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6장. 반격.(3)
“알겠습니다. 지시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서초구 대검찰청.
검사들의 사령관이 거주하는 총장실.
장태권 총장은 걸려온 전화에 스스로 아랫사람처럼 답변했다.
확실하게 노선을 정했다.
청년 시절부터 꿈꿔왔던 검찰총장이 됐다.
하지만 꿈을 이루었다 해서 인생이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이 자리에 앉기까지 살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사건들.
대부분이 어쩔 수 없는 선택들이었다.
보란 듯이 선배를 짓밟고 함께 했던 동료를 배신했으며 철저히 후배들을 이용했다.
허락된 자리는 하나였고 그 자리를 탐내는 경쟁자는 수십, 수백 명에 달했다.
정치권에 줄을 대기 위해 뿌린 돈과 작업 중 저지른 부정이 셀 수 없었다.
먼저 거쳐 간 다른 총장들보다는 덜했지만 장태권은 아버지를 존경한다는 아들 앞에서만큼은 마음이 무너졌다.
사회에서는 정의보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이해관계가 우선시 됐다.
잡범들이야 고민할 것도 없이 마음대로 털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재력과 권력을 갖추고 있는 자들과는 여지없이 타협을 거쳐야 했다.
좁은 한국 사회, 서울에 모여 사는 대한민국 상류층들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이들이었다.
그들과 손을 잡고 한 배를 탄 듯 검찰의 수장이 됐다.
하지만 총장이 되어도 욕은 욕대로 먹고 갈수록 외압이 강해졌다.
“제기랄.”
장태권의 입에서 욕이 터져 나왔다.
요즘 들어 여당과 청와대 쪽에서 오는 압력이 도를 넘었다.
아무리 정권을 수호하는 사냥개 신세라지만 사소한 부탁까지 더해져 요구 사항이 너무 많았다.
언론과 유착해 나름 최선을 다해 막고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국민들이 알게 되면 들고 일어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핵심은 국정원 댓글 사건.
전 총장 때 어마어마한 압력이 들어왔다.
증거 획득 수준으로 끝날 일이 아닐 만큼 자료는 차고 넘쳤다.
아무리 정치 검사들이라 해도 그들도 막아 주기에 민망할 정도의 사건이었다.
개중에 자존심 강한 검사들이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났다.
정권 초기라 청와대 쪽에 실린 힘이 강하긴 했지만 언제까지나 여론을 무시할 수만도 없었다.
상황을 직시하고 수사력 강한 특수통들이 움직였다.
당시 총장의 묵인도 한몫했다.
그 결과로 총장은 과거 일으킨 여성 관련 문제로 목이 날아갔다.
여론의 물살과 언론들까지 합세해 더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VIP에게 줄을 대려는 검사들 항명 사태까지 벌어졌다.
종국에는 총장이 자리를 던졌다.
그 이후 총장 후보자의 섹스 비디오 파문이 터졌고 운 좋게 장태권에게 기회가 왔다.
검사장을 끝으로 조직 생활을 마무리하려던 장태권이었다.
그런 그에게 하늘이 내린 듯한 예기치 못했던 횡재였다.
품어 왔던 꿈을 이룬 것 같아 행복했지만 그것도 잠시에 불과했다.
무늬만 검찰 수장.
민정수석 쪽에 붙은 검사들의 실권이 더 셌다.
검사들 중에서도 성골 출신에 해당하는 윤병운은 따르는 후배들이 무척 많았다.
그들이 중심이 되어 법무부장관을 움직였고 후에 검찰국장과 기조실장들의 요직을 차지했다.
한마디로 장태권은 도장이나 찍어주는 신세로 전락했다.
총장에게 전달되어야 할 보고와 결재도 거치지 않고 대형 사건들이 멋대로 무마됐다.
KI그룹 회장 병보석도 그중의 한 가지.
자존심이 상한 것은 말도 못했다.
그런 만큼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삐이이잇.
인터폰이 울렸다.
- 총장님. 중앙지검장님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그래.”
- 네.
대화는 짧고 간결했다.
똑똑.
간결하게 울리는 노크 소리.
“들어와.”
끼리릭.
문이 열렸다.
“총장님, 부르셨습니까.”
옷매무새를 단정히 매만지며 송성준 중앙지검장이 들어와 절도 있게 고개를 숙였다.
“앉아.”
“넵!”
대한민국 검사들 중에서 가장 핵심인 서울 중앙지검장이 군기 넘치는 병사처럼 대답했다.
조심스러운 눈치를 보이며 가죽 의자에 착석하는 송성준.
“뭐 마실래?”
“커피 마시겠습니다.”
삐잇.
- 네, 총장님.
“커피 둘.”
- 알겠습니다.
비서에게 지시하고 의자에 깊숙이 등을 기댄 장태권.
“한 대 펴.”
“괜찮습니다.”
“형이 피라고 하잖아. 예전처럼 진하게 한 대 빨자.”
“넵.”
한국대 법학과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
신림동에서도 같이 공부했던 스터디 멤버이기도 했다.
검찰에 들어와서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친하게 지냈다.
사적으로는 룸에서 만나 여성들과 섞여 술자리도 여러 차례 가졌다.
총장이 되고 나서 청와대 쪽에 은밀히 부탁해 서울지검장 자리 하나를 겨우 얻었다.
핵심 요직들 상당수를 내주고 겨우 얻어낸 후배 인사.
치이이익.
송성준이 라이터를 켜 장태권이 물고 있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자신의 담배에도 고개를 돌려 불을 붙였다.
“후우우우.”
길게 한 모금 담배를 빨았다 다시 뱉어내는 장태권.
송성준은 은연중 긴장했다.
최근 선배 장태권의 심사가 복잡한 걸 알고 있다.
검찰 수사의 핵심인 중앙지검 검사들이 조직별로 움직였다.
지검장인 자신에게도 통보하듯 던지는 사건이 많아졌다.
답답한 심정은 마찬가지.
송성준은 살짝 고개를 돌려 담배를 길게 빨았다.
니코틴이 폐부 깊숙이 들어가자 마음이 다소 진정됐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선배님.”
송성준은 앉은 채로 책상에 닿을 듯 말듯 고개를 깊이 숙였다.
최근 벌어진 모든 상황들이 자신의 무능 때문인 것만 같았다.
“됐어. 내가 널 모르냐.”
장태권은 측은한 눈빛으로 후배 송성준을 바라봤다.
중앙지검장이라지만 처지가 자신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면목 없습니다.”
“KI그룹, 허승구 차관 라인이 움직인 거 맞지?”
“네?”
“……손 회장님이 직접 나설 사이즈가 아닌데.”
“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손주혁 검사 아시죠?”
“회장님 손자잖아.”
“저에게 압수수색영장 발급을 받으러 왔습니다.”
“일개 검사가?”
“……네.”
“참 나. 기강 X발이네.”
장태권이 기가 막힌 듯 쌍욕을 내뱉었다.
군대와 다름없는 강한 위계질서로 움직이는 검찰.
일개 소위가 사단장에게 직보하고 군 병력을 움직인 것 같은 사태가 발생했다.
“죄송합니다.”
“됐다. 손 회장님 손자면 나도 못 막는다. 그래서…… 장태산을…… 친 거냐?”
“알고 계셨습니까?”
“나도 눈과 귀가 있다.”
“경고를 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손 회장님이 직접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장태산…… 그렇게 만만한 녀석이 아닌데.”
검사 핵심 라인들이 몇 번이나 공격을 해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청와대 쪽 권력 라인도 검을 빼들었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다시 집어넣었다.
그렇게 여러 라인에서 주저했던 장태산을 겁 없이 공격한 손국중 회장.
상상만으로도 피비린내가 진하게 풍겼다.
“확대할 거냐?”
“수사부를 꾸려 달라고 합니다.”
“미친 새끼.”
“…….”
“거기 애들 말고 아무도 도와주지 마.”
“네?”
“그리고 출국제한 풀어라. ……재산이 얼만데 도망가겠냐.”
장태권은 장한수 실장의 직접 연락을 받은 상황.
오정의 정보력은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대단했다.
장태권도 접수하지 못한 비밀을 먼저 수집하고 조취를 취했다.
“장한수 실장이 나섰다. 장태산 일가에 대한 수사는 손주혁에게만 맡겨. 확대시키지 말고.”
“손 회장 쪽 라인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송성준 지검장이 두려운 듯한 눈빛을 보였다.
“성준아.”
송성준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르는 장태권 총장.
“네. 선배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송성준의 가슴을 치는 장태권 총장의 한마디.
‘가오’라는 비속어 한마디에 심장 박동수가 빨라졌다.
“……일개 검사 지휘나 받으려고 이 자리에 있는 거 아니다. 지금부터 장태산에 대한 모든 압수수색영장은 발급 거부다. 지원도 없다.”
단호한 목소리로 못을 박는 장태권 총장의 지시.
“알겠습니다.”
송성준은 장태권의 단단한 눈빛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일로 자존심이 많이 상해 며칠 째 과음했다.
손국중 회장의 손자라는 이유로 안하무인 건방을 떨고 있는 손주혁.
검찰에 있어서는 안 될 완전 개새끼였다.
“장한수 실장이 뒤를 봐준다고 했다. 노후 걱정 말고 니 마음대로 해. 어차피 하루살이 인생이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후배들 앞에 쪽팔리는 모습은 보이지 말자.”
진심이 담긴 장태권 총장의 혼잣말 같은 고백.
송성준 역시 축 쳐졌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현실적으로 더 이상 지금보다 높은 자리에 승진하기는 어려운 걸 송성준도 알고 있다.
중앙지검장보다 나은 자리는 총장밖에 없었다.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희망도 가망성도 제로.
장한수 실장이 뒤를 봐주겠다고 약속했다면 어느 정도 보호막은 완비된 셈이다.
천하의 손국중 회장도 오정의 장한수 실장은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선배님 말씀…… 확실히 따르겠습니다!”
기백이 돌아온 송성준의 눈빛이 살아났다.
“큰 싸움이 벌어졌다. 우리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괜히 고래 싸움에 끼어들지 말고.”
시세를 살피는 처세술이 뛰어난 장태권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싸움의 서막.
국민들은 체감할 수 없는 권력자들의 전쟁이 포문을 열었다.
***
“누구냐니까!”
주순자는 날카로운 신경질을 부렸다.
요즘 들어 하루하루가 너무 바빴다.
권력이 손에 들어온 만큼 또 시절을 만나 챙길 게 무척 많았다.
대기업 오너들이 은밀히 제공하는 정치 자금 규모가 성에 차지 않았다.
금융 실명제를 비롯해 여러 금융 제재 장치로 비자금을 조성하기가 녹록치 않은 그룹 오너들.
자연스럽게 주순자에게 제공하는 액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사정을 이해 못 하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노후를 비롯해 자손 몇 대까지는 먹고 살 돈을 뽑아내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한가할 시간 없이 주순자는 동분서주했다.
우선 건설 자금 규모가 수조에 달하는 동계 올림픽에 빨대를 꽂았다.
주변에 믿을 만하고 쓸 만한 자들이 드물어 주순자가 직접 챙겼다.
그래서 더 성격이 예민해진 상태.
그런 와중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들어왔다.
- 접니다.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젊은 남자의 듣기 좋은 목소리.
“너…….”
주순자는 입술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제 발로 찾아들어와 겁도 없이, 천하의 무서울 것 없던 자신을 협박하던 그놈 얼굴이 떠올랐다.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공포가 온몸을 감쌌다.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나타나 자신을 죽일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놈.
- 제 이름…… 아직 기억하시려나 모르겠습니다.
넉살 좋은 인사였다.
청와대를 비롯해 고위관료들도 자신 앞에서는 벌벌 떠는데 장태산은 그렇지 않았다.
차라리 여유가 넘쳤다.
“장태산……. 니가 웬일이야.”
주순자가 어렵게 입에 장태산의 이름을 올렸다.
-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우리가 안부를 전할 만큼…… 돈독한 사이인가?”
주순자는 어이가 없어 반문했다.
누가 보면 엄청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오해할 만큼 다정한 장태산의 말투였다.
- 결코…… 그런 사이는 아니죠.
“그런데 왜 전화야?”
휴전 협정을 맺은 사이.
서로 상대방 일에 터치하지 않기로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 부분은 비서실장에게도 똑똑히 말해 놨다.
장태산에 관련한 일에는 관심 끄라고 말이다.
- 선전포고 하신 거 아닙니까?
“선전포고? 뭘?”
주순자는 냉소적인 말투로 변한 장태산의 질문에 당황했다.
장태산이 살짝 웃음기를 섞었지만 그는 분명 화가 나 있었다.
‘누가…… 저 새끼를…… 건들인 거야?’
주순자의 이마가 잔뜩 찌푸려졌다.
대통령을 등에 업고 있지만 권력 기관 모든 곳을 다 통제할 수는 없었다.
알면 알수록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치계와 경제계의 권력 관계.
- 누님…… 아니셨습니까?
“도대체 뭘 말이야!”
평소 성격대로 욱해 화가 치밀어 오른 주순자의 말투.
- 검찰 동원해서 제 뒤통수 치셨지 않습니까!
또박또박 강한 어투로 따지고 들어오는 장태산.
“뭐라고? 검찰???”
주순자는 일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민정수석을 통해서도 분명 말을 전달해 놓았다.
그런데 그 말을 무시하고 누가 검찰 라인을 움직인 듯했다.
- 앞으로 24시간 드리겠습니다. 그 안에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지 않으면…….
길게 말하지 않고 뒷말을 끊는 장태산.
파르르 주순자의 온몸이 떨려왔다.
전파를 타고 전해진 장태산의 강한 경고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했다.
“아, 알았어. 일단 알아볼게. 그러니까 끊어.”
주순자는 다급해졌다.
- 확답 기다리겠습니다.
띠릭.
통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시X! 누가 미친개 자극한 거야!!!”
짜증이 잔뜩 난 주순자가 악을 썼다.
그리고.
티디딕.
빠르게 번호를 누르는 주순자.
- 청와대 비서실입니다.
“나 주 선생이야. 공 실장 바꿔! 지금 당장!!!”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