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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장. 참 교육. (817/1,284)

820장. 참 교육.

“어디라고?”

“경호팀 보고에 의하면 일산과 파주 중간에 위치한 작은 실내 낚시터라고 합니다.”

“왜? 오빠는 비린내 난다고 회도 싫어하는 사람인데.”

한밤중 퇴근 준비를 하려던 임아현은 비서의 보고에 발걸음을 멈췄다.

낚시터에 있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임준형은 외모처럼 매사 깔끔한 걸 좋아했다.

온갖 퀘퀘하고 비린 냄새로 가득한 실내 낚시터에 갔다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장태산이 그쪽으로 부른 것 같습니다.”

“……오빠가 그 장소를 수락했다고?”

“그런 것 같습니다.”

‘그 촌구석에서 뭘 하는 거야!’

임아현은 두 사람의 만남에 예민했다.

계속해서 전해지는 불길함을 떨치기 어려웠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가는지 알 수 없어 더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았다.

‘오빠까지 말려들면…….’

지금까지는 누구보다 자신을 많이 감싸줬던 오빠.

어린 시절에도 유난히 임아현을 많이 챙겨줬던 오빠였다.

패션 파트를 맡고 있지만 기대보다 많은 실적을 내지 못했다.

자신 있게 덤벼들긴 했지만 고객들의 니즈 파악이 쉽지 않았다.

일단 살고 있는 문화가 달랐다.

태생부터 상류층에 속해 그들만의 문화를 경험하고 살아온 임아현.

그런 그녀에게 일반 소비자를 상대로 한 제품 개발은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임아현의 눈에는 완벽했던 것도 시장에 내놓으면 참패를 면치 못했다.

시장이 좁다 보니 상류층들 대상으로 한 수익은 더 나지 않았다.

점점 자신감이 떨어져 가는 시점에 갑자기 동생 임윤아가 장태산을 믿고 그룹 경영에 뛰어들었다.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다른 말은 없어?”

“오광연 비서실장님이 직접 모시고 있습니다. 경호원들도 입이 무거운 자들입니다.”

미래의 오정 주인을 모시는 자리는 고르고 고른 이들로 구성됐다.

“불길한데…….”

깊은 생각에 빠진 임아현.

“일단 퇴근하십시오. 밤이 깊었습니다.”

“엄마 집으로 갈 거야.”

“모시겠습니다.”

“그곳에서 퇴근해.”

“알겠습니다.”

임아현은 수하에 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많이 부족했다.

작은 행동 하나까지도 모두가 자기 위주였다.

‘엄마라면 뭘 좀 아시겠지.’

아무리 미워도 부모자식 간에는 정이 있게 마련.

엄마를 살살 꾀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돼 가고 있는지 물어 볼 참이었다.

‘어젯밤 꿈자리가 뒤숭숭했는데…….’

자정을 조금 앞둔, 아직 하루의 끝자락이 남아 있었다.

붉은 용이 무서운 속도로 쫓아와 임아현의 목덜미를 물었던 지난밤 꿈이 자꾸 떠올랐다.

‘그냥 꿈이야.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불길한 생각을 애써 지우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임아현.

‘그건 그렇고 요즘 현민 씨는 왜 맨날 늦는 거야?’

임아현은 여러 가지 일 때문에 통 집안일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목적을 위해 결합했지만 그래도 한때는 다른 부부들처럼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남편.

요즘 들어 두 사람 사이에 눈에 띄게 냉기류가 흘렀다.

아이들 문제가 아니라면 몇 날 며칠 대화를 나눌 일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그가 문뜩 떠올랐다.

스마트폰을 몇 번이나 만지작거리다 다시 내려놨다.

그러고 보면 자신 또한 그렇게 떳떳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

가슴 한켠에 진한 후회가 비수처럼 심장을 찔러왔다.

***

“바, 반?”

치킨도 아니고 반반을 요구하는 장태산.

임준형이 어이가 없다는 시선으로 장태산을 빤히 바라봤다.

파운드리 사업 분야는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비메모리 반도체 핵심 사업.

대만이 선두주자고 미국이 뒤를 따랐다.

오정은 이제야 발을 떼기 시작한 마당에 그걸 반반 나눠먹자고 제안하는 장태산.

“‘무어의 법칙’ 사수해야죠.”

“???”

“2년마다 반도체 칩이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가 두 배나 늘어간다는 그 불문율을 지켜내는 게임도 재미있지 않습니까? 비록 칩은 작아지고 대신 용량이 커진다지만 한계를 돌파하는 맛이 기가 막힐 것 같은데……. 아닌가요?”

“내가 아니라 자네가 오정전자 대표하게.”

“사양하겠습니다.”

“반반 먹자며?”

“깔끔하게 기술과 자금만 담당하겠습니다.”

“그 말은 내가…… 하청업체 같아.”

“그게 본업이시죠.”

“끙…….”

입술을 비집고 나온 신음과 달리 임준형은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농담이 아닌 게 확실했다.

“오정에서 후공정 파트인 PLP 파트를 인수하기로 했다 들었습니다. 잘한 선택입니다.”

“그거 대외비인데…….”

“저 대주주입니다.”

“…….”

“초초격차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사업입니다. 메모리와 파운드리, 그리고 LED는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대주주 장태산의 무시할 수 없는 주문.

‘그래. 한번 해보자!’

욕심이 났다.

파운드리 사업까지 접수하면 오정은 명실상부 세계 반도체 시장의 진정한 갑이 될 수 있다.

물론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견제가 있을 것이다.

특히 애플을 비롯해 여러 팹리스 업체들의 저항은 더욱 만만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TSML에서 개발 중인 차세대 노광 장비는 먼저 주는 거야?”

임준형도 최근에야 알게 된 정보였다.

TSML에서 대만 TS 반도체에 접촉 중이라고 했다.

누가 봐도 오정과 경쟁을 붙이려는 수작.

하지만 장태산으로 인해 이 순간부터 그들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현찰 선착순입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대답하는 장태산.

“아는 사이에 선착순은…….”

“오정 특기 아닙니까?”

반도체 호황기 때마다 오정은 고객사에 현찰 박치기로 물건들을 팔아치웠다.

“한두 푼이 아니잖아. TSML 애들 돈 귀신들이야.”

“훌륭한 제 직원들이죠.”

“훌륭한 직원? 벌써?”

“돈 벌어다 주면 다 훌륭한 겁니다. 제가 피도 눈물도 없는 투자자라는 거 잊으시면 안 됩니다.”

“돈 많이 벌었잖아. 그 돈 다 어디다 써?”

“형님도 돈 많이 버셨지 않습니까. 그거 다 어디다 쓰십니까?”

“딸린 가족도 많고 아버지 병간호도 해야 하고…….”

장태산의 장단에 맞춰 엄살을 떠는 임준형.

“전 벌어서 포인트 구입합니다.”

“포인트? 그게 뭔데?”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급 관심을 보이는 임준형.

‘그 틈에 또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인 거야……. 앱 개발 쪽인가?’

애플 앱 스토어가 본격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하면서 엄청난 수익을 창출했다.

정보에 의하면 작년 한 해에만 300억 달러 매출이 발생했다.

말 그대로 애플은 앉아서 100억 달러를 순수익으로 번 셈이다.

현대판 봉이 김선달.

앞으로도 뮤직과 애플 TV 같은 구독형 서비스를 통해 사업 영역이 확장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배가 아팠다.

대항마인 안드레이드를 걷어찼던 그 순간의 결정은 지금도 자다가 이불 킥을 날릴 정도다.

아쉬움이 남아 있는 사업 영역 쪽의 얘기가 분명했다.

그 와중에 듣게 된 포인트 사업.

장태산의 엄청난 투자자금이 집행되는 신사업이 확실했다.

“궁금하시죠?”

“응.”

“그럼 먼저 신기술 기반의 테크 스타트업에 투자부터 하십시오.”

“스타트업 투자? 그것과 관련 있어.”

“네.”

“뭔데? 어디에 투자하면 되는 건데?”

‘장태산이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신생 기업을 밀고 있다는 소리다…….’

착각이 확신으로 바뀌기 시작한 임준형.

“알아내는 건 형님 몫이죠.”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한 장태산.

“나도 진작부터 관심은 있었지. 라이다 센서칩 업체나 클라우드 장비 개발 업체에 사회적 기업 투자를 준비 중이야.”

임준형이 어깨에 힘을 주며 답했다.

“그래요?”

“창업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기회를 줘야지. 그게 노블리스 오블리주 아니겠어.”

“오! 형님!”

장태산의 입에서 감탄이 터지자 임준형은 내심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대한민국이 파이가 작아서 그렇지 다들 열정과 실력이 좋아. 우리 오정 출신들 중에서도 출사표를 던지는 이들이 제법 있어. 그들을 통해 여러 소재 분야에 투자하면 나중에 믿을 만한 우군이 될 거야.”

“진심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럼! 나 막돼먹은 금수저 아냐.”

말과 달리 사실 임준형은 상상만 해오던 일들이었다.

장태산과 대화를 하다 현장에서 구체적인 계획들이 입 밖으로 나왔다.

이제는 빼박 실행만이 남았다.

“좋은 생각이십니다. 가진 자들이 더 많이 베풀어야 세상이 풍요로워지는 법입니다. 오정도 본격적으로 사회적 기업으로 재탄생할 시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래야 위기 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실드를 쳐줄 겁니다.”

“실드?”

“승계 작업 안 할 겁니까?”

“그게…… 해야지.”

“책임경영이 필수인 시대입니다. 올바른 의식을 소유한 오너들이 세상에 많지 않습니다. 세계적 유니콘 기업들도 경영권 방어에 철저합니다. 오정도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는 경영권 보장이 필수입니다. 단, 국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도록 이익의 사회 환원 작업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웬만하면 직원들도 정규직으로 채용하시고 말입니다.”

“음.”

임준형은 짧게 신음을 흘렸다.

라면과 소주만 놓고 나눈 장태산과의 폭 넓은 대화들.

임준형이 그려갈 미래 설계에 알차게 뼈와 살이 됐다.

“초기 투자 꺼리지 마시고 재단을 설립해 스타트업에 투자하십시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같은 4차 산업혁명의 주역들은 그곳에서 탄생할 겁니다. 그리고 오정은 그들을 배출한 사회적 기업으로 한껏 명성과 실익을 누리시면 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산업의 핵심은 공장입니다.”

핵심을 짚는 장태산의 진단.

“고마워. 진심으로.”

임준형은 장태산을 가슴으로부터 인정했다.

“제가 더 고맙습니다. 부족한 동생 말을 귀담아 들어주셔서 말입니다.”

“아니야. 아버지가 왜 장 회장을 두려워했는지 알 것 같아. 난…… 상대가 안 돼.”

“재계 황태자에게 그런 약한 모습 어울리지 않습니다. 힘내십시오. 그 어깨에 대한민국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그 말 때문에 더 무거운 거 알아?”

“그럼 소주 한 잔 더 하시죠. 이태백께서 술잔을 들면 모든 근심이 사라진다 했습니다.”

“좋지!”

빈 종이컵에 술이 다시 채워졌다.

그리고 단숨에 들이켜는 두 남자.

작은 실내 낚시터에서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무한한 계획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

“괜찮으십니까?”

자정 무렵까지 술자리는 계속 됐다.

소주를 종이컵에 가득 채워 연거푸 비우던 임준형.

실내 낚시터 밖으로 나오자 몸이 휘청거렸다.

장태산과 가볍게 내기를 했지만 패했다.

소주를 맹물처럼 마셔댔다.

결국 라면만 몇 번을 더 끓였다.

“괜찮아.”

임준형은 비서 오광연의 부축을 거절했다.

평소 마시지 않던 소주를 마신 뒤였지만 정신은 더 맑아지는 것 같았다.

장태산의 입에서 줄줄 흘러나오던 가까운 미래에 대한 예견과 신사업 방향성.

단 하나도 놓칠 만한 게 없었다.

어떤 경영컨설팅 업체보다 더 신뢰와 믿음이 갔다.

문제는.

‘포인트……. 그게 뭐란 말인가?’

장태산이 노골적으로 투자하고 있다고 밝힌 포인트 사업.

몇 번 우회적으로 떠보려 시도했지만 장태산은 웃기만 할 뿐 다른 정보는 흘리지 않았다.

그래서 임준형은 더 답답했다.

“오 비서.”

“네. 부회장님.”

“내일부터 쓸 만한 스타트업 업체들 선별해 봐.”

“네?”

“오정에 벤처기업 투자 명목으로 법인 하나 설립해. 사회 환원 차원의 기업 타이틀 걸고 광고도 좀 하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계획에 없던 임준형의 말에 오광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최근 들어 여론이 요즘 좋지 않았다.

임성철 회장 부재를 대신하고 있는 임준형 부회장에 대한 세간 평들이 잦았다.

승계 문제를 놓고 시민단체에서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럴 때 사회 환원 사업을 벌인다면 여러모로 유리했다.

“아현이는 어딨어?”

“지금 회장님 댁에 계십니다.”

오광연의 주임무 중 하나가 오너 일가족의 동태를 수시로 파악하는 것이었다.

“바로 가지.”

“네. 자택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니. 아버지 댁으로.”

“넵!”

철컥.

오광연이 뒷좌석 문을 열었다.

뭔가 결심한 듯 결연한 표정으로 차에 오르는 임준형.

장태산이 남아 있는 실내 낚시터를 잠깐 바라봤다.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마. 아현이…… 내가 참교육 제대로 시켜놓겠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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