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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장. 난 슈퍼 갑이다.(2) (772/1,284)

775장. 난 슈퍼 갑이다.(2)

‘도대체 이 녀석은…… 하아아.’

일신일신우일신(日新日新又日新)이란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한 장태산.

전문구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대면했을 당시에도 적잖이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뭔가 비벼볼 만한 가능성이 농후했다.

두 번째 조우 때에도 잠재돼 있던 희망만큼은 잃지 않았다.

세월의 흐름과 경험이 주는 지혜의 힘에서 결코 밀리지 않는다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숨이 턱 막혀왔다.

빤히 보이는 장태산의 낚시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장태산은 사업에 있어서 그야말로 냉정한 흥정가와 같았다.

엘자와 오정을 엮어 연대를 압박했다.

두 그룹과 달리 연대는 겹치는 사업이 거의 없었지만 그럼에도 애가 탔다.

장태산이 내놓은 보따리는 늘 그랬듯이 흥미진진했다.

끼니도 거른 채 직접 장주시에 내려와 아쉬운 소리를 뱉었다.

과거 독재 정권 시절 당시 청와대 VIP들에게나 해 보였던 행동.

이제 겨우 이십대 중반에 접어든 장태산은 독재자와 다를 게 없었다.

요즘 말로 슈퍼 갑.

속마음과 달리 전문구는 겉으로 드러난 얼굴 표정을 애써 감췄다.

을의 입장은 누가 되었건 고달팠다.

하청 업체들을 쥐락펴락 짜보기만 했던 전문구.

이런 찝찝하고 초라한 기분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냉수 한 잔 드십시오.”

속이 탄다는 말에 물 잔을 건네는 고약한 녀석.

“전문구 회장님 아냐?”

“아니…… 저분이 왜?”

“그 앞에 있는 남자는…… 누구야?”

“연구원인가?”

“처음 보는 사람 같은데…….”

식사 중이던 여러 연구원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장태산을 몰라?’

이곳 연구소 주인이 장태산이라는 사실을 전문구도 알고 있는데 막상 직원들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좌우지간 특이한 녀석이었다.

“내 신혼 첫날밤도…… 이렇게 속이 타지 않았어. 이제 그만 좀 태우게.”

전문구가 다시 재촉했다.

여전히 입가에 미소만 머금고 있는 장태산이 괘씸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판돈이 얼마나 되십니까?”

“판돈?”

“고자룡 회장님이 의외로 강하게 배팅을 하셨거든요.”

“현찰이라면 대한민국에서 오정그룹을 빼면 연대지. 그래 얼마면 되나? 1조? 2조?”

‘고자룡이 써봤자 그 정도가 맥시멈이지. 엘자는 돈 나오는 구멍보다 나가는 구멍이 더 큰걸 내가 모를까. 흐흐.’

전문구 회장의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갔다.

다른 건 몰라도 돈 되는 사업에 배팅하는 것을 즐겼다.

남들이 뭐라 해도 한전 부지에 크게 배팅할 생각까지 갖고 있었다.

공시지가가 1조 5000억에 시장가는 3조를 살짝 웃도는 한전 부지.

전문구가 봤을 때 분명 알짜였다.

연대건설 임원 시절 이미 전문구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입지적 측면에서 어중간한 땅은 두고두고 매력이 없다는걸.

수도권 과밀화를 억제하기 위해서 정부에서 지방으로 공기업들을 이전시켰지만 실제 효과는 미비할 것이다.

미래 인구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부의 예측과 달리 일자리부터 시작해 각종 문화 편의 시설들은 수도권에 더 집중될 것이다.

그중에서도 강남은 요지 중의 요지.

화려함과 편의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강남은 미래에도 크게 매력적인 삶의 공간일 수밖에 없다.

그 점을 생각하고 과감하게 돈을 준비했다.

시점은 몇 달 남지 않았다.

정부에서도 압력이 서서히 들어왔다.

연대자동차 그룹이 쌓아놓은 사내 유보금을 풀라는 것이다.

한전 부지 입찰에 있어 콕 찍어 권고가 내려온 터다.

부채가 제법 되는 한전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한전 부지 매매밖에 없다.

그 일로 연대는 욕을 먹겠지만 전문구는 상관하지 않았다.

앞으로 10년 후면 자신의 선택과 판단이 틀리지 않다는 게 증명될 것이다.

미국 투자 그룹도 길 건너편 잠실을 노리고 있었다.

오정도 한전 부지 옆자리를 꿰찼다.

“연대자동차 그룹이 부자라더니…… 사실인가 봅니다.”

“장 회장도 알다시피 내가 자동차를 잘 팔잖아.”

일전에 만난 자리에서 장태산에게 호되게 질타를 당했던 전문구.

당시 장태산의 우려와 달리 사업이 승승장구하고 있음을 넌지시 강조했다.

아직도 장태산과 이견이 남아 있는 수소 전기차.

전문구는 투자를 멈출 생각이 없었다.

“회장님 사업수단은 저도 인정합니다.”

담담하게 인정하는 장태산.

‘저 녀석…… 기분 상한 건 아니겠지?’

전문구는 순간 움찔 하며 장태산의 눈치를 살폈다.

괜히 잘난 척하다가 노리고 있는 뼈다귀를 놓칠까 봐 전전긍긍했다.

“제가 회장님과 연대를 생각하느라 고민이 많았습니다.”

“어떤 고민 말인가?”

속을 짐작하기 힘든 장태산이다.

KI그룹까지 삼키면 서열을 다투는 대한민국 그룹 몇 손가락 안에 확실하게 들어올 것이다.

“애국 하는 기업과 어떻게 상생할지 말입니다.”

사실 장태산이 던진 사업 계획 덕분에 연대자동차 그룹의 내실이 다져지기도 했다.

연대로템을 비롯한 여러 합작 사업.

국익을 위해 확장되는 사업들은 연대에도 큰 이득이었다.

장태산은 기술 꾀주머니였다.

특히 이곳 장주시 연구단지는 극도로 비밀스러운 곳.

구체적인 연구 성과물들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전문구의 본능이 끊임없이 속삭였다.

장태산을 잡아야 연대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잘 부탁하네.”

다시 겸손모드로 전환하는 전문구.

“엘자는 전부를 던졌습니다.”

“???”

전문구는 그 말을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전부를 던졌다는 엘자.

‘고자룡이?’

의심이 들었다.

짠돌이 고자룡과 장태산이 전하는 말이 쉽게 매치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인가?”

확인을 위해 재차 묻는 전문구.

“말 그대로 엘자그룹을 저에게 던졌다는 말입니다.”

“!!!”

“회장님은 저에게 뭘 내주실 수 있습니까?”

놀라는 사이 직구로 날아든 장태산의 질문.

‘미친!’

농담이 아니라는 게 느껴졌다.

장태산이 원하는 그 무엇.

전문구는 자신도 모르게 손이 파르르 떨렸다.

연대자동차 그룹을 던질 수 없는 노릇이다.

“…….”

전문구의 입술은 굳게 닫힌 채 쉽게 열리지 않았다.

***

전문구 회장의 바들바들 떨리는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나를 만난 직후부터 충격을 받아 모르긴 몰라도 생명이 몇 년은 단축되었을 것이다.

확실히 각인시켜야 했다.

내가 슈퍼 갑이라는 사실.

화끈한 충격 요법을 던졌다.

진실에 부합한 떡밥.

전문구 회장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엘자의 풀 베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이다.

고자룡 회장은 나에게 모든 걸 떠넘기려 했다.

그걸 알기에 가볍게 거절했다.

“걱정 마십시오. 부담스러워서 거절했습니다.”

“……좀 센 것 같네.”

“고자룡 회장님이 의외로 화끈하시더군요.”

“거참…….”

입맛을 쩝쩝 다시는 전문구 회장.

거인은 거인이었다.

금세 표정이 안정을 찾았다.

“이 정도로 판이 큰데도 들어오고 싶으십니까?”

“물론이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리스크가 큰 만큼 이득도 크지 않겠나?”

전문구 회장은 전형적인 상남자였다.

쪼잔한 동생 전문수와 차원이 달랐다.

“리스크 이외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사실 연대에 던질 사업은 큼지막했다.

동시에 형제간에 분란을 일으켜야 성공할 수 있는 사업.

“이방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방원?”

뜬금없는 질문에 전문구 회장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회장님은 그룹을 위해 이방원처럼 살 수 있습니까?”

“…….”

전문구 회장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태종 이방원의 모습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연대그룹을 일으킬 당시 장남으로서 아버지께 엄청난 충성심을 보였던 전문구 회장.

그럼에도 특유의 거친 성격 때문에 이사진의 견제를 받았다.

그 결과 개국공신급인 전문구 회장은 연대 적통 후계자 지위에서 밀려났다.

자동차를 물려받았지만 그룹 핵심인 연대그룹이라는 사명은 동생이 가져갔다.

평생 자존심이 상했던 전문구 회장.

좌절과 분노를 딛고 오늘의 연대자동차 그룹을 일궜다.

피 나는 시간을 통해 작금에 와서는 연대자동차 그룹이 연대의 적통이 됐다.

그러나 여전히 연대그룹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업에 관한 심리적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심장발작으로 사망한 연대그룹 동생과는 냉랭하게 지냈다.

2014년에도 마찬가지.

회장 자리를 차지한 제수씨와 그 일가에게 전문구 회장은 차가웠다.

연대그룹 위기 시에도 적극 나서지 않았다.

“빼앗아야 하는가?”

전문구 회장이 핵심을 짚어냈다.

“하실 수 있습니까?”

도와주지는 않지만 제수씨와 조카들 쪽박은 깨지 않았던 전문구 회장.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어려운 문제군.”

아버지 고 전준영 회장이 유언으로 그들을 보살피라 말했을 것이다.

마음 한편으로 그 유언을 따르고 지키고 싶을 전문구.

“다른 놈들이 먹어 치우기 전에 하셔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나?”

“짐작하고 계시는 곳이 맞습니다.”

“음.”

짧은 신음을 흘리는 전문구.

물러서지 않고 밀어붙였다.

애국하는 데 사사로운 감정은 불필요했다.

모두들 이성적으로 중소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소리치지만 격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기업들은 전부 공룡들밖에 없다.

미국과 유럽, 중국 대기업들은 인수 합병으로 몸집을 키웠다.

인적자원밖에 없는 대한민국은 똑똑한 공룡 몇 마리로 그들 무리와 싸워야만 했다.

양심도 없는 중국과 일본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기업들도 똘똘 뭉쳐야만 한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아주 다르다.

“힘 드시면 포기하셔도 됩니다.”

기회를 먼저 주긴 했지만 전문구 회장만이 해답은 아니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직접 쉽게 진행할 수 있는 사안이다.

다만 그러고 싶지 않을 뿐.

사업적 재능이 탁월한 이들을 앞으로 내세우고 뒤에서 필요한 것들을 조력하며 조종하는 게 편했다.

“다 삼켜야 하나?”

갈등 속에서도 되묻는 전문구.

“아닙니다.”

“다행이군.”

“결심하셨습니까?”

“봐줄 생각이 없는 것 같은데…… 맞나?”

“그렇습니다.”

무능한 사업가는 죄인이나 마찬가지.

전장에서 능력 없는 장수가 선두에 서면 애꿎은 병사들만 죽어나가는 법.

연대그룹의 상황이 딱 그랬다.

사업할 재목과 운이 되지 않는 자가 선장의 자리에 앉아 있으면 사달이 난다.

1999년 50여 개 가까운 계열사들을 5개 핵심 사업업종으로 특화하고 그 외 계열사는 분리해 전문 경영인으로 꾸렸던 연대.

시도는 좋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세계적 경기 불황 속에서 전문 경영인의 경영 철학과 책임에 한계가 따랐다.

유동성 위기를 맞아 알짜 계열사들을 날려버린 연대그룹.

여기 눈앞의 전문구 회장이 땅을 치고 후회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족 간의 정과 의리로 버텨왔다.

“……엘리베이터인가?”

연대그룹에 남아 있는 사업 중 가장 핵심 사업.

“아닙니다.”

“아니라고? 그럼…….”

“상선입니다.”

“!!!”

크게 놀라는 전문구 회장.

“해운은 지금……. 망하기 일보 직전 아닌가? 그런 사업을 떠안으라고?”

세계적 경기 침체의 파고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해운업.

한때는 연대그룹의 주 수익원이었던 연대상선은 현재 누구 봐도 천하의 불효자가 됐다.

“싫으십니까?”

파바바밧.

갈등이 극도에 달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전문구 회장.

“장 회장!!!”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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