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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6장. 여우굴에 가다. (842/1,284)

846장. 여우굴에 가다.

“대웅조선을 결국 장태산 그놈이 먹었습니다.”

“손쓸 틈이 없었습니다. 여론을 교묘하게 이용했습니다.”

“그래봤자. 대웅조선 못 살립니다.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앞으로 돌아올 우발적 채무가 3조랍니다. 아무리 기존 채무를 상각 처리한다고 해도 3조라는 돈을 어떻게 막습니까? 가뜩이나 조선 경기도 안 좋은데.”

“차라리 잘된 일일 수도 있죠. 장태산에게 투자하는 놈들도 뜨거운 손해를 봐야죠. 흐흐.”

스르르르르릇.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산뜻하게 불어오는 강남 로얄 프린스 호텔 중식당 밀실.

세 남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눴다.

산해진미가 원형 탁자 위에 잔뜩 깔렸다.

대낮부터 오량액이라 불리는 백주가 몇 잔 오갔다.

밖은 8월 무더위가 한창 기승이다.

대한민국은 온난화 영향으로 해가 거듭될수록 여름 더위가 더해갔다.

오월호 사건은 여전히 진상이 규명되지 못하고 있었다.

인양 문제까지 거론되면서 여러 가지 사건이 한꺼번에 뒤섞였다.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은 여론 악화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선방했다.

댓글부대를 대거 이용하면서 언론이 조직적으로 움직여준 덕분이었다.

그래도 과거 선거 때처럼 압승을 거두지는 못했다.

갈수록 국민들을 요리하기가 어려워지면서 과거 같지 않은 정치판.

시민들이 깨어나고 있었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어.’

손대균은 반종현과 전운택의 대화에서 한 발 빠졌다.

3조는 일반인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일지 모르지만 장태산에게는 그렇지 않을 터였다.

그 정도로 눈 하나 꿈쩍할 녀석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손해 난 부분은 아직 없었다.

대웅조선의 기존 채무를 산업은행이 전부 떠안았다.

거의 공짜에 가까운 저금리 대출도 이뤄졌다.

우발 채무가 존재한다지만 선주들이 인수를 거부해 상각 처리된 비용이 대부분.

그걸 살려낼 수만 있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 있었다.

“손 장로님은 오늘 말씀이 없으십니다.”

몇 잔 술에 달아오른 전운택이 입을 다물고 있는 손대균을 바라봤다.

“장태산은 만만치 않은 녀석입니다. 이번에도 주순자를 이용한 것 같습니다.”

“주순자……. 하아. 그년이 문제입니다. 요즘 말을 잘 안 들어요.”

반종현이 눈을 부라리며 입맛을 다셨다.

“오월호 대처도 문제입니다. 이걸 어디까지 커버해 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전운택의 표정도 심각하긴 마찬가지.

“날릴 수 없겠지요?”

“끙……. 방법만 있다면 진작 보냈겠지요. 하지만 그 뒤에 VIP가 버티고 있어요. 옛 충신 세력들도 장난 아니고.”

“국회 쪽도 마찬가지입니다. VIP를 통해서 국회에 입성한 의원들이 병풍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어요.”

조심스럽게 터져 나오는 주순자에 대한 불만.

권력은 나눠가질 수 없다는 속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게다가 부쩍 욕심을 더 부리고 있는 주순자.

‘조만간 사달이 나겠군.’

손대균은 일송회와 주순자 간에 간극이 생겼음을 감지했다.

“그건 그렇고 장태산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반종현과 전운택이 대답을 요구하는 듯 손대균을 바라봤다.

장태산에 대한 전담은 손대균의 몫.

“미국에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잡아다가 물고문이라도 하고 싶은데 쉽지가 않네요.”

“세상 많이 좋아졌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당장 남산으로 끌고 가 며칠 데리고 있으면서 곤죽을 만들어 끝내 버렸을 텐데요.”

무소불위의 권력을 있는 대로 휘둘렀던 과거를 무척 그리워하는 두 남자.

“조만간 그렇게 되겠지요.”

손대균이 그들 얘기에 동조했다.

그러나 기대하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 권력자인 주순자와 암암리에 통하는 장태산이다.

미국 정부와 금융가에서도 은근히 장태산을 떠받들었다.

“어제 회주님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때 반종현이 은밀하게 속삭였다.

“그래요?”

“어떤 분부가 있었습니까?”

“지지부진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라 명하셨습니다. 두 분께서…… 힘을 더 실어주셔야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의원들 힘을 모아보겠습니다.”

“로펌에서 파견된 고위 공무원들에게 푸시해 보겠습니다.”

“힘들 내주십시오. 과거를 청산해야 일한 양국에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태생 자체가 친일에 뿌리를 둔 일송회.

일본과의 협력에 무슨 일이 있어도 최선을 다했다.

‘태산아……. 너 지금 뭘 하고 있는 거냐?’

그러나 손대균의 머릿속에는 온통 장태산의 행보에 대한 궁금증이 자리잡고 있었다.

단 한 번 거제에 출격해 단숨에 장애물을 제거해 버린 장태산.

그 이후 다시 조용했다.

손대균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았지만 대웅조선은 일사천리로 최종 인수가 마무리 됐다.

그 직후 미국으로 떠난 장태산.

구체적인 플랜을 알 수 없지만 장태산에 의해 새로운 판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음을 손대균만은 짐작했다.

***

- 고부가가치 LNG 선박 발주를 원하십니까?

“맞습니다.”

- 보스 지시라면 그렇게 따르겠습니다.

로버트 라이언은 무조건 ‘예스’로 답했다.

그와의 대화에서 두 말은 필요 없었다.

조잔하게 국내에서 계열사 밀어주기 같은 거 생각도 안 한다.

어차피 놀 거라면 크게 놀아야 했다.

대웅조선이 어려운 이유는 세계 경기 침체와 불황으로 선박 발주가가 떨어졌기 때문.

당장 덩치를 유지하기 위해 저가로 수주한 선박이 발목을 잡았다.

또 중국과 인건비 면에서 대결 자체가 고정할 수 없었다.

대응 방법은 하나.

고부가가치 선박을 만들어 팔면 된다.

그 일을 위해 여러 해외 선박 관련 회사 주식을 매집했다.

로버트 라이언을 통해 그들을 조종했다.

명분은 충분했다.

중국에 LNG 선박을 맡겼다가는 운항도 못 해 고철로 전락한다.

“그리고 미수금 독촉해 주십시오.”

- 투자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로버트 라이언이 관리하는 투자 회사도 컨소시엄에 들어왔다.

압력이 제대로 먹힐 것이다.

손실로 잡혀 있는 악성 선박 대금을 회수하는 순간 올해 안에 대웅조선은 흑자를 일으킨다.

걸릴 게 없었다.

대웅조선을 인수한 후 나광태 사장과 임원들은 납품비리와 일감 몰아주기, 횡령과 베임 등으로 한꺼번에 정리했다.

노조도 지회장의 각종 비리가 터지면서 온건파가 장악했다.

주순자 누님을 통해 압력이 들어간 판이어서 검찰도 손을 못 썼다.

현 정권에는 길 잘 들여진 순한 양처럼 행동하는 검찰.

자신들의 특권을 보장해 주는 정권에는 자처해 집 지키는 개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밥그릇을 빼앗으려는 자에게는 맹수의 본능을 드러낸다.

과거와 달리 검찰 출신들의 밥그릇이 줄어들긴 했다.

쏟아져 나오는 변호사들에 전관예우도 점점 기대하기 힘든 세상.

이런 변화를 그들도 잘 알았다.

그래서 더 사나워지는지도 몰랐다.

검사들도 자존심보다는 먹고 사는 게 먼저였다.

철저하게 악의 힘으로 악을 견제했다.

“일전에 지시한 사항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 지시대로 한국해운 주식을 매입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쓸어 담으십시오.”

- 걱정 마십시오. 보스.

로버트 라이언의 충성심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았다.

그를 통해 한국해운 주식을 매집하고 있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 산업의 동맥과 같은 해운업.

능력 없는 경영자에게 상속되면서 날이 갈수록 개판이 되고 있었다.

욕심만 넘쳐 해외에까지 사업을 확장하다 제대로 코가 꿰었다.

미래를 보는 투자 대신 용선료 따위로 장난을 치다 어퍼컷을 맞은 것이다.

세계 경기 불황이 겹치면서 적자가 계속 누적되고 있는 한국해운.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다.

그쪽 역시 세계 해운 동맹의 한 축이 되어야 했다.

컨테이너와 벌크 운송, 터미널 운영 사업을 그대로 인수 받을 생각이다.

헐값으로 해외 해운 동맹에 팔리는 노선권.

지금 정부는 국가 미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정권이다.

눈앞에 떨어지는 콩고물에 눈이 멀어 무조건 잇속 차리는 쪽으로만 계산해 기업의 생사를 결정했다.

대웅조선 경쟁력 강화에도 한국해운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배를 수주하고 그 배를 이용해 싼 값에 수출을 한다면 일석이조의 경제 효과가 발생한다.

국가 경쟁력은 결국 핵심 산업의 경쟁력에 달려 있었다.

서비스 산업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 바탕에는 공업 경쟁력이 탄탄하게 바닥에 깔려 있어야 한다.

미국도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닫는다.

서비스와 금융에 치중하다 뒤늦게 후회했던 미국.

멀지 않아 공장들을 미국으로 가져가기 위해 무리한 수를 쓰다 깡패국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로버트. 당신이 저의 친구라 행복합니다.”

- 저야말로 보스와 함께할 수 있어 언제나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쭉 당신과 함께할 겁니다.”

- ……보스는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귀에 착 감겼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말.

차라리 안 들으면 서운할 지경이 됐다.

“그럼 수고하세요.”

- 충성!

군인처럼 힘차게 충성을 외치는 로버트 라이언.

통화가 끝났다.

촤아아아앗.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홍콩의 8월은 생각보다 비가 자주 내렸다.

미국을 거쳐 프랑스로 갔다가 다시 홍콩에 왔다.

여러 차례 변장술을 써서 움직였기에 날 추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물론 휴대한 스마트폰도 추적이 불가능하게 세팅했다.

그만큼 은밀히 도착한 홍콩 사무실.

대니얼과 매튜는 노련한 전문가답게 일처리가 빨랐다.

누가 봐도 그럴싸한 JL인베스트먼트.

투자 자금이 300억 달러가 훌쩍 넘었다.

땅 짚고 헤엄치기식 투자.

상해방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중국 본토 주식과 부동산에도 투자할 수 있었다.

재미가 쏠쏠했다.

장태산에게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장립에게는 가능한 일.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스르륵.

이 시간 노크를 하고 들어올 사람은 단 한 명.

또각또각.

블랙 원피스 차림의 매혹적인 양소려가 들어왔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요?”

“앞으로 맞닥뜨릴 홍콩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홍콩의 미래요?”

몇 달 있으면 시작될 홍콩 우산 혁명.

영국식 민주 사회에서 살다 중국의 통제를 피부로 느끼게 될 홍콩인들.

그들의 저항이 본격적으로 투쟁으로 이어지는 시기다.

서서히 공산당 방식으로 길들이려는 홍콩의 정부 부처.

한 번 맛본 자유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시민들의 저항이 일어난다.

겉으로만 그럴싸한 일국양제의 맹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제 중요한 경제 터전인데…… 걱정해야죠.”

“립이 생각할 때 무슨 문제가 있어 보이나요?”

곁에 두기에는 다소 위험한 면이 가득한 그녀, 양소려는 가시를 세운 장미 같았다.

그녀를 통해 나의 관련한 모든 정보가 상부에 보고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더 곁에 두고 있었다.

“소려, 당신이 보기에는 홍콩의 이 평화가 온전해 보입니까?”

“어떤 점에서…….”

“천안문.”

“!!!”

중국 정부의 아킬레스건 같은 천안문 사태.

“며칠 동안 시내를 돌아다녔습니다. 가는 곳마다 곧 발표할 전인대의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에 대해서 말이 많더군요.”

“예전부터 있던 말들이에요.”

이런 점에서 양소려는 아직 어렸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부 알지 못하고 있는 그녀.

“뜨거운 물도 천천히 끓어오르는 법입니다. 그러다…… 펑!”

손으로 터지는 액션을 취했다.

“…….”

묘한 눈길로 나를 보는 양소려.

“강하게 누를수록 한순간 터지는 폭발력은 강렬해지는 법입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위정자들만 모르니 세상이 언제나 시끄러운 거지요.”

양소려를 보며 살며시 웃었다.

“다수의 인민을 위한다면 소수의 희생은 언제나 감수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못하면 이 국가는…….”

물론 양소려도 생각하는 바가 있었다.

민주주의가 시작되는 순간 사분오열되고도 남을 중국.

당연히 그녀는 원치 않겠지만 내는 진심으로 바라는 중국의 미래다.

“차표는 가져왔나요?”

그녀가 이곳에 온 목적을 확인했다.

지사장이라지만 양소려가 투자 회사에서 할 일은 없었다.

상해방과 나 사이의 연락책 정도.

“오늘 저녁에 출발해요……. 당신이 원했던 무섭고 뜨거운 곳으로…….”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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