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3장.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3).
‘내 사람???’
양소려는 갑작스러운 장립의 고백에 화들짝 놀랐다.
누가 봐도 이 분위기는 청혼하는 남자의 멘트였다.
양소려도 종종 애용하는 7성급 호텔에서의 술자리.
아름다운 야경에 와인, 따뜻한 분위기까지 모든 것이 최상의 상태였다.
게다가 장립은 캐주얼 복장의 첫 만남과 달리, 정장까지 차려입었다.
타이가 없는 가벼운 모카 컬러 세미 정장이 제대로 빛을 발했다.
안에 가볍게 바쳐 입은 깔끔한 무지 티셔츠.
손목에 착용한 적당한 가격의 브랜드 시계.
홍콩에서 급하게 구입해 갖춘 차림이었지만 그의 스타일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어느 자리에나 단연 뭇 여인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만했다.
그런 멋진 남자가 맛 좋은 와인을 나누는 자리에서 느닷없이 고백을 했다.
무공을 수련한 양소려도 당황스러운 순간이었다.
다른 남자였다면 양소려에게 차가운 냉소를 대답으로 들어야 마땅했다.
지금까지 양소려를 앞에 두고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한 남자는 없었다.
성인이 되기까지 한 번도 남자와 교제를 해본 적이 없는 양소려였다.
그래서 이 순간이 더 혼란스러웠다.
‘어떤 의미지?’
양소려는 장립이 하는 말의 정확한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
아니, 장립이라는 남자 자체를 몰랐다.
해외에서 난 화교 신분.
처음 보는 보물 보따리를 들고 아빠를 찾아왔다는 게 전부였다.
처음 그의 모습은 장물 거래를 하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안내한 카지노에서 여러 판의 도박판을 휩쓸었고 나중에는 상무위원까지 그를 만나러 왔다.
종국에는 무려 장택민 주석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까지 확인됐다.
모두 단 하루 만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들이다.
엄격하고 철저한 규범에 의해 굴러가는 중국 사회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사건의 연속.
그 일들을 장립은 해냈다.
며칠 동안 그의 뒤를 밟았다.
홍콩은 상해방 영역.
장립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됐다.
상무위원 왕정의 발 빠른 지원으로 투자회사가 만들어졌다.
그다음에는 부호들 뒤처리를 담당하는 파이퍼 앤 맥켄스 로펌과 접촉했다.
이런 일을 한두 번 처리하는 게 아닌 듯 그의 모든 움직임은 자연스러웠다.
장립은 특별한 일이 없는 여가 시간에는 홍콩 쇼핑을 즐겼다.
맛집 중심으로 투어를 하고 홍콩 시내를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돈의 씀씀이가 꽤 컸다.
말 그대로 돈 많은 여행객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양소려가 본 장립의 모습은 그게 전부였다.
낯선 누군가를 만나지도 않았다.
특이점이라면 성 마가렛 성당 앞에 멈춰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던 일 정도.
‘좀 더 밀착하는 건 맞는데…….’
아빠는 물론 상해방 윗선에서도 따로 연락이 왔다.
한결같이 장립을 배려하고 잘 살피라는 전언.
오늘 초대에 기꺼이 응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장립이 홍콩에 머무는 동안은 양소려가 전담이었다.
옷차림 하나에도 꽤 신경 썼다.
장립은 기본적으로 담백한 차림을 선호하는 것 같았다.
매혹적인 홍린의 유혹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그.
문제는 장립이 처음 만났을 때보다 더 매력적인 사람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에게 빠져들었다.
처음 경험하는 낯선 감정들.
양소려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무조건 정체 모를 위험한 남자라는 사실만 상기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붙들었다.
***
두 눈을 동그랗게 치뜨며 깜짝 놀라는 양소려.
나의 고백에 크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눈동자가 양소려의 심리 상태를 말해줬다.
다분히 의도하고 충격 요법을 사용했다.
많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그녀를 흔들어 놓을 말들.
마음을 전하는 고백은 아니다.
상해방 핵심과 연결되어 있는 양소려.
그녀의 호감을 얻는다면 앞으로 홍콩에서의 일들은 예상외로 수월할 것이다.
목적이 있는 만큼 관계 설정에 최선을 다했다.
어차피 양소려가 내 편에 선다고 해도 그녀나 나나 서로를 믿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
“충격적인 고백이군요.”
“놀랐나요?”
“당신 같은 남자는 처음 만나 봐요.”
충격은 잠시뿐.
철저한 수련을 통해 자신을 단련한 듯 양소려는 바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잠시 흔들리던 눈빛도 곧바로 냉정함을 되찾았다.
괜찮은 여자다.
그래서 더 욕심이 났다.
여자로서가 아닌 동지로서 매력적이다.
“저도 양 소저 같은 분은 처음입니다.”
“좋은 의미인가요?”
“물론입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아시죠?”
“네.”
“여러 대인들과 얽혀 있어요. 그런 저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다……. 이걸 고마워해야 하나요?”
“상해방에 도움이 될 겁니다.”
“미세먼지 제거 기술로요?”
“인민들의 지지를 받는 자가 패권을 쥐는 법입니다. 민심이 곧 천심입니다.”
태자당과 상해방, 그리고 공청단.
역사는 돌고 돈다는 어느 역사학자의 말처럼 그들은 과거부터 거듭돼 온 악연이 분명했다.
조상신이 다르다는 것도 알림음으로 확인했다.
과거 위, 촉, 오의 삼국시대와 같았다.
공청단이 배출한 전 주석인 호금도는 감숙성을 기반으로 티베트까지 예전의 촉 지역을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삼았다.
태자당의 수장 습금평이라 불리는 시진핑은 저장성과 북경이 지지기반이었다.
또 상해방은 상해를 기반으로 항주와 홍콩, 마카오 같은 남부 지방에 권력의 뿌리를 박았다.
누가 봐도 위, 촉, 오.
성과 성을 빼앗고 빼앗겼듯 지금도 그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이제는 칼이 아닌 권력을 무기 삼아 각 성의 당서기들을 갈아치웠다.
많은 성을 차지할수록 발언권이 세졌다.
군권을 쥔 장군들의 임명도 마찬가지.
과거와 달리 시진핑은 오래된 군 파벌들을 혁파하려 했다.
그러나 개혁이 쉽지 않았다.
무력을 쥔 군권은 엄청난 꽌시와 연결됐다.
중국의 모든 권력자들이 그렇게 얽히고설켜 세 파벌들의 영향력 아래 놓였다.
개인의 능력은 그다음.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네.”
“아직 세상에 그런 기술은 없어요.”
“곧 나옵니다. 정확한 소식통입니다.”
“어디서요?”
“한국입니다.”
“한국요???”
“대학교 동창이 월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한국 대기업들이 획기적인 미세먼지 저감장치 기술을 선보일 거라고 하더군요. 인도에서도 투자 협정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인도에서요?”
양소려가 놀라서 물었다.
“네.”
짧고 굵게 답했다.
일체의 거짓도 없다.
그 모든 소문의 근원지는 바로 나다.
“그렇다면…….”
“시진핑을 비롯해 태자당은 해결 못합니다. 인민들이 깨어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정보를 국가가 차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중국인들도 더 이상 바보가 아니었다.
세계 곳곳을 네트워크가 하나로 연결했다.
중국 정부가 괴물 같은 프로그램을 이용해 감시한다 하지만 댐이 무너지듯 어느 날 중국인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2020년 당시에도 중국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미중 무역전쟁은 수시로 파열음을 일으켰다.
저작권이나 기술 보호, 금융 같은 중국의 약점을 미국은 사냥개처럼 물고 늘어졌다.
수시로 급한 불을 끄기 위한 협정이 맺어졌지만 그도 오래 가지 않았다.
똑똑한 트럼프가 자신의 입지가 불리해질 때마다 돌아가며 세계 각 국을 자극했고 그 대표 국 중 한 나라가 중국이었다.
미국인들은 러시아만큼 중국을 위험한 나라로 취급했다.
매년 불어나는 적자를 그들도 깨닫게 됐다.
미국이 휘두르고 있던 세계 발언권에 도전하는 모습을 중국이 보였다.
도광양회 전술을 과감히 던져버린 시진핑.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유럽에서도 경각심을 갖게 됐다.
이웃한 국가들 역시 그런 중국을 믿지 못했다.
세계 각국의 신뢰가 떨어지는 상황에 경기 침체로 중국 기업들이 무너졌다.
수출이 막히자 공장이 문을 닫았다.
비공식적 실업률이 빠르게 올라갔다.
인민들 눈은 높아졌고 인건비를 비롯해 사회보장 보험료가 치솟았다.
중앙정부들은 민간 기업들을 빼앗기 바빴다.
혼란 속으로 내달리는 중국.
하늘이 나에게 기회를 줬다.
중국 조상들 역시 자식을 사랑하는 방식이 다르지 않았다.
일단 내 자식부터.
틈이 보였다.
적의 적은 나의 동지라는 공식이 적절히 성립됐다.
천지회와 맥을 같이 하는 태자당을 무너뜨리면 이웃집 개를 잡는 일이 수월해질 것이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기 위해 홍콩을 택했다.
리장창은 나의 이런 계획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홍콩에서 그와 천지회 목에 방울을 달 준비를 마무리 짓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위험한 발언이에요.”
양소려도 중국 공산당 핵심 가문 출신.
그녀 역시 인민들이 깨어나는 걸 두려워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과한 통제는 화를 부르는 법입니다. 인민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며 자연스럽게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시대가 변하면 통치 방법도 격을 달리해야죠.”
공산당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권력을 좇는 인간이 만들어낸 또 다른 정치 체제.
공산당원들로 구성된 엘리트 집단은 철저하게 자신이 휘두를 권력을 구축했다.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쉽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민주주의 맛을 보면 중국은 사분오열 되리란 걸 그녀와 지도자들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수많은 소수민족과 여러 정치 집단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중국.
만약 인민들이 민주 시민이 되겠다고 투쟁하기 시작하는 순간 중국이 구축해 놓은 권력의 틀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공산당이라는 절대 권력의 탄압이 있기에 지금까지 가능했던 융합.
제2의 천안문 광장 사태가 벌어지면 중국은 더 이상 하나의 국가로 남아 있을 수 없었다.
내가 노리는 핵심이 바로 그것이다.
작은 한반도를 비웃는 이웃집 개들을 때려잡는 가장 확실한 한 방.
바로 내부 총질이다.
“직접 결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확신에 찬 어조로 다시 한 번 말했다.
날 바라보는 양소려의 복잡한 시선.
“그래서 당신이 필요합니다.”
그녀를 향해 뜨거운 눈빛을 보냈다.
“어떤 부분에서 말인가요?”
애써 무심한 척했지만 관심을 보이는 양소려.
“제가 설립한 JL인베스트먼트 지사장을 맡아 주십시오.”
“지사장요?”
생각지 못한 파격적 제안에 양소려가 눈을 크게 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제안일 것이다.
“대우는 이사급입니다. 연봉은 미화로 100만 달러.”
월가 투자 회사 임원급의 연봉을 제시했다.
돈이 문제가 아닌 상황.
양소려에게 그 정도 연봉은 돈도 아닐 것이다.
“오고가는 게 있어야 진짜 친구죠.”
빌미를 남겼다.
“우리가 친구인가요?”
확인차 묻는 양소려.
“이런 복잡한 세상에서 목적이 같고 마음이 통한다면……. 그게 친구가 아니겠습니까.”
잠시 침묵에 빠지는 양소려.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는 간단하고 명확했다.
상해방을 도우면서 나도 이익을 취하겠다는 뜻.
“…….”
입을 다문 채 침묵하던 양소려.
스윽.
잔을 들었다.
“대표님,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JL인베스먼트의 홍콩 지사장 양소려입니다.”
양소려는 무척 똑똑한 여성이다.
본질적으로 오월동주(吳越同舟) 같은 사이에 불과하지만 지금은 손을 잡을 때.
“양소려 지사장.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티잉.
맑게 울리는 와인 잔.
그렇게 홍콩에서 또 하나의 인연이 완성됐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