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2장.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2).
“미세먼지를?”
“네.”
“흠.”
중국 경제의 중심지 상해.
남성적인 도시 북방의 북경과 다르게 여성스런 남방의 도시 상해는 장강 하구에 위치해 있었다.
넓은 도시 면적과 풍부한 물산, 2000만 명에 가까운 인구는 개방 정책 이후 타 도시를 압도하는 GDP 성장률을 이뤄냈다.
2013년 1인당 GDP가 10,000달러를 훌쩍 넘었다.
역사는 짧지만 800년 동안 태평양을 건너온 여러 국가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용광로처럼 융합시켰다.
‘동방의 파리’로 불리기도 하는 상해.
‘마력의 도시’나 ‘천면여랑(千面女郞)’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중국에서도 상해는 가장 사치스런 도시로 유명했다.
그 모든 걸 가능케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주인공이 지금 왕정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장강 하구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거대한 별장의 내실.
창 너머 풍광을 바라보며 한 노회한 남자가 서 있다.
중국 공산당 상왕이라 불리는 그가 왕정의 보고를 받았다.
남자 옆에 선 왕정은 마치 그의 최측근 비서처럼 보였다.
상무위원이라는 대단한 정치적 신분임에도 노회한 남자 앞에서는 한없이 작기만 한 존재였다.
오늘 당장이라도 왕정을 상무위원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권력자.
중국 개혁개방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상해를 세계적 도시로 키워낸 장택민이었다.
테가 두툼하고 알이 굵은 안경을 쓴 그는 한참을 창밖만 바라봤다.
“주석님. 말도 안 되는 얘깁니다. 미세먼지는 단시간에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전국의 공장과 인민들 가정에서 석탄이 완전히 사라져야 가능합니다. 장립 그자는…… 사기꾼입니다.”
왕정은 장립에 대해 거침없이 편견을 드러냈다.
장택민 주석의 지시로 없는 시간을 쪼개 만남을 가졌지만 사람이 투명하지 않았다.
속도 알 수가 없었고 하는 말을 신뢰하기에는 나이도 너무 어렸다.
상무위원 신분인 자신에 대한 예의 또한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외모는 눈에 띄게 반반하고 인상은 나쁘지 않았지만 말하는 태도부터가 뻣뻣했다.
아끼던 첩 홍린이 대놓고 관심을 보였을 정도다.
결정적인 건 중국 본토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해외에서 난 화교 주제에 베이다이허 회의에 참석하려는 꿍꿍이까지 내비쳤다.
어떤 식으로든 장택민 주석 앞에서 그를 깎아내리려 노력했다.
“그게 실현된다면?”
짧게 던져진 반문.
“네?”
“왕정. 너도 물들었구나.”
장택민의 목소리에 담겨 있는 은근한 책망.
창밖에 그대로 머물고 있는 장택민의 시선은 등 뒤에 선 왕정을 옴짝달싹못하게 옭아맸다.
“주……석님…….”
“쯧.”
급기야 장택민이 혀를 찼다.
평소 긴 말을 좋아하지 않는 장택민.
‘쯧’ 소리 하나에 그의 모든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제가 부족했습니다.”
왕정은 바로 허리를 꺾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타인을 평가하고 판단하려거든 먼저 스스로를 평가하고 판단하라 했다. 왕정. 넌 장립에 관해 무엇을 아느냐?”
“…….”
장택님의 물음에 왕정은 입을 다물었다.
몇 시간의 만남 동안 그에 대해 알아낸 것이 전혀 없었다.
하여 말 그대로 편견만 잔뜩 쌓였다.
“왜 내가 일면식도 없는 그자의 청을 들어주라 했는지…… 진정 모른단 말이냐?”
마치 엄한 스승이 제자를 나무라듯 질문하는 장택민.
그의 그늘에 들어 30년 이상 정치를 배워 온 왕정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찾지 못했다.
“쯧.”
혀 차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죄송합니다.”
왕정의 정수리는 바닥에 더 가깝게 숙여졌다.
“그 녀석은…… 여의주다.”
“네?”
일면식도 없다던 자를 ‘여의주’라 표현하는 장택민 주석.
“많이 궁금할 게야. 내가 왜 상무위원인 자네를 보내 일개 화교의 청을 들어주라고 했는지 말이야.”
왕정은 여전히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장립은 왕정을 이용해 홍콩에 투자회사를 차리게 됐다.
곧바로 행정청에 지시를 했기에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홍콩 병합 이후 핵심 고위층은 대부분이 친중파가 장악했다.
그들 대부분이 상해방의 인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답을 내려주십시오.”
장택민의 스타일을 왕정도 잘 알았다.
자기 사람에게 앞에서는 호되게 혼을 내지만 뒤에 꼭 해답을 줬다.
장택민만의 정치 교육 방식이었다.
상해방이 단기간에 중국의 핵심 권력을 움켜쥘 수 있었던 이유.
“나도 몰라.”
“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장택민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그런데 왜…….”
“진선(眞仙)님의 뜻이다. 녀석이 우리를 다시 비상하게 만들어 줄 여의주라고 하셨다.”
“아!!!”
진선님의 뜻이라는 말에 왕정은 입이 쩍 벌어졌다.
세상에는 알려져 있지 않은 상해방의 또 다른 실질적 주인.
장택민을 오늘의 이 자리에 있게 한 진정한 능력자였다.
왕정도 중앙위원이 되고 나서야 그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철저하게 베일에 싸여 있는 진선의 정체.
직접 대면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진짜 신선과 같은 영통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만 들었다.
그가 제조했다고 전해지는 단약은 그 효과가 탁월했다.
장택민 주석이 나이를 저렇게 먹고도 지금 같은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모두 진선의 단약 덕분이었다.
상해방을 수호하는 고수들을 진선의 제자들이 키워내고 있었다.
양소려 역시 그중의 한 명.
그들 역시 진선의 정체는 알지 못했다.
상해방에서도 겨우 다섯 손가락에 드는 이들 정도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태자당과 한 몸인 천지회도 겨우 눈치만 챘을 정도.
장택민 주석의 말은 그런 진선이 장립을 특정했다는 소리였다.
왕정의 수준으로도 절대 짐작 못 할 큰 그림이었다.
“당분간 무엇이 되었든 다 도와주게. 그게 진선님의 뜻이네.”
“명을 받드옵니다.”
왕정의 허리는 펴질 줄 몰랐다.
진선의 눈 밖에 나면 돌아서는 순간 천벌이 내렸다.
천지회 놈들이 그런 이유 때문에 몸을 사렸다.
조직의 힘은 약해졌을지라도 지금까지 상해방이 굳건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 진선의 명은 반드시 꽃을 피워야 했다.
***
“예술이네.”
호텔 스카이라운지에서 내다보이는 불야성은 꽤 볼 만했다.
오랜만에 다시 와 보는 홍콩.
이곳은 나에게 애증의 도시였다.
이 화려한 도시에서 사랑과 죽음의 위기를 맛봤다.
다시 돌아온 홍콩은 과거와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홍콩 유일의 7성급 아일랜드 샹그릴라 호텔.
56층 최상층에서 바라보는 빅토리아 하버가는 어떤 곳의 야경보다 멋졌다.
야경명화(夜景名畵).
미세먼지로 밤 풍경마저 뿌연 서울 야경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곳에서도 돈을 아끼지 않았다.
마카오에서 거머쥔 거액의 자금으로 최단시간에 유령 투자회사도 세웠다.
왕정의 지시에 행정청 업무는 하루 만에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중국 상무위원의 놀라운 파워였다.
“뭘 보고 계세요?”
기다리고 있던 손님이 야경에 빠져 있는 내게 물었다.
“야경이 정말 환상입니다.”
“그렇죠? 저 마력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들죠.”
손님은 양소려였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여자의 변신은 언제 어디서 봐도 무죄.
치파오를 입었을 때는 붉은 장미 같았던 그녀가 확 변신했다.
물이 살짝 빠진 몸에 착 붙는 스키니 진바지에 하얀 남방.
머리카락은 포니테일로 묶고 화장기 없는 순백의 피부.
마치 수묵담채화 속 동양 미인이 걸어 나온 것 같았다.
무공을 수련한 덕분에 몸매는 묻고 따지고 할 것도 없었다.
“오늘 야경은 당신 때문에 빛을 잃었습니다.”
“지금 이거 작업이죠?”
양소려가 볼을 살짝 붉히며 웃는다.
“순수한 칭찬입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도 닭살에 점점 면역력이 생겼다.
열기가 치솟아 볼이 붉어져가는 양소려를 고요한 시선으로 물끄러미 바라봤다.
파밧.
짧은 시선의 교차.
“감사해요.”
양소려가 가지런한 치아를 보이며 환하게 웃었다.
동그랗고 촉촉한 검은 눈동자는 나를 삼킬 듯 깊었다.
그녀의 잠재되어 있던 호기심이 깊은 눈동자 속에서 일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눈앞에서 난 기적을 선보였다.
황금으로 인연을 만들었고, 도신처럼 카지노를 휩쓸었으며 종국에는 상무위원과 대작까지 했다.
거기에 더해 장택민 주석까지 나에게 관심을 보인 터.
양소려의 심중은 지금 아주 복잡할 게 자명했다.
“얼굴에…… 뭐 묻었습니까?”
그녀의 의미심장한 시선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신기해서요.”
“뭐가 말입니까?”
“며칠 동안 있었던 일이 꿈처럼 믿기지가 않아요.”
양소려는 솔직한 여인이었다.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의 연속이었습니다.”
“누구도 믿지 못할 거예요. 아빠도 제 말을 듣고 더 이상 아무 말씀도 못 하셨어요.”
“제가 인복이 넘치는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그런 것 같아요.”
순순히 나의 말을 인정하는 양소려.
그때 한 남자가 다가왔다.
“주문하신 와인 나왔습니다.”
머리가 하얗게 센 세미 정장 차림의 와인 담당 소믈리에.
친절한 미소와 함께 주문해 둔 와인을 가져왔다.
7성급 호텔에서 추천하는 최상급 와인.
“감사합니다.”
“아름다우신 레이디와 멋진 신사분께 제 고향 포도주를 추천할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포르투갈이 고향이십니까?”
어투에서 포르투갈 악센트를 느꼈다.
“네. 바다 사나이들의 고향에서 왔습니다.”
“어머, 그 포도주 폰세카 아닌가요?”
“오! 폰세카를 아십니까?”
“네! 저도 딱 한 번 마셔봤어요. 세계 자연유산 지역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포도주라고 알고 있어요.”
“레이디의 포도주에 대한 박식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양소려도 제법 와인에 박식했다.
백주만 주구장창 마시는 중국인과 조금 달랐다.
“도루강 상류와 알토도루에서 재배된 와인입니다. 세계 최초로 원산지 관리법이 시행되어 지금까지 엄격하게 생산되고 있습니다.”
자기 고향 와인을 들고 신이 나서 설명하는 소믈리에의 표정은 무척 즐거워 보였다.
“그중에서 가파른 계단식 포도밭에서 생산된 도우루 밸리 포도주는 완벽한 포도주들 중 하나입니다. 아직도 화강암 통에서 발로 밟아 제조합니다. 특히, 폰세카 포트 생산 가문은 빈티지 포트 생산자로서 1927, 1948, 1977, 1994년에 모두 100점 만점을 획득했습니다.”
내가 아는 와인 상식과 일치하는 설명이었다.
“오늘 드실 포도주는 토우리가 나시오날 품종으로 식전 입맛을 돋우기 좋은 셰리 와인입니다. 1994년 생산된 빈티지로써 드라이하면서 유순하고 편안한 풍미가 입맛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녀석입니다.”
뽕.
포도주 병이 오픈됐다.
한 병에 3000달러 가격.
“향이 좋아요.”
20년이 넘게 발효된 포도주 향이 농축된 시간과 함께 주변으로 확 퍼졌다.
향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홍콩의 야경을 무색하게 만드시는 아름다운 레이디께 먼저 드리겠습니다.”
“오브리가다.”
포르투칼어로 감사하다고 말하는 양소려.
수많은 외국인들이 거주하는 홍콩의 시민답게 여러 나라의 언어에도 조예가 있었다.
쪼로로록.
“장미꽃과 와인 향기에 취하실 행운을 잡으신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소믈리에의 능수능란한 접대 멘트들에 비하면 나의 입에서 나온 말들은 버터 축에도 못 끼는 평범한 언변에 불과했다.
내 잔에도 와인이 채워졌다.
“세계 4대 진미 중 하나인 스페인 이베리코 흑돼지 베요타 등급 하몽으로 준비했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시리라 확신합니다.”
와인부터 시작해 모든 걸 추천에 맡겼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젊은 웨이터가 하몽이 담긴 접시를 내려놓았다.
제대로 커팅된 회 같은 하몽.
“감사합니다.”
모든 게 아주 완벽했다.
“별빛 같은 인생의 길을 가다 마주친 인연으로 오늘 하루가 행복하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짧게 고개 숙이며 소믈리에 웨이터가 쿨하게 물러났다.
7성급 호텔답게 와인 한 잔을 마시는 데도 뭔가 달랐다.
“인생의 길을 가다 마주친 소중한 인연을 기념하죠.”
양소려와 나는 잔을 들었다.
소믈리에가 남기고 간 말을 참조했다.
티잉.
잔과 잔이 부딪히며 맑은 소리를 냈다.
이 시간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인 양소려가 먼저 와인을 마셨다.
나도 가볍게 와인을 입에 물었다.
“!!!”
100점짜리는 역시 달랐다.
순수한 대지의 요정이 뿌려놓은 듯한 마법 같은 다양한 풍미.
“맛있어요.”
담백한 찬사가 터졌다.
살짝 미소 지으며 동의를 표했다.
“립. 이제 말해 봐요. 이렇게 귀한 대접이 공짜는 아닐 테고…….”
와인 빛깔처럼 붉은 입술을 열며 묻는 양소려.
고수답게 빈틈을 재빠르게 치고 들어왔다.
오늘 이 만남이 목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요?”
의아한 표정을 짓는 홍콩의 미녀 양소려.
“당신을……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