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5장. 섬멸작전(2).
“대웅조선을 쳤다고?”
“통영지청에서 압수수색을 했다고 합니다.”
“지청에서? 왜?”
“나광태 사장에 관련한 투서가 들어왔다고 합니다.”
“투서?”
“지금 대검찰청에서 진상 파악에 나섰습니다.”
“미치겠네. 요즘 애들 규율이 왜 이래? 대웅이 지청에서 다룰 만한 사이즈야!”
청와대 민정수석실.
갑자기 들어온 첩보에 윤병운 민정수석은 얼굴을 잔뜩 구기며 소리쳤다.
“죄송합니다.”
검찰에서 파견 나온 검사가 고개를 숙였다.
검찰에서 처리하는 중요한 사건은 모두 다 그의 입을 통해 윤병운에게 보고가 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이지만 윤병운이 가진 파워는 검찰 총장급을 넘는 수준이었다.
법무부에서 쥐고 있는 검찰 인사권 상당수가 윤병운의 손에서 작업 됐다.
특히 승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세평은 민정수석의 권한이었다.
윤병운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사용했다.
가장 먼저 대검과 중앙지검에 친하던 후배들을 박아 넣었다.
“죄송이고 나발이고 이거 어떻게 수습할 거야? 대웅조선은 일반 기업이 아니라 공기업이라고! 그것도 VIP께서 각별히 챙기는!”
윤병운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냉혈독사라 불렸던 엘리트 검사 출신 윤병운은 그 어떤 실수도 용납지 않았다.
보고를 받자마자 스팀이 끓었다.
오월호 때문에 VIP의 신경이 예민한 때였다.
차마 어디에도 밝힐 수 없는 오월호 사고 당시의 청와대 상황.
어떻게 알았는지 몇몇 언론사에서 냄새를 맡고 집요하게 캐고 있었다.
국정원과 검찰, 경찰, 사주들을 동원해 급한 대로 입을 막아 놓았다.
여론을 타는 순간 현 정권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게 자명했다.
다음 달 지방선거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박빙이던 수도권 시장과 도지사 자리가 위태로웠다.
업무가 밀려 있는 상황에서 터진 대웅조선 분식회계 사건.
오월호 때문에 유야무야 묻혔지만 인터넷에는 낱낱이 기록이 남았다.
댓글부대를 동원해 여론을 흐트러뜨리고 방향을 다른 곳으로 쏠리게 했지만 없었던 일을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한 시민들의 파워를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비서실장과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과거처럼 국민들을 상대로 찍어 누르라는 말만 늘어놓았다.
“좌천에 불만을 품은 지청장의 결정이었습니다.”
“통영 지청장 누구야!”
“전 동부지검 윤대호 차장검사입니다.”
“윤대호? 그 지방대?”
“넵!”
윤병운도 기억하고 있는 이름 윤대호.
자신보다 선배기수였다.
지방대 출신이지만 꿋꿋하게 살아남아 동부지검 차장검사까지 달았다.
같이 근무는 안 해봤지만 한국그룹에서 밀어준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그런데.
“그래서 지방대는 안 된다니까. 이 새끼들은 뼈다귀 떨어지면 선후배도 모르고 날뛰어!”
한국대 출신 윤병운은 철저하게 한국대 라인만 챙겼다.
제아무리 명문대라 해도 한국대가 아니면 상대하지 않았다.
특히 서른 살 넘어 합격한 나이 든 검사들을 무시하기로 유명했다.
윤병운은 건방지다는 소리를 달고 다녔지만 실력과 함께 한국대 출신들이 알아서 그를 마크했다.
“…….”
고개 숙인 민정실 파견 검사.
그도 한국대 성골 라인이었다.
이곳 근무만 끝나면 중앙지검으로 발령이 예정되어 있다.
삐이이잇.
그때 인터폰이 울렸다.
- 수석님! 비서실장님 연락입니다.
“연결해.”
- 네.
삣.
“실장님…….”
- 윤 수석! 도대체 뭐 하는 사람입니까?
“네?”
- 검찰 통제 그 따위로 할 겁니까? 대웅조선을 일개 통영지청에서 털다니요!
열을 잔뜩 받은 공길춘의 일갈이 터졌다.
“……죄송합니다.”
윤병운은 자동으로 고개를 숙였다.
중앙 쪽만 신경 쓰고 있다 제대로 사고가 터졌다.
- 언론에 터졌어요! 이제 이거 어떻게 막습니까? 오월호도 벅찬데 대웅조선까지 고춧가루를 뿌리다니요!
‘언론까지?’
오후에 들어 일이 많았다.
지방 선거를 앞두고 들어온 여야를 막론한 후보들의 여러 선거 범죄들.
“빠른 시간 안에 정리하겠습니다.”
다시 깊숙이 고개를 숙이는 윤병운.
직접 나서서 통영지청 지청장의 싸다귀를 날리고 사건을 중앙으로 가져오는 수밖에 없었다.
- 잘 좀 하세요! 잘!
툭.
경고와 함께 일방적으로 끊긴 인터폰.
“하아아아.”
답답한 듯 넥타이를 당겨 푸는 윤병운.
“뭐 해! 당장 사건 중앙으로 가져와!!!”
“넵!!!”
옆에 있던 검사에게 튕겨지는 불똥.
한 번 구겨진 윤병운의 인상은 풀릴 줄을 몰랐다.
***
철컥.
끼이이이익.
거제도에 위치한 32평 아파트.
저녁 늦은 시간에 문이 열렸다.
“…….”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던 노조 지회장 홍상표.
냉랭한 분위기에 집안을 살폈다.
평소라면 달려 나와 인사하던 초등학생 딸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애들은?”
작은 전등 하나만 켜둔 채 홀로 앉아 있는 아내에게 묻는 홍상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
아내는 대답이 없었다.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는 그녀.
“지금 내 말 무시하는 거야! 애들은 어디 갔냐고!”
홍상표가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호통을 쳤다.
회사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집에 들어와 극에 달했다.
저녁 무렵이 되어서는 회사에 소문이 쫙 퍼졌다.
뇌물죄 공범이라는 말에 상근 임원들은 소리도 없이 하나 둘씩 사라졌다.
퇴근 시간이 되자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온 노조원들이 거칠게 추궁을 해왔다.
조선소 규모가 꽤 크지만 특성상 폐쇄적 공간이었다.
스마트폰과 서로의 입을 통해 사장과 지회장 비리에 관련된 말들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인수자인 DW컨소시엄의 수작질이라고 변명을 했지만 듣는 이 누구도 믿지 않았다.
평소 커피를 나눠 마시고 시시덕거리던 노조원들 모두 천하의 막돼먹은 놈들로 돌변했다.
특히 동료를 팔아먹었다는 과거 사건이 홍상표의 발목을 무겁게 잡았다.
유일하게 집행유예로 풀려났던 홍상표.
자정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너 나 무시하냐?”
거칠게 작업복을 벗어 던지며 아내 앞으로 다가갔다.
그제야 실눈을 뜨는 아내.
서울 상위권 대학 출신의 여성.
노동 운동을 하다 홍상표와 눈이 맞았다.
신혼 때는 뭣 모르고 살 만했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홍상표는 자격지심에 시달렸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살아온 삶의 수준이 무척 달랐다는 걸 두 사람은 깨닫게 됐다.
와이프가 한마디라도 하면 매번 유식한 척한다고 몰아붙이며 화를 냈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크게 부부 싸움이 벌어졌다.
가장 최근에는 주먹까지 쓰게 됐다.
지회장이 되고 뒤로 가져다주는 돈의 액수가 커지면서 은근히 아내를 무시했다.
오늘도 그럴 만한 분위기.
“우리 그만하자…….”
“뭐라고?”
스윽.
아내가 소파 옆 탁자에 놓여 있던 서류 봉투를 집어 건넸다.
“애들은 친정 보냈어.”
“지금 뭐 하는 거야!”
“직접 봐.”
홍상표는 불길한 마음을 애써 무시하며 봉투를 열었다.
안에 들어 있는 수십 장의 사진.
“!!!”
경리부 미스 조와 함께 찍혀 있는 사진들이었다.
누가 봐도 다정한 두 사람의 모습.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자. 애들에게 상처 주지 말고 조용히 끝내.”
감정 없는 더없이 차가운 아내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더 소름 돋았다.
“잘 지내. 이혼 서류는 변호사 통해서 보낼게.”
아내는 말을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현관으로 갔다.
“어, 어딜 가! 여기가 우리 집이야!”
“아니. 이곳은 네 집이야. 우리 집이 아니라.”
짧고 차가운 아내의 한마디에 홍상표는 몸이 굳고 말았다.
저벅저벅. 철컥. 쿵!
그리고 이내 사라져 버린 아내의 모습.
“…….”
고요한 적막이 텅 빈 집에 감돌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랑과 온기가 감돌던 따스했던 집.
저주에 걸린 마녀의 성처럼 숨 막히는 침묵이 홍상표를 짓눌러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마녀의 손에 잡힌 한 남자의 처절한 비명만이 집 안을 채웠다.
그러나 절박한 비명에도 누구도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
“누님. 무슨 말인지 아셨죠?”
- 야! 장태산!!!
성깔 참 지랄이다.
몇 마디 던지지도 않았는데 버럭 소리부터 지른다.
“성격 좀 죽이십시오. 다 큰 성인한테 ‘야’가 뭡니까.”
- 그 말이 지금 나와? 다짜고짜 전화해서 대웅조선에서 손 떼라니. 너 정치가 장난처럼 보여?
그래, 맞다. 장난으로 보인다.
톡 까놓고 순자 아줌마 정말 웃긴다.
자신이 하면 정치고 내가 나서면 장난이란다.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그저 어이가 없었다.
대통령도 아닌 주제에 중차대한 나랏일을 책임지고 있는 주순자.
어리석은 국민들은 이 모든 사태를 직접 목도하고도 몇 년이 지나자 까맣게 잊어 버렸다.
금리를 낮춰 고삐 풀린 돈을 쏟아내 주택 가격을 폭등시켰다.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한 상태에서 저금리 정책이 펼쳐지자 부동산으로 돈이 몰렸다.
당연히 기다렸다는 듯 부동산은 폭등.
서서히 과거의 기미가 보였다.
미래를 내다보는 혁신적인 정책 없이 금리로 미래의 근간을 다 갉아 먹는 사악한 정권.
다음 대 대통령은 그 싸질러 놓은 쓰레기를 정리하느라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세계 경제상식 없이 당장 경기가 안 좋아졌다며 무조건 모든 정책에 대해 반대를 누르는 무지한 이들.
개인도 아니고 국가 경기 사이클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최소 몇 년 이상의 시간이 투자되어야 함을 몰랐다.
지금 나와 통화하는 이 아줌마가 뿌려 놓은 악업의 씨앗이 도처에서 싹을 틔우고 얼마나 많은 미래의 자원을 썩게 할지 몰랐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규칙 없는 행정.
이로 인해 감당할 수 없이 낭비되는 국가 경쟁력.
하나 둘씩 터지 직전 뒤에서 바로 잡아보려 애쓰는 나도 힘들긴 마찬가지.
“도와주려고 이러는 거 모르십니까?”
- 도와줘? 뭘!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실 인간.
미끼를 문 순자 아줌마가 물었다.
“오월호 사태 때문에 힘들잖아요. 거기에 대웅조선 비리까지 터졌으니 얼마나 현 정권이 위태합니까. 소문에 들어보니 걸려 있는 정치권 인사들이 한둘이 아니던데……. 게이트 터지면 선거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거라 장담하십니까?”
- …….
단번에 벙어리가 되어 버린 주순자.
“DW컨소시엄. 제 아는 지인들이 투자하는 작업입니다. 그들에게 괜찮은 투자처라고 인수를 권했는데…… 이건 뭐 재래식 화장실 냄새가 너무 독하게 나지 않습니까.”
- 그래서……. 진짜 가져갈 거야?
역시 주순자가 센스는 있다.
핵심을 캐치해 물어왔다.
“제가 큰마음 먹고 VIP와 누님 도와주는 겁니다. 나중에 한 턱 쏘십시오.”
- 그러니까 가져갈 거냐고!
주순자가 급하긴 급했다.
조금 똑똑한 머리의 아줌마가 좁은 소견으로 대한민국을 주무르려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부탁할 줄 몰라요? 이럴 때는 ‘태산 씨, 좀 부탁해’라고 하는 겁니다. 한 번 해봐요. 입에 붙으면 금방입니다.”
- …….
순자 아줌마 쓸데없는 자존심이 대단하다.
현 대한민국을 다스린다고 봐도 무방할 실제 권력 서열 1위.
이런 아줌마 손아귀에서 조종당하고 있는 현 대통령.
미래에 가서도 이런 인간들이 그립다고 눈물겹게 울부짖는 정신 나간 이들이 넘쳐 난다.
대한민국을 일본에 넘기고 속국이 되어야 속이 시원했을 인간들.
아쉽지만 결코 그렇게 되지 않는다.
- 부탁해…….
역시, 주순자가 어렵게 부탁한다는 말을 꺼냈다.
공적 자금을 투입할 명분이 없었다.
국민들 반발이 심상치 않다는 것쯤은 주순자도 알았다.
“그 부탁 시원하게 들어드리죠!”
- 어떻게?
“산업은행 회장에게 DW컨소시엄 조건 그대로 따르라고 하십시오. 나머지는 청와대에 계시는 똑똑한 비서실장이 알아서 할 겁니다.”
- 너무 단가 후려치면 안 돼.
마치 대웅조선이 자신 개인의 것이라도 되는 양 말하는 저 오만한 발언.
“그래도 세금으로 적당히 퉁은 쳐주셔야죠. 언론 쪽도 막아 주셔야 합니다.”
- 그럼 바로 가져갈 거야?
“이번 주 안에 사인하죠.”
- ……알았어.
“이때는 ‘고맙다’고 하셔야죠.”
- 됐어! 할 말 없으면 이만 끊어.
“누님. 더 열심히 분발해 주십시오! 파이팅!
띠릭.
필요한 통화는 끝냈다.
대웅조선 인수 문제도 이로써 고비를 넘긴 셈이다.
기다리면 노조는 스스로 와해될 것이다.
앞으로 몇 달 동안 자신들끼리 치고 박고 난리를 피울 게 빤했다.
지회장은 확실하게 털었다.
이용할 가치는 충분했지만 그런 자와 손을 잡고 싶은 생각은 없다.
새로운 임원들이 결성될 즈음이면 모든 상황은 마무리 돼 있을 것이다.
대웅조선 사장도 구속 중.
부사장이 권한을 대행하면 그만.
주 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이 오케이하면 모든 과정은 끝난다.
걸리적거리는 장애물들을 순식간에 섬멸시켰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대웅조선을 인수하게 됐다.
지금까지의 대웅조선이 쌓아온 채무는 국가 책임으로 돌렸다.
투자금은 장기 저리로 융자를 받을 것이다.
남은 건 질 좋은 수주.
그 또한 나에게는 일도 아니다.
“후우…….”
크게 심호흡을 했다.
발밑으로 대웅조선소가 내려다 보였다.
통영지청에서 만났던 인연자들과 저녁 시간에 만나 소주와 삼겹살로 회포를 풀었다.
그리고 다시 찾은 새로운 나의 사업장.
감회가 새로웠다.
다가 올 2020년의 세상.
세계를 포효하고 웅비할 대한민국을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는 지금의 순간들.
꺼지지 않는 조선소의 불빛처럼 내 마음속에도 환하게 붉을 밝힌 대한민국의 찬란한 미래가 펼쳐져 보였다.
제2의 IMF에 맞아 쓰러지던 대한민국이 아닌, 위기를 기회로 삼아 약진하고 더 발전해 나아가는 천년 왕국으로 다시 서는 미래!
그 아름다운 청사진을 향해 오늘도 나와, 희망을 버리지 않는 대한민국 후손들은 한마음으로 한 발자국씩 묵묵히 전진하고 있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