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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장. 밟아! 확실하게!(2) (836/1,284)

840장. 밟아! 확실하게!(2)

“이제 나는 날아가요~ 땅벌~♫ 땅벌~♬.”

구수한 트로트가 쩌렁쩌렁 시원하게 울리는 노래주점.

한 남자가 열창을 하며 비행 자세를 취했다.

차랑차랑차랑.

리듬에 맞춰 탬버린 소리도 요란하게 흔들렸다.

“푸하하하하!”

“잘한다!!!”

“홍보국장 노래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다들 한잔하시죠.”

“오늘따라 술맛이 기똥찹니데이.”

“그라재. 맛이 죽이뿌네.”

테이블에 둘러앉은 깨끗한 작업복을 입은 거친 인상의 중년 남자들이 연신 폭탄주를 제조했다.

이미 거나하게 한잔 걸친 듯 테이블 위에는 양주와 맥주병이 제법 쌓였다.

저마다 얼굴은 불콰하게 달아올랐고 눈은 알코올 기운에 잔뜩 충혈됐다.

지난 몇 년간 위태롭게 운영돼 오던 회사의 운명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들.

작업복에 새겨진 ‘대웅조선’이라는 이름은 기름때 하나 얼룩지지 않고 깨끗하고 선명하다.

“다들 많이들 마셔둬. 곧 가열 찬 투쟁에 뛰어들어야 하니까.”

“지회장님! 걱정 마십시오! 우리 실력 아직 안 죽었습니다.”

“흐흐. 확실히 땡겨 여름휴가 제대로 한번 가야지 않겠습니까.”

“마! 다 잘될 낍니다. 지만 콱! 믿어 주이소!”

모두가 흥에 취해 신이 났다.

세계 경제 위기 여파를 빗겨가지 못한 조선업.

강하게 치고 나오는 중국 조선업 때문에 대웅조선은 큰 타격을 입었다.

임기응변으로 저가 수주에 뛰어들면서 더 큰 손해를 봤다.

고가의 시추선 때문에 적자가 계속 누적되는 상황에 처했다.

‘거제도’라는 지역 특성과 산업은행 소유라는 명목으로 분식 회계를 통해 살아남았다.

함께 따라오던 말도 안 되는 각종 특혜들.

사외 이사 40%가 정치권 낙하산으로 채워졌다.

청와대의 비호 아래 별관 회의를 거쳐 거금의 세금을 쏟아 부어 응급처치를 해왔다.

그 대웅조선에 더없이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정부에서 몇 번이나 팔아보려고 노력했던 악성 매물에 드디어 매수자가 등장했다.

하늘이 내려준 봉이었다.

분식 회계 사건이 크게 터진 걸 알면서도 우선 협상자가 됐다.

산업은행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웅조선 매매에 나섰다.

그 틈을 놓칠세라 노조가 초를 치고 나섰다.

“흐흐. 제문환이 얼굴 썩는 거 봤습니까?”

“그 새끼! 능력도 없으면서 무슨 사장을 하겠다고…….”

“소문에 듣자하니 외국 투자자 끄나풀이라는 소리도 있습니더. 그런 첩자 시끼는 몽둥이로 찜질해야지 않겠습니꺼!”

“맞습니다! 조선업은 국부입니다. 그런데 코쟁이들에게 팔아넘기려 하다니…….”

“본때를 보여주이소!”

새로이 선출된 대웅조선 지회장과 임원들.

전 노조 구성원들은 무르다는 판단에 경질되었다. 이후 새로이 구성된 집행부는 그야말로 강성 노조.

산업은행과 인수 예정자에 시커먼 재를 뿌렸다.

대웅의 약자인 DW컨소시엄 대표로 나선 제문환 전 대웅조선 전무를 상대로 말도 안 되는 협상 조건을 내밀었다.

저가 수주한 배들이 넘쳐나고 있었지만 과감하게 파업에 돌입했다.

어차피 자신들은 ‘대마불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정직원만 만 명이 넘었고 관련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근로자 숫자만 해도 엄청났다.

조선소가 파산하게 되면 거제도가 아니라 경상도 지역 경제가 타격을 입게 된다.

그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아는 정부는 밑 빠진 독인 줄 알면서도 지금까지 자금을 밀어 넣었다.

반면 노조는 배가 고프지는 않았다.

일만 하면 알아서 착착 월급이 들어왔다.

준공무원처럼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며 살았다.

나광태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들은 수주에만 올인했다.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정부 자금 투입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수주 소식만큼 좋은 케이스가 없었다.

한마디로 거대 조직 자체가 위에서부터 밑바닥까지 아주 썩었다.

묵묵히 열심히 일해 오던 성실한 직원들도 동요했다.

당연히 노조들도 마찬가지.

금속노조 강성 노조원들은 물 만난 고기처럼 날뛰었다.

적자 운영 상황에도 임금인상으로 협상 카드로 내밀었다.

일명 꽃놀이 패.

어디든 인수가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이었다.

전혀 아쉬울 게 없는 노조원들의 입장.

그래서 이런 엄청난 배짱도 가능했다.

“지회장님, 술이 떨어졌는데…….”

흥에 취해 춤추고 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느새 새로 가져다 놓은 술도 바닥이 났다.

“그래? 그럼 마셔야지. 웨이터 들어오라고 그래.”

“넵!”

노조도 조직으로 운영됐다.

의사가 다른 만큼 파벌이 나뉘었고, 각각의 가장 윗대가리가 자연스레 지회장이 됐다.

돈을 물 쓰듯 다루지 못하면 그 자리에 오르지 못했다.

지회장 홍상표도 지회장이 되기 위해 알게 모르게 엄청난 돈을 뿌렸다.

“부르셨습니다!”

호출기를 누르자 번개처럼 나타난 웨이터.

오늘 지출만 해도 몇 백을 훌쩍 넘어갔다.

“새로 세팅 쫙 하고……. 이쁜이들 넣어줘.”

“바로 세팅하겠습니다!”

“이건 팁.”

5만 원 권 몇 장을 가볍게 건네는 홍상표.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웨이터는 한두 번이 아닌 듯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캬아! 우리 지회장님 쏠 줄 아신다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보는 겁니까?”

“흐흐흐. 계 탔네.”

술이 돌고 혈기가 뻗치자 사내들은 자연스럽게 여자를 찾았다.

모든 순서를 잘 꿰고 있는 홍상표.

‘많이들 마셔라. 흐흐흐.’

홍상표는 며칠 전 만났던 사장과의 면담이 떠올랐다.

현 정권 실세들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나광태 사장.

분식 회계 문제로 여론이 떠들썩했지만 그는 여전히 꿋꿋했다.

전임자들의 잘못이라며 자신은 발뺌을 하고 버텼다.

그리고 뒤에서는 온갖 수작질을 다 시도했다.

특히 노조를 이용해 여론의 관심사를 흐렸다.

어차피 강성노조라고 국민들로부터 욕을 먹고 있는 대웅조선 노조.

똥물 한 바가지 더 뒤집어쓴다고 달라질 게 없었다.

나광태의 요구에 흔쾌히 응한 대가로 지회장 홍상표는 1억 원을 받아 챙겼다.

보이지 않는 상부상조.

그 돈 중 일부를 이렇게 노조 임원들에게 풀었다.

아까울 게 없었다.

‘합병이 무산되면…… 3억이라……. 이번에 확실히 본전 뽑아야겠어.’

현재 자리에서 쫓겨나는 순간 그 동안 저질러온 자신의 비리가 드러날까 봐 두려운 나광태 사장.

그간 축척해 온 비자금을 아끼지 않고 사방에 뿌렸다.

그에게 국가 경쟁력 따위는 전혀 중요치 않았다.

이미 꼭대기부터 아주 더럽게 썩어버린 정치판.

여론의 바람에 휩쓸리기 좋아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오염시키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 없었다.

***

“홍상표 지회장은 민족노총 소속 금속지회의 강성파 노조원입니다. 최종 학력은 중성 전문대학 기계과 출신으로 민족노총 파견 대의원, 교육선전부장,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노조 엘리트 코스를 밟았습니다. 과격 투쟁으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기도 했습니다.”

제문환 임시 대표가 노조위원장의 신상에 관해 입을 열었다.

“저도 따로 알아봤는데 아주 영악한 자에요. 강성 이미지로 보이지만 뒤로는 임원들과 커넥션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도도희가 말을 보탰다.

“노조 임원들 상당수가 사측과 호형호제 합니다. 협상장에서는 얼굴을 붉히지만 협상이 끝나면 같이 만나 좋은 곳에서 회포를 풉니다.”

“좋은 곳요? 한국 노조 관행인가요?”

도도희가 의아한 듯 물었다.

“어차피 1년 뒤 협상 테이블에서 다시 만나야 할 상대들이니 굳이 일을 크게 만들지 않습니다.”

“과거 노조원들을 살렸던 노동법이 이제는 악법이 되었군요.”

도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1년마다 임금협상이 벌어진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대형 노조들은 임금협상을 빌미로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도 성과급을 비롯해 각종 보너스를 챙기기에 바쁩니다. 그들은 이제…… 힘없는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헌신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타락한 집단에 불과합니다.”

제문환 대표가 은근한 분노를 드러냈다.

그는 내가 대웅조선이 적자인 것을 알고도, 애국하는 심정으로 인수하려는 의도를 알고 있다.

투자 의지와 확고한 미래 비전도 함께 제시했지만 그 위에 초를 치는 노조가 싫을 것이다.

“홍상표 뒤에 나광태 사장이 있는 것 같아요.”

“대충 그림은 그려지지만…….”

“증거에요.”

도도희가 사진이 첨부된 서류철을 내밀었다.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횟집 내부.

나광태 대웅조선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과 어깨가 벌어진 남자가 악수를 나누며 은밀히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누가 봐도 분위기 상 음모를 짜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광태 사장이 맞습니다…….”

제문한 대표가 사진을 세심히 살피며 확인했다.

“주도면밀하더군요. 거제도를 벗어나 여수에서 만났어요. 뜨거운 사이도 아닌데 어찌나 친밀하던지. 흐흐.”

도도희가 비아냥댔다.

일이 터졌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고 곧 한국으로 날아왔다.

오랜만에 만난 임성철 회장과 멧돼지 고기에 보드카를 마시며 이런저런 많은 얘기를 나눴다.

세계적 기업을 경영하던 위인답게 살아 있는 다양한 충고를 들었다.

특히 노조에 대한 그의 확실한 주관을 새겨 돌아왔다.

무엇이 되었든 한 번 내어주면 다시는 본래 것을 돌려받지 못한다고 했다.

사측이나 주주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그들.

한국처럼 경직된 노동구조를 취하는 국가는 세계적으로 몇 개국 되지 않았다.

과거 유신 독재 당시 인력을 쥐어짜 국부를 쌓던 시절의 단적인 병폐였다.

노조는 사측을 믿지 못하고 사측도 노조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못한 데서 온 결과.

아직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두 집단.

임성철 회장과 나눈 마지막 대화가 가슴에 꽂혔다.

뛰어난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리는 법.

과거 노동집약적 시절에는 먹히지 않았을 말이지만 지금 시대에서는 만 명이 아니라 수십, 수백, 수천만을 넘어 인류 전체를 먹여 살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래사회로 갈수록 동의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다.

나 또한 그런 부류에 속하는 한 사람.

그래서 더 행동에 나섰다.

악성 바이러스 같은 썩은 인간들을 사람다운 사람들 속에서 솎아내야만 했다.

그대로 놔두면 썩은 냄새를 끌어안고 어디로 퍼질지 몰랐다.

초장에 잡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시간들.

정치는 국민들이 깨어나 바꾸는 게 맞지만 대웅조선 정도는 내 손으로 해결 가능했다.

“방법은 있습니까?”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회귀 전의 삶과 달리 내 수하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참 많다.

그들에게도 성장의 기회를 충분히 남겼다.

“이거부터 날리죠.”

도도희가 사진을 들었다.

“확실한 증거가 더 필요합니다.”

제문환이 눈동자를 빛냈다.

“조금 전 보고가 들어왔는데 홍상표 지회장과 임원들이 여자들까지 끼고 물 만난 물고기처럼 놀고 있다네요. 제 대표님한테는 물을 먹이고 말이에요.”

“개새끼들…….”

제문환 대표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그가 내뿜는 독기가 좋았다.

최고 경영자란 말 그대로 잘 벼른 칼을 품어야 하는 자리.

“증거 확보하고 있죠?”

“네. 빼박 증거들 모두 모으고 있습니다.”

도도희의 저런 자세, 참 마음에 들었다.

악을 응징할 때는 악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방법이 가장 적당했다.

“협상팀은 어떻게 할까요?”

“당분간 대기시키십시오.”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걱정입니다. 정부 쪽 실세들과 나광태 사장은 친분이 상당히 깊습니다. 자칫 실기하면…….”

인수가 물 건너갈까 봐 속이 타는 제문환 대표.

하루하루가 늦어질수록 대웅조선이 망가지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제가 판을 깔았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회장님께서요?”

“어머! 발도 빠르셔라. 러시아에서 기획을 다 하셨구나! 역시 우리 회장님!”

도도희가 엄지 척을 내밀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실지…….”

제문환 대표가 궁금한 듯 은근히 물었다.

“지금쯤 시작했겠군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굳이 공개할 필요가 없는 비밀 작전.

“…….”

“궁금해 미치겠네. 회장님. 힌트 좀 주세요!”

두 사람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독이 바짝 오른 독사를 풀어 놨습니다. 지금쯤 미끼를 물고…… 움직이고 있을 겁니다.”

“독사요???”

선뜻 이해를 못 하는 두 사람.

손에 든 차가운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며 마셨다.

굳이 내 손까지 더럽힐 필요는 없었다.

출세에 목마른 미친 독사 한 마리.

그것만 풀어 놓으면 알아서 난리가 날 터였다.

이제 때만 기다리면 된다.

독사와 승냥이들의 뒤엉킨 싸움.

상상만 해도 꿀잼 각이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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