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7장. VVIP.
“뭐……야!!!”
“저게…… 뭡니까!”
“와아……. 카드를 안 보고도 풀 베팅이 가능하군요.”
“샤킹 흔적은?”
“없습니다.”
“미친놈!”
카지노 보안실은 경악에 빠졌다.
VIP실에 들어간 순간부터 장립의 행동은 모두 최신형 CCTV에 전부 촬영됐다.
사방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 샤킹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샤킹한 흔적이 없었다.
말 그대로 받은 카드도 살펴보지 않고 그대로 놓아둔 채 무식할 정도로 베팅했다.
집에서 포커를 가지고 놀아도 평생 한번 만져보기 어려운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시.
그것이 지켜보던 VIP룸에서 터졌다.
“…….”
룸은 침묵에 휩싸였다.
모든 멤버가 올인한 상태여서 더 이상 걸 수 있는 판돈도 없었다.
그저 자신들이 맞닥뜨린 현실이 믿기지 않는 표정들이다.
테이블 중앙에 쌓인 골드칩이 어마어마했다.
대충 계산해 봐도 5억 홍콩 달러.
보통 일반인은 평생 만져 볼 수도 없는 거액을 한판에 쓸어 담았다.
“이제 어떡합니까?”
보안실 직원이 에릭을 보며 물었다.
VIP실로 들여보내긴 했지만 카지노에 처음 온 자였다.
상부로부터 문책받기 딱 좋은 케이스다.
“젠장.”
에릭은 딱히 떠오르는 대안이 없어 쓴맛을 다셨다.
자신의 판단이 제대로 틀렸다.
전문 도박사들이 둘이나 합석해 있던 테이블.
적당히 따고 빠져 나왔어야 할 그들이 과하게 욕심을 부리면서 일이 커졌다.
도박사가 돌리는 자금은 모두 카지노 재산이었다.
‘담가?’
미화로 6000만 달러의 거금을 잃었다.
VIP룸에 합류해 있는 다른 손님들과 케이스가 달랐다.
특히 마카오 밤거리는 여행객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큰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났다.
대부분 삼합회를 비롯해 여러 조직들이 뒤섞여 밤거리를 활보하고 다녔다.
마카오는 돈과 환락이 넘쳤다.
어둠의 세력들에게는 파라다이스나 다름없는 곳이다.
돈이면 안 되는 게 거의 없는 마카오의 이면.
조용히 처리해 바다에 던져 버리면 이번 게임은 없었던 일처럼 조용히 끝날 것이다.
에릭은 몹시 갈등했다.
“허튼 생각 그만두는 게 좋을 걸요?”
그때 심장을 찌르는 싸늘한 여성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이……사님!”
에릭이 양소려를 발견하고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베네시스의 이사 양소려.
“에릭 팀장님. 장립은 내 손님입니다.”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에릭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정크방에서도 양소려는 저 남자와 함께 있지 않았다.
“계산해드려요. 정확히.”
지시는 명확했다.
“알겠습니다.”
“오늘 있었던 일은 이사회에 따로 보고할 필요 없어요.”
“넵!”
보고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듣자 에릭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문책을 당할 일이 없어졌다는 의미였다.
“선수들 정리하고, 다른 분들도 보내드리세요.”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그리고 VVIP룸 부탁해요.”
이사급 이상만 사용할 수 있는 카지노의 진짜 최고급 룸.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에릭은 개운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그 어떤 토도 달지 않았다.
나이는 어리지만 보이지 않는 힘의 중심인 베네시스의 이사 양소려.
그녀의 눈 밖에 나면 누구도 마카오에서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장립. 정말 당신이…… 궁금해지는군요.’
CCTV를 통해 장립의 모습을 바라보는 양소려.
함께 게임을 했던 VIP들은 쉽게 룸을 떠나지 못했다.
오늘 벌어진 게임의 결과는 무척 충격적인 상황.
모두가 정신붕괴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짝짝짝짝.
쥐 죽은 듯 조용한 침묵을 깨며 강하게 박수를 치는 홍린.
“브라보! 정말 통쾌한 승부였어요.”
함께 게임을 했던 남자들보다 통이 큰 홍린이었다.
그 순간에도 장립을 보며 고혹적이 미소를 날리는 건 잊지 않았다.
***
하아! 이거 중독이다.
마법은 사용하지 않았다.
스릴 넘치는 게임을 제대로 한번 즐겨보고 싶었다.
잘 차려진 큰 도박판.
회귀 전 인생에서 친구들과 가끔 재미삼아 포커를 친 경험이 있었다.
그때 배워두었던 실력만으로 현장에서 VIP들과 대결했다.
‘텍사스 홀덤’ 게임 룰 자체가 고도의 두뇌 게임이면서 또 심리 싸움의 정수였다.
악신의 보호를 받는 것으로 보이는 도박사들이 이끄는 자리인 만큼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운 좋게 바닥에 깔린 패가 아주 훌륭했다.
뭔지 모르지만 꽤 기분 좋은 느낌이 왔다.
마치 상대들의 패가 눈에 보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굳이 카드를 투시하지 않아도 그들의 표정에서 감출 수 없는 표정이 드러나 보였다.
사방에 CCTV가 깔려 있다는 것도 알았다.
정면승부!
꼭 한번 해보고 싶었던 돈과 돈으로 붙는 싸움의 승부.
판돈이 넉넉했기에 과감하게 베팅했다.
적당한 순간에는 빨리 죽어주기도 하며 승기를 잡은 이들을 놀렸다.
한마디로 가진 자의 여유라고나 할까.
그러다 시작된 멋진 한판 승부의 막장 스토리.
주저하지 않은 과감한 베팅에 도박의 여신까지 날 환희의 한복판으로 이끌었다.
- 중립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응? 중립?
갑자기 들린 처음 들어보는 말.
지금까지는 선과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가 전부였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 선과 어둠의 카르마 포인트로 전환 가능합니다.
-환전수수료는 처음 1회는 무료입니다.
뭔가 몹쓸 약 냄새가 났다.
쉬이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
- 중립신이 지불하는 포인트입니다.
중립신! 누구?
인간 세상에도 존재하는 중간인들.
그들처럼 신들 세상에도 그런 어중간한 중간신이 존재하는 모양이었다.
회귀 인생에 처음 등장하는 그들.
- The god of dice.
주사위의 신.
로마 황제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지만 분명 주사위 자체는 고대 이집트에서도 사용되었던 도박기구였다.
그가 나에게 포인트를 쐈다는 것인가?
나의 두둑한 배짱에 감동해서……?
- 당신의 무식하고 당당한 똥배짱에 어이가 없어 기부했습니다.
젠장.
내가 거지도 아니고!
- 기분 나쁘면 기부금을 철회할 수도 있습니다. 철회하시겠습니까?
NO!
철회?
누구 맘대로!
중금리로 포인트를 뜯어가고 있는 사악한 알림음.
나중에, 나중에 신이 된다면 제대로 낯짝 한번 보고 싶다.
“멋진 승부였습니다.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이런 짜릿한 판은 평생 다시 만나기 힘들 것 같군요.”
“죽고 싶지만…… 인정합니다.”
“거봐요. 립은 행운 그 자체라니까요. 호호호.”
도박꾼 브랜드만 빼고 멤버 모두 나에게 축하의 말을 했다.
박수까지 쳤던 홍린이 옆으로 다가왔다.
뜨거운 그녀의 눈빛.
“모두 감사드립니다. 오늘 승부 짜릿했습니다.”
내 몫이 된 쌓여 있는 칩들은 나에게 푼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스윽.
쌓여 있는 칩들 중 일부분을 떼어 브랜드 앞으로 밀어줬다.
도박 신에게 빚이 많은 듯 단단하게 묶여 있는 그에게서 죽음의 향기가 진하게 맡아졌다.
분위기에 휩쓸려 올인을 해 버린 대가는 적지 않을 것이다.
굳이 이런 푼돈으로 한 사람의 생명을 꺼뜨리고 싶지 않았다.
“이게…….”
브랜드가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날 뚫어져라 쳐다봤다.
자신이 앉은 자리에서 잃은 판돈과 거의 같은 액수였다.
“팁이라고 하면 자존심 상할까요?”
“…….”
“세상에…….”
“팁?”
지켜보던 자들의 입에서 신음이 터졌다.
팁이라고 하기에는 칩의 양이 많았다.
“할머니가 슬퍼하세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지으며 살아도 되지 않을까요?”
브랜드 뒤에 서 있는 백금발의 할머니. 장화를 신고 농사꾼을 복장을 한 채로 아련히 브랜드를 향해 미소 지었다.
게임이 끝난 직후 불현듯 나타나 브랜드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할……머니!”
심하게 동요하는 브랜드.
금세 눈가가 촉촉하게 젖었다.
그에게 아무도 모르는 아픈 사연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앞으로 풀어나가는 건 그의 몫.
누추한 모습의 할머니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에게 이런 식의 기회를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아 있는 칩들 중 골드칩 하나를 집어 들었다.
“처음 본 저를 응원해 준 당신에게 행운을 나눠 드립니다.”
“저에게 정말 행운을 주는 거예요?”
홍린이 흥분하며 만개한 복사꽃처럼 볼을 붉히더니 물었다.
“약속하지 않았나요?”
“그럼 직접 주세요. 여기에. 쏙!”
“어디에……!!!”
나는 곧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아찔한 향수 냄새가 훅 끼쳐왔다. 이 요염한 여인이 풍만한 가슴을 내 얼굴 쪽으로 훅 내밀었다.
깊게 파여 있는 홍린의 가슴골.
“우리 가가는 꼭 복돈은 여기에 넣어준단 말이에요.”
아니~ 그건 당신 가가가 그런 거고!
모두의 시선이 나와 홍린을 향해 쏠렸다.
누가 봐도 위험한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는 홍린.
혹 그녀와의 사이에 염문이라도 터지면 대형 사고가 날 게 확실했다.
“그 행운, 제가 넣어드리죠,”
그때 차가운 여인의 목소리가 분위기를 깨며 들렸다.
“어!”
“양…… 소저.”
양소려의 등장에 몇몇이 크게 놀랐다.
서로들 아는 눈치.
“쳇. 소려야, 언니 노는데 꼭 그렇게 분위기를 깨야 해?”
홍린도 그중 한 명.
“언니. 립은 제 손님이에요.”
“그랬어? 호호호. 어쩐지 좋은 향기가 나더라.”
홍린과 양소려는 무척 가까운 관계인 듯했다.
“장립. 다음에 보도록 하죠.”
“오늘 즐거운 승부였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모두들 급하게 인사를 남기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아무래도 양소려가 생각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존재인 것 같았다.
그 틈에도 브랜드는 눈알이 붉게 충혈된 채 떼어준 칩들을 챙겨 들고 사라졌다.
- 카르마 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돈보다 귀중한 포인트를 벌었다.
브랜드의 뒤를 따라 나가던 할머니가 나를 돌아보고 이도 없는 잇몸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살아 있는 인간들은 절대 모르는 선대 조상들의 공덕.
나를 VIP룸으로 이끌었던 크리스티나도 어느새 모습을 감췄다.
팁 좀 챙겨주려고 했는데 아쉽다.
“립. 정말 대단했어요.”
“봤습니까?”
“네.”
“어떻게…….”
“호호. 립. 여기 이 양소려가 이곳 호텔 이사에요.”
홍콩과 마카오에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양광.
그의 딸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립. 이제 가시죠.”
“어디를…… 말입니까?”
“진정한 VVIP룸으로 안내할게요.”
회귀의 전설 2부
VVIP(2).
“장립?”
“양소려와 베네시스에 들어간 남자의 이름입니다.”
“뭐하는 자인가?”
“유럽의 화교인데 미국 예일에서 공부했습니다. 현재 신분은 불확실합니다.”
“여권은?”
“예일대학 데이터에 들어가 확인했습니다. 여권도 확실합니다.”
“현재 신분도 불확실한데…… 왜 양광이 대우를 하는 거지? 예일대 출신이면…… 미국 측 신입 스파이인가? 그러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린데…….”
리장창은 제갈유량이 전하는 보고에 의문을 표했다.
양광의 손님은 계속해서 리장창의 신경을 쓰이게 했다.
양광을 만난 뒤 양소려와 함께 마카오로 넘어갔다.
잠시 휴전 상태지만 물밑에서는 아직도 치열하게 권력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상대의 예기치 못한 실책 하나가 발목을 잡고 있었다.
현재는 시진핑과 태자당에 유리하지만 상해방의 남은 저력은 거대했다.
그런 상황에서 딸을 낯선 남자와 함께 마카오로 보낸 양광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사진 있나?”
“입국 시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제갈유량이 확대한 사진 몇 장을 건넸다.
“처음 보는 놈이군.”
키가 크고 날렵해 보이는 체격을 가진 청년.
처음 보는 데도 호감이 갈 정도로 인상이 좋았다.
‘그 녀석이…… 생각나는군.’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강한 적이 되어 있는 장태산.
묘하게 닮은 듯 보였지만 그는 확실히 아니었다.
장태산이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홍콩에 발을 들일 리가 없었다.
숨은 무술 실력이 남달랐지만 현대식 무기를 소지한 공권력과 맞설 수는 없는 법.
한때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빠져나갔다.
하지만 지금의 홍콩은 중국의 영향력이 더 강해져 절대 호락호락 빠져나가지 못한다.
발을 내딛는 순간 바로 죽음인 것이다.
“베네시스 카지노에서 엄청나게 큰 판을 먹었다고 합니다.”
“큰 판? 얼마짜리?”
“미화로 6000만 달러랍니다.”
“뭐라고?”
“VIP들이 합석한 자리였답니다. 카지노 소속 프로들과 홍린까지 함께했다고 합니다.”
“음…….”
홍린의 이름을 듣자 리장창이 신음을 흘렸다.
눈엣가시 같은 여인으로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절대 권력자의 첩이었다.
홍콩과 마카오에서 홍린의 권세는 양광을 넘어서는 수준.
“그리고…… 그가 왔다고 합니다.”
“그?”
“홍린의 주인 말입니다.”
“뭣이라!”
리장창은 깜짝 놀랐다.
북경에 있어야 할 감시 대상 1순위 인물.
중국 정치를 책임지고 있는 절대자들 중의 한 명인 그가 마카오에 떴다.
“정보를 더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경호가 삼엄합니다.”
“그렇겠지.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상해방에서 몇 명 남지 않은 고위 공산당원.
그가 마카오에 떴다면…….
리장창이 눈치 채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하게 움직였다.
“장립을 만날 것 같습니다.”
“왜?”
“그걸 알 수가 없습니다. 양광이 주선한 것 같은데…….”
“도대체 그자가 뭐라고? 진짜 미국 스파이라도 된단 말인가.”
“여러 경로를 통해 확인하려고 했지만……. 현재 카지노 VVIP실로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은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감시 인원을 더 투입해. 그리고 출입하는 자들 모두 면면히 살펴보고.”
“명을 받듭니다.”
‘정치 일정만으로도 빠듯할 텐데…… 일부러 시간을 내어 왔단 말인가……. 도대체 장립, 그 자가 뭐라고.’
도통 이해할 수 없는 판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리장창은 속이 답답했다.
‘불길해. 뭔가 있어!’
잠재된 본능이 리장창에게 계속 경고했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장립이란 자의 등장.
그자의 움직임이 곧 큰일을 벌이고 말 것 같은 불길함으로 리장창을 괴롭혔다.
***
스르르르르르륵.
부드럽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
당황스럽게 단 한 층을 위한 전용 엘리베이터였다.
중간에 멈추지 않았다.
쭈욱 한 번에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다.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베네시스 호텔의 넓은 야외 정원.
여러 형태의 조명이 질서 정연하게 모양을 만들며 불빛을 밝혀졌다.
본능적인 욕망이 꿈틀거리는 때는 불야성이 화려한 밤이 더했다.
“저처럼…… 아름답지 않나요?”
내 시선을 따라 밖을 내다보며 옆에서 홍린이 물어왔다.
고의적으로 밀착한 것처럼 느껴지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
그녀만의 독특한 체취는 도발 그 자체였다.
“당신을 닮아…… 모란꽃 같습니다.”
“모란요? 부의 상징인 모란 좋아해요! 립은 여자의 본심을 잘 꿰뚫는 것 같아요. 호호호.”
홍린 특유의 웃음을 터트렸다.
목단이라고 불리는 모란은 부귀(富貴)를 상징하는 꽃말을 품고 있다.
하지만 향기가 없다.
보기에는 화려하나 달콤한 맛이 없어 꿀벌이 찾지 않는 꽃들 중 하나다.
나에게 있어 베네시스와 홍린은 그런 모란 같은 대상이었다.
오늘밤이 지나고 나면 다시 이곳을 찾게 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카지노에서의 경험은 딱 한 번이면 족했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겁 없이 모여드는 불나방들.
단순하게 놀이 정도로 생각하지 않고 인생을 담보로 전부를 걸어버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인간의 내면에 꿈틀대는 욕망을 자극해 덩치를 키우는 베네시스와 홍린은 같은 색을 가졌다.
그 사실을 스스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한 홍린.
반면 내 말뜻을 알아들은 듯 미세하게 입술을 씰룩거리는 양소려.
홍린을 비웃고 있었다.
띵.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스르르릇.
부드럽게 문이 열렸다.
그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화려한 입구 하나.
앞서 경험한 VIP룸은 눈앞의 화려함에 비하면 시장 바닥이 따로 없었다.
딱 봐도 격조가 달랐다.
베네시스 호텔이 추구하는 럭셔리 이탈리아.
무역이 활발해 황금이 넘쳐나던 중세시대.
당시 지중해의 제왕이나 진배없던 베네시아 상류층들의 생활공간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화려함이 기가 막혔다.
엔틱풍의 가구와 실제 황금으로 만들어진 장식품들.
깔끔한 유백색 대리석과 바로크풍의 건축 양식이 녹아든 공간은 평범한 사람들을 단번에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들어가요.”
양소려가 앞장서 안내했다.
“두 사람, 오늘 처음 만났다고 하지 않았나?”
“맞아요.”
“그런데 너무 파격적이다. 가가가 직접 왔다던데…… 립이 그렇게 대단한 분인가?”
가가?
홍린을 애첩으로 둔 남자가 왔다?
나도 의문이 든다.
오늘 홍콩을 방문했고 처음으로 도박 한 판을 했을 뿐이다.
양소려가 이렇게까지 극진하게 나오는 이유를 아직 몰랐다.
전혀 상식적이지 않은 만남의 연속.
VVIP룸으로 이동하자고 해 단순하게 새로운 도박판에 끼게 되는 줄로만 알았다.
“그분 뜻이에요.”
“응? 가가가?”
꼭 대한민국의 경상도 사투리 같은 가가, 가가.
스르륵.
이중으로 완벽하게 보완이 되어 있는 VVIP룸 문이 하나 더 열렸다.
진짜 신세계가 새로이 펼쳐졌다.
갑자기 베네시스 호텔을 그냥 사버릴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몇 푼 하지도 않을 텐데 이 정도로 아름답다니, 구미가 당겼다.
마카오에도 팰튼 호텔이 있긴 하지만 솔직히 욕심이 났다.
“소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죠?”
“이 호텔, 얼마나 합니까?”
“네???”
“립. 설마 호텔을 사려구요?”
호텔 가격을 묻자 양소려와 달리 홍린은 바로 상황을 알아챘다.
“마음에 듭니다.”
“호호호호호 호호호호호호호호호호.”
갑자기 정형적인 웃음을 터트리는 홍린.
아주 자지러지게 웃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노, 농담이시죠?”
양소려는 말까지 더듬거리며 되물었다.
“홍콩에 법인 하나 낼 생각입니다. 여러 사업을 구상 중인데 이 호텔이 눈에 차는군요. 앞으로 중국은 더 발전할 겁니다. 부자들이 추구하게 될 고급형 호텔에 이만한 수준의 호텔은 없을 것 같군요.”
중국 갑부들의 허세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졸부들이 넘쳐 나다보니 일단 고급지다고 하면 무조건 싹쓸이.
프랑스와 이탈리의 와이너리를 비롯해 스위스의 유명 시계 업체도 수십 개 구입해 놓은 상태다.
틈나는 대로 바가지 왕창 씌워 왕서방들에게 쫙쫙 팔아먹을 것이다.
물론 호텔도 마찬가지.
앞으로 중국인들의 부동산 탐욕은 욕망의 정점을 찍게 된다.
돈이 넘쳐나는 시절 하와이와 호주, 뉴욕 등의 땅과 건물들을 구입하던 와타나베 부인들은 비교 자체가 안 될 정도다.
“립. 나도 법인에 투자해도 돼요?”
의외로 홍린이 관심을 보이며 물어왔다.
농담이 아닌 것 같은 분위기다.
“오늘 처음 봤는데…… 괜찮겠습니까?”
“당연한 말씀. 양광 대인이 립을 마음에 들어 한다면 나도 좋아요. 누가 봐도 립은…… 최상품이니까.”
졸지에 평가 가능한 물건이 됐다.
외모는 바뀌었지만 특유의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돈 냄새를 귀신 같이 맡은 홍린.
“립. 이 호텔은 매매가 불가능해요.”
양소려가 진지하게 답했다.
“이유가…….”
“이 호텔 지분은 여러 정치 세력들에 의해 양분되어 있어요.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공유의 섬 같다고나 할까.”
이해하기 쉬운 홍린의 답변.
바로 이해가 됐다.
이런 맛 좋은 먹잇감을 공산당 세력들이 가만히 놔뒀을 리 없다.
상해방의 양소려가 이사라면 다른 태자당이나 공천단도 그에 상응한 지분을 갖고 있을 터.
“아쉽군요.”
“매물로 나와 있는 다른 호텔 있는데…… 그거라도 매입할래요?”
홍린이 작심하고 눈빛을 반짝였다.
나를 물주로 확실히 낙점한 듯한 눈빛.
“그래요?”
일단은 관심 있는 척 해줬다.
홍린이 앞으로의 일에 뭔가 큰일을 해줄 것 같았다.
“그 망한 언니 호텔을 팔 건 아니지?”
“무슨 소리야. 지배인이 무능해서 망한 거야! 립이라면 충분히 살릴 수 있을 거라구. 그렇죠?”
홍린, 이 사악한 모란꽃 같은 여우.
“물건을 보고 난 뒤 생각해 보겠습니다.”
“칫!! 소려!”
홍린이 나의 대답에 양소려를 째려봤다.
“언니. 립은 아빠와 제 손님이에요. 잊지 말아 주세요.”
“알았어. 두 사람 잘 해보라고.”
삐친 척하며 휙 돌아서는 홍린.
저벅저벅.
그때 거실 안쪽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보였다.
“누가 우리 린을 슬프게 하지?”
중후한 남자의 목소리가 듣기 좋았다.
“가가!!!”
‘가가’를 외치며 남자에게 달려가 안기는 홍린.
“하하. 린. 손님도 계시는데.”
“가가. 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제 오고…….”
홍린의 애교가 아주 끝내줬다.
그런 홍린을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남자.
어디서 많이 봤던 얼굴인데…….
양소려가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립. 인사드려요. 상하이시 서기시고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신 왕정님이세요.”
뭐라고! 상무위원이라고???
놀란 눈으로 남자를 천천히 살폈다.
중국을 통치하는 공산당 집단지도자들 중 한 명.
과거라면 제국을 다스리는 봉건 왕족 같은 권력자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에 무척 혼란스러웠다.
파바밧.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를 탐색하는 짧은 순간.
안경을 쓴 오십대 중반의 왕정 상무위원은 날 보며 웃음을 띠었다.
속을 철저하게 감춘 진짜 야심가.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장립이라고 합니다.”
우선 고개를 숙였다.
“만나서 반갑네. 왕정이네.”
뻣뻣하게 선 채 손을 내미는 왕정.
공손하게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진정한 중국의 VVIP와의 조우.
생각지도 못한 거대 호박이 내 수중으로 굴러 들어왔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