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장. 동맹
“감히 날 바보 취급해! 다들 죽었어! 나 리커창 아직 안 죽었다고!!!”
카지노에서 빈털터리가 되어 나온 리커창.
콰앙!
현관문을 거칠게 열었다.
돈을 벌어 마카오 한복판에 고급 별장을 얻었다.
홍콩과 같은 행정특구라 본토에 있을 때보다 행동이 자유로웠다.
특히 도박을 좋아하는 돈 많은 중국인들이 리커창처럼 따로 별장을 매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리커창도 그런 부류 중 하나.
“어떤 놈 얼나인지 모르지만 널 파멸시켜 버리겠어. 감히 날 모욕하다니!”
리커창은 VIP실에서 당한 모욕에 치를 떨었다.
과거 양꼬치를 팔 때 받았던 서러움이 되살아났다.
한때 장사가 잘되자 폭력배들이 귀신같이 꼬이며 돈을 갈취했다.
고위 공무원과 꽌시를 맺고서야 잦은 폭력배들의 괴롭힘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돈을 벌만큼 벌자 리커창도 바로 꽌시를 넓혔다.
불법 공장 증설은 물론 좋지 않은 식재료를 사용해도 단속 공무원들이 알아서 눈을 감아줬다.
식품의 질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자 소비자들은 자연스레 등을 돌렸지만 지금도 여전히 상당한 수입이 들어오고 있었다.
스윽.
스마트폰을 꺼내는 리커창.
티디딕.
단축 번호를 눌렀다.
마카오 경찰청에 근무하는 고위 경찰관의 번호였다.
얼마 전 술을 마시던 자리에서 의형제를 맺은 관계다.
- 나의 동생~ 리커창!
반가워하는 전화 상대.
“형님. 잘 지내셨죠.”
- 물론이지. 요즘은 사건도 거의 없어 평안하네.
“그럼 내일 이 동생이 맛있는 요리와 술을 대접하겠습니다.”
- 그럴까?
“기대하십시오.”
포르투갈과 협약을 맺어 공산주의 지도체계가 배제된 마카오지만 주민의 95%가 중국인이었다.
그만큼 꽌시는 이곳에서도 제대로 통했다.
- 음, 어려운 일이 있나 본데…… 말해봐. 이 형이 처리해 주지.
수십 년 동안 맺어온 관계가 아닌 이상 꽌시는 서로의 힘을 적절히 이용하고 빌려주는 관계다.
눈치 빠른 경찰 공무원은 바로 리커창의 가려운 부분을 짚어냈다.
“제가 방금 카지노에서 모욕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 카지노? 어디?
“베네시스 호텔 카지노입니다.”
- 저런. 누가 우리 동생을 건드렸을까. 상대 이름이 뭔데?
“장립이라는 자와…… 계집 하나입니다.”
- 장립?
“오늘 처음 카지노에 왔답니다. 낡은 수표를 사용하는 걸 봤습니다. 범죄 조직원과 연관되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확인되지 않은 일을 사실처럼 전하는 리커창.
- 그렇다면 조사를 해봐야겠군.
‘흐흐. 바로 이 맛이지.’
리커창은 경찰 공무원의 반응에 만족했다.
자신의 돈을 몽땅 강탈한 놈.
겨우 칩 하나를 던져주며 모욕을 안겼다.
“그리고 계집 한 명도 있습니다.”
- 계집?
“홍린이라고…… 어느 얼빠진 놈의 얼나이 같은데…….”
- 잠깐 누구? 홍린?
“네…… 아는 계. 여, 여잡니까?
- 혹시 VIP룸을 이용했나?
“맞습니다.”
- 헛!
수화기 너머에서 놀란 듯한 신음이 터졌다.
“형님 왜 그러…….”
- 자네 미쳤군!
“네?”
- 지금 이 순간부터 나와 자네는 모르는 사이야. 끊어!
툭.
상대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뭐야? 그 계집이…… 정말 그렇게 대단해?”
크리스티나의 경고가 있었지만 리커창은 가볍게 무시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 내에서 두려워할 만한 여인의 이름에 홍린이라는 계집은 없었다.
띵동.
그때 집 벨소리가 울렸다.
“이 시간에 뭐야!”
그렇지 않아도 화가 나 있던 리커창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경호원이 1층에 상주하고 있는 별장 아파트.
첩은 아직 호텔 카지노에서 놀고 있고 돌아올 시간도 아니었다.
“누구야!”
현관문을 거칠게 열며 리커창이 고함을 질렀다.
그 순간.
콰장창창.
누군가의 강한 발길질에 현관문이 강제로 열렸다.
콰당.
“커억.”
문을 열던 폼 그대로 거실로 튕겨져 들어간 리커창.
차자자작.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양복 차림을 한 일단의 무리들이 급습해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부류의 사람들.
“리커창. 맞나?”
선두에 선 남자가 물었다.
“너희들…… 뭐야…….”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채 겨우 몸을 일으키며 묻는 리커창.
“널 불량식품 제조, 마약 판매 및 투약 혐의로 체포한다.”
“당신들 누구냐고! 마카오 경찰이 아니잖아!”
리커창은 이웃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새끼…… 반항하기는.”
콰득.
“커억!”
쓰러져 있던 리커창에게 다가와 목을 구둣발로 밟는 남자.
신분증을 꺼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선명하게 찍혀 있는 ‘중국 공안’.
리커창의 안색이 새카맣게 변했다.
특별행정구역이라 마카오 경찰이 엄연히 존재했지만 공안이 개인의 집까지 들이닥쳤다면 이미 끝난 사태.
체포권과 구속권, 수사권을 가진 공포의 대명사 중국 공안.
“난…… 마약을…….”
중국에서 마약 유통 혐의자는 대부분 사형에 처해졌다.
“찾았습니다.”
그때 같이 들어온 공안 중 한 명이 신발장에서 보란 듯이 마약 한 봉지를 꺼내 보였다.
누가 봐도 모략.
“크윽……. 난…….”
목을 짓밟고 있는 공안의 구둣발을 붙잡고 바동거리면서도, 한마디라도 내뱉기 위해 애쓰는 리커창.
“넌 절대 건들지 말아야 할 분을 화나게 만들었어. 후훗.”
비릿하게 웃는 공안.
서늘한 공안의 눈을 보고 리커창은 얼어붙어 버렸다.
그제야 실감했다.
그 얼나이의 보호자가 얼마나 엄청난 사람이었는지.
***
또로로록.
잔에 술이 채워졌다.
독한 백주.
안주는 룸서비스로 배달됐다.
200평은 족히 넘는 팬트하우스 VVIP룸.
홍린이 우아한 자세로 술을 따랐다.
“만나서 반갑네.”
“제가 더 영광입니다.”
“건배.”
팅.
네 개의 잔과 잔이 부딪쳤다.
한국과 달리 얼굴을 돌리면 실례가 되는 중국의 술자리 예의.
왕정과 눈을 마주친 채로 술을 비웠다.
술은 향이 좋았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마오타이 주.
건배를 했으니 당연히 다들 단숨에 술잔을 비워냈다.
“하아.”
“음.”
홍린과 양소려가 작게 신음을 토했다.
여성들에게는 특히나 독하게 느껴지는 술.
“괜찮나?”
“좋습니다.”
“하하. 남자라면 당연히 그래야지.”
오늘 이 자리, 정말 요상했다.
결코 상임위원이 동석할 자리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 장태산도 아니고 장립의 신분이었다.
더구나 양광을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 불과하다.
그런데 도박 한판 하는 틈에 왕정이 나를 보겠다고 직접 걸음했다.
웬만한 국가 원수들도 만나기 어려운 인물.
머릿속이 몹시 복잡했다.
홍콩에 들어오기 전 여러 작업을 걸쳤다.
유럽 화교들 중에서 가족이 없어 생사가 불분명한 자를 찾았다.
거기서 찾은 장립이라는 실존 인물.
프랑스 재학 시절 인종차별을 당하고, 후에 미국으로 넘어가 예일 대학교에 진학했다.
머리가 명석한 자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
실종됐다.
은밀히 알아본 바에 의하면 갱들의 차에 치여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어디인지도 모를 땅에 묻혀 이제는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상태.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한 개인의 역사였고 비밀이었다.
미국 경찰들도 유럽에서 홀로 넘어 온 가족도 없는 중국인을 굳이 찾지 않았다.
그의 얼굴을 잠시 도용했다.
앞으로 종종 사용할 예정이다.
온시은의 슈퍼컴퓨터와 해킹 프로그램으로 장립을 이미 죽었으나 살아있는 자로 만들었다.
중국의 통치자들 중 한 명이 이렇게 만나고 싶어 할 이유가 없었다.
수십조 갑부도 아니고 금과 보석 몇 덩어리 판 게 전부다.
또 VIP 도박판에서 한판 쓰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는 말은 다 헛소리.
그런 말은 소설에서나 나오는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다.
의구심이 넘치는 시선으로 왕정과 이 자리를 천천히 살폈다.
“여러 가지가…… 궁금한가?”
상해방의 실질적인 대표 선수는 바보가 아니다.
1억 명에 가까운 평당원 신분을 거쳐 2000명의 전국 대표가 되었고 200명의 중앙위원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살벌한 투쟁과 무한한 경쟁을 거쳐 중앙 정치국 25명의 위원에 들어야 진정한 권력 세계에 발을 들였다 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 선택되는 7인의 상무위원.
눈앞의 왕정은 서슬 퍼런 중국 정치판에서 생존능력을 발휘해 오늘에 이르렀다.
주석이나 총리는 아니지만 상해시 서기는 결코 평범한 자리가 아니다.
장택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야만 오를 수 있는 영광스런 권력자의 자리.
“위원님과의 만남은 전혀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런 것치고는 당황하지도 않는군.”
“어린 시절부터 인종차별을 당해서 그런지 감각이 많이 둔해졌습니다.”
앞으로 이들은 나 장립을 주구장창 팔아먹게 될 것이다.
미리 판을 깔았다.
“저런. 그런 일이 있었군.”
“유럽에서 화교로 산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국력이 약해서 그런 거야. 만약 미국인이었다면 그런 수모를 당했을 리는 없겠지.”
“맞습니다.”
맞장구도 적당히 쳤다.
한국을 개호구로 보는 중국과 일본도 우리 대한민국을 만만하게 봐서 그런 거다.
“저도 의외였어요. 왕 위원님께서 직접 오실 줄 정말 상상도 못 했어요.”
양소려도 몰랐던 일인 듯했다.
“나도~ 우리 가가가 바쁜 정무를 보는 중에 이곳에 올 줄은 몰랐다니까.”
첩인 홍린도 마찬가지.
지금 북경은 매일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중이다.
시진핑이 권력형 부패를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반대편 정치인들과 관련 사업가들을 숙청 중에 있었다.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르는 중앙정치판.
“나도 의외야.”
왕정이 담담하게 고백했다.
“가가 뜻이 아니란 말이에요?”
홍린이 놀란 듯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왕정.
“그럼 설마……!”
홍린이 말을 하려다 말고 흠칫 놀라며 멈췄다.
“!!!”
양소려의 표정도 굳어졌다.
왕정을 움직일 수 있는 그 윗선 권력.
시진핑은 아니다.
그렇다면…….
“주석께서 자네를 만나보라고 했네.”
뭐, 뭐라고!! 주석이?
어안이 벙벙한 사태.
여기서 말하는 주석은 왕정이 모시고 있는 장택민 전 국가주석.
그가 나를 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거대한 세계가 몰아올 그 무엇.
- 권력을 빼앗긴 자손을 위해 중국의 조상신들이 손을 잡기를 원합니다.
……이건 또 무슨 참신한 개소리야!!!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