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5장. 초청 받지 못한 자(2).
“매튜. 나 꼬집어봐.”
꾸욱.
“으아아! 누가 그렇게 세게 꼬집으라고 했어!”
“팀장님……. 이거 꿈 아니죠?”
“나도 믿기지 않아.”
갑작스럽게 이직하게 된 대니얼과 매튜.
맥켄스에 이직 의사를 밝히자마자 바로 처리됐다
처음에는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던 직속 상사.
외근을 마치고 돌아온 두 사람은 대낮부터 약 먹었냐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다 홍린과 양소려 두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자 바로 무릎을 꿇었다.
홍린과 양소려가 연관된 일이라는 사실만으로 회사 측에서는 두 사람을 붙잡지 못했다.
대니얼과 매튜는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이사의 청탁도 받았다.
세계적 투자 자문회사인 맥켄스 로펌도 벌벌 떨게 만드는 홍린과 양소려.
관리하고 있던 고객들에 대한 정보도 빠르게 이관됐다.
단 세 시간 만에 벌어진 일들이다.
대니얼과 매튜는 서류를 정리해 새로 이직한 사무실로 옮겼다.
높은 값 탓에 미분양 상태였던 사무실은 한참 동안 비어 있었다.
그 물건을 현금으로 현장에서 매입했다.
장립 대표가 쓰는 층 바로 아래에 사무실을 얻게 된 두 사람.
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서도 제대로 화려함을 뽐내는 홍콩 야경을 보며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이직은 단순히 연봉 상승에 그치지 않고 각종 혜택이 따라왔다.
실질적으로 계산해 따지자면 이직 연봉은 세 배 정도에 달했다.
“흐흐흐흐.”
대니얼이 실없는 사람처럼 웃었다.
가득이나 요즘 실적이 떨어지면서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직을 염두에 두고 있던 상황에 얻게 된 행운.
“팀장님, 우리는 행운아입니다.”
“이사님이라고 매튜.”
“넵! 이사님!”
“매튜 팀장. 내일부터 직원들 뽑아. 그리고 여 비서들은……. 알지?”
“걱정 마십시오. 미모와 실력 좋은 친구들 많이 알고 있습니다!”
대니얼은 이직과 동시에 이사 직함을 받았다.
매튜는 팀장.
“명함도 새로 파고.”
“넵! 사무실도 제대로 세팅할 생각입니다.”
“그래. 어쭙잖은 제품들 말고 제대로 해봐. 친애하는 대표님과 지사장님 눈높이에 맞게 말이야.”
“넵!”
카드도 받았다.
인력 지원은 최대 20명까지 가능하다는 지령을 받았다.
사무실 세팅 전권도 주어졌다.
횡령 따위는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대단한 양소려가 이곳 지사장이었다.
괜히 푼돈 횡령하다 걸리면 홍콩 앞바다에 수장돼 영원히 물 고기밥이 되어 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주어진 권한 안에서 최고의 행복을 누려보기로 한 두 남자.
아직 자유를 만끽하는 싱글로 가정을 이루지 않은 상태다.
한순간 연봉은 물론 신분도 상승했다.
이 정도면 홍콩의 밤거리에서 제대로 먹힐 것이다.
“우리 대표님 뭐 하는 분일까?”
“투자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어떤 투자?”
막상 이직을 하긴 했지만 회사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번듯한 사무실도 얻었고 명함도 있고 직원도 채용하게 됐지만 앞으로 나갈 비전 같은 건 전혀 전달된 바가 없었다.
잠시 생각에 빠지는 매튜.
“……홍린과 양소려는 상해방 라인 아닙니까. 당연히 그쪽과 연관된 사업이겠죠.”
“흐흐. 상해방…….”
상해방이라는 말만 듣고도 절로 행복해지는 대니얼.
홍콩과 마카오에서 상해방을 끼지 않고 가능한 일은 거의 없었다.
“앉아서 돈 쓸어 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전 보너스 받을 생각에 오늘밤 잠이 안 올 것 같습니다.”
“매튜. 일생일대의 기회야. 우리 반드시 대박치자!”
“넵! 팀장님!”
뜨거운 시선으로 흥분된 미래를 설계하는 두 남자.
“그런데…… 대표님 어디 가셨어?”
“그러게 말입니다. 아까…… 나가시던데. 비도 많이 오는데 어딜…….”
콰과과과광.
낙뢰와 요동치는 천둥소리.
촤아아아아아앗.
거센 비바람이 그칠 줄 모르고 거칠게 유리창을 후려쳤다.
홍린과 양소려가 먼저 사무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사라진 대표 장립.
아직까지 두 사람에겐 모든 게 의문투성이었다.
***
덜덜덜.
리장창은 긴장을 풀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몸을 떨었다.
밖에 몰아치는 비바람은 실내로 들어오지 않았다.
굳게 닫혀 있는 창문.
공간은 쥐 죽은 듯한 침묵에 잠겼지만 리장창은 서늘한 한기를 느꼈다.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물고 있는 남자.
그가 지옥에서 방문한 사신처럼 서재 문간에 서서 리장창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대인.”
몇 년 전의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콰과과과광.
낙뢰는 몇 차례 계속 됐다.
그때마다 번뜩이는 빛에 훤히 드러나 보이는 초청 받지 못한 자의 얼굴.
“어떻게…… 네가…….”
리장창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무공을 수련한 몸임에도 갑작스러운 정신적 충격의 여파는 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대면했던 수많은 변수들.
그중에 오늘 같은 기이한 날은 거의 없었다.
“여러 차례 지극한 선물을 받았는데…… 갚아 드려야죠.”
뼈가 담긴 말을 조곤조곤 전하는 방문자.
“…….”
리장창은 피가 차갑게 식는 걸 느꼈다.
누가 뭐라고 해도 그는 중국을 움직이는 천지회의 실세.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며 지금까지 버텨왔다.
“겁도 없구나.”
리장창의 목소리는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
파바바밧.
얼마간의 공간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 눈빛과 눈빛이 엉켰다.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데…… 오래 참았습니다.”
“그래서 직접 죽을 자리를 찾아온 것이더냐?”
“진정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뚜벅뚜벅.
한걸음 안으로 들어서는 방문자.
어두운 실내조명에 은근히 드러나는 얼굴.
“장태산!!!”
리장창이 그의 이름을 소리쳐 불렀다.
밖에 대기 중인 경호원이 들을 수 있을 만큼의 큰소리였다.
“경호원들 교체하시죠. 실력이 다들 형편없습니다.”
“뭐, 뭐라고?”
“살다보면 겉과 속이 다른 자들을 가끔 만납니다. 저 또한 페르소나의 가면을 쓰고 실체를 감춘 채 사는 순간도 있습니다. 인간이니까…….”
‘저놈이 이곳까지 어떻게!’
리장창은 빠르게 사방을 훑었다.
건물 밖에 있는 경호원 수만 해도 20명이 넘었다.
모두 다 적잖이 무공을 수련한 자들.
뿐만 아니라 저택은 최첨단 방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었다.
비상벨을 누르면 인근에 대기하고 있는 경찰 병력이 5분 내 도착한다.
더욱이 장태산은 특급 수준의 수배령이 내려진 인물.
중국과 홍콩에 나타나는 순간 그는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자가 겁도 없이 자신의 저택에 보란 듯이 침입했다.
밖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
어찌된 영문인지 이런 날씨에 옷자락은 빗방울 하나 튄 흔적이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 수상했다.
‘어딘가에 미리 숨어 있다 침입한 것인가?’
과거 지금의 저택에 와 본 적 있는 장태산.
리장창은 머릿속으로 여러 의심을 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무리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해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있습니다.”
잠깐의 침묵을 깨뜨리며 다시 입을 여는 장태산.
“하고 싶은 말이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 굳이 많은 말이 필요할 것 같지 않지만 저도 때로는 감성적인 사람이 되더군요.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무고한 사람을 헤치는 것도 모자라 그 가족과 인연자들까지 헤치려 했던 악마! 그런 자를 앞에 두고 이렇게 태연할 수 있는 저의 인내심에 스스로 놀랄 뿐입니다.”
리장창이 살수들을 보냈던 일을 낱낱이 알고 있는 장태산.
본인을 떠나 가족과 주변인들을 노린 사실을 두고 책망했다.
“그래도 한때는 세상 누구보다 돈독한 인연이 될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말에 알알이 박힌 뼈가 느껴지는 장태산의 말들.
“으음…….”
리장창도 마음 한편이 무척 괴로웠던 시절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만났던 장태산과 그의 가족들.
진심어린 따뜻한 환대에 감동받았던 그 시절.
하지만 적으로 인식된 순간 사적인 감정을 다 거둬들이고 가차 없이 살수를 보냈다.
개인적인 인연에 얽매어 연연할 수 없었던 리장창의 입장.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네.”
그 일을 가슴에 담고 있던 리장창은 진심으로 사과했다.
장태산으로 인해 오랜 시간 꿈꿔왔던 중국몽 실현이 늦춰져 악독한 수를 섰다.
클라라 역시 우려를 내비쳤지만 리장창은 듣지 않았다.
이 나이까지 신념으로 삼고 살아온 계이불사(鍥而不舍)를 가슴에 되새기며 계획한 바를 밀어붙였다.
장태산이 제거돼야 멈출 수 있는 살행.
하지만 놀랍게도 장태산은 몇 년 동안 이어진 리장창의 모든 공격을 막아냈다.
“이렇게 찾아오니 사과를 받기도 합니다. 하하하.”
장태산이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진짜 속내를 짐작할 수 없었다.
‘날 죽이려고 왔구나.’
리장창도 흘러가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늦은 밤 엄청난 폭우를 뚫고 찾아온 장태산.
모든 일의 원흉이라고 할 만한 자신을 살려둘 것 같지 않았다.
빠져나갈 구멍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한 가지 부탁해도 되겠나?”
“해보십시오.”
“잠시 시간을 주게. 전화 한 통이면 되네.”
“…….”
리장창이 말하는 바가 무슨 의미인지 눈치 챈 장태산.
“굳이 전화를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문자 정도면 충분해 보입니다.”
의도를 아는 듯 장태산은 거절했다.
“독해졌군.”
“대인께 배웠습니다.”
전혀 흔들림이 없는 장태산.
“고맙네.”
리장창은 책상 위에 있는 스마트폰을 잡았다.
그리고.
티디디딕.
아내와 딸 각자에게 문자를 작성했다.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하라는 말만 간단하게 남겼다.
일대일로 마주한 장태산.
그가 이미 자신을 훌쩍 뛰어넘는 고수가 됐다는 걸 리장창은 기세로 이미 파악한 후였다.
지금까지 시도됐던 모든 살행 계획이 실패한 진짜 이유를 확인한 셈이었다.
띠링띠링.
문자가 발송됐다.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리장창 역시 장태산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인정.
“끝나셨습니까?”
“끝났네.”
“고통 없이 보내드리겠습니다. 내세에서는……. 부질없는 욕망에 휩싸여 타인을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참고하겠네. 하지만 강요하지 말게. 내 꿈은 죽어서도…… 중화민족의 무궁한 발전이니까.”
“세상 민폐 국가의 탄생이죠. 도덕과 양심 따위 없는 지도자들이 판치는.”
“닥쳐!!!”
죽음을 각오했기에 리장창은 당당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광소를 터트리는 장태산.
“세상에 평화를 위한 전쟁은 없는 법. 인정하겠습니다. 어차피……. 나도 쉽게 끝낼 생각은 없습니다.”
중국 전체를 향한 선전포고.
부르르르르.
장태산의 강한 의지에 리장창은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이놈은…….’
장태산은 자신이 뱉은 말을 해낼 것만 같았다.
아직도 낱낱이 파악하지 못한 장태산의 감춰진 능력.
“마지막 잔은 비우고 가십시오.”
장태산이 채워진 백주 잔을 건넸다.
천천히 받아드는 리장창.
술잔을 잡은 손이 흔들렸다.
꿀꺽.
단숨에 잔을 비웠다.
“부탁하네만. 내 아내와 클라라는…… 봐주게.”
“저는 대인 같은 악마가 아닙니다.”
“다시 한 번, 고맙네.”
리장창은 담담하게 죽음의 순간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긴장으로 경직된 몸을 느슨하게 하며 내공을 풀었다.
괜히 저항했다가는 더한 고통을 수반한 채 숨을 거둬야 할지도 몰랐다.
스윽.
리장창의 정수리를 향해 손을 뻗어오는 장태산.
이 같은 살인이 처음이 아닌 듯 그의 손끝에는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스르르르.
리장창은 두 눈을 감았다.
순간 눈앞을 스쳐가는 짧았지만 또 길었던 자신의 삶이 영화처럼 펼쳐졌다.
‘부디……. 열조(烈祖)들이시여. 중국몽을 위해 힘써 주시기를 이 못난 후손이 간절히 기원하옵니다!’
선대 조상들을 향해 죽음 앞에서 진심을 다해 소망을 전하는 리장창.
정수리에 장태산 손이 내려앉았다.
화기를 품은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내공의 기운.
죽음의 그림자가 머리끝부터 덮쳐오는 환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파지지지지직!!!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