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4장. 초청 받지 못한 자.
“나이는 29세. 예일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경영학 복수 전공. 성격은 내성적이며 우울증 초기 증세가 있었음. 교우 관계도 원만하지 않았음. 교수를 비롯해 같이 공부했던 이들을 통해 신원이 확인 완료. 5년 전 실종 후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미국을 거쳐 파리를 통해 홍콩에 입국했음.”
세세하게 보고되는 누군가의 인적사항.
“전혀 이상이 없다는 건가?”
“장립, 그자가 맞다고 합니다.”
“실종이라…….”
리장창은 제갈유량의 보고를 듣고 말을 아꼈다.
뭔가 계속되는 미심쩍은 의심 때문에 장립에 관해서 조사하도록 했다.
보고에 의하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요주의 인물이 됐다.
홍콩에 입국하고 난 뒤의 활동은 모두 체크 됐다.
게다가 왕정의 일거수일투족은 중국 정치계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
몇 시간 동안 그 두 사람은 호텔에서 술을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천지회의 정보 담당을 총괄하고 있는 리장창은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과 자리를 함께했던 홍린과 양광의 딸 양소려, 거기에 왕정까지 합류했다.
그들 모두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거물들이다.
상해방의 핵심 인재들.
그 자리에 장립이 함께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놈 같습니다. 투자 법인을 만든 것으로 보아 상해방과 관련된 사업을 벌일 게 확실합니다.”
제갈유량은 자신이 추측한 바를 전했다.
“그렇겠지. 상해방 놈들은 중국의 부흥보다는 자신들의 호주머니 채우는 일이 먼저니까.”
상해방은 과거부터 차별정책을 펼쳐왔다.
내륙보다는 상해와 항주 같은 해안가 도시를 주력으로 키웠다.
검은 돈을 이용해 공산당원들을 오염시켰다.
태자당은 그런 점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공청당과 상해방의 싸움을 이용해 어부지리로 권력을 차지하긴 했지만 운용할 수 있는 자금력에서 밀렸다.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우며 상해방 인물들을 다수 털어냈지만 완벽하게 장악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태자당은 물론 공청단 간부들까지 꽌시로 단단하게 엮여 있었다.
자칫 뿌리를 잘못 건드렸다 태자당에까지 파장이 미칠 수 있었다.
“계속 감시하겠습니다.”
“왕정은”
“상해로 돌아가…… 장주석을 만났습니다.”
“보고인가?”
“아마 그런 것 같습니다.”
‘장주석……. 죽지도 않고 잘도 버티는구나!’
장주석을 제거하기 위한 은밀한 테러가 몇 번 시도됐었다.
그때마다 교묘하게 위험 상태에서 빠져나간 장택민.
노구임에도 건강 상태도 꽤 양호했다.
그리고 또 하나.
‘진선, 도대체 넌 누구냐!’
우연치 않게 접수하게 된 엄청난 정보.
상해방 고위 관료를 기율위반으로 조사하는 자리에서 알게 된 극비.
자백 주사가 아니었다면 전혀 알 수 없었던 정보였다.
장택민의 뒤를 받쳐 준다는 자 진선.
수없이 그의 실체를 캐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진위는 오리무중이었다.
진선이라는 존재로 상해방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혹시 말이야, 장주석과 인척 관계는 아닌가?”
“장립 말이십니까?”
“그래.”
“아직 거기까지는 파악 못 했습니다.”
“좀 더 알아봐. 뭔가 있어. 뭔가…….”
“알겠습니다.”
우르르르릉.
창밖으로 먹구름이 몰려왔다.
촤아아아앗 촤아아아앗.
이내 쏟아지기 시작하는 굵은 빗줄기.
대해로부터 집채만 한 거친 파도가 리장창을 향해 몰아쳐 오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
“마음에 드십니까?”
“흐음…….”
파이퍼 앤 맥켄스의 팀장 대니얼은 고객의 표정을 읽느라 바빴다.
통장 개설과 함께 진짜 10억 달러가 입금됐다.
심지어 전액 추적할 수 없는 조세피난처의 페이퍼 컴퍼니 계좌를 통한 것이었다.
대니얼은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인물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거물임을 감지했다.
전산화로 자금 흐름을 간단하게 추적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세상에 이 정도 자금을 흔적도 없이 운용할 정도라면 진정한 프로라 확신했다.
단순한 접대에도 최선을 다했다.
유령 법인 세 곳을 세우고 깨끗한 S급 통장을 넘겼다.
카드도 발급했다.
한도는 통장에 꽂힌 금액만큼.
블랙 카드 수준을 훨씬 넘었다.
사무실도 준비했다.
맥켄스는 토털 서비스를 지향했다.
적당한 비용만 지불 가능하다면 악마의 신변도 보호해 주는 업체.
홍콩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려는 장립에게 최상의 파트너였다.
최근 건설된 홍콩 중심 상업거리에 우뚝 선 럭셔리 오피스텔 팬트하우스.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그 위용을 뽐냈다.
주변에 밀집한 건물들을 압도하며 폭우 속에 서서 모든 경관을 발아래에 깔았다.
“좀 작은 것 같은데…….”
“네?”
“인테리어 선택하기가 애매하네요. 이게 최선인가요?”
“죄, 죄송합니다. 신축 건물들 중에 이 정도 크기는 여기 밖에 없습니다.”
대니얼은 거물 고객의 불만족에 기가 죽었다.
옆에 있던 팀원 매튜도 마찬가지.
처음 만만하게 대처하려 했던 마음 자세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까지 데스크에 앉아 상대하던 고객들과 차원이 달랐다.
돈에 전혀 구애 받지 않는 진정한 상위 클래스의 품격이 느껴졌다.
사실 면적이 작은 홍콩에서 이 정도 공간이면 꽤 괜찮았다.
‘도대체 여기서 뭘 하려는 거지? 직원도 하나 없이…….’
고객이 요구해 찾아낸 공간이지만 납득이 가지 않았다.
보유한 자본과 달리 딸린 직원은 전무했다.
그럼에도 장립은 중국 기준으로 800평방미터가 넘는 넓은 공간을 두고 협소하다고 말했다.
“아래층 비었죠?”
“네? 네.”
“그것도 매입해 주세요.”
“바로 아래층까지 말입니까?”
“그것도 좀 작겠죠? 세 개 층이 좋겠죠?”
“…….”
“이곳은 제 개인 사무실로 사용할 겁니다.”
믿기 어려운 졸부의 부러운 돈질.
대니얼과 매튜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팬트하우스 매매가는 미화로 1000만 달러.
500만 달러 가격들인 아래층까지 합치면 약 2000만 달러다.
그 큰돈을 현장에서 순식간에 질러버리는 고객은 장립이 처음이다.
또각또각.
그때 그들을 향해 가까워지는 구두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저 왔어요.”
“립. 저도 같이 왔어요~. 호호호.”
붉은 치파오를 차려입은 화려한 차림의 여인과 정갈한 투피스 정장을 한 여인의 등장.
대니얼이 고개를 두 여인을 돌아봤다.
‘홍린. 양소려!’
두 여성 모두 홍콩과 마카오에서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한 존재였다.
상류층 파티라면 결코 빠지는 일 없이 전부 참석하는 홍린.
홍콩 사교계의 여왕이었다.
그 옆에 있는 양소려 또한 못지않게 유명한 인물.
아버지가 지하 세계의 자금을 움직이는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작업하는 대니얼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존재였다.
그런 핵심 인물 두 사람이 장립을 향해 다가왔다.
언뜻 봐도 무척 가까워 보이는 그들의 모습.
“여기 어때요?”
장립이 물었다.
“작지만…… 쓸 만하네요.”
양소려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럭저럭…… 시간 때우며 놀기에 좋겠네.”
홍린이 사방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 대니얼과 매튜는 할 말을 잃고 속으로 위축됐다.
홍콩에서 사업다운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저 두 여인에게 밉보이는 일은 없어야 했다.
과거와 달리 현재 홍콩 정부는 외국 사업체에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립. 직원은?”
홍린이 물었다.
“구해야 하는데…… 아는 사람이 없네요.”
“저기! 저 두 사람은 뭐야?”
홍린이 대니얼과 매튜를 눈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파이퍼 앤 맥켄스 로펌 팀장 대니얼입니다.”
“팀원 매튜입니다.”
순간의 기회를 포착하고 자연스럽게 명함을 내밀며 고개를 숙이는 두 남자.
중국식 예의에 익숙했다.
“맥켄스 팀장이면…… 내가 누군지 알죠?”
홍린이 요염한 자세로 웃으며 물었다.
“물론입니다. 여왕님.”
익숙한 듯 아부하는 대니얼.
“우리 립, 잘 부탁해요. 위에서 제대로 밀어주는 유망한 분이에요.”
홍린이 장립을 추켜세웠다.
“최선을 다해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대니얼이 목소리에 힘을 담았다.
“두 분, 부탁이 있습니다.”
장립이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빙긋 웃더니 말을 건넸다.
“네?”
“일 처리가 마음에 듭니다. JL의 직원이 되어주십시오.”
“네에에???”
눈알이 튀어나올 듯 커진 두 남자.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이런 황당한 이직 제안은 처음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두 사람 다 말을 잇지 못했다.
장립이 아무리 유망한 사람이라지만 맥켄스는…….
“연봉, 지금의 두 배 드리죠.”
“!!!”
“홍콩에서의 거주 비용과 차량 제공. 각자의 비서 채용도 해주죠.”
파격적인 제안이 계속 이어졌다.
“보스!! 잘 부탁드립니다!!!”
대니얼보다 눈치가 빠른 매튜가 크게 보스를 외치며 허리를 숙였다.
‘의리도 없는…….’
어이가 없다는 시선으로 매튜의 하는 행동을 쳐다보는 대니얼.
“대니얼은 관심 없습니까? 그럼 다른…….”
“보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
또로로로록.
독한 백주가 잔에 채워졌다.
쩌저저적.
창문 밖으로 먹구름을 뚫고 떨어지는 낙뢰.
우르르릉! 콰과광.
곧이어 공간을 때리며 천둥소리.
갑작스럽게 쏟아지기 시작한 폭우는 천둥까지 동반했다.
휘이이이이이잉.
창문을 때리며 지나가는 스산한 해풍이 실내까지 침범했다.
자연이 만들어 내는 웅대한 오케스트라.
안주도 없이 저택의 주인은 독주를 연거푸 마셨다.
실내조명도 최대한 낮췄다.
아내는 딸을 만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났다.
기나긴 하루를 마무리하는 자리.
경호원들이 철통같이 지키는 외로운 성에 홀로 남은 주인은 술로 시간을 달랬다.
“뭔가 놓친 것 같은데…….”
리장창은 머리가 개운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계속 되는 기분 나쁜 불안감.
시진핑을 황제로 세우고 계획했던 일들이 무리 없이 착착 진행됐다.
상해방의 거물들을 하나둘 쓰러트렸다.
그 빈 자리를 조용히 채우는 태자당 소속 천지회 회원들.
위대한 중국몽을 향해 더디지만 한 발씩 내딛고 있었다.
“뭘까? 이 불안감은.”
꿀꺽.
단숨에 독주를 털어 넣는 리장창.
고민이 깊은 만큼 독주가 가진 독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또로로로록.
또 다시 채워지는 잔.
내공을 사용할 줄 아는 인물답게 술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걸리는 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답답함.
“장립…….”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자의 이름이 계속 입에 곱씹어졌다.
홍콩에 나타나 며칠 만에 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미 계획되었던 일처럼 보이는 왕정과의 만남.
왕정에 이어 장택민까지 이어지는 의심은 리장창을 괴롭혔다.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의심이 의심을 낳는 기분.
“죽여?”
가장 명쾌한 해결 방법은 화근을 제거하는 것뿐.
장립은 무슨 배짱인지 매번 경호원 한 명 대동하지 않고 움직였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를 제거하는 일은 아주 쉬웠다.
휘이이이이이이이이잉.
그때 갑자기 거친 바람이 내실까지 휘몰아쳤다.
파라라라라라랏.
테라스 창문이라도 열려 있는 듯 휘몰아친 바람이 서재까지 찬기운을 몰고 스며들었다.
“쯧쯧.”
리장창이 습관처럼 혀를 찼다.
집안일을 돌보는 도우미는 지하에 마련되어 있는 숙소로 돌아간 상태.
스윽.
무겁게 가라앉은 몸을 일으켰다.
경호원을 불러들이는 일도 귀찮았다.
창문을 확인하기 위해 서재 밖으로 나가려 몸을 돌리던 리장창.
갑자기 눈에 들어온 그림자에 크게 당황했다.
“!!!”
서재 출입문에 서 있는 낯선 남자.
마치 오래 전부터 거기 그렇게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조도를 낮춰놓은 조명 때문의 낯선 남자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누구…….”
쩌저저저저적.
신분을 묻는 순간 먹구름을 뚫고 낙뢰 한 줄기가 내리꽂혔다.
순간 훤히 드러난 낯선 남자의 얼굴.
“헉! 넌!!!”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