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4장. 난 슈퍼 갑이다. (771/1,284)

774장. 난 슈퍼 갑이다.

“회장님…….”

“왜 무슨 일이야?”

“검찰 쪽에서…… 구속집행정지에 대해 난감해하는…….”

“뭐라고? 난감? 이것들이 미쳤나!”

재벌 회장을 비롯해 대부분 돈 많은 경제 사범들이 머물고 있는 서울남부교도소.

오늘도 찾아온 그룹 최측근 접견 변호사를 보며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있던 KI그룹 임주혁 회장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같이 따라온 의사가 의료함에 몰래 담아 들여온 달달한 마카롱을 먹고 있던 손이 멈췄다.

범털이라 불리는 임주혁 회장.

구속된 지 몇 달 동안 교도소 내에서 황제처럼 보내고 있었다.

외부와 차단된 특별 접견실에 놓인 텔레비전에서 최신 영화가 방영되고 있다.

다른 범죄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대우.

입고 있는 수의는 깨끗했고 특별한 명찰도 없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가장 완벽하게 적용되는 교도소.

아무것도 없는 개털들은 좁은 방에서 여럿이 몸을 구기고 밤을 보내지만 범털들은 독방을 차지했다.

수세식 화장실과 푹신한 매트리스와 이불, TV까지 제공 됐다.

그에 더해 특별한 사식과 과일 같은 후식까지 먹을 수 있었다.

의료진도 최고 수준으로 지원 받았다.

접견 변호사와 함께 들어온 사설 의료진은 영양제 주사까지 놔줬다.

개털들은 배가 아파봐야 소화제와 진통제 처방이 다였건만 범털들은 바로 대형 병원으로 이송 됐다.

그리고 이런 범털들은 전문 브로커들과 연결 돼 특별 관리를 받았다.

재벌과 정치인을 전문적으로 케어하고 밖으로 빼내는 전문 브로커들.

검찰과 법원, 청와대와 국회까지 모두 다 아우를 수 있는 거대 권력과도 당연히 연결됐다.

구속된 재벌들을 빼내기 위해서는 적잖은 자금이 소요됐다.

금액 규모가 상상을 뛰어 넘었다.

교도소의 각종 편의 제공 및 형집행정지와 특사까지 브로커들 손에 의해 좌우됐다.

사회적 신분과 범죄 수준에 따라 가격이 결정됐다.

임주혁은 100억을 지불했다.

그 돈은 밖으로 흘러나가 각종 경로를 거쳐 로비자금이 됐다.

그런데 변호사 입에서 기대하던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언제는 좋았어? 돈을 처받았으면 일을 해야지!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여! 나 KI그룹 회장이야! 임주혁이라고!”

아버지 임동철 명예 회장 못지않게 임주혁도 성격이 괄괄했다.

눈 밖에 난 자들은 살인 청부까지 서슴지 않고 진행하는 사나운 자였다.

보통은 몇 십번 감옥에 들어가고 남았을 범죄를 저지르고도 매번 돈으로 사건을 무마했다.

그간과 달리, 제 맘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임주혁이 화를 냈다.

‘개새끼들! 100억이나 처먹었으면 빼내야 할 거 아냐!’

이번에는 제대로 걸려들고 말았다.

횡령과 배임 액수가 수천억 대에 달했다.

생각지 못한 순간 갑자기 터진 사고.

황급히 막아보려 애썼지만 내부 고발자까지 합세하면서 여론이 악화됐다.

어쩔 도리 없이 구속됐다.

몇 달 동안 수감되어 있으면서 임주혁은 미칠 지경이 됐다.

매일 황제 접견이 이루어졌지만 밖에서 마음껏 활보하던 자유와 비교될 수가 없었다.

특히 술과 여자를 한시도 끊지 못하는 성미를 지닌 임주혁 회장.

몇 달 간 반강제로 이루어진 금주와 금욕은 충분히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게 했다.

하지만 고난 끝에 낙이 온다고 끝이 보이고 있었다.

브로커들을 통해 출소를 약속 받았다.

뭐니 뭐니 해도 돈이 가장 좋다는 걸 교도소에 들어와 다시 한 번 뼈저리게 확인했다.

교도소 내에서도 돈으로 안 되는 게 별로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절제하지 못한 난잡한 생활 습관으로 인해 몸뚱이 이곳저곳 성한 곳이 없이 여러 장기가 맛이 갔다.

덕분에 한동안은 병원에서 수감 생활을 대신하기도 했다.

그 뒤 병원에서 진단서를 받아 검찰에 제출했다.

형집행정지에 관해 확답까지 받아 놓은 상태였지만 예기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아버지는 뭐 하시는데?”

임주혁은 아버지 임동철 회장의 안부를 물었다.

자신보다 훨씬 인맥이 넓었다.

이럴 때는 전방위적인 압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 못한 유전자 변형 식품 뉴스로 KI그룹이 십자 포화를 당했다.

그 여파가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임주혁에까지 미쳤다.

“명예회장님 건강이 몹시 안 좋으십니다.”

“왜? 벌써 죽을 때가 됐어? 작은아버지 쓰러지고…… 행복하셔서 기력이 좋지 않아?”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크게 없는 임주혁의 발언.

“그게 아니라……. 마찰이 좀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몸져누우셨습니다.”

“마찰? 무슨 일로?”

‘어떤 새끼가…… 노친네를 건든 거야?’

아버지의 포악하고 잔혹한 성품을 익히 잘 알고 있는 임주혁.

그런 임동철이 스트레스를 받아 누웠을 정도라면 상대가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 의미였다.

괜히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장태산입니다…….”

“뭐라고 자, 장태산? 안아를 날린 그 장태산?”

“네…….”

콰다다당.

임주혁이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순간 의자가 뒤로 넘어졌다.

그만큼 임주혁은 크게 놀랐다.

얼마 전 최측근 임원이 조심스럽게 전해온 내용.

재벌들을 잡아들이는 저승사자라 불리는 장태산이 KI그룹을 상대로 작업에 들어왔다고 했다.

부득이 상황이 여의치 않은 만큼 기본적인 지시 사항만 내렸다.

영여의 몸이라 행동에 제약이 많았다.

다행히 그룹에 대한 지배력은 염려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유전자 변형 식품에 대한 악재가 덩달아 터졌지만 충분히 감수할 만했다.

다만 최대한 몸을 사리며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무대포 같은 임동철과 달리 임주혁은 눈치가 빨랐다.

장태산이 만만치 않다는 것 정도는 진작 파악하고 있었다.

신경을 거슬리게 만들지 않도록 계열사 사장단과 임원들에게 주의를 줬다.

그러나 언제부터 준비했는지조차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갑작스레 터진 사건.

“조 비서, 이 개새끼를…….”

분명 아버지 라인인 조정열 비서가 개입했을 것이라 의심했다.

조 비서를 통한 일들은 임주혁에게까지 보고가 되지 않았다.

그건 아버지 손에서 차단됐다는 뜻.

“……자세히는 모르지만…… 청부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는 내용은 모두 낱낱이 전달하는 측근 변호사.

“처, 청부!!!”

다시 한 번 당황하는 임주혁.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안아와 별 시답지 않은 사건으로 엮이면서 상대를 박살내 버린 장태산의 뒤끝.

“노친네가 뒤지려면 빨리 갈 것이지……. 아오!”

임주혁의 얼굴에 분노의 열꽃이 피었다.

“그리고 사모님과 막내 아가씨도 장태산 가족과 백화점에서 불미스런 일로 엮였다는…….”

임주혁 회장의 처지와 건강 때문에 미처 보고되지 못했던 걸 모조리 밝히는 접견 변호사.

“썅! 이것들이 집안을 말아먹으려고 작정을 했나! 핸드폰 이리 줘! 당장!!!”

“넵!”

다급하게 핸드폰을 건네는 변호사.

띠디디디디.

급하게 번호를 누르는 임주혁.

- 여보세요.

와이프 한선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둘 다 밖에서 뭔 짓 하고 다니는 거야! 니들 죽고 싶어!”

임주혁의 목소리가 벼락처럼 울렸다.

- 여, 여보…….

당황한 한선옥이 전화기 너머에서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기분 나쁘면 손찌검까지 날리는 임주혁.

그가 정말 분노했다.

“닥쳐! 만약……. 그룹에 뭔 일 생기면…… 멍청한 너희 둘 다 가만 두지 않겠어!”

임주혁은 와이프와 딸을 향해 폭언을 퍼부었다.

뚝.

거칠게 종료 버튼을 눌러 통화를 끝내 버린 임주혁.

얼굴에 복잡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위험해. 이럴 때는…….’

감춰진 큰 패를 꺼내 놓을 때임을 직감했다.

띠디디디디.

바쁘게 다른 번호를 찾아 눌렀다.

그리고.

- 누구십니까.

다소 권위적이고 묵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들렸다.

“회장님……. 저 임주혁입니다.”

***

“이거 죽이는구만.”

후루루루루룩.

국물 마시는 소리가 맛깔스럽게 울렸다.

순식간에 공기밥 두 그릇과 육개장 한 그릇을 비워내는 곰 같은 남자.

“건더기도 실하고……. 여기 주방장 우리 구내식당으로 스카웃하고 싶은 생각이 퍼뜩 드는구만.”

냅킨으로 거칠게 입을 닦으며 만족한 표정을 짓는 연대자동차 그룹의 주인.

“식사도 안 하셨습니까?”

전문구 회장은 연구소 앞에 도착한 직후 바로 전화를 했다.

선약도 하지 않고 찾아오더니, 보자마자 대뜸 배가 고프다고 했다.

임윤아는 전문구 회장을 다소 불편해하는 듯했다.

그래서 먼저 연구소 산책을 권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을 보낸 후 마주하게 된 전문구 회장.

“마음이 급해…… 점심도 굶고 왔다네. 장 회장은 모르겠지만…… 나이 먹으면 한 끼만 굶어도 금세 당이 떨어져. ……이제야 살 것 같아.”

뻔뻔함과 차원이 다른 철판 얼굴로 무장한 전문구 회장은 나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잘 웃지 않아서인지 근육이 굳어 웃는 얼굴이 어색했다.

“대단하십니다.”

그 모습에 고개를 내저었다.

전문구 회장의 넉살에 두 손을 들 정도다.

처음 부딪쳤을 때와 달리 많이 편해졌다는 느낌은 들었다.

전문구 회장만의 특별한 친화력이 존재하는 듯했다.

강한 인상과 성품 속에서 남자들만이 나누고 느낄 수 있는 그런 우정의 맛이 느껴졌다.

“내 거 남았지?”

전문구 회장이 은근한 시선으로 물어왔다.

“뭐가…… 말입니까?”

알고 있지만 시치미를 뗐다.

“샌님 고자룡이는 이것저것 계산하다 살 점 몇 덩어리 얻어 떨어져 나갔을 것이고……. 임성철 회장 막둥이는 아직 어려 소화할 수 있는 양이 적을 테니……. 뼈다귀는 남아 있을 거 아냐. 그것도 실하게 살 점 붙은 것들로 말이야.”

“…….”

전문구 회장은 거침없고 당당한 남자였다.

이 자리에 없었음에도 단박에 상황 돌아가는 것을 꿰뚫었다.

연대그룹이 쪼개진 상황에서도 자동차 그룹 하나로 재계 다섯 손가락 순위 안에 든 장본인.

지금 보이는 특유의 뚝심 경영이 제대로 먹힌 셈이다.

“남아 있는 뼈다귀에 붙은 살점이…… 많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과감하게 자신의 욕심을 드러내는 전문구 회장이 거북하지 않았다.

속마음을 감춰 놓고 겉모습을 바꾸는 약아빠진 사업가들보다 나았다.

인간은 고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충실할 때 그에 보탬이 되는 에너지가 폭발하는 법.

전문구 회장의 온몸에서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장 회장. 우리 같이 애국하는 사람들 아닌가. 좋은 건 서로 나누자고. 소문 파다하게 났어. 장 회장, 기술 부자라고 말이야.”

핵심만 딱 짚어내는 특유의 감각.

내가 애국하고자 하는 뜻을 잘 해석하고 있었다.

더불어 차가운 피가 흐르는 냉정한 투자자라는 사실은 아직 모르는 눈치였다.

“좀 늦은 것 같은데…… 이거 어쩌죠?”

난 슈퍼 갑이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올라선 자리.

회귀 전 삶이었다면 이 상황이 낯설고 두려웠겠지만 이번 생에서는 아니다.

겸손한 동시에 당당했다.

내가 내 스스로 지금의 자리를 냉철하게 자각하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부터 흔들리는 법.

내가 흔들리거나 쓰러지면 수십만 명의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전달된다.

“뭘 줬는지…… 알 수는 있나?”

전문구 회장은 포기를 몰랐다.

두 눈동자 깊은 곳에서 일렁이는 이번 일에 대한 욕심.

“공기 정화 시설과 태양광 사업입니다.”

“흐음…….”

선뜻 와 닿지 않는 품목인 듯 전문구 회장은 신음을 흘렸다.

자동차 사업을 핵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가 두 가지 사업을 연결 짓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살점…… 몇 개 안 됩니다. 그러니 걱정 마십시오.”

다만 발라먹을 살점이 아주 많다는 게 문제.

사업이 활성화 된다면 자동차 사업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어마어마한 수익을 창출하게 된다.

“……찝찝하다고 말하면…… 실례인가?”

“전혀 아닙니다.”

“허어. 답답하구만.”

더 이상의 정보는 차단했다.

엘자와 오정에 분배한 기술은 연대에 줄 수 없다.

현명한 투자자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법.

“급하게 오셨는데…… 빈손으로 보낼 수도 없고……. 저도 답답합니다.”

미끼를 살짝 던졌다.

반짝!

전문구 회장의 눈빛이 달라졌다.

바로 미끼임을 알아채고 은근히 미소를 지었다.

“장 회장. 우리 바다 보면서 같이 술도 마신 사이가 아닌가. 솔직하게 말해 보게. 내가…… 장 회장 앞에서는 슈퍼 을이 되겠네.”

그냥 ‘을’도 아닌 뭔가 숨겨져 있는 슈퍼 을.

역시 프로 냄새가 났다.

나도 씨익 웃었다.

거래는 언제나 공평해야 하는 법.

“제가 이래서 회장님을 존경합니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슈퍼 갑인 것은 분명하지만 절대 겸양을 잃지 않았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

갑과 을도 언젠가는 낮과 밤처럼 자연스럽게 입장이 바뀌는 게 하늘이 정한 이치였다.

“존경은 무슨…….”

대놓고 하는 칭찬, 싫어하는 사람은 세상에 별로 없었다.

전문구 회장의 얼굴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회장님과 어울리는 사업이 있긴 있는데…….”

살짝 뜸을 들였다.

구수한 밥도 잠시간의 뜸 들이는 밀당이 필요한 법.

꿀꺽.

참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키는 전문구 회장.

지그시 그의 두 눈을 바라봤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어서 마, 말해 보게. 속 타 죽겠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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