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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1장. 조우(遭遇). (798/1,284)

801장. 조우(遭遇).

“좌우지간 얼굴 잘난 것들은 불꽃도 빨리 튄다니까. 흐흐흐.”

손주혁과 공수진 사이에 오작교를 놓아주고 돌아서는 양 계장.

방금 전 구내식당에서 봤던 두 사람 사이의 불꽃 튀는 장면을 떠올렸다.

서로 아닌 척 뜨겁게 눈빛을 교환하던 손주혁과 공수진.

“공수진…… 고것이 참 삼삼했는데…….”

양 계장은 못내 입맛을 다셨다.

검사 신분이 아니었다면 한번 작업을 걸어볼 만도 했다.

하지만 현실이 허락하지 않아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그만 뒀다.

중앙지검 고위 검사들이 얼굴 보고 뽑아 올린 공수진이었다.

괜히 섣불리 작업했다가 지방으로 좌천될 수도 있었다.

대개 검사들만 지방으로 밀려나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았다.

일반 검찰 공무원들도 비리나 특정 윗선 눈 밖에 나면 여지없이 지방으로 쫓겨났다.

다른 행정직군과 다른 검찰만의 독특한 인사 방식이 적용됐다.

“제2 자유로 쪽에 묻어둔 땅 값이 오르고……. 곧 빌딩도 올리겠어. 크크.”

요즘 양 계장은 마냥 행복했다.

지금까지 받은 용돈들은 모두 착실하게 저축해 왔다.

이 바닥에서 알게 된 고급 정보를 통해 몇 번의 부동산 뻥튀기 작전을 펼쳤다.

처갓집과 믿을 만한 이들을 동원해 티 나지 않게 작업했다.

사회적으로 보면 일개 6급 공무원에 불과한 양 계장.

그러나 쟁여 놓은 재산만 해도 수십억이 넘었다.

물론 탈이 날 염려는 없었다.

모두 다 합법을 가장해 철저하게 관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기저기 기름칠을 게을리 하지 않아 걸린다 해도 무마될 게 확실했다.

직급은 계장에 불과하지만 일반 검사급 정도는 양 계장에게 짬이 안 될 정도다.

곧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일이 제법 밀려 있는 상황.

장태산의 어머니가 운영하는 대국재단 관련 금융 서류가 한 보따리다.

지원을 요청해 놓은 상황이라 수사부 규모가 커질 것이다.

그 전에 핵심을 추리는 게 수사관의 노하우다.

이 기회에 손주혁에게 신임을 받기 위해서라도 그동안 쌓아왔던 실력을 개방할 때였다.

“어!”

검사실 문을 열자 예상치 못한 손님이 와 있었다.

점심시간이 남아 있어 다른 직원들은 아직 복귀 전.

낯익은 뒷모습의 남자가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부장님…….”

조세범죄수사부를 담당하는 부장 오경석.

기수에 비해 승진이 빠른 인물이었다.

일처리 능력을 인정받아 핵심부서의 부장 자리를 꿰찼다.

그런 오경석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압수수색한 자료들을 살피고 있다.

양 계장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인기척에도 바로 반응하지 않는 오경석.

“국세청과 문화부 표창장까지 받은 재단 법인을 압수수색 한 것 치고는 증거가 빈약하지 않아?”

눈도 마주치지 않고 서류를 살피며 툭 던지는 물음.

“……아직 분석 중입니다. 곧 증거가 특정될 겁니다.”

양 계장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곧 특정이라……. 투서도 없고 고발도 없는데 내사만으로 이렇게 짱짱한 재단을 털어? 크크크. 미치겠네. 거기 이사님들 중에 전직 총장님과 대법관님이 계시는 건 알기나 해?”

“네?”

“그것도 모르고 털었어?”

“그게…….”

사실 양 계장은 이번 건에 대해 자세한 내막을 모르고 있었다.

모든 건 손주혁이 기획하고 추진했다.

리앤장 로펌에 근무 중인 전직 검사들이 작성한 압수수색영장.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파보려고 했던 참이다.

“양동형. 너 이번에 잘 못 잡았어.”

“???”

“네가 잡은 손주혁이 하늘 꼭대기로 가는 동아줄이라고 생각했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이죽거리듯 웃으며 묻는 오경석 부장.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양 계장은 불길함과 불쾌감에 식은땀이 났다.

정상적인 순서는 다 무시하고 손주혁이 지검장에게 직보해서 허락을 맡았다.

보통 대형 사건은 직속 사수인 부부장과 부장 검사와의 회의를 거친 후에 실행함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손주혁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듯 다짜고짜 영장부터 치고 공격했다.

법적으로 절차상 문제는 없었지만 조직 내에서는 충분히 찍힐 만한 행보였다.

특히 눈앞의 오경석 부장의 입장에서는 더했다.

그가 느꼈을 치욕은 상상 이상일 터.

벌써 다른 부서 검사들 사이에서 오경석의 무능을 놓고 말이 나왔다.

밑에 있는 검사 하나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는 부장검사.

이렇게 된 이상 후에 사표를 내고 개업을 한다 해도 후배 검사들 앞에서 말발이 먹히지 않게 된다.

“완전 썩은 줄이야 임마. 크크크크.”

알 수 없는 희열이 번뜩이는 오경석의 눈동자.

“부장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양 계장은 애써 당황스러움을 감추고 용기를 내어 물었다.

휘익.

그 순간 오 부장이 옆에 놓여 있던 서류철 하나를 던졌다.

툭.

본능적으로 날아오는 서류철을 낚아챈 양 계장.

“이게 무슨……. 헛!”

서류철에 박힌 제목을 보고 양 계장은 헛바람을 삼켰다.

‘발령서!’

분명 검찰 정규 인사는 끝났다.

총장급이 바뀌면서 연쇄 이동하지 않는 한 1년 동안은 특별히 움직일 일이 없었다.

그런데 손에 잡힌 서류철에는 분명 ‘발령서’라는 타이틀이 박혀 있었다.

촤락.

급하게 파일을 열어 내용을 살피는 양 계장.

“조세범죄수사부 손주혁 검사…… 통영지청 발령……. 같은 부서 6급 양동형 영월지청 발령!!!”

더듬거리며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양 계장의 얼굴이 새카맣게 변했다.

인사 고유권자인 법무부 장관과 총장의 도장이 또렷하게 찍혀 있었다.

“어때! 정신 좀 들어?”

“부장님…… 이게 뭡니까!”

양 계장은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오경석에게 자초지정을 물었다.

“이게 뭐냐고? 보면 몰라? 너희 두 마리 개새끼 싹 꺼지라는 소리잖아!”

눌러놓았던 분노를 폭발시키는 오경석 부장.

“부장님…….”

“닥쳐 새끼야! 내가 부장인 걸 알기는 알아?”

“…….”

양 계장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내심 찝찝함을 떨칠 수 없었지만 손주혁을 믿었다.

그러는 사이 상황이 꼬일 대로 꼬여 버렸다.

영월과 통영지청 발령은 앞으로 중앙 복귀는 꿈도 꾸지 말라는 의미.

끼릭.

“지금 뭡니까?”

공수진에게 제대로 한 대 얻어맞고 혼미한 정신으로 검사실로 돌아온 손주혁.

자신의 사무실에 버젓이 앉아 호통을 치는 오경석 부장을 향해 따짓듯 물었다.

“지금 뭡니까? 하아. 이 새끼. 지금 부장한테 말하는 본새 하고는?”

오경석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주혁에게 다가섰다.

“부장님. 요청한 지원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리고 발령은 무슨 소립니까?”

손주혁에게 부장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뚜벅뚜벅.

“후후훗.”

오 부장은 비릿한 웃음을 띤 채 손주혁에게 더 가까이 다가섰다.

“지원?”

손주혁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묻는 오경석.

“네. 지원…….”

쫘아아아악.

‘지원’이라는 말이 끝나는 순간 오경석의 두툼한 손바닥이 손주혁의 뺨을 후려쳤다.

“엿이나 처먹어. 거지같은 새끼.”

퍼억! 퍽!

뺨을 얻어맞고 당황한 손주혁의 배를 또 한 번 가격하는 묵직한 주먹.

“커…… 억! 컥!”

손주혁은 명치를 제대로 맞은 듯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허리를 굽혔다.

퍼어억.

그런 손주혁을 또 다시 발로 걷어차는 오경석 부장.

콰다다당.

급기야 손주혁이 바닥으로 고꾸라지며 쓰러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육체적 고통을 맛보게 된 손주혁.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수반한 무서운 주먹질과 발길질.

전혀 대응를 하지 못했다.

“일어나 겁대가리를 상실한 새끼야! 이거 맞고 안 죽어 XX로마!”

오경석의 입에서 거친 욕설이 터졌다.

과거 자신도 장장한 선배들에게 이렇게 얻어맞으며 평검사 시절을 보냈다.

검사는 일반 시민들이 보기에는 폼깨나 나는 직업이지만, 막상 현장에서는 해병대보다 더 센 위계질서로 숨이 막힐 때가 많았다.

게다가 불법과 결탁하면 구린 냄새까지 제대로 풍기게 되는 똥군기.

정의보다 조직의 보호와 안녕이 최우선이었다.

검사동일체 원칙에 따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일사분란하게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런 집단이 손주혁 한 사람으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

참고 있던 오경석 부장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법무부장관과 총창을 비롯해 윗선의 암묵적 묵인이 있어 가능했다.

중앙에서 통영지청으로의 발령은 유배와 같은 처분.

‘이게 도대체 무슨…….’

연속 불벼락을 맞게 된 손주혁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갑자기 돌풍처럼 돌변해 버린 자신을 둘러싼 기류 변화.

‘설마!’

그 순간 뒤통수를 때리고 지나가는 이름 하나.

‘장태산…….’

대적할 가치도 없다고 판단했던 간단한 먹잇감.

오판으로 인해 도리어 손주혁은 자신이 사냥을 당했음을 깨달았다.

일개 부장 검사가 이렇게까지 나올 때는 할아버지 손국중 회장도 두렵지 않다는 의미.

“당장 방 빼. 개새끼!”

퍼억!

고개를 처박고 있는 손주혁의 머리통에 던져진 인사 발령서.

상황 파악을 짐작한 손주혁의 몸뚱이가 마비된 듯 빳빳하게 굳어 그대로 얼어붙었다.

***

- 죄송합니다. 회장님. 청와대까지 나설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요……. 그랬군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반종현의 힘 빠진 목소리.

손국중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만 연신 끄덕였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를 만큼 수가 틀어졌다.

조국일보를 향한 그룹들과 청와대의 직접적 압력.

이 사태는 분명 손국중과 일송회를 무시하는 처사가 명확했다.

- 회장님. 조심하십시오. 장태산……. 생각보다 더 무서운 놈입니다.

선빵을 맞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 반종현은 장태산에 대한 두려움을 전했다.

‘지 애비 반도 못 따라가는구나.’

손국중은 패기 없는 반종현의 목소리에 옛 동지를 떠올렸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며 끝까지 살아남아 대한민국에서 명예와 부를 일궜던 동지들.

고인이 된 반영조와 전일권이 문득 보고 싶었다.

셋이 뭉치면 천하에 두려울 게 아무것도 없었다.

독재자도 고개를 숙이고 새해 인사를 왔을 정도였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세상이 많이 변했다.

그들의 유약한 아들들이 대를 이어 일송회 장로직을 맡았다.

생사의 기로에 서보기는커녕 넘치는 풍요 속에서 자란 그들.

결코 손국중 눈에 찰 리가 없었다.

아들 손대균도 마찬가지.

오늘따라 손국중은 홀로 사무치는 외로움을 맛봤다.

“알겠어요. 내가 다시 연락하겠어요.”

- 도움을 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괜찮아요. 살다보면 그럴 때도 있죠.”

손국중은 애써 차분한 음성으로 반종현과 대화를 이어갔다.

여기서 화를 내봐야 아무 의미가 없었다.

반종현은 서로의 피를 나눠마시던 의형제가 아니었다.

- 조만간 찾아뵙겠습니다.

“그래요. 쉬어요.”

띠릭.

통화가 끝났다.

“오정과 연대……. 엘자까지 녀석을 돕다니…….”

손국중은 고심에 빠졌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세계적 대기업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재벌들.

일송회 도움을 받아 성장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대등한 관계로까지 발전했다.

“문제는 주순자야. 그 계집을 너무 만만하게 봤어.”

조근영이 머리가 없다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수십 년 전 청와대에서 처음 봤을 당시에도 다른 형제들과 달리 맹했던 조근영.

상처가 많아서인지 몇몇 신임하는 자들만을 맹목적으로 믿고 의지했다.

그런 조근영은 스무 살 시절부터 함께했던 주순자를 보모처럼 여겼다.

처음에는 주순자의 존재를 만만하게 여겼다.

그러나 탐욕스러운 아줌마가 얼마나 무식한지 손국중은 미처 몰랐다.

요즘 들어 자꾸 일이 틀어지면서 느끼게 된 불길함.

일송회 사업 영역까지 호시탐탐 넘보는 주순자의 욕심을 이제야 눈치 챘다.

“조용히 손을 봐야겠어.”

손국중은 주순자를 먼저 날리기로 결심했다.

뚜루루루루루루.

그때 손국중의 오래된 휴대폰이 울렸다.

가족과 몇몇 지인들만 알고 있는 전화번호.

“여보세요.”

- 할아버지……. 흐윽.

평소 할아버님이라 깍듯하게 호칭을 하던 손자 손주혁.

의젓함은 사라지고 애처럼 울며 할아버지를 찾았다.

울먹이는 손자의 전화를 받고 손국중은 크게 당황했다.

다 큰 사내 녀석에 명색이 현직 검사였다.

이렇게 어린 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린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주혁아. 무슨 일이더냐!”

손국중이 다급하게 물었다.

- 저 부장한테 맞았어요. 그리고 통영지청으로 발령 났어요.

“뭐라고 맞아? 그리고 통영?”

법조계 돌아가는 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손국중은 어이가 없어 다시 물었다.

손자 손주혁에 대한 이 같은 처분은 자신을 향한 선전포고이자 도발.

총장과 법무부장관의 합작품이 분명했다.

- 흐으윽. 저 이제 어떡해요……. 아파요.

여전히 애처럼 흐느껴 우는 손주혁.

정신이 반쯤 나간 것처럼 보였다.

“주혁아!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내가 사람을 보낼 터이니 거기에 있거라.”

일단 정신이 빠져 있는 손자를 다독이는 게 최우선.

- 네……. 빨리 오세요.

두려움에 몹시 떠는 손주혁.

“오냐. 걱정 말고 있거라.”

띠릭.

통화를 끝낸 손국중.

“황 비서! 황 비서어어어어어!!!”

그림자처럼 항상 지척에서 수행하던 비서를 찾았다.

“…….”

그러나 오늘따라 대답이 없었다.

평소 한 번 부름에 ‘네’ 하고 달려오던 비서의 무반응.

스르륵.

대신 서재문이 조용히 열렸다.

“찾으셨습니까. 회장님.”

그리고 귀를 파고드는 낯선 목소리.

천천히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한 손국중.

“너…… 너는……!”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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