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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2장. 새로운 싸움.(2) (789/1,284)

792장. 새로운 싸움.(2)

“이, 이게 뭐야! 왜 저게 나오는 거야!!!”

어제도 질펀하게 술을 마시고 미모의 여성들과 뒤섞여 광란의 파티를 벌였던 임주혁 회장.

차가운 냉수를 마시며 습관적으로 아침 뉴스를 보려고 TV를 틀었다가 메인 화면에 나온 자신의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 임주혁 회장의 병보석 중 일삼은 일탈 행위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전형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문제로 일벌백계로 엄히 다스려야 한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빗발치고…….

“이…… 미친!!!”

와장창.

임주혁은 들고 있던 크리스탈 잔을 내던졌다.

그리고 다급히 스마트폰을 찾았다.

띠릿.

꺼져있던 전원이 들어왔다.

파티를 즐기는 중에는 전화 받는 걸 극도로 싫어해 아예 전원을 꺼놓는 버릇이 있었다.

띠릿 띠릿 띠릿.

연달아 울리는 문자 알림음.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지금 어디십니까?]

[임 회장! 지금 어딘가!!!]

[회장님! 급히 각 언론사에…….]

임주혁은 골목에서 운전기사까지 돌려보냈다.

그러니 제아무리 비서라 해도 임주혁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수십 개에 달하는 문자는 하나같이 다급한 내용들이었다.

회사, 언론사, 로펌 변호사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임주혁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애를 태우는 내용이었다.

그사이 일파만파 커진 병보석 중에 벌어진 일탈 행위로 사회적 파장이 쓰나미처럼 임주혁을 덮쳐왔다.

띠리리리리리리리.

문자를 확인하는 중에 울리는 스마트폰.

-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너 도대체 뭐 하는 놈이야! 이런 게 왜 언론에 터지는 거야!!!”

대뜸 전화기에 대고 임주혁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마땅히 풀 곳이 없었다.

그럴 때 만만한 게 비서.

- 죄…… 송합니다. 갑자기 아침부터…… 무작위로 터지는 바람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죄송은 됐고. 어떤 새끼야? 어떤 미친놈이 터트린 거야!”

- 아직 파악을 못 했습니다. 각 언론사들에 동시다발적으로 정보가 도착했다는 것만 확인됐습니다. 인터넷 쪽 언론사에도 한꺼번에 풀렸습니다.

“뭐라고? 동시에?”

그제야 임주혁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누군가 계획적으로 이 사건을 기획했음이 확실했다.

‘설마…….’

의심할 여지없이 떠오르는 가장 유력한 범인.

“장태산!”

- 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개새끼를…….”

- 회장님…….

“주식 시장은?”

- 그룹 계열사 주식 전부가 하한가를 보이고 있습니다.

‘수법이 비슷해. 내가 방심했어.’

그나마 말이 통했던 안아그룹 오 회장도 장태산에게 이런 식으로 당했다.

언론을 이용해 그룹 오너 일가의 비리를 폭로하는 게 첫 번째 작업이었다.

동시에 해외 투자자들을 이용해 지분을 매집했다.

구치소에서 쌓였던 스트레스를 푸는 데 집중하다가 꼴이 아주 우습게 됐다.

“주식 매집해.”

- 네?

“여유 자본 모두 투입해서 그룹 주식 전부 매집하라고!”

- 넵!

“바로 회사 들어갈 테니까 삼성동 로얄 캐슬 빌라로 차 보내.”

- 알겠습니다.

“그리고 돈 뿌려. 더 이상 소문 안 나게 단단히 언론사들 입 틀어막아. 그리고 리앤장에 연락해서 연예계 스캔들 큰 거 구입해.”

그동안 이런 식의 위기를 몇 번씩이나 돌파해 왔던 임주혁이었다.

대응 매뉴얼에 따라 바로 지시를 내렸다.

숙취는 진작 다 사라졌다.

날카로운 눈동자가 독 오른 독사처럼 번뜩였다.

- 처리하겠습니다.

“병원 예약하고 구급차도 대기시켜. 믿을 만한 기자들 몇 명 포섭해서 반박 기사 내보고.”

- 넵!!!

뚜우우우 뚜우우.

그때 들어오는 통화 대기 신호음.

바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차관님.”

임주혁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목소리를 정중하게 깔았다.

- 임 회장님. 아직 나이가 젊어요.

칭찬인 듯 강하게 책망하는 법무부 차관의 목소리.

“죄송합니다.”

- 나에게 미안할 일이 있나요. 다들 알아서 해야죠.

검찰 쪽을 주도했던 법무부 차관의 목소리에서 냉소적인 기운이 내비쳤다.

‘이거 느낌 안 좋은데.’

여론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제대로 사태를 막지 못한다면 일이 상당히 크게 커질 터였다.

“회장님께는 제가 따로 사과 연락드리겠습니다.”

법무부 차관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 온 손국중 회장.

- 임 회장님. 가드에도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요즘 우리 쪽도 시끄러워요. 시민단체들이 기소권 독점이라고 매일같이 주장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전국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사고를 치시면…….

다른 인사였다면 대놓고 욕설을 들었을 만한 심각한 사안.

그 사실을 잘 아는 임주혁의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자존심이 잔뜩 상해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죄를 지은 장본인으로서 아무리 자존심이 상해도 검사들과는 척을 질 수 없었다.

“주의토록 하겠습니다.”

- 그래야죠. 기업하시는 분들은 다들 애국자이신데……. 이렇게 언론에 불명예스러운 일로 노출되면 쓰겠습니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임주혁은 최대한 예의를 갖춰 저자세를 유지했다.

차관에 불과하지만 실제적 정권 실세와 돈독하게 연관되어 있는 인물이었다.

검찰총장 및 법무부 장관과도 막역한 사이였다.

- 빠르게 수습해 보세요. 저도 힘 써 보겠습니다.

“조만간 저녁식사 한번 대접하겠습니다.”

-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법무부 차관과의 통화가 아슬아슬하게 끝났다.

“아오! X발!”

전화를 끊자마자 욕을 내뱉는 임주혁.

그렇지 않아도 못난 얼굴이 고약한 인상으로 찌그러졌다.

“장태산……. 이제는 진짜…… 전쟁이다!!!”

***

“오랜만에 뵙습니다. 실장님.”

“한 반년 됐나요?”

“그동안 연락 못 드려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나랏일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죠.”

점심식사 자리로 예약된 삼청동 일식집.

검찰총장 장태권이 내실로 들어서면서 점잖게 고개를 숙였다.

임성철 회장이 쓰러지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최상부 권력층에 속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장한수 실장.

그가 장태권을 직접 불러냈다.

장태권은 장한수 실장의 부름을 거절할 수 없었다.

오늘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장한수 실장의 도움이 무척 컸다.

과거부터 검찰총장은 최고급 사냥개로 불렸다.

청와대와 국회, 경제인들의 암묵적인 동의가 필요한 자리였다.

거기에 일송회 측의 입김도 적잖이 개입됐다.

여러 권력자들이 합치해 적당한 순간 사냥개로 써먹기 위해 채워놓는 검찰총장.

이에 장한수 실장은 누구보다 큰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장태권은 섹스 비디오로 낙마한 이학희를 대신해 총장에 올랐다.

정치력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지만 일처리는 무난했다.

국민들에게는 제법 강직하다는 평을 받고 있어 인사청문회도 무난하게 넘어갔다.

청와대 쪽에서도 이학희 사건 때문에 함부로 하자 있는 후보를 택하지 못했다.

“한 잔 올리겠습니다.”

“대낮인데…… 괜찮겠어요?”

“오후 일정 비워놨습니다.”

장태권은 조심스럽게 앞에 있는 병을 들고 따랐다.

대부분의 자리에서는 대접 받은 위치였지만 오늘은 자처해 을이 됐다.

먹음직스러운 참돔회와 일식 코스 요리가 깔끔하게 차려진 테이블.

굳이 부르기 전까지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 오랜만에 한 잔 받겠습니다.”

장한수 실장은 꼿꼿했다.

‘임성철 회장이 쓰러진 후 뒤로 밀렸다는데…… 아니었어?’

오정 권력 향방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오정장학생들이라면 모두가 다 귀추에 주목하고 있다.

임성철 회장이 쓰러진 직후 새로운 태양이 나타났다.

신임 군주나 진배없는 임준형 밑으로 권력 라인이 재편됐다.

자연스럽게 장한수 실장은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하게 됐다.

밖에서는 사표를 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런데 오늘 직접 만나 보니 전혀 달라진 게 없는 듯했다.

과거의 기세가 여전했다.

“왜 그런 눈으로 보십니까? 토사구팽이라도 당했을까 걱정됐던 겁니까?”

“아……닙니다!”

당황한 장태권 총장은 강하게 부정했다.

오정의 힘을 업고 대한민국의 핵심 라인을 쥐락펴락했던 장한수 실장.

그가 쥐고 있다는 뇌물장부가 세상에 던져지는 순간 상류층 인사 수백 명이 한꺼번에 사라질 수도 있었다.

“총장님도 한잔하시죠.”

“전처럼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장 검사라고 말입니다.”

초임 검사 시절부터 오정의 관리를 받아왔던 장태권이었다.

장한수 앞에서는 검찰총장이라는 명함도 부질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총장님인데…….”

“항렬도 저보다 높으신데…… 당연히 그러셔도 됩니다.”

같은 장씨 집안이라고 혜택을 더 받았던 장태권.

“장 검사가 원하면…… 그렇게 하지.”

빙그레 웃는 장한수.

‘뒤에 임 회장보다 더 대단한 누가 있었던 거야? 기세가 장난 아닌데.’

검찰 쪽에서 수십 년을 버텨온 장태권은 장한수의 눈치를 보며 머리를 굴렸다.

장한수가 이렇게 꼿꼿한 태도를 보이는 건 뒤에 누가 있다는 의미.

‘설마!’

스치는 생각 하나에 눈이 번쩍 뜨였다.

쓰러졌다고 알려진 임성철 회장.

그의 근황은 검찰총장도 알 수 없는 극비에 붙여졌다.

“전 언제나 실장님께는 장 검사일 뿐입니다.”

“한잔하지.”

팅.

두 사람의 잔이 부딪쳤다.

독특한 향이 일품인 청주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실장님, 하실 말씀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해 주십시오.”

장태권이 조용히 장한수를 부추겼다.

술이 한잔 들어갔으니 만나자고 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낼 때가 됐다.

보자고 한 이유를 확실히 알기 전까지 목에 술이 걸려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부탁할 일이 있네.”

눈치가 있는 장한수도 곧장 본론을 꺼냈다.

“하명하십시오.”

장태권이 자세를 바로 잡았다.

“KI그룹 말일세.”

“…….”

오늘 전국을 들썩이게 한 임주혁 회장의 뉴스.

임주혁 회장 일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입맛이 썼다.

직접 처리하지 않았지만 손국중 회장의 오더로 병보석이 결정됐다.

검찰 쪽의 법무부 차장 라인이 움직인 일이었다.

법원에서는 대법원장 쪽이 주도했다.

총장이지만 직접 개입하지 못했던 임주혁의 병보석.

“이곳에 오면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좀 봤네. 임 회장……. 아주 어리석더군.”

“내부에서 말이 많습니다.”

“그럼 다시 집어넣으면 되잖나.”

“……손국중 회장님의 지시였습니다.”

“손국중 회장님이?”

“저도 배제한 채 이뤄진 일입니다.”

장태권은 무척 조심스러웠다.

오정과 KI그룹은 좋은 관계에 있지 않았다.

특히 장한수 실장은 KI그룹 오너 일가와 개인적으로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장 검사.”

“네. 실장님.”

“머리 복잡할 때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판이 이렇게까지 다 깔렸는데……. 검찰총장으로서 당당히 칼을 빼들어야지.”

“그건…….”

“손국중 회장님 쪽은 두려워 말게. 여론이라는 좋은 방패가 있지 않나.”

“……실장님 뜻입니까?”

장한수 실장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싶은 장태권.

어쩌면 뒤에서 누군가의 지시를 따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역시 검사라서…… 의심이 많아.”

“죄송합니다.”

“죄송할 필요는 없네. 다만…….”

말을 끊고 장태권을 무심히 바라보는 장한수 실장.

그 시선을 조용하고 뜨겁게 응시하는 장태권 총장.

“이번에도 나를 믿고 따라와 주게. 그렇게 되면 자네 노후는…… 책임져 주겠네.”

“!!!”

함부로 무엇을 약속하지 않는 인물로 정평이 나 있는 장한수 실장이었다.

그런 그가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것도 구체적으로 ‘노후’를 언급했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검찰총장으로서 품위 있게 살다 갈 수 있게 여러 도움을 주겠다는 뜻이다.

장태권은 진심으로 갈등했다.

지는 달과 같은 오정의 2인자 장한수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아직도 법조계를 한손에 쥔 짱짱한 손국중의 오더를 지킬 것인가.

양자 간의 택일을 해야 할 결정적 순간.

지금 이 순간의 선택이 자신의 모든 미래를 좌우하게 될 터였다.

“실장님……. 뜻을 따르겠습니다.”

생각은 길게 할 필요가 없었다.

아직도 후광에서 빛나는 장한수 실장의 권위.

평생 2인자로 살아온 그가 이렇게 힘을 낼 때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의 뒤에 무서운 누군가가 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하하. 고마워. 회장님께서 매우 기뻐하실 거야.”

‘회장님!’

회장님이라는 말에 장태권은 다시 임성철 회장을 떠올렸다.

세상에 알려진 것과 달리 임성철 회장이 깨어난 게 확실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장태권은 다시 한 번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장한수의 눈동자는 그런 장태권을 비웃듯 한없이 차가웠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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