 것이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공청단에서 먼저 자리를 만들었다.”
“뒤통수 치고 이제 중립 위치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하는 거겠지. 본래 공청단 녀석들이 음험하잖아. 모시는 조상이 장사치들이라…….”
홍린이 뼈가 담긴 말을 내뱉었다.
“린! 말조심 해. 밖에 새어나가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래.”
“왕정. 이곳은 당신 아지트에요? 우리 셋밖에 없는데 누가 듣겠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홍린이 양소려를 바라보며 물었다.
“상무위원님 말씀처럼 조심해서 나쁠 게 없죠. 이번 베이다이허는 느낌이 좋지 않아요. 여기서 만약 조그만 불씨라도 튕겨 발화된다면…….”
말을 아끼는 양소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겨우 휴전 상태일 뿐.
누군가 당장 시비를 걸어온다면 목숨을 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국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
각 성을 차지하고 있는 군벌들도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길고 긴 세월 동안 뿌리내린 정치세력과 군벌들의 결합된 권력.
모두가 최악의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난 립이 기대돼.”
“네?”
“뭔가 큰일을 해낼 것 같아.”
“그놈이 뭘 해내? 얼굴만 반반하고 겁도 없는 놈이야.”
“자기, 설마 질투하는 거야?”
왕정이 예상외 반응을 내보이자 홍린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물었다.
“…….”
입을 꾹 다무는 왕정.
외부에는 첩 정도로 알려져 있지만 과거의 홍린이 아니었다.
상해방 안에서 홍린도 엄연히 독자 세력을 구축한 상태.
그녀를 탐하기 위해서는 왕정도 엄청난 공을 들여야 했다.
“일단 기다려 봐요. 오늘 밤 장립이 무사히 돌아온다면 그에 대한 평가를 새로 내려야 할 것 같으니까요.”
긴장을 풀지 않고 있는 양소려.
낭군을 적지에 떠나보낸 아낙처럼 마음을 졸이며 장립의 무사귀환을 빌었다.
‘제발…… 큰 사고는 치지 말아줘!’
그리고 기원했다.
장립이 기폭 장치가 되지 않기를.
***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립이라고 합니다.”
류평은 정중하게 인사하는 장립을 유심히 바라봤다.
장인인 원자바오는 원로들을 만나기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평소라면 가족들과 함께하고 있을 시간.
외동딸 류미가 첫날부터 사고를 쳤다.
빠른 차를 한 대 사달라고 해 구입해줬더니 첫날부터 상해방의 차를 받았다.
다행히 차를 타고 있던 사람은 류미와 교류가 있던 양소려.
그랬기에 망정이지 다른 거두였다면 일이 커질 뻔했다.
천방지축 말괄량이 외동딸 류미.
외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 부모도 통제하지 못할 지경이 됐다.
그런 류미가 저녁 식사에 낯선 이를 초대했다.
‘평범한 자가 아니다.’
청렴하다고 알려진 장인의 재산을 뒤에서 관리해 주고 있는 류평.
사람 보는 눈이 대단하다고 정평 나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힘이 약한 공청단은 태자당과 상해방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통해 살아남았고 조용히 이권을 키웠다.
사냥법과 불을 인간에게 전해 준 복희를 섬기는 상해방은 정치 스타일이 유난히 거칠었다.
그들이 통치하던 시절에는 중국에 피바람이 끊이지 않고 불었다.
반면 황제 헌원을 섬기는 태자당은 꿈에 빠져 살았다.
중국몽을 외치며 이상적 공산주의 사회를 꿈꾸고 있는 태자당.
그에 반해 농업과 상업을 인간에게 가르쳐 준 신농을 섬기는 공청단은 계산이 무척 빠르다.
사실 세 집단 모두 왜 자신들이 삼황을 계속해서 섬기고 있는지 그 연유를 잘 몰랐다.
어느 날 우연히 시작된 일이었지만, 이제는 피와 살이 되어 버린 삼황 귀속.
세 정치 집단은 인민들 대신 그렇게 신을 모시며 중국을 통치했다.
그 삼황 중 신농씨를 따르는 공청단.
타고난 이재가 밝았다.
사람 보는 눈 또한 남달랐다.
오로지 눈치로 오늘날의 영광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들어와.”
류미가 장태산을 안으로 들였다.
술이 들어 있는 고급 종이가방을 들고 안으로 들어오는 장립.
“여보.”
류평이 아내를 불렀다.
베이다이허가 아니면 고위 공직자들은 가족들과 평안하게 휴가를 보내는 일이 불가능했다.
한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는 권력자들이 중국 정치판을 잡고 있다.
그런 까닭에 ‘반휴양반공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사박사박.
단정한 감청색 치파오를 차려입은 류평의 아내 온수려가 나타났다.
부친을 닮은 듯 평안한 미부상을 한 온수려.
은은한 미소를 입가 물고 장립을 맞이했다.
“올해 첫 별장 손님이 된 걸 환영해요. 류미의 엄마 온수려예요.”
“장립이라고 합니다.”
온수려가 정말 기쁜 마음으로 장립을 환대했다.
딸 류미가 처음으로 초대한 남자 손님이었다.
시집 갈 나이가 됐지만 남자에게 도통 관심이 없었던 류미.
베이다이허에 오자마자 연이어 사고를 치고 있었다.
“엄마! 잘생겼지?”
류미는 부모와의 대화에 거침이 없었다.
이제는 류미에 관련한 대부분의 것을 포기한 상태.
“그래~ 미남이구나.”
“겁도 없어. 나보고 까불면 다친대. 으흐흐.”
장난기 가득한 류미의 웃음도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장립은 얼굴을 붉히거나 당황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딱 봐도 본인이 말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였다.
‘아버지가 왜 이자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알겠네.’
온수려 또한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정치인이었다.
중국에서 정치인 집안은 웬만하면 모두가 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어른이 무너지면 한순간 온 집안은 쑥대밭이 된다.
과거처럼 구족까지는 아니었지만 직계 존비속은 세상에서 매장된다고 봐야 했다.
그런 이유에서 모두 다 꽌시를 맺어야 했고 자연스레 정치에 입문해야만 한다.
특히 온수려의 남편 류평은 중국 10대 부자에 드는 갑부.
공청단의 재산을 수호하고 세를 불리는 일이 주 업무다.
온수려 역시 뭐니 뭐니 해도 식견이 뛰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 온수려 눈에 장립은 결코 평범해 보이지 않는 청년.
두고두고 알아둬야 할 인재로 판단됐다.
여러 세력에게서 팽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능력 있는 자들을 최대한 많이 포섭하는 게 좋았다.
그래서 장립의 초대를 말리지 않았다.
공청단 레이더에 걸린 상해방의 요주 인물.
장택민 전 주석이 각별히 챙긴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이유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
홍콩에서 투자 사업을 벌이는 해외 화교라는 정도.
아무리 털어도 정보가 매우 부실했다.
미국 쪽과 연결되어 있다는 얘기가 있기도 했다.
“무거워. 받아줘.”
“내가?”
장립이 류미에게 술병을 건넸다.
“손님인 내가 계속 들고 있어?”
“와아. 이 남자 정체가 뭐지? 나 류미야! 류미!”
“그래 난 장립이야. 장립.”
말과 함께 술병이 든 종이 백을 류미에게 건네는 장립.
얼떨결에 그것을 받아든 류미.
“크크.”
류평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 류미가 오늘 임자 만났네.”
“아빠! 엄마! 지금 웃음이 나와?”
류미가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부모를 바라봤다.
평소와 달리 초면인 장립에게 무척 관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부모님.
다분히 충동적인 초대였지만 의외로 가족과의 만남이 나쁘지 않았다.
다들 류미가 생각 없이 산다고 걱정을 했지만 그건 잘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에게서 철저하게 교육 받아온 류미.
그게 싫어 겉으로는 툴툴 댔지만 자신의 미래와 당면하게 될 정치적 운명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장립의 이름을 듣는 순간적으로 직감적인 판단을 내렸고 저녁 식사에까지 초대했다.
양소려의 표정으로 장립이 상해방에 포섭된 인물은 아님을 파악했다.
“약소하지만 이것도 받아 주십시오.”
장태산이 품에서 가죽 케이스 하나를 꺼냈다.
“이게 뭔가?”
“두 분의 영원한 해로를 기원하며 준비했습니다.”
딸깍.
케이스가 열렸다.
그 순간.
“어머!”
웬만한 보물을 보고는 놀라지 않는 온수려가 탄성을 터트렸다.
한눈에 봐도 대단한 붉은 보석 반지.
“설마 레드 다이아몬드?”
류미도 놀라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구하기 힘들다는 레드 다이아몬드.
1캐럿에 백만 달러 정도 값이 나가지만 그 가격은 무의미했다.
구하는 일 자체가 힘든 물건이었다.
그런 레드 다이아몬드 반지가 두 개나 들어 있었다.
적어도 3캐럿 이상으로 보이는 알이 박혀 있는 반지 한 쌍.
“선물로…… 과한 것 같군.”
류평이 장립을 다시 봤다.
처음에는 마오타이주를 들고 꽌시를 맺으러 온 자라 판단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처음부터 상대의 허를 찌르는 선물로 대화 물꼬를 트는 장립.
류미가 우연히 교통사고를 쳐서 데려온 게 아니었다면, 의도적으로 접근한 자라 의심했을 것이다.
“아빠! 그거 필요 없으면 저 줘요! 제 친구들도 구하지 못한 엄청난 아이템이란 말이에요!”
류미가 잔뜩 흥분했다.
돈이 넘쳐나는 중국 상류층 모임에서 물질 자랑이 빠질 수 없었다.
특히 이곳 베이다이허에서는 수준 낮은 자식들 간에 서로 가진 부를 과시하는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류미는 레드 다이아몬드에 마음을 홀딱 빼앗겼다.
“안 돼. 이건 과한 선물이야.”
온수려가 거절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괜찮습니다. 귀한 분들에게 이 정도 선물은 과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장립의 아부는 수준급이었다.
“그래도…….”
온수려도 여자였다.
다른 귀부인들은 착용하지 못할 만큼 대단한 반지가 싫다면 거짓말이다.
“인연의 가치는 어떤 물질과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두 분께서 거절하시면…… 이곳에 제가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장립이 강단 있게 나왔다.
상대를 향한 배려였다.
“그럼 그 마음 감사히 받도록 하죠.”
온수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활짝 미소를 지었다.
“내 아내의 마음을 단숨에 빼앗다니 자네 대단하군. 하하하.”
류평도 호탕하게 웃었다.
마음에 쏙 드는 장립의 행동.
“내 거는? 내 선물은!”
류미가 장립에게 선물을 내놓으라며 떼를 썼다.
오늘 처음 본 사이임에도 오래 만나온 남자친구 대하듯 행동하는 그녀.
“하는 거 봐서.”
“뭐, 뭐라고???”
“왜? 싫어?”
“…….”
류미가 입을 다물었다.
장립을 추궁하면 안 된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입술이 삐죽 나오기 직전인 류미.
“여보. 손님도 오셨으니 이제 식사를 하도록 하지.”
“네. 식탁으로 가요.”
반지를 받고 기분이 한결 더 좋아진 부부.
“안으로 가세.”
“감사합니다.”
장립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류평이 식탁으로 안내했다.
“하아.”
짧은 한숨을 내쉬며 따라오는 류미.
이런 결과와 맞닥뜨리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저 외할아버지 입에서 나온 장립이라는 이름의 사내가 궁금했을 뿐이었다.
살짝 던진 저녁식사 초대에 겁도 없이 응한 장립.
부모님을 내세워 꾹 밟아 누르려했는데 그것도 소용이 없었다.
단숨에 두 분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나쁜 남자는 아닌 것 같은데…….’
아빠와 함께 나란히 걸음을 옮기는 장립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류미.
띵동.
그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누구?”
베이다이허의 밤에 초대 손님은 정해져 있었다.
걸음 하나도 정치적인 행위일 정도였다.
그런데 이 시간에 초대도 없이 초인종을 누를 수 있을 정도라면.
류평이 의구심 가득한 눈빛을 하고 현관으로 나갔다.
정치적인 말이 오가는 날인만큼 가정부도 내보낸 상태였다.
“누구십니까?”
경호원을 통하지 않는 자라 하면 대단한 고위 관료거나 엄청나게 친분이 있어야 가능한 일.
“하하. 동생! 나 리장창이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