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3장. 집 청소(3). (839/1,284)

843장. 집 청소(3).

“약소하지만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뭐 이런 걸 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내가 잘 부탁드려야죠. 우리 양 대표가 운영하는 삼광은 대웅조선의 중요한 2차 협력 업체가 아닙니까. 직원들 관리도 세심하고 일 처리도 깔끔해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거제도 대웅조선소 내부에 위치한 사무실.

현장 경영을 화두로 내세우며 서울 본사 대신 부쩍 거제도에 자주 내려오고 있는 나광태 사장이 자신을 찾아온 손님과 담소를 나눴다.

조선소의 중요한 2차 밴드 업체인 삼광CNG 대표와의 만남.

명목은 애로사항 청취를 위한 면담 시간이라고 했지만 목적은 따로 있었다.

나광태가 직접 불렀다.

분기별 어음 지급 시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뇌물을 받았다.

나광태도 윗선에 상납하는 입장이라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케이크 상자에는 꽉 채운 현금 2억이 들어 있었다.

이렇게 뇌물을 바치지 않으면 이것저것 트집을 잡아 괴롭혔다.

정도가 심해지면 급기야 협력사에서 퇴출되기도 했다.

“다 같이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닙니까. 저도 무늬만 사장이고 대표지 어르신들 만나면 한낱 아랫사람에 불과합니다.”

나광태는 은근히 장장한 윗선을 팔았다.

이깟 뇌물 던지고 나가서 뒷말 하지 말라는 유언의 협박인 셈이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삼광 대표의 얼굴이 그늘지며 미미하게 흔들렸다.

직원들 인건비와 접대비를 빼고 나면 겨우 회사 운영하기에도 빠듯했다.

과거 조선 산업이 잘나갈 때는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얼마간 떼어다 바쳐도 손에 남는 게 있었다.

하지만 조선 산업이 전반적으로 사양길로 접어드는 지금은 사정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돈줄이 바짝바짝 마르고 있는 시점이지만 나광태는 전임들보다 더한 뒷돈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 요구하는 대로 구해다 바쳤다.

당장 맡고 있는 일이 끊기기라도 하면 회사는 손쓸 수 없이 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시겠죠. 세상 사는 일에 쉬운 게 어디 있겠습니까.”

쓴웃음을 삼키며 삼광 대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하. 양 대표님은 말이 통해서 좋다니까요. 다음 분기에는 제가 힘 좀 써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쓰레기 같은 새끼……. 벌써 1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공수표를 남발하고 지랄이야.’

고개를 숙인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는 나광태를 믿지 않는 삼광 대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밴드 업체에도 저런 식의 말을 수도 없이 흘렸다.

교묘하게 업체 간에 경쟁을 시켜 돈을 더 받아내는 인간쓰레기 같은 나광태 사장.

소파에 몸을 파묻고 여유를 보였다.

“안 됩니다! 지금 안에서 회의를…….”

“비켜요! 지금 공무집행 중인 거 안 보여요?”

“이런 법이 어딨습니까!”

“법원에서 발급 받은 영장! 여기 있잖아요!”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비서실장의 목소리와 또 낯선 누군가와의 다툼.

‘법원? 영장?’

여유 만만하게 느긋하던 나광태의 얼굴이 일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사태 파악이 가능했다.

다음 벌어질 상황이 어떨지 빤했다.

“사장님…….”

삼광 대표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어, 어서 숨겨요!!!”

나광태가 방금 전까지 받아놓고 흐뭇해했던 케이크 상자를 양 대표에게 떠넘겼다.

“아니 이건…….”

덜컹.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사장실 문이 벌컥 열렸다.

타다다닥.

그리고 우르르 안으로 들어서는 일단의 무리.

가슴팍에 검찰공무원을 상징하는 인식표가 붙어 있다.

“당신들 뭡니까!”

흥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나광태.

“나광태 사장님 맞죠?”

“…….”

“통영지청 형사 1부장 전철국입니다. 뇌물과 횡령, 배임 혐의로 지금부터 압수수색을 실시하겠습니다.”

“누, 누구 마음대로!”

“여기 법원에서 발급한 압수수색영장이 있습니다. 확인하십시오.”

나광태의 눈앞에 내미는 압수수색영장.

하얗게 질려 버린 얼굴의 나광태.

“당신들 지금 실수하는 거야! 내가 누군 줄 알고!”

다급한 마음에 아무 소리나 내질렀다.

‘이게 뭐야! 검사들 다 막아 준다더니!’

선배 국회의원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나광태는 급작스러운 상황에 멘붕이 왔다.

하필 오늘 이 시간에 실시된 압수수색.

“부장님. 이 상자 수상합니다!”

수사관이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케이크 상자를 가리키며 외쳤다.

“그건……. 양 대표 뭐 해! 당신 거라고 얘기해!”

나광태가 삼광 대표를 쳐다보며 윽박질렀다.

“크으.”

입술을 잘근 깨무는 삼광 대표.

케이크 상자가 빼박 현장 증거가 됐음을 그도 알았다.

“살펴봐.”

“넵!”

전철국 부장검사의 말에 수사관이 빠르게 움직였다.

촤라랏.

쫙 펼쳐지는 케이크 상장.

후두둑 주변으로 쏟아져 나온 5만 원 권 돈다발.

“이 사람들이!”

전철국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노려봤다.

“아, 아니! 이건 내 것이 아니라고!”

부질없지만 강하게 부정해 보는 나광태.

“두 사람 다 뇌물죄 현행범으로 긴급체포하고 증거물도 긴급 압수해!”

“넵!”

“이게 왜 뇌물죄야! 난 사기업 대표라고!”

“대웅조선은 산업은행 소유니까 공기업이 맞지 않습니까!”

“……으으.”

검사의 강한 꾸짖음에 신음을 토하는 나광태 사장.

머리에 대지진이 난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졌다.

전혀 예상 못 한 갑작스런 검사들의 압수수색.

그들의 뿌린 새파란 독기에 온몸이 마비가 온 듯 굳어버렸다.

***

끼이이이익.

봉고차와 몇 대의 승용차가 조선소 사무실 앞에 멈췄다.

드르르륵. 타다다닥.

문이 열리고 새파란 박스를 든 슈트 차림의 남자들이 부리나케 사무실로 뛰어 올라갔다.

‘검찰’, 두 글자가 선명하게 문에 새겨져 있는 봉고차.

차량들 머리 쪽에 소형 경광등도 부착돼 있다.

“저 차는…….”

“검찰에서 왜?”

나를 상대로 강하게 윽박지르던 노조 임원들이 일제히 당황했다.

“딱 보니 압수수색이네.”

한마디 툭 던졌다.

“헛!”

“아, 압수수색!”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 걸 직감하고 놀라는 노조 임원들.

“통영지청 장 계장님 아직도 계시네.”

안면이 있는 사람도 섞여 있었다.

통영지청에서 같이 근무했던 검찰 수사관들.

“…….”

순간 당당했던 이들 모두가 입을 다무는 게 보였다.

제대로 쫄았다.

여기서야 큰소리 치고 살았는지 몰라도, 법 앞에 서면 일반인들은 대개 지은 죄 없이도 위축되기 마련이다.

“사무실에…… 사장님이라도 와 계시나 보죠?”

“네가 그걸 어떻게…….”

“견적 나오지 않습니까? 본사는 서울에 있는데 왜 여길 텁니까. 죄 지은 두목이 여기 있으니 사냥개들이 냄새 맡고 이곳으로 찾아온 거 아니겠습니까. 지회장님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미소를 머금은 채 슬슬 약을 올렸다.

“…….”

눈살을 잔뜩 찌푸린 채 사무실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홍상표 지회장.

생각보다 심지가 굳은 진짜 쓰레기다.

“그건 그렇고 불똥이 어디로 튀려는지 모르겠네. 분위기로 보아 뇌물 받은 놈들 다 쓸어갈 기세로 보이는데.”

예상했던 대로 독사가 미끼를 물었다.

멋모르고 나를 공격했다가 지방으로 좌천된 동부지검 차장검사.

멀지 않은 미래를 위해 주사위를 던졌다.

이번 건이 사건화 되면 검찰 상부에서도 무시할 수만은 없게 된다.

여기에 더해 양념 한 숟가락을 더 뿌렸다.

끼이이이이익.

차가 몇 대 더 왔다.

방송국과 지역 신문사 차량이다.

타다닥.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부리나케 내렸다.

“지금 뭐야! 경비실 뭐 하는 거야!”

“이런…… 미친!”

노조 임원들의 얼굴 표정이 일제히 일그러졌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노조 분들이 증오하는 사측의 부정부패가 드러나면 좋은 거 아닙니까?”

불난 집에 석유를 살짝 뿌렸다.

쓰레기를 태울 때는 다 모아서 한꺼번에 태우는 게 여러모로 좋았다.

찔끔찔끔 태우려고 했다면 아예 시작도 안 했다.

“닥쳐!”

“이 새끼가 염장을 지르러 왔노!”

“니 디져 볼래?”

심기가 불편해진 만큼 거칠게 나오는 임원들의 저급한 말투.

“지금 단체로 겁박하는 겁니까? 모욕죄와 협박죄 구성요건을 넘었다는 걸 상기 시켜드리는 바입니다.”

스윽.

슈트 안에서 소형 녹음기를 꺼내 보였다.

“!!!”

넋이 나간 듯 눈이 벙 찐 하수들.

어제 먹은 술이 체기를 일으킨 듯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너희 쪽이냐?”

홍상표가 지레짐작한 듯 어설프게 물어왔다.

그것도 반말로!

제법 머리를 굴린 모양이지만 오늘의 설계자가 눈앞에 있는 건 몰랐다.

정확하게 말하면 ‘너희’가 아니라 ‘나’다.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습니다.”

시치미를 뗐다.

“넌 왜 왔는데?”

상황이 예상밖으로 흘러가는 듯하자 본격적으로 홍상표가 입질을 시작했다.

파바밧.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봤다.

제법 강단 있는 눈빛이다.

생각이 복잡한 듯 눈동자 깊은 곳이 떨렸다.

“영업하러 왔죠.”

품위를 지켰다.

“영업?”

“미래 고객님들이 여기 계시잖아요.”

노조 임원들과 한 명씩 돌아가며 눈을 맞췄다.

구체적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움찔 놀라며 시선을 피하는 노조 임원들.

여기서 상황이 제대로 꼬였다는 걸 모르면 진짜 바보였다.

“이것도 인연이라고…… 저렴한 가격에 모실 테니 걱정 마십시오.”

염장을 계속 질렀다.

“간댕이가 부은 놈이군.”

홍상표는 무리의 우두머리답게 배짱이 좋았다.

그를 다시 쳐다봤다.

“당신은 죄질이 불량하니 따블.”

“이 새끼가!”

아무리 발악해 봐야 하수는 하수일 뿐.

계속된 염장질에 홍상표가 분노를 드러냈다.

그만큼 심리적 동요가 심하다는 의미.

판은 다 깔아졌다.

“긴장되나 봅니다? 나광태와 함께 회 드시며 작당할 때 받았던 돈 어떻게 할 겁니까. 어제 술값 제하고도 꽤 남았을 텐데……. 그것도 경리부 미스 조한테 가져다 줄 거죠?”

“!!!”

홍상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표정은 아주 가관이다.

줄줄 흘러나오는 홍상표의 약점.

“지회장님…….”

“그게 다 무슨…….”

함께 있던 임원들이 홍상표를 쳐다보며 해명을 요구했다.

“다들 모르셨어요? 지회장 된 뒤로 사측에서 돈 많이 받았잖아요. 다 세컨드인 경리부 미스 조한테 맡겼는데……. 그걸 미스 조는 또 사기꾼 남자친구한테 다 털렸답니다.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니까요. 쯧쯧.”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혀를 찼다.

“……!!!”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듯한 홍상표의 표정.

“여기 사진.”

서류 가방에서 도도희가 수집한 증거들 중 하나를 꺼내 건넸다.

경리인 미스 조와 뜨겁게 밀착한 채 부산의 한 호텔로 들어가는 홍상표의 모습.

그리고 미스 조가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양아치 남자친구와 드라이브하는 사진도 한 장도 더 건넸다.

“썅!”

홍상표 입에서 터져 나오는 욕.

“지회장님!!!”

“이…… 사진은 뭡니까!”

임원들이 사진을 확인하게 제대로 동요했다.

막장 드라마 버금가는 한 장면.

이럴 때일수록 마지막에는 화룡점정인 고춧가루를 뿌려야 제 맛.

얼이 반쯤 나간 홍상표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리고…… 다들 그건 모르시죠? 과거 경찰이 대대적으로 불법 파업으로 검거령 내렸을 때 여기 계시는 프락치 홍상표 대협께서 모두 다 불었답니다. 동지들과의 대화 내용은 물론 모임 장소, 해당 증거 등. 모두 다!”

회귀의 전설 2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