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장.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이놈은 도대체…….’
왕정은 ‘친황도’라는 말에 깜짝 놀랐다.
매년 8월이 되면 베이징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공산당 핵심 권력자들이 하북성 친황도 북대하에 모인다.
‘반휴양 반공무’ 정도의 성질을 띤 북해도 회의.
밖으로는 ‘베이다이허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혼란의 시절이었던 문화대혁명 시기 때를 빼고 1953년부터 꾸준히 모임은 이어져 왔다.
공산당 핵심 간부들인 정치국 위원부터 각 성과 중앙부처, 자치구의 당서기, 고위 간부들, 전직 원로들까지 날고 긴다는 이들이 다 모였다.
그야말로 꽌시의 결정판.
낮에는 가족들끼리 따로 시간을 보내며 휴양을 즐기지만 저녁에는 각 조직들 간에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전직 총리가 ‘기어갈 수만 있다면 북대하 회의는 꼭 간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중국 정치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합류 자격 조건이 몹시 까다로웠다.
꽌시로 불러주는 이가 없다면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모임에서 회의를 거쳐 결정된 사항은 공산당 권력자들의 추인을 받아 곧바로 실행이 됐다.
국가 주석을 비롯해 상무위원, 중앙위원 같은 고위직 인사를 결정하기도 했다.
주로 힘이 있는 자들의 발언이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흑막에서는 어떤 결정이 날지 누구도 몰랐다.
중앙 정치권에서 상해방을 밀어낸 것도 베이다이허 회의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왕정이 상해방을 대표해 7인 상무위원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치열한 베이다이허 야합 결과였다.
그렇게 위엄 있는 모임에 오늘 처음 본 자가 초청해 줄 것을 요청했다.
최소 각급 성과 직할시, 자치구의 당서기 정도는 되어야 출입이 가능한 자리.
왕정의 두 눈이 예리하게 찢어졌다.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성격의 요청이 아니었다.
‘주석께서 저자의 요구는 웬만하면 다 들어주라고 하셨지만…….’
일정상 전혀 예정에 없던 마카오 방문이었다.
오늘 저녁만 해도 중요한 약속이 잡혀 있었던 스케줄.
내색은 안 했지만 북경은 현재 매일 매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어떻게든 상대편 꼬투리를 잡아 중앙에서 쳐내려는 살벌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그런 상황에 이렇게 잠시 내실을 비운 왕정.
마음이 조급하고 산재해 있는 일들이 급했지만 장택민은 마카오에서 장립을 먼저 만나라고 했다.
이런 상황은 처음 있는 일로 당황스러웠다.
우선 장립이 홍콩에 자리 잡겠다는 말에 도움을 주기로 약조했다.
거기서 만족하지 못한 장립.
8월에 있을 베이다이허를 특정해 초청해 달라 억지를 부렸다.
지금까지 신분이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은 자를 초청한 역사는 없었다.
상해방의 초청으로 회의에 참석했다가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기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안 됩니까?”
마치 여름휴가쯤으로 생각하는 듯한 장립.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아나?”
“네.”
“자네 신분으로는 어림도 없어.”
왕정이 이성적으로 판단해 차갑게 말했다.
씨알도 안 먹히는 요구였다.
“될 겁니다.”
“뭐라고?”
쉽게 물러서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장립.
“주석님께 연락해 보십시오.”
‘이자는 뭘 믿고 이렇게 오만한 거야!’
상해방이 주력이었던 과거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태자당의 시대.
현재 상해방은 어둠 속에서 몸을 낮추고 다시 권력을 손에 쥘 기회를 노리는 처지다.
시진핑과 태자당이 실수를 저지르기만을 기다리면서.
“주석께서 안 된다고 하시면 깔끔하게 물러나겠습니다.”
장립이 재촉하듯 말했다.
“확인이 소원이라면…… 들어주지.”
왕정이 핸드폰을 들었다.
특수한 장치로 감청이 불가능한 기계식 핸드폰.
단축번호를 눌렀다.
뚜우우우우우.
짧게 울리는 신호음.
- 무슨 일인가.
연륜이 느껴졌으나, 여전히 기가 짱짱한 목소리가 울렸다.
“장립을 만났습니다.”
- 잘했네.
“손을 잡겠다고 했습니다.”
- 그것도 잘했어.
“그리고……. 올 여름 친황도에 초청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장립을 빤히 바라보며 왕정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했다.
- …….
잠깐 침묵이 흘렀다.
보나마다 절대 불가능한 일.
왕정은 이미 대답을 알고 느긋하게 다음 말을 기다렸다.
- 알겠다고 전해주게.
“네?”
예상과 다른 대답에 깜짝 놀란 왕정.
- 나머지 이야기는 만나서 하지.
“아, 알겠습니다.”
왕정은 너무 쉽게 친황도 초청 건을 허락한 장택민 주석의 태도에 크게 당황했다.
자신도 장립의 나이 때부터 꿈만 꿨던 친황도 방문.
왕정도 사십 중반이 되어서야 처음 친황도 초청을 받았다.
뚝.
통화는 간단하게 끝났다.
홍린과 양소려는 입을 다문 채 침묵했다.
장립이 배포 있게 배팅한 또 한 판의 도박이 성공했다는 걸 똑똑히 확인했다.
“자네…….”
왕정이 말을 하다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치 귀신에라도 홀린 듯한 지금 순간.
“자격은…… 만들겠습니다.”
“뭐라고?”
“제가 우연히 알게 된 투자자가 있습니다. 그가 아주 재밌는 아이템을 가지고 있더군요. 들어보면 깜짝 놀랄 겁니다.”
“그게 뭔데요?”
홍린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였다.
장택민 주석이 인정한 묘령의 남자가 꺼낸 흥미로운 이야기.
“요즘 인민들이 가장 원하는 한 가지. 오늘 만남을 기념해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
뜬금없이 인민들이 원하는 것까지 챙기는 장립.
웃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장립을 왕정은 말없이 바라봤다.
“상해방은 이 선물로 인해 인민들의 엄청난 지지를 받게 될 겁니다.”
장립은 그런 왕정의 두 눈을 직시하며 뜸을 들였다.
그리고.
“미세먼지! 그거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
“매튜. JL인베스트먼트가 뭐 하는 곳이야? 알아봤어?”
“대니얼 완전 피라미에요. 자본금이 500만 달러도 안 되는 신생 투자회사에요.”
홍콩에서는 미화 500만 달러는 돈도 아니었다.
“하하. 미쳤구나! 상담료 10만 달러 내고 망하는 거 아니야?”
“입금 되었으니…… 잠깐 동안이라도 우리 고객이 되겠죠.”
파이퍼 앤 맥켄스 로펌에서 팀으로 움직이는 직원 매튜와 팀장 대니얼은 고객을 기다리며 정보를 확인했다.
본토에서 가끔 대형 손님들이 찾아왔다.
대부분 부유층과 기업의 비자금 문제를 상담하기 위한 방문이었다.
조세피난처를 통해 자금을 회피하고자 하는 자들이 주로 로펌을 찾았다.
액수가 높아짐에 따라 비자금 처리는 정교해졌다.
어설프게 국제탐사보도연맹에 걸려드는 자들은 비용을 적게 지불한 케이스들이다.
돈만 넉넉히 주면 발행한 자들도 모르게 정교한 네트워크에 의해 자금을 숨길 수 있었다.
30조 달러 가까운 돈이 조세피난처에서 감쪽같이 숨을 수 있는 이유였다.
그런 어둠 속 자금을 관리하는 자들 중에 파이퍼 앤 맥켄스 로펌은 손에 꼽는 실력자들로 구성돼 있었다.
전 세계 44계 지점에 900명의 직원이 상주한다.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일처리가 매끄러웠다.
그중에서 금융 7팀은 오늘 중국인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담료 명목으로 10만 달러가 입금됐다.
그다지 큰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은 돈도 아니어서 7팀 직원들은 나름 긴장하며 대기했다.
철저하게 실적 위주라 이렇게 실적만 올려주고 빠지는 봉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띠이이.
책상 위에 놓인 사내 전화가 울렸다.
“무슨 일입니까.”
- 예약하신 고객이 오셨습니다.
“VIP접견실로 올려 보내주세요.”
- 알겠습니다.
스피커폰으로 짧은 대화가 오갔다.
“매튜, 오늘 일 끝나면 한 잔 어때?”
“좋습니다. 용돈도 벌었는데 화끈한 밤을 즐겨보죠. 하하.”
상담료 30%는 팀 몫.
아이비리그 출신에 골드만삭스에서 스카웃 돼 온 매튜가 사람 좋게 웃었다.
“오늘 밤은 홍콩 야경이 더 근사할 것 같아.”
그에 못지않은 스펙을 소유한 영국 남자 대니얼도 턱을 매만졌다.
센트럴 금융지구에 위치한 높은 빌딩에 자리한 사무실. 매튜와 대니얼은 통유리 너머로 풍경을 훑었다.
성공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경관과 넓고 쾌적한 사무실.
상쾌한 공기가 가득한 사무실 공간이 이들의 현재를 대변하고 있었다.
똑똑.
“고객님이 오셨습니다.”
“들어오세요.”
밖에서 비서가 문을 노크하자 대니얼은 서둘러 문 앞에 섰다.
10만 달러 상담료를 받고 뻣뻣하게 굴면 예의가 아니었다.
문이 열렸다.
“???”
한눈에 봐도 잘생긴 중국인 남자 한 명이 서 있다.
서양인의 눈에는 이십대 초반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젊은 남자.
외모만 봐서는 어려도 너무 어렸다.
옷차림 역시 캐주얼 차림.
상담 고객이 아니라 견학을 온 여행객 같았다.
그 순간 건네오는 남자의 나직한 음성에 대니얼과 매튜는 잠깐 당황했다.
“팀 매니저입니까?”
정확한 영국 본토 발음이다.
“어서 오십시오. 팀 매니저 대니얼 케빈입니다.”
“팀원 매튜 아서입니다.”
“반갑습니다. JL인베스트먼트의 대표 장입니다.”
거침없이 손을 내미는 어린 고객.
‘이거 뭐지?’
살짝 당황한 대니얼의 눈이 장에게 향했다.
행동과 말투만 봐서는 전혀 외모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월가에서 수십억 달러 이상의 자산을 굴리는 프로들이 보이는 태도가 보였다.
바짝 몸에 힘이 들어갔다.
거부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긴장 모드.
꽉.
악수한 손에서 전해지는 알력도 장난이 아니었다.
키도 대니얼과 거의 같았다.
바로 장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사자다.’
대니얼은 태도를 바로잡고 겸손 모드로 자세를 바꿨다.
뭔지 모르게 강렬한 위엄이 느껴지는 고객이었다.
대단한 수를 감추고 찾아온 자가 분명했다.
“멀리까지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앉으십시오.”
모던한 실내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깔끔한 검은 가죽 소파로 장을 안내했다.
진심으로 VIP를 대하는 태도로 전환했다.
“감사합니다.”
장은 자기 집처럼 편하게 소파에 앉았다.
“차 드시겠습니까?”
“홍차 부탁합니다.”
“매튜.”
“알겠습니다. 대니얼.”
단 두 명에 불과하지만 거래하는 고객만 해도 수십 명.
눈치 빠르게 매튜가 움직였다.
“어떤 상담을 원하시는지요? 원하는 부분이 있다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대니얼은 자리에 앉자마자 적극적으로 상담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어린 외모 때문에 놀랐지만 이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어떤 힘을 느꼈다.
“대니얼 팀 매니저님.”
“대니얼이라고 불러주십시오.”
“대니얼.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대니얼은 귀를 쫑긋 세우고 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는 장.
그의 눈은 대니얼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페이퍼 컴퍼니와 계좌 계설을 바로 원합니다.”
“흐음……. 가능합니다. 다만 운용 자금에 따라 비밀 보장 범위와 가격이 책정됩니다. 얼마쯤 운용하실 생각이십니까?”
대니얼은 상대의 진정한 가치 평가 체크에 들어갔다.
다른 건 크게 중요치 않았다.
오직 평가의 모든 기준은 자금의 규모.
씨익.
장이 좀 더 크게 웃었다.
“우선 10억 달러로 하죠.”
“네???”
대니얼은 귀를 의심케 하는 천문학적인 자금 규모에 크게 놀랐다.
자본금 500만 달러짜리 회사가 취급할 만한 자금 규모가 아니었다.
“부족하나요?”
“!!!”
장의 어조에서 그가 농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의 행동과 말에 대니얼은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느라 애를 먹었다.
“아닙니다. 고객님이 원하신다면 본사도 모르게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잔뜩 실렸다.
이 정도 자금 운용이라면 수수료만 해도 두둑할 터였다.
대니얼은 이 투자자를 자신의 고객으로 꼭 만들고 싶었다.
“적당히 소리가 나도 괜찮습니다.”
“네?”
“고양이 목에 달린 방울은…… 소리가 나야 제 맛이죠.”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