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1장. 새로운 싸움. (788/1,284)

791장. 새로운 싸움.

“검사님. 부탁한 자료입니다.”

“수고했어요. 놓고 나가시면 됩니다.”

“네~.”

햇살이 나른하게 내리쬐는 3월 첫째 주.

미혼의 검찰청 여직원은 자료를 놓고 나가며 일에 몰두하고 있는 젊은 검사를 다시 한 번 곁눈질로 바라봤다.

출근 며칠 만에 중앙지검 여직원들 사이에서 단번에 인기남으로 등극한 인물이다.

남자 검사들 중에서도 단연 잘생김으로 원탑이 됐다.

명패에 또렷하게 새겨진 이름 석 자.

검사 손주혁.

새로 중앙지검 조세범죄수사부에 발령 받은 검사 손주혁은 무척 바빴다.

“이 새끼 봐라……. 이거 완전 지능범인데.”

장태산에 대한 금융정보가 모두 손주혁의 손에 들어왔다.

눈에 띄는 건 고등학교 시절 이미 부모 동의로 시작한 주식 투자와 선물.

미래를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작전주를 비롯해 선물 시장에서 상상초월의 대박을 쳤다.

“털 게 없네.”

세금 문제를 건드려 보려고 했지만 진짜 깔끔했다.

금융지식을 겸비한 듯 절세 방법도 기가 막혔다.

모든 정황이 합법적 테두리에서 이뤄진 것 자체가 놀라웠다.

“삼우로펌 조윤태 이사가 뒤를 봐줬고……. 동네 조폭 사건도 얽혀있고……. 어린놈이 무슨 인생이 이렇게 파란만장해?”

여동생 손유리보다 나이가 어린 장태산에 대한 과거 자료들.

마치 무슨 영화 주인공처럼 전반적인 인생 자체가 화려했다.

“그저 그런 실력이었는데…… 단숨에 한국대에 입학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거지. 약이라도 빨았나?”

분명 무난하고 평범했던 학업 실력이 어느 순간 일취월장했다.

대한민국 인문계열 탑을 찍는 한국대 법학과에 합격했는가 하면 재학 중에 어린 나이로 사법시험도 패스했다.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로 군면제. 그럼에도 언론에는 거의 언급이 없다. 이건……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살고 있어. 이 나이에 이렇게 행동하는 건 쉽지 않은데 말이야.”

이 정도 스펙과 행적이라면 인간극장이라도 나왔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장태산은 그 어떤 언론에도 거의 노출된 적이 없었다.

손주혁도 취하기 어려운 행동.

잘난 맛에 살아가는 혈기왕성한 나이의 청년들에게 스스로를 통제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장태산은 자신을 철저히 감추며 살았다.

“장주시에 있는 연구소는 외국 자본과 합자회사라 함부로 건들 수 없고……. LOR이 투자한 다른 사업체도 마찬가지. 이 자식 뭐야! 진짜 똑똑하네.”

손주혁은 수북이 쌓인 자료들을 살피며 미간에 인상을 썼다.

“……유리가 좋아할 만하네.”

나이 차이가 있는 여동생 손유리.

철저하게 계산된 행동만 하는 손주혁이지만 뜻밖에 여동생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손주혁이 예뻐하는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말이 통하는 똑똑한 남자를 이상형이라고 밝혀왔다.

장태산 정도라면 충분히 그런 여동생의 마음을 빼앗을 것이다.

“주변에 무슨 여자가 이렇게 많아?”

손주혁 만큼이나 주변에 여성들이 많았다.

그것도 하나같이 빼어난 미모의 여성들.

스윽.

“이 새끼는…… 늙지도 않네.”

고등학교 사진과 현재 사진을 비교하며 혼잣말을 내뱉는 손주혁.

전혀 변한 게 없는 사진 속 모습에 절로 욕이 터져 나왔다.

“그래도…… 사람인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허점은 있는 법.”

손주혁은 장태산의 어머니 명의의 계좌를 유심히 살폈다.

장태산이 작업해서 넘겨 준 것으로 보이는 주설란의 계좌.

오고가는 돈은 모두 다 주설란 계좌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정황상 모든 게 장태산의 손에서 나온 실력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재단을…… 먼저 털어?”

아무리 세무 관련한 일 처리가 꼼꼼하다 해도 대부분의 법인들은 허점이 있게 마련이다.

특히 대학교를 품은 재단들은 본인들 실수가 아니더라도 아랫사람 선에서 벌어진 회계부정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었다.

손에 쥔 정보를 살펴본 결과 장태산의 약점은 가족이었다.

정보에 의하면 가족들에게 개인 경호원을 붙여 줄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다.

“핵심은…… 홍콩상행은행인데.”

미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하는 와중에 와튼 스쿨에서 금융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손주혁.

금융공학은 말처럼 간단한 학문이 아니었다.

머리가 꽤 좋은 손주혁도 미친 듯 매달려 공부했다.

금융 상품 절차에 대한 연구, 개발, 창조, 혁신을 연구하는 학문답게 다루는 범위가 무척 광범위했다.

증권이나 펀드, 선물, 옵션 등의 다양한 금융상품을 파고들어 공학으로 연결시키는 학문.

그런 와튼 스쿨에서 단기간에 석사 학위를 받을 정도로 손주혁은 머리가 좋았다.

검사임에도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다.

암암리에 손국중의 입김이 작용한 덕이었다.

다른 여타 공무원들은 결코 받을 수 없는 특혜였다.

“냄새가 나. 그것도 아주 심한 구린내가…….”

손주혁도 미국에서 귀가 따갑게 들었던 월가의 천재적 투자자 로버트 라이언.

그와 연관되어 있는 장태산.

“대출 자료는 남아있지만…… 몇 달 만에 바로 상환했다. 하지만…… 흐흐흐.”

손주혁이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상당한 외환을 이용하고도 국가에 보고하지 않은 장태산.

명백한 외국환관리법 위반이었다.

아직 공소시효 기간도 남아 있다.

“할아버지 능력 좋으시다니까.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하시고.”

이건 손국중이 건넨 자료였다.

일개 검사가 함부로 취득할 수 없는 외국 금융자료.

“하나 둘 네가 가진 모든 것들을 탈탈 털어봐 주마. 감히 농사꾼의 자식이 대한민국의 성역과 같은 곳을 어지럽혀? 본래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내주마.”

손주혁의 눈동자에 생기가 차며 차갑게 빛났다.

사아아아악.

장태산의 프로필 사진을 빨간펜으로 사정없이 그어버리는 손주혁.

삐이이잇.

인터폰을 눌렀다.

- 지검장실입니다.

중앙지검장 쪽 여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세범죄수사부 손주혁 검사입니다.”

- 네. 검사님.

“지검장님께 상의 드릴 일이 있는데 지금 안에 계십니까?”

-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보통의 검사들 사이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통화.

부장급에서도 대하기 어려운 자리가 바로 서울중앙지검장이었다.

대한민국의 굵직한 사건 대부분을 다루는 서울중앙지검의 수장은 검찰 총장의 지시를 받았다.

그런 인사에게 손주혁은 직통으로 연락을 취했다.

- 지금 시간 괜찮다고 하십니다.

“바로 찾아뵙겠다 전해주십시오.”

손주혁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 들려있는 서류철.

압수수색영장청구서라는 글귀가 선명했다.

***

- 악신의 강한 저주가 몰려옵니다.

악신의 저주?

이 화장한 봄날에?

시간은 돌아볼 여유도 없이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2014년 3월.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봉은사 소나무들 잎에 연한 초록빛이 맴돌았다.

마음이 한없이 편안한 순간 느닷없이 들려온 알림음.

누군가 또 나를 노리는 게 분명했다.

‘강한 저주’라고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으로 보아 상대하기에 만만한 자가 아닌 듯했다.

“그래, 조용하면…… 장태산 인생이 아니지.”

이런 일 한두 번 겪는 것도 아니었다.

맞닥뜨려봐야 알 수 있는 악신과 결합한 인간들의 비열한 행동.

지금처럼 강해지지 않았다면 진작 쓰러졌을 것이다.

현재도 상대하고 있는 KI그룹을 비롯해 비슷한 류의 적들이 적잖이 많았다.

그런 무리들 중 그나마 버팀목이 돼 주었던 손대균 이사님도 해외 도피 중.

지금은 조용한 중국과 일본 쪽에서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을 터였다.

절대 고요한 상태에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다.

이웃집 개들을 몽둥이찜질로 확실히 손보기 전에는 쓰러질 수 없다.

- 방금 들어온 뉴스입니다.

전쟁은 실시간으로 진행 중이었다.

종편 중심으로 수집한 정보를 쫙 풀었다.

한 곳에만 넘겨주면 KI그룹과 협상에 들어갈 것 같아 정보를 여러 곳에 동시다발적으로 뿌렸다.

KI그룹이 쉽게 대응할 수 없도록 집중 포화 공격을 시작했다.

사정없이 물어뜯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움직였다.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가장 간단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실행해 옮겨야 했다.

- 병보석으로 풀려나 병원에 입원 중인 KI그룹 임주혁 회장에 대한 제보 영상이 각 언론사에 뿌려졌습니다. 급성 신장염과 암으로 진단되어 병보석으로 긴급하게 풀려난 임주혁 회장이 보석 후 강남 고급 룸살롱에 출입한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제보자에 의하면 임주혁 회장은 독한 술을 마셔도 전혀 이상이 없을 정도로 건강했다고 합니다. 여기 제보 영상을 보시면…….

사무실 TV에 보이는 임주혁 회장의 실루엣.

술에 취해 여자를 옆에 끼고 차에 타는 장면이 몇 컷이나 내보내지고 있었다.

그것도 각각 날짜가 다 달랐다.

빼박 증거.

- 이 정보를 먼저 접한 시민단체들은 황제 보석이라며 임주혁 회장의 보석취소를 결정하라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뿌려진 영상 몇 개로 임주혁 회장은 완전 맛이 갔다.

지난 생에 목격했던 것과 똑같은 패턴의 실수.

있는 자들은 결코 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리석게도 다시 걸려드는 경우가 많았다.

구치소에서 풀려났으면 조용히 집에 처박혀 반성할 일이지 야밤에 여자 끼고 술을 퍼 마신 임주혁.

빤히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그에 맞는 선수들을 붙였다.

너무나 명확하고 정확한 증거 자료들이 채집됐다.

딸깍.

자리에 돌아와 인터넷 뉴스판을 열었다.

“제대로 불 붙었네~.”

예상대로 네티즌들의 화끈한 포격이 시작됐다.

간접적으로 내가 소유하고 있는 소규모 뉴스 생산 업체 측 기사에 달려있는 기막힌 댓글들.

- 신장암이라며? 그런데도 여자와 술이 가능함?

⌞그거 모르셨어요. 신장암에는 알코올과 여자가 특효래요.

⌞나도 암 걸리고 싶다.

- 진짜 더럽고 치사한 세상이네.

- 검찰 판사 형님들 부끄럽지 않으세요?

⌞이 정도면 청와대도 연관 있음이 팩트!

⌞리앤장이 임주혁 변호를 맡았답니다.

⌞리앤장……. 그럼 끝났네.

- 청와대 신문고에 올립시다!!!

⌞님 바보세요? 청와대 신문고 폐쇄됐잖아요.

- 진짜 속 터져 미치겠네. 이거 나라 한번 뒤집어야 하는 거 아냐?

- 조심하세요. 지금 경찰과 국정원이 당신을 모니터링 하는 중임.

⌞헐…….

네티즌들의 댓글이 금세 수백 개로 늘었다.

다옴과 나이버 실시간 검색 창을 장식한 임주혁 이름 석 자와 병보석.

“내가 이래서 한국 네티즌들은 사랑할 수밖에 없다니까.”

국민들의 의식이 깨어나고 있었다.

정보통신 강국답게 각종 정보와 지식으로 중무장한 대한민국 네티즌들.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대한민국에 뿌리박힌 악의 축들의 실체에 대해 알아가고 있었다.

아직은 미흡했지만 이런 움직임이 차곡차곡 쌓여 엄청난 힘을 보이게 될 것이다.

어차피 친일파의 피가 흐르는 20% 정도의 인사들은 포기하고 가도 됐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 순사 앞잡이 노릇을 했던 놈들 같은 자들은 어느 시대가 되어도 존재하기 마련.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깨어나는 한민족의 자손들의 힘만 있으면 됐다.

미국도 일본도, 중국도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세상.

자각만이 앞으로 한민족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이었다.

“오늘도 하한가로 쭉 가시네.”

오르고 있던 KI그룹 관련 주식들이 파란불이 되어 수직 낙하했다.

홍콩과 미국 쪽에서 나의 지시를 받은 펀드 매니저들이 찍어 누르는 중이다.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

KI그룹 오너 지분 관계가 탄탄하긴 했지만 내가 작업에 들어간 이상 파도 앞의 모래성이나 진배없었다.

조금 시간이 걸릴 뿐 모래성 따위는 적수가 되지 않았다.

- 삐이잇.

인터폰이 울렸다.

“네.”

- 회장님. KI그룹 전 계열사 1차 매집 목표가 끝났습니다.

투자법인 대표 도도희가 보고를 해왔다.

공과 사를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아는 그녀.

며칠 전 유세라와 도도희, 임윤아와 함께 한 밤의 회식 시간을 가졌다.

그날 이후 세 사람은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임윤아가 생각보다 성격이 좋았다.

사라진 대웅그룹의 딸 도도희나 유세라 상무를 깍듯하게 대했다.

다소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던 것 같아 보였지만 술잔을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수고했습니다.”

- 아닙니다.

“며칠 동안 악재가 계속 터질 겁니다. 쓸어 담으십시오.”

-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적이 된 자들에게 베풀 자비심 같은 건 없다.

한번 제거하기 시작하면 뿌리까지 뽑아야 하는 법.

KI그룹은 나에게 제대로 찍혔다.

스마트폰을 들었다.

티딕 티디디딕.

통화 버튼을 눌렀다.

“장한수입니다.”

이제는 완전히 나의 편이 된 겸손하기 그지없는 오정의 2인자.

“장 실장님, 해주셔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네, 회장님! 하명만 하십시오!”

회귀의 전설 2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