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4장. 선과 악.(3)
“흐흐흐. 완전 대박! 최수혁 오늘도 한 건 하는구나.”
오정봉은 생각지 못한 월척에 흡족했다.
배우 최수혁은 대중들에게 알려진 이미지와 달리 사생활은 완전 깡패와 다를 바 없었다.
집안이 진짜 조폭이었다.
부산에 터를 잡고 있는 대형 조직 항구파 회장이 바로 최수혁의 사촌형이다.
집안 재력도 좋아 연예계 입문과 동시에 주연으로 컸다.
어느 정도 연기력도 받쳐주면서 대중들에게 제대로 먹혔다.
학창 시절 일진으로 일반 학생들을 괴롭혔다는 소문이 잠깐 돌았지만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역시 돈과 권력을 이용한 사건 무마였다.
최수혁에 대한 과거를 제보했던 사람은 장애인이 됐고 다른 이들의 입에는 재갈이 물렸다.
삽시간에 제보자에 대한 소문이 돌면서 다들 쉬쉬하며 입을 다물었다.
소속사 역시 조폭들이 운영하는 업체다 보니 일 처리를 하는 데 법보다 주먹이 앞섰다.
오정봉은 사건을 크게 만들고 싶은 욕심은 없었다.
넌지시 사진 몇 장 정도만 넘기면 적당한 선에서 용돈이 들어왔다.
최수혁이 그간 일으킨 사고가 한두 건이 아니었다.
폭력 사건과 여성 관련 문제는 그중에서도 단골 메뉴였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도 최수혁이 열일을 했다.
몰려다니는 질 나쁜 친구들과 함께 여배우 문효진과 그녀의 상대 남자를 괴롭혔다.
“저 자식들 집안이 빵빵한데 저놈도 고생깨나 하겠네.”
문효진과 장태산을 쳐다보며 걱정하는 여유까지 보이는 오정봉.
“너는?”
그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굵직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오정봉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기자 생활을 오래한 까닭에 상대 목소리만 들어도 대충 그쪽 성향을 알 수 있었다.
‘위험해…….’
안면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강하게 느껴지는 위협감.
“이름 오정봉. 소속은 찌라시 전문 뉴시뉴스. 주특기가 연예인 신변 및 사생활 털어 용돈 벌기……. 아파트 대출금 2억이 남았고 아내와 아들 둘을 뒀네.”
줄줄 새어나오는 오정봉에 대한 개인정보.
차마 뒤를 돌아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몸이 굳은 채 오정봉은 벌벌 떨었다.
개인정보까지 수집해 정체를 파악하고 이곳까지 찾아왔다는 건 이후 계획까지 다 짜져 있다는 의미.
“누구십니까…….”
“돌아보지 마. 우리 착한 사람 아냐.”
“…….”
“피차 나쁜 짓하는 처지인 것 같으니까 간단히 말할게.”
“네…….”
“메모리는 압수한다. 그리고 앞으로 네가 사진 찍은 분 일에 관여하지 마. 한 번만 더 이따위 짓거리하면……. 아파트는 경매에 넘어갈 거고 가족들 모두 길바닥으로 나앉게 될 거야. 그리고 넌 감옥이나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게 될 거야.”
감정이 철저히 배제된 남자의 목소리.
들리는 숨소리로 보아 두 사람이었다.
옥상에서 날아갈 수도, 달릴 수도 없다.
평소 운동을 죽어라 싫어하는 오정봉이 이 상황을 피할 방법은 전혀 없었다.
“왜 대답이 없어?”
“아, 알겠습니다.”
“눈감고 고개 숙여. 만약 눈 뜨고 우리 보면…… 그다음은 짐작 되지?”
“…….”
오정봉은 질끈 눈을 감았다.
‘도대체 누굴 말하는 거야! 최수혁? ……아니면 설마 장태산?’
딸깍.
머릿속에 의혹이 꼬리를 무는 사이 카메라 메모리를 제거하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잔머리 굴리지 마라. 우리 보스는 네 심부름 따위에 놀아날 분이 아냐.”
툭툭.
오정봉의 어깨를 가볍게 치는 묵직한 손.
뚜벅뚜벅.
두 사람의 발걸음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으으으.”
공포에 잔뜩 질려 신음을 하며 겨우 실눈을 뜨는 오정봉.
“시X! 오늘 일진 개 같네!”
욕을 시원하게 퍼부으며 오정봉은 황급히 카메라를 챙겨 튀었다.
혹시 몰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지금 포차에서 벌어지는 사건 따위는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
“콜?”
최수혁은 어이가 없었다.
이 정도 겁을 줬으면 알아서 기거나 잔뜩 쫄아야 맞았다.
예상을 벗어난 놈의 태도는 당당했다.
그렇다고 당장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손을 쓸 수는 없었다.
분명 친구들이 협박했지만 누가 봐도 자신과도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보는 눈이 너무 많다.
강남 한복판에서 아무도 모르게 끌고 가 손봐 줄 장소는 거의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한 놈의 여유 넘치는 눈빛.
“왜 쫄려?”
도리어 놈이 비웃었다.
또로록.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빈 자신의 잔에 소주를 채웠다.
“뭐야? 이 새끼 또라이야?”
“크크. 이거 물건이네.”
친구들이 장태산의 하는 짓을 보며 어이없어 웃음을 터트렸다.
“수혁 선배님, 그만 돌아가 주세요.”
문효진이 얼굴 표정이 잔뜩 굳은 채 제법 강단 있게 나왔다.
좀 전과 달리 최수혁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했다.
앞으로도 좋은 관계가 되기는 아주 글렀다는 걸 최수혁은 직감했다.
‘좌우지간 공부 잘하는 것들은 피곤하다니까.’
최수혁은 마지막 남겨놓았던 가면을 벗었다.
“왜 전처럼 너희 대표에게 고자질이라도 하게?”
“네!”
“해봐.”
“???”
“문효진 너 헛똑똑이야. 지금 네 소속사 문 닫기 일보 직전이야. 배 대표 도박장에서 꽁지 빌려 써서 장기 팔게 생겼어.”
최수혁이 비릿한 표정으로 소속사 사정을 전했다.
“!!!”
문효진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도 그 소문이 돌긴 했었다.
대표가 공금을 끌어다 뭔가 일을 만드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안 믿기지? 빚이 사방에 깔렸다. 그리고 채권자 중에는 우리 소속사도 껴있어. 너 계약서 봤더니 10년짜리더라. 위약금은 10억. 게다가 다른 곳으로 팔려가도 찍소리 못 하게 아주 철저하게 족쇄도 채워져 있고 말이야.”
“선배가 그걸 어떻게…….”
“몰랐어? 그 소속사 우리 사촌 거야. 당연히 내 지분도 있고.”
‘문효진. 넌 이제 끝났어!’
최수혁은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이제는 되는 대로 막나갈 때.
하얗게 질린 문효진의 얼굴을 보며 최수혁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협박 수준하고는 쯧.”
그때 최수혁의 기분을 깨뜨리는 비웃음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봐라! 니 뭐꼬? 니가 문효진 책임 질 수 있나!”
최수혁이 의자를 넘어뜨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사투리가 터졌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싸움 난 거야?”
“저쪽! 최수혁 하고 문효진…… 설마 삼각관계야?”
조용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수군거렸다.
누가 봐도 애정 문제로 싸움이 벌어진 젊은 청춘남녀.
이미 뚜껑이 열린 최수혁은 이런저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포차도 잘 아는 선배 가게였다.
그리고 알아서 보호막이 돼 주는 조폭들.
잘나가는 영업장 상당수가 집안에서 관리하는 조직과 연관돼 있었다.
과거처럼 대놓고 관리비를 뜯어내지는 못했지만 틈틈이 알아서 가져다 바쳤다.
한마디로 두려울 게 없는 최수혁.
“말투를 보아하니 부산 사투리인데……. 아는 형들 중에 항구파라도 있어?”
“!!!”
최수혁은 정말 깜짝 놀랐다.
말투 몇 마디 가지고 항구파까지 언급하는 문효진의 남자.
“너…… 너 뭐야!”
“이름 장태산. 한국대 법학과 출신 변호사. 됐어?”
‘변호사? 저렇게 어린놈이?’
최수혁은 장태산의 말이 쉽게 믿기지 않았다.
스윽.
그 사실을 알기라도 한 듯 장태산이 명함을 꺼냈다.
금박 무늬가 박힌 변호사 명함.
진짜 변호사였다.
“아는 선배와 동기들이 검산데…… 불러줘?”
“…….”
농담이 아닌 협박.
“최수혁 쫄지 마. 검사는 나도 알고 있어.”
“장태산?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변호사 새끼가 변호사면 다 같은 변호사인 줄 아나. 진짜 세상 무서운 줄 모르네.”
“뭐가 있으니까 개기지. 너 우리들 누군지 모르지?”
강남에 사는 졸부들 자식들이 기고만장 으스댔다.
대한민국에서는 돈이면 모든 게 해결된다는 걸 잘 아는 그들.
“변호사가 뭐 어쨌다고?”
최수혁은 아직 기세등등했다.
“새끼들 유치하기는……. 그래 오늘 이 형이 너희들 장단에 맞춰 좀 놀아주마.”
장태산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효진 후배님, 소속사가 어디죠?”
“선배님 제가 알아서…….”
“오늘 술값 대신으로 후배님은 제가 지켜드리죠.”
장태산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웃었다.
문효진은 장태산의 그 태도와 말, 그리고 미소에 안심이 됐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작성한 노예 계약서.
계약 당시 성년이 되었다는 기쁨에 그만 부모님 몰래 도장을 찍어 이 사달을 만들고 말았다.
“LKB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에요.”
티디딕.
장태산이 스마트폰을 들고 번호를 찍었다.
라기차 라기차~♬.
요즘 핫하게 잘나가는 M.T.S소속사 걸그룹의 노래가 벨소리로 흘러나왔다.
FOB 뒤를 이어 대한민국 걸그룹을 평정했다.
- 충성. 하느님보다 바쁘신 장 이사님이 어인 일이십니까.
“황연태 대표님. 급하게 진행할 일이 있습니다.”
- 하명만 하십시오.
‘황연태라면……. M.T.S 대표!’
최수혁은 황연태라는 이름을 듣자마자 충격을 받았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로 불리는 엔터테인먼트 업체.
최수혁이 속한 소속사와 레벨이 달랐다.
탑 클라스 연기자와 가수까지 총 망라하고 잘나가는 소속사 연예인들.
M.T.S 눈 밖에 나면 타 소속사 힘없는 연예인들은 이 바닥을 떠나야 한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는 판이었다.
대단한 배경을 가진 투자자가 그들 뒤에 있다는 것 정도는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M.T.S에서 들어가는 광고나 드라마 규모다 대단했다.
“LKB엔터테인먼트 아시죠?”
- 물론입니다. 배중수라는 후배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소문이 안 좋던데…… 사실입니까?”
- 조폭들이 짜놓은 도박판에 엮인 것 같습니다.
“인수하세요.”
- 알겠습니다.
황연태는 단 한마디도 토를 달지 않았다.
장태산 회장의 말은 무조건 따르리라 진작부터 마음먹은 사람이었다.
“조폭들이 시끄럽게 굴면 삼우로펌 조 이사님께 부탁하십시오. 처리해 줄 겁니다.”
- 충성! 빠르게 처리하고 보고하겠습니다.
스피커폰으로 들려오는 황연태 대표의 충성 외침.
“…….”
최수혁과 그의 친구들 얼굴이 똥 씹은 것처럼 변했다.
문효진의 남자가 자신들이 상대할 만한 레벨이 아니라는 걸 직접 확인한 셈이었다.
“최수혁 씨 소속사는 어딥니까?”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묻는 장태산.
“스타트루 엔터테인먼트에요.”
장태산의 당당하고 든든한 태도에 문효진이 얼굴을 발그레 붉히며 답했다.
“처음 듣는 곳이군요.”
가볍게 무시하는 듯 입을 뗀 장태산.
“너…… 너! 내가…….”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자 최수혁이 이를 악물고 삿대질을 해왔다.
“장 변~ 여기서 뭐 해?”
그때 뒤에서 출입문 쪽에서 여성의 목소리.
깔끔한 검정 바지 정장 차림을 하고 다가오는 미모의 여인.
“구 검사님.”
장태산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
검사라는 말에 최수혁과 일행은 다시 몸이 굳었다.
죄지은 자들 심리상 현실에서 검사와 마주하게 되면 무조건 쫄리는 법.
“효진 후배님 인사해. 인사해. 중앙지검 형사부 부부장 구서현 검사님.”
“처음 뵙겠습니다. 문효진입니다.”
“어머~ 반가워요. 이번 드라마 아주 잘 봤어요.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예뻐요.”
구서현이 반색하며 문효진과 인사를 나눴다.
“감사합니다.”
“검사님은 어쩐 일이십니까?”
“형사부 동료 검사들하고 회식 있어서 왔어. 그런데 무슨 일 있어?”
구서현이 분위기를 훑으며 물었다.
최수혁과 그의 친구들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구서현의 뒤를 이어 멀찍이 따라 들어오는 네 명의 남녀들.
모두 다 현직 중앙지검 검사들이었다.
당장 전화 한 통으로 최수혁과 그의 친구들을 입장 곤란하게 만들 수 있는 신분.
조폭 사촌과 사고치고 다니는 졸부 자제들에게는 누구보다 껄끄러운 존재들.
“최수혁 씨네.”
구서현이 최수혁을 알아보고 아는 체했다.
“안녕하십니까. 배우 최수혁입니다.”
잔뜩 경직된 최수혁이 공손하게 손을 내밀었다.
꼿꼿하게 선 채 악수를 받지 않는 구서현.
“사촌형, 최철혁 잘 있죠?”
“!!!”
항구파 보스의 이름을 언급하는 구서현.
“조만간 항구파 정리하러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통영에서 받았던 선물……. 이자 쳐서 화끈하게 돌려주러 간다고 말이에요.”
미모의 여성이 던지는 살벌한 경고였다.
눈에 띄게 일그러지는 최수혁의 얼굴.
‘X발! 오늘 일진 더럽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