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2장. 집 청소(2). (838/1,284)

842장. 집 청소(2).

“장태산이 거제도에?”

“넵! 이사님.”

“흠.”

리앤장의 손대균 이사실.

정보팀에서 올라온 보고에 손대균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얼마 전엔 러시아를 방문하는가 싶더니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장태산.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거제도로 향했다.

“대웅조선 인수 문제가 삐걱거리니 직접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직접?”

“협상팀 대표였던 전 대웅조선 제문환 전무는 서울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뭘 하겠다는 거지?’

손대균은 장태산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이 많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부터 얽히고설킨 인연의 뿌리.

부친 손국중은 현재 반 식물인간 상태에 머물러 있다.

아들 역시 여전히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아무리 그들 스스로 자초한 업의 결과라고는 해도 손대균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일송회에서도 장태산을 노리고 있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판에 장태산은 거침없이 이곳저곳을 오가고 급기야 거제도로 내려갔다.

손대균은 곧 큰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다.

지금까지 장태산이 보였던 안아와 천일 등등의 사업체 인수합병과는 방향이 다를 것 같았다.

뭔가 더 치밀해지고 냉정해진 듯한 느낌.

“뒤로도 확실히 동선 파악하고 체크해서 보고해.”

“넵!”

리앤장은 복귀한 손대균이 완벽하게 접수했다.

손국중이 컨트롤하던 부분까지 떠맡았다.

대한민국 법조계의 보이지 않는 제왕이 된 셈이다.

“녀석 성격에 나광태 목을 직접 치러 갔을 리는 없고…….”

보기와 달리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장태산.

정면에서 상대를 분쇄하는 돌격 스타일은 아니었다.

앞으로 나서는 대신 뒤에서 모든 걸 계획하고 조종했다.

그런데 이번 대웅조선 인수 건에서는 그답지 않게 특이한 움직임을 보였다.

장태산이 배후에 있을 거라고 알려진 미국 쪽 칼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대웅조선 분식회계 문제도 금세 잠잠해졌다.

들끓던 언론은 입을 다물었고 검찰 쪽도 수사를 개시한다는 말만 되풀이 하는 상황.

오월호 사건은 잠잠해질 기미는커녕 계속 일이 커지고 있다.

정권에서는 강제적으로 유가족들과 국민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려고 애썼다.

사회 곳곳 분야에서 블랙리스트가 만들어져 관리되고 있다.

독재 정권의 하수인들이 정권을 잡았으니 당연한 수순인지도 몰랐다.

짧은 시간 대한민국의 시계는 과거 방식으로 돌아갔고 순식간에 언론 통제까지 이루어졌다.

손대균의 눈에도 훤히 보일 만큼 위정자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였다.

먼 대양에서 시작해 한반도로 불어오는 묵직한 변화의 거센 회오리바람.

권력에 취한 이들은 변화의 바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사방에서 불어온 변화의 씨앗들이 부딪치며 곳곳에서 파열음이 만들어졌다.

“태산아…… 이번에는 어떻게 돌파할 생각이냐?”

더 이상 과거처럼 그를 응원할 수는 없지만 손대균은 장태산의 행보를 묵묵히 지켜봤다.

이 정도면 뭔가 제대로 된 판을 꾸미고 있을 터.

손대균은 다음에 일어날 사건이 무척 궁금해졌다.

***

“누구시라고요?”

“장태산 변호사라고 합니다.”

“변호사요?”

거제도 대웅조선 현장 사무소 경비실 입구.

깔끔한 슈트 차림에 어깨끈이 달려 있는 가죽 가방을 들었다.

“DW컨소시엄 법률 자문입니다.”

“아! 이번에 인수하려고 한다는 거기!”

오십대 초반의 경비원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무슨 일로.”

“실사 차원에서 방문했습니다.”

“다 끝난 거 아닙니까?”

“매각 결정까지 수시 현장 방문은 기본입니다.”

스윽.

변호사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옷깃에 변호사 배지도 달았다.

“한창 젊은 사람인데 벌써 변호사라니…… 대단합니다.”

경비원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명함과 나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제가 나이보다 동안입니다. 하하.”

가볍게 웃으며 넘겼다.

“혼자 오셨어요?”

“네.”

“얼마 전까지 우르르 몰려다니더니…….”

“선배님들 심부름 왔습니다. 나이 어린 게 죄죠.”

“흐흐.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요.”

“로펌에 전화해 확인하셔도 됩니다.”

“됐어요. 얼굴 보니까 착한 사람 같은데 뭘 더 확인해요. 여기 방명록에 인적사항 기재하고 사인해요.”

경비원이 방명록을 내밀었다.

스스스슥.

만년필을 꺼내 깔끔하게 이름과 소속을 적었다.

“글씨 참 잘 쓰네.”

“변호사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죠.”

“글씨 잘 쓰는 사람치고 비뚤어진 사람이 없는 법이지.”

진심으로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경비원.

“그런가요?”

“그럼요. 글씨는 사람 눈처럼 마음을 대변하는 도구 같은 거죠. 저희 아버님이 교장선생님이었는데…… 얼마나 고지식하셨는지.”

경비원이 자신의 부친 얘기를 허물없이 꺼냈다.

“김씨. 빨리 보내줘. 보아하니 바쁜 양반 같은데.”

“하여간 잔소리는. 자! 여기 방문증 목에 거세요. 그리고 여기 조선소는 군함도 제조하니 사진 촬영 금지에요. 변호사분이니 잘 알겠지만 걸리면 골치 아프니까 조심해요.”

“주의하겠습니다.”

“외부인 차도 진입 금지에요.”

“저기 자전거 한 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경비실 옆에 오토바이와 자전거 몇 대가 세워져 있었다.

“넓어서 오토바이를 타는 게 좋아요.”

“운동 삼아 타보려고 합니다.”

“그래요 그럼. 잘 쓰고, 갈 때 반납해 줘요. 여기 안전모도 착용하고.”

“감사합니다.”

사람 좋은 얼굴로 경호원 분들을 상대했다.

앞으로 나의 휘하에서 일하게 될 사람들이었다.

인상이 나쁘지 않았다.

“약소하지만……. 일 끝나시고 두 분이서 약주라도 한잔하십시오.”

지갑에서 10만 원을 꺼냈다.

“됐어요. 이런 거 받으면…….”

“괜찮습니다. 어르신들 뵈니 제 아버님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며 건넨 돈을 받아드는 손.

특별히 내가 이분들에게 잘 보일 일은 없었다.

다만 진심으로 약주 한잔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전하는 돈이었다.

“그럼, 휘이 한 바퀴 돌고 오겠습니다.”

“조심해요. 대형 운반차들은 특히 더 조심하고요.”

“알겠습니다.”

스윽.

세워진 자전거 중 한 대를 선택했다.

튼튼한 일반 자전거.

가죽 가방을 어깨에 크로스로 멨다.

차라락.

가볍게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워낙 넓어 오고가는 이들 상당수가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었다.

휘리리링.

바다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왔다.

5월 초, 햇살이 눈부셨다.

캉! 캉! 카앙!

사방에서 쇳소리가 리듬에 맞춰 들려 왔다.

치이이익! 치이이이이익!

가깝고 먼 곳곳에서 용접 불꽃이 튀었다.

밤에 봤을 때와 사뭇 다른 묵묵한 공기 속에서 펼쳐지는 치열한 삶의 현장.

안전모를 쓴 직원들은 하나같이 구슬땀을 흘렸다.

“엄청 크네.”

단위가 수만 톤씩 나가는 유조선을 비롯한 각종 선박.

지상과 바다 위 도크에서 조립되고 있는 전경이 경이로웠다.

한두 척이 아니었다.

대충 봐도 10여 척 이상이 동시 진행 중에 있었다.

부으으으으으응.

끼이이이이익.

거대한 후판을 싣고 이동하는 대형차 행렬도 볼 만했다.

바람에 섞여 은근히 풍겨오는 쇳가루 냄새.

힘들고 거친 일이지만 가족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땀 흘리는 가장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다들 복 받으실 겁니다. 제가…… 그 노고에 보답하겠습니다.”

돈 벌어서 뭐하겠는가.

정직한 노동으로 삶을 꾸리고 있는 이런 분들을 위해 복지비로 지출하는 게 최고.

길고 긴 불황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지만 곧 다시 기지개를 켜게 될 미래를 나는 알고 있다.

그때를 대비해 나는 한 그루 사과 같은 기업을 매수할 것이다.

“문제는 저긴데…….”

먼지와 쇳가루 날리는 조선소 한켠 붉은 깃발을 휘날리는 독립된 건물.

동지들의 피를 손도 안 대고 빨아 마시며 성장한 악마들의 서식지가 눈에 들어왔다.

스륵스륵.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그곳으로 다가갔다.

눈에 선하게 들어오는 무수한 깃발들에 새겨진 문구.

- 결사의 투쟁으로 생존권을 사수하자!

- 받아내자! 노동권리!

- 노동자 생존권을 팔아먹은 인수합병 절대 반대!

- 특혜매각 일조하는 경영진은 사퇴하라!

붉은 글씨들이 의식을 자극했다.

누가 봐도 피를 뜨겁게 만드는 격렬한 문구들.

대형 천막과 투쟁구호가 새겨진 채 나부끼는 깃발들이 차량들 사이로 보였다.

“오늘 점심이 왜 이렇게 부실해?”

“으으. 술이 아직 덜 깬 거 같습니다.”

“얼른 퇴근하고 해장술 한잔하자고.”

머리에 ‘투쟁’이라는 붉은 띠를 두른 다부진 체격의 중년 사내들이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며 다가왔다.

어제 저녁 제대로 달린 듯 얼굴에 알코올 기운이 아직 남아 있었다.

다른 조선소 직원들과 달리 무척 깨끗한 작업복을 착용한 이들.

일 대신 조합 일을 보고 있는 상근자들이 확실했다.

“지회장님.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가 봐야지 않겠습니까?”

“왜? 마누라 눈치 보여?”

“새벽에 들어갔더니 눈에 불을 켜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초장에 잡았어야지. 임원 단합 대회도 투쟁의 일환이야.”

“넵! 투쟁!”

사진으로 봤던 자가 눈에 들어왔다.

대웅조선 노동조합 지회장 홍상표.

어깨가 떡 벌어진 게 사진에서보다 더 체격이 좋았다.

개기름이 얼굴에 주르륵 주르륵 흘렀다.

시커멓게 탄 피부와 굵은 얼굴선에 감춰진 배신자의 관상.

조합원들의 등을 쳐 먹고 살 팔자임이 눈에 보였다.

스르륵 스륵.

자전거를 타고 무리에 다가갔다.

“???”

나를 발견하고 의아한 표정을 짓는 그들.

끼이익.

브레이크를 잡으며 그들 앞에 멈췄다.

“안녕들하십니까~.”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누……구세요?”

가장 젊은 남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변호삽니다.”

“변호사요?”

“누가 변호사 불렀어?”

“아니요.”

“영업하러 온 거면 나가세요. 우리 따로 의뢰하는 변호사 있습니다.”

변호사를 잡상인처럼 대하는 그들.

“홍상표 지회장님이 누구십니까?”

전혀 아는 체를 하지 않으며 홍상표를 찾았다.

“접니다만. 무슨 일입니까?”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훑어보는 홍상표.

아니나 다를까 눈동자가 탁했다.

탐욕스러운 욕심에 오염될 대로 오염된 눈빛이었다.

“아! 지회장님이셨군요.”

자전거를 반듯하게 세웠다.

그리고 한쪽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DW컨소시엄 법률자문을 맡고 있는 변호사 장태산입니다.”

“!!!”

“뭐, 뭐야!”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나의 정체를 밝히자 진심으로 놀라는 무리.

깜짝 등장 요법이 통한 것 같다.

“우리는 그쪽과 할 말이 없습니다. 돌아가세요.”

차가운 목소리로 단박에 경고를 해오는 홍상표.

“난 할 말 많은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씨익 웃으며 반쯤 말을 놨다.

“너! 지금 반말했어?”

“나이도 어린놈이 변호사면 다야!!!”

“우리 지금 합병 반대 투쟁하는 거 안 보여?”

나의 한마디에 건수를 잡은 듯 발끈하며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는 홍상표의 똘마니들.

하는 꼴을 보니 한심스러웠다.

“아! 그래서 나이 많이 잡수신 형님들은 지난밤 술집에 모여 여자들까지 끼고 그렇게 뜨겁게 투쟁들을 하셨군요.”

“!!!”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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