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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5장. Accident! (782/1,284)

785장. Accident!

“아빠아아아아아!”

“어이쿠!”

파리 드골 공항 출구.

손대균은 자신을 발견하고 빠르게 달려와 덥석 안기는 딸을 감싸안자마자 한 발 뒤로 주춤했다.

“뭐야? 아빠 왜 이렇게 약해진 거야? 머리에 새치도 많아졌고…….”

손유리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아빠를 봤다.

마지막으로 서울에서 봤을 때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손대균.

언제나 샤프한 중년의 모습일 것 같던 손대균도 흐르는 세월을 거스를 수 없었다.

“인생 반 바퀴를 훌쩍 넘었다. 이 연식에 나 정도면…… 준수한 거야.”

손대균이 멋쩍게 웃었다.

품에 안긴 딸은 변한 게 거의 없었다.

손대균이 보기에는 어린 시절 그대로 늘 아이같은 모습의 딸이었다.

“여보. 난 안 보여요? 이거 막 질투가 나네.”

“어~ 미안.”

손대균의 아내 이혜라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국내를 벗어나 이렇게 가족 간에 오붓한 시간을 보낸 지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언제나 일 때문에 바빠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했던 손대균.

늘 빈틈없고 이성적이던 그가 살짝 변했다.

부부 연을 맺은 지 오래지만 속 깊은 곳에 감춰진 얘기들은 알지 못했다.

가끔 깊은 밤이면 홀로 조용히 사라졌던 그.

몰래 뒤를 따라가 보면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이혜라는 자신만의 미지의 성에 홀로 머무는 남편에게서 근접할 수조차 없는 거리감을 느꼈다.

하지만 오늘은 그가 무척 달라 보였다.

사실 장태산이라는 청년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변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즈음부터 다른 사람처럼 서서히 바뀌었다.

밖에서 장태산을 만나고 귀가한 날은 다른 때보다 얼굴이 밝았다.

한때는 지독하게 싫어했던 장태산이었는데 어느 순간 손대균이 그를 받아들였다.

“엄마. 당분간 질투 나도 참아. 아빠랑 데이트 많이 할 거야. 내가 번 돈으로 이것저것 맛있는 것도 사주고.”

손유리가 손대균의 팔에 매달리며 팔짱을 걸었다.

“그래라. 우리 서방님 몸보신 좀 부탁하마.”

이혜라가 다정한 부녀의 모습을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유리야~ 아빠도 백수가 되긴 했지만 돈은 많다.”

“당연히 그래야죠. 그 돈이 다 누구 돈인데~. 흐흐.”

손유리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변했네, 우리 딸.”

“변한 게 아니라 세상 살아가는 순리를 깨달은 거죠. ‘부모 재산을 내 것처럼 여기라’고 한국 친구들이 조언해 줬어요.”

“참 좋은 친구를 뒀구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반어법으로 대꾸하는 손대균.

“그렇죠? 제가 봐도 똑똑한 친구들이라니까요. 한국에 있을 때 그런 귀한 충고를 들었어야 했는데……. 아빠가 봐도 제가 무지 순진했죠?”

손유리가 배시시 웃으며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손대균을 쳐다봤다.

“끙…….”

장성한 딸의 진담 같은 농담에 손대균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사표는 왜 냈어요?”

이혜라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리앤장의 이사 자리를 아무나 맡는 게 아니었다.

특히 리앤장의 모든 일은 손씨 가문의 주력 사업과도 같았다.

시아버지 손국중의 성품에 비추어 보건데 뭔가 큰일이 벌어진 건 확실했다.

“아버지와 한판했어.”

“아버님과…… 한판요? 당신이요?”

“정말요? 와아.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에요.”

모녀가 같이 놀라며 손대균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두 사람이 알고 있던 손대균은 천하에 둘도 없는 효자였다.

“이제 아버지 말만 듣고 살아야 할 나이는 아니잖아.”

손대균은 일부러 어깨를 당당히 폈다.

생각해 보니 긴 세월 동안 아버지 앞에서는 언제나 고개를 조아렸다.

집안의 어른을 떠나 손국중이 갈무리 하고 있는 내공은 누구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축하해요. 늦은 나이에…… 진짜 어른이 됐네요.”

이혜라가 반가운 소식이라도 전해들은 듯 활짝 웃었다.

“서운하지 않아? 이제 한국에 돌아가도 리앤장 사모님 소리는 들을 수 없어. 당신 좋아하는 강남 아줌마들이 남편이 백수라고 뒷말들을 할지 몰라.”

“상관없어요.”

“왜?”

“유리 떠나보내고 생각이 많았어요. 자존심, 그게 뭐라고……. 세상에 모든 걸 줘도 바꿀 수 없는 자식들에게 그동안 마음과 달리 냉담하게 대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이혜라가 손유리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어린 시절부터 누구보다 집안에 웃음꽃을 피게 했던 분위기 메이커, 사랑스런 막내 딸.

시아버지와 남편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두 사람이 요구하는 대로 딸과 헤어져 살았던 시간들이 두고두고 억울했다.

“그래. 너무…… 내 생각만 했지.”

손대균도 손유리를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와아…… 뭐죠? 오늘 두 분께 사랑고백 받는 것 같은 이 기분……. 유치원 때 크리스마스 선물 받던 순간과 비슷한 기분인데요.”

손유리는 지난 시간에 비해 많이 밝아졌다.

이 분위기를 거부감 없이 기꺼이 즐겼다.

부모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는 충만한 기분.

현실을 정면 돌파하지 못해 아파하고 서로를 미워하던 과거의 그녀가 아니었다.

흘려보낸 시간만큼 어느새 손유리도 성숙한 어른이 되어 갔다.

“보고 싶으면…… 말해라.”

불쑥 건넨 손대균의 한마디.

“누구요?”

손유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아빠를 봤다.

“장태산.”

간단명료하게 튀어나온 이름 하나.

“!!!”

손대균의 짧은 말에 손유리가 깜짝 놀랐다.

아빠 손대균의 지독한 반대에 부딪혀 쫓기듯 떠나온 파리.

그랬던 아빠 손대균이 장태산의 이름을 스스럼없이 입에 올렸다.

“그 녀석……. 사람이 진국이야. 요즘 애들 같지 않게 어른들 모실 줄 안다니까.”

묻지 않았음에도 장태산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는 손대균.

파르르 손유리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손유리의 눈빛을 응시하고 있던 손대균 역시 딸의 마음에서 아직 식지 않는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미안하다. 유리야.’

과거 자신이 끊어 놓았던 두 사람의 관계.

가능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두 사람을 만나게 해 주고 싶었다.

스윽.

그런 세 사람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 낯선 시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처럼 감시하는 행동이 무척 자연스러웠다.

찰칵.

셀카를 찍는 척하며 세 사람을 줌인 해 스마트폰에 담았다.

“그 얘기는 나중에 하고 밥 먹으로 가요. 오늘부터 자유 끝인데 손대균 씨가 밥은 사셔야죠?”

“나 백순데…….”

“그럼, 백수 아빠 좀 뜯어먹어 볼까요?”

“대접한다며!”

“생각해 보니 통장에 잔고가 없네요~. 프랑스 물가가 얼마나 살인적인지 모르죠? 저 빵만 먹고 살았다니까요.”

“당했다…….”

“호호호호호.”

뒤를 쫓는 낯선 그림자의 존재를 알 리 없는 세 사람.

아무것도 모른 채 행복하게 웃으며 사이 좋게 공항을 빠져 나갔다.

그 뒤를 낯선 사람이 조용히 따라 붙었다.

***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회장님이 만족하셨다니 다행입니다.”

평양 순안 국제공항.

북한의 하나뿐인 국제공항에서 성대한 송별식이 진행됐다.

개방을 추진하는 북한 외무성과 경제성 담당자들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었다.

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노중년의 미국 남성.

세계적 투자자로 정평이 나 있는 로저스 홀딩스의 현 회장 바비 로저스였다.

북한의 초대로 함부로 열리지 않는 국경을 넘었다.

며칠 동안 평양에 머물며 김정은과 저녁 만찬도 가졌다.

북한의 새로운 지도자는 스위스 유학파 출신답게 영어도 유창했다.

로저스의 투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이것저것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다.

등소평 같은 사회주의적 개혁개방을 추진하려 하는 김정은.

투자자 로저스는 그의 플랜을 높이 평가했다.

북한도 마찬가지.

그 결과 그의 송별식은 타국 원수급에 준하는 국가 의전급으로 행해졌다.

“여러분의 환대는 잊지 않겠습니다.”

로저스는 북한 방문을 진심으로 만족해했다.

새로운 미래 투자처를 발견한 로저스의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났다.

북한은 세상에 몇 남지 않은 미지의 보고였다.

넘쳐나는 자원과 기본 교육을 받은 인재들.

이런 환경에서 자본과 기술이 합쳐진다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다.

다만 핵무기 개발로 국제적 고립 상태 놓여 있기에 선택이 쉽지 않았다.

대국들 힘 싸움의 중심지였다.

중국이 세계로부터 북한의 보호자를 자처하면서 속으로는 북한을 통제하려고 했다.

지도자 김정은도 개혁개방으로 인해 권력이 줄어들까 봐 내심 망설이는 눈치였다.

하지만 직접 방문한 결과 더 군침이 더 돌았다.

“또 뵙겠습니다. 언제든 오시면 공화국의 이름으로 환영하겠습니다.”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허수용 외무상이 악수를 건넸다.

위원장의 특별 지시를 받아 로저스를 각별하게 대했다.

폐쇄적인 다른 월가 투자자들과 달리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투자에 개방적인 바비 로저스.

“그래야죠. 곧 좋은 소식 가져오겠습니다.”

손을 마주 잡으며 로저스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비공식적 투자 의향서를 제출해 놓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미국과 남한이 북한과 화해를 한다면 엄청난 이득을 가져 올 계약서 내용.

“공화국의 이름으로 감사합니다.”

고영제 대외 경제상이 웃으며 답했다.

며칠 동안 함께하며 나눴던 대화들은 모두가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내용.

“그럼…… 다음에 봅시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로저스는 자가용 비행기에 올랐다.

낡은 북한 여객기는 좀체 믿음이 가지 않았다.

사사사삭.

로저스가 비행기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드는 북측 배웅객들.

“회장님. 다음 목적지가…….”

비서가 로저스 곁으로 바로 다가왔다.

로저스가 움직이는 한 시간의 가치는 일반인과 비교가 불가능했다.

“중국에 들렀다가 바로 한국으로 가지.”

중요 보고 서류를 받아들며 로저스가 다음 일정을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비서가 바로 움직였다.

“다니엘 장……. 이번에는 만날 수 있겠군.”

엔진음으로 진동하는 비행기 창밖을 바라보며 기대에 찬 눈빛을 보이는 바비 로저스.

그토록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로버트 라이언의 친구 다니엘 장.

무척 어렵게 시간 약속을 잡았다.

***

“바비 로저스라니…….”

부우우우웅.

학교에 가는 길이다.

주아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어서 빠질 수 없었다.

부모님은 먼저 졸업식장으로 이동했다.

졸업식이 있어서인지 겨울 방학 기간임에도 학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한국에 오겠다고?”

바비 로저스가 누구인가.

나의 인생에 로버트 라이언이 없던 지난 회귀 전의 생.

그 시절에 버핏,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자로 이름을 날렸던 인물이다.

물론 지금도 대단하기는 마찬가지.

미래에 대한 확실한 정보도 없이 엄청난 수익을 창출해 냈다.

과거에 그가 한 몇 번의 인터뷰 내용을 본 적이 있었다.

사진 속 그의 모습은 하얀 머리칼의 인상 좋은 미국 할배였다.

그의 1970년부터 1980년까지 4200%의 경이적인 수익률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단기 투자가 아닌 철저한 펀더멘탈 분석 기법으로 저평가 자산에 장기 투자했다.

로저스는 한국과도 인연이 많았다.

저성장과 저출산, 높아져 가는 실업률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 교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외쳤다.

지금 떠올려 봐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세계가 놀랄 정도로 고속성장을 보이던 한국 경제는 미래에 가서 서서히 가라앉는다.

지금부터 외치고 있는 저출산의 저주를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는 데 좀 더 긴 시간이 걸린다.

선진국에 진입하게 되면 찾아오는 망국 병.

결국 대한민국은 2020년 세계 1위의 저출산 국가가 된다.

자고로 사람은 태어날 때 각자가 먹을 복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말이 있다.

절대 그 말은 틀리지 않다.

좋은 국가에서 태어난 이들은 전생에 카르마 포인트를 제대로 쌓은 이들의 환생이다.

그들이 세상에 뿌리는 선업의 복과 인연이 새끼를 치는 것이다.

그 순환의 법칙이 점점 둔감해지다 결국 멈추기 직전까지 가는 대한민국.

그런 대한민국의 실태를 미리 파악한 로저스는 다이나믹 코리아를 위해서 반드시 한반도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그런 바비 로저스가 날 콕 찍어 만나자고 했다.

“만나서…… 손해 날 일은 없겠지.”

회귀 전 증권맨으로 살 때 그가 저술한 책은 꼭 읽어야 할 필독서였다.

장기 가치투자의 대선배는 모든 증권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투자를 진행했다.

스르르륵.

졸업식장 주변에 차가 몰리면서 도로 위에 차가 멈추다시피 했다.

차들이 서로 뒤엉켜 난장판이 된 학교 내 도로.

쿵!

그때 갑자기 뒤에서 느껴지는 충격음과 차체 흔들림.

예상치 못한 접촉 사고가 발생했다.

딸깍.

차문을 열고 나갔다.

괜히 뒷목을 잡고 대단한 충격을 받은 것처럼 행동하는 양아치 짓은 하지 않았다.

뒤에 받은 차는 빨간색 스포츠카.

딸깍.

스포츠카 운전석 문이 열렸다.

그리고 땅에 닿는, 가는 발목이 유난히 돋보이는 빨간 하이힐.

“!!!”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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