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3장. 공평한 경쟁.(3).
“장태산…… 장태산……. 이 찢어 죽일 개새끼를……. 케에에에……. 켁…… 퉤.”
눈이 벌겋게 충혈된 임동철 회장이 검은 가래를 뱉어냈다.
밤새 악몽에 시달리느라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퀭한 눈동자는 알 수 없는 분노로 활활 타올랐다.
손은 부들부들 떨렸고 입술에는 다 뱉어내지 못한 가래가 끈적하게 묻었다.
온몸에서 풍기는 악독함을 감추지 못하는 임동철.
철두철미하게 준비한 완벽했던 살인 계획이 실패했다.
하늘이 도운 듯 운 좋게도 목숨을 부지한 장태산은 무사히 본가로 갔다.
“회장님, 고정하십시오…….”
비서 조정열이 조심스럽게 임동철을 달랬다.
그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처지였다.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게 흘러갔다.
‘멍청한 돼지 같은 새끼들……. 일을 그렇게 망쳐놓고 도망을 가?’
청부살인을 실행하던 조폭 놈들이 사라졌다.
평소 연락하던 윗선들 모두 연락을 피했다.
곧바로 뒤를 알아봤지만 이미 놈들이 쓰던 사무실은 텅텅 빈 채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허접한 것들만 남아서 강릉을 지키고 있었다.
“고정? 크크크크크……. 조 비서……. 너도 늙었다. 나처럼 갈 때가 됐어……. 케에에엑……. 퉤에에!”
극도의 스트레스로 엉망진창의 몰골이 된 임동철.
주르륵.
이미 술에 만취해 손에 들고 있는 위스키가 흘러내리는 것도 몰랐다.
“술! 술 가져와!!!”
와장창창창.
임동철은 빈 잔을 힘껏 내던졌다.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분을 삭일 방법이 없었다.
“회장님 기회는 다시 올 겁니다. 고정하십시오. 이렇게 술을 드시면…….”
조정열은 뒷말을 뱉지 않았다.
노쇠하고 연약한 노인네 고집이 갈수록 세졌다.
“왜 뒈질까 봐 걱정돼? 케에…….”
숨을 헐떡거리며 독사 같은 눈빛으로 조정열을 노려보는 임동철.
섬뜩함에 조정열은 자신도 모르게 목이 짧아졌다.
임동철의 광기는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가족도 맘에 들지 않으면 총으로 쏴 죽이려 했던 그였다.
임동철 말 한마디에 직간접적으로 죽어나간 자들이 십여 명은 됐다.
그 대상이 자신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지금도 별장 벽에 버젓이 걸려 있는 사냥용 엽총.
경찰서에 따로 신고도 안 된 멧돼지 사냥 때 쓰는 총이다.
띠리리리리리릿.
그때 조정열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누구십니까?”
모르는 번호였지만 조정열은 혹시 몰라 재빨리 고개를 돌려받았다.
특별히 관리하는 스마트폰이라 번호를 아는 자들이 드물었다.
급한 일들이 연속 터지는 상황이라 밖에 나가서 받을 만한 여건도 되지 않았다.
- 조 부장님. 접니다.
“!!!”
전화를 걸어온 상대의 목소리에 조정열은 깜짝 놀랐다.
시간이 적잖이 흘렀음에도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소리.
- 그새 잊으셨습니까?
능글맞은 음성이 조정열의 귀에 착 감겼다.
“너, 너 뭐야! 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조정열이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 그게 그렇게 궁금합니까? 나 오정의 장한수요. 내가 모르는 게 있을 것 같습니까.
저음으로 낮게 울리며 조정열의 속을 긁는 음성.
“야! 장한수!”
조정열이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한때 본인이 짓밟았던 놈.
지금은 상황이 역전 됐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제게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고 애걸했던 장한수였다.
- 장한수? 조정열이……. 너 많이 용감해졌다. 크크크.
지금까지는 재계 모임 등에서 서로 알아서 피해왔기에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임동철과 임성철 만큼이나 과거 은원이 많았던 조정열과 장한수.
“이 새끼가…….”
으드득.
이를 바득바득 가는 조정열.
오정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임동철을 밀어낸 진정한 장본인.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조정열은 머리 뚜껑이 날아갈 지경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장한수에 밀렸다.
주인들을 위해 전투에 투입되었던 2인자들의 진검 승부.
조정열은 임동철과 함께 오정에서 보기 좋게 쫓겨났다.
그때 맛봤던 패배감은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지독했다.
- 긴 말 할 것 없고. 노인네 바꿔봐.
“뭐…… 라고?
- 그럼 다 죽어가는 영감탱이를 회장님이라고 불러주기를 바라나? 크크.
장한수의 비아냥은 계속됐다.
“장한수…… 그놈이면……. 줘봐.”
임동철이 흔들리는 팔을 뻗으며 손을 내밀었다.
“회장님, 이놈을 상대할 것까지는…….”
“주라니까!”
어디서 힘이 생겼는지 갑자기 큰소리로 호통을 치는 임동철.
조정열은 못 이기는 척 스마트폰을 넘겼다.
“나다…….”
- 아이고. 회장님. 잘 지내셨습니까. 직접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하는데…… 제가 통 시간이 나지 않아…… 죄송할 뿐입니다. 흐흐흐.
장한수는 목소리를 바꿔 너스레를 떨었다.
일순간 소름끼치게 일그러지는 임동철의 얼굴.
“버러지 같은 새끼……. 너 죽고 싶어? 이런 개 썅…….”
- 어이. 임동철이!
그때 수화기 너머로 전혀 다른 사람처럼 터져나온 장한수의 거친 목소리.
“어…… 이?”
임동철은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
과거에는 가랑이 밑에 엎드려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숨도 못 쉬던 놈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보란 듯이 기어올랐다.
- 노인네가 갈 때 됐으면 조용히 가줘야지……. 왜 이렇게 미련이 많아. 그래서 당신 새끼들이 다 그 따위인 거야.
“너…… 너…….”
급격하게 혈압이 치솟는 임동철.
얼굴이 붉다 못해 검게 변했다.
임동철의 가장 아픈 손가락인 자식들 문제를 장한수가 사정없이 건드렸다.
- 길게 말하면 피차 피곤하니까 간단하게 말할게.
장한수는 목소리를 한껏 낮게 깔았다.
- 임동철 씨……. 나의 주인님을 앞으로 건들면……. 강원도 깡패 새끼들처럼 동해안 물고기 밥 되는 수가 있어. 그러니까 곱게 저승길 가고 싶으면 남은 시간 조용히 살아. 이제 갈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반성 비슷한 거라도 좀 해야지. 흐흐흐흐흐.
과거에 당했던 서러움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는 장한수.
무서운 게 없는 사람처럼 거침없이 내뱉었다.
새로 모시게 된 주인님의 힘이라면, 임동철 따위 정도는 깜도 되지 않았다.
“서, 성철이가…… 깨어났냐?”
주인이라는 말에 임동철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물었다.
- 임성철 회장님 말고.
“그럼…… 누구!!!”
- 너도 알고 있잖아……. 장태산 회장님~
“커어…… 컥.”
장태산이라는 말에 임동철은 숨이 턱 막혀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장한수의 변심과 새 주인의 이름.
“회장님!!!”
심상치 않은 임동철 회장의 움직임에 조정열이 다급하게 달려왔다.
- 똑똑히 들어……. 임동철 너와 KI그룹은 내가 날린다. 크하하하하하하하.
뚝.
미친 듯 광소를 터트리며 장한수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털썩.
바닥에 떨어지는 스마트폰.
“자…… 장…… 태……. 케르르르르…… 케에에엑.”
목에 가래가 걸린 듯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눈이 뒤집어지기 시작한 임동철.
“회장니이이이이임!!!”
***
“태산 씨 여기…… 구내식당 맞아?”
“맛있어?”
“세상에……. 이런 맛집이…….”
연구소 투어 중에 점심식사 시간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영농 회장 일로 읍내에 나가셨고 어머니도 서울에 가는 날이었다.
간단하게 식사를 하기 위해 연구소 구내식당에 왔다.
넓은 단지인 만큼 곳곳에 구내식당이 나뉘어 운영됐다.
뷔페식을 비롯해 한식, 일식, 경양식, 베지테리언들을 위한 식당 등등.
먹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았다.
인근 농가들과 유기농 식자재 납품 계약을 맺었다.
요리사들도 대부분 호텔급 출신으로 뽑아 배치했다.
삶 전반에 깔린 모든 행동은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
식도락의 즐거움을 연구소 직원들에게 허락했다.
오늘 우리가 찾은 곳은 한식 식당.
암소 한우 뼈를 제대로 우려낸 육수를 베이스로 한 육개장이 나왔다.
통통한 지리산 고사리와 쫄깃한 토란 줄기, 먹기 좋게 손질된 홍두깨살, 몸에 좋은 대파까지 듬뿍 들어간 보양식.
국물까지 다 마신 임윤아가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고자룡 회장과 고연지는 먼저 연구소를 떠났다.
내가 준 두 가지 상품만으로도 부녀는 무척 배가 불렀다.
다른 기획 상품들은 개방하지 않았다.
아직은 엘자에 대해 믿음이 부족했다.
고자룡 회장은 나에게 엘자를 가져가라 선뜻 말했지만 바로 거절했다.
기회를 몇 번 줬지만 고자룡 회장은 욕심에 눈이 가려져 기회를 잡아채지 못했다.
이것저것 저울질하고 계산기를 두들겨 보고 난 뒤 받아들이는 건 상도의가 아니었다.
“커피?”
“구내식당에 바리스타라니…….”
“아이스?”
“드립 커피로 마실게.”
“오케이.”
구내식당에서 직원들에게 제공되는 모든 게 무료였다.
전문 바리스타들이 후식까지 책임지고 있는 최고의 환경.
전문 제빵사들이 만들어 낸 달달한 케이크와 마카롱, 과일들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누구나 그리는 꿈의 직장.
임윤아는 식판까지 들고 남은 음식을 해치웠다.
“오늘 드립 커피로 추천할 원두는 뭐죠?”
귀여운 모자를 쓰고 있는 여자 바리스타에게 물었다.
“며칠 전 볶아낸 하와이 코나가 맛이 좋아요. 풍부한 산미와 고소한 견과류, 고급스런 와인 향이 날 겁니다.”
두 말 하면 잔소리, 친절한 직원.
“두 잔 부탁드립니다.”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바리스타들도 모두 정직원으로 채용된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들에게도 최상급 원두가 제공됐다.
드르르르륵.
곧바로 원두를 갈아내는 바리스타.
또로로로록.
드립 종이에 간 커피 가루를 채우고 일정한 박자에 맞춰 뜨거운 물을 부어 커피를 내렸다.
“직장은…… 마음에 들어요?”
“여기요?”
“네.”
“환상이죠~ 엄마가 죽을 때까지 퇴사하지 말래요.”
바리스타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바리스타들에게도 직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주택이 제공됐다.
여러 복지 혜택은 차별 없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집행됐다.
모두 다 기회를 제공받는 행복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꿈의 세상.
그게 내가 꿈꾸고 그리는 장주 혁신 도시의 모습이었다.
“다 됐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수고하십시오.”
자주 방문하지 않는 탓에 내가 이곳의 주인인 줄 모르는 바리스타.
그래서 더 좋았다.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잠깐의 자유를 누렸다.
“마셔.”
“향기가…… 끝내줘.”
커피 맛을 아는 임윤아가 진한 향만으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마음에 들면…… 이곳에 취직해.”
“정말?”
“면접에 통과하면.”
“뭐야? 나도 면접 봐야 해?”
“임윤아 씨, 우리 공과 사는 구분해야죠~.”
“나빴어. 태산 씨가 오정 면접 보면 내 자리라도 빼 줄 수 있는데.”
“마음만 받을게.”
가볍고 산뜻한 마음으로 커피를 마셨다.
식당 한켠에 마련된 카페테리아.
넓은 창밖으로 연구소 정원과 뒷산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왔다.
“엘자…… 아깝지 않아?”
“전혀~.”
“그래. 인정할게. 오정도 싫다고 했는데…….”
방긋 웃는 얼굴로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임윤아.
“필요하면 말해. 엘자…… 넘겨줄게.”
“됐어. 난 오정도 벅차.”
고자룡 회장이 들었다면 서운해 할 만한 대화가 오갔다.
띠리리리리리리.
그 순간 울리는 스마트폰.
상대를 확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장태산입니다.”
- 장 회장. 아직 내가 맛볼 뼈다귀 하나 정도는 남아 있소?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