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70장. 공정한 경쟁. (767/1,284)

770장. 공정한 경쟁.

‘이게 다 뭐야!’

영화를 보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놀란 관객의 시점 같았다.

고자룡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입을 쩍 벌렸다.

장태산의 종합 연구소는 여타 다른 연구소와 확연히 달랐다.

대한민국 내 대부분의 연구소들은 실용성을 추구했다.

엘자 연구소도 그랬다.

외관부터 안정을 추구하는 하얀색이나 아이보리색 페인트가 주를 이루었다.

물론 내부는 공간 확보가 뛰어난 기본 사각형이나 직사각형 디자인을 택했다.

예술창작품을 창조해 내는 장소가 아닌 만큼 안정적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게 중점을 뒀다.

그러나 장태산의 종합 연구소는 그간의 관념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첫째로 한국미를 상징하는 한옥을 통해 우아함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건축됐다.

대표 관광명소인 경복궁의 다른 버전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대목장이 공을 들여 완공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외관은 아름다움이 정제되어 있었다.

하지만 내부는 현대미를 극대화해, 전혀 상반된 분위기를 나타냈다.

그렇다고 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고자룡은 인공지능으로 연결된 자율주행차를 보면서도 경탄했다.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자동 운행 장치는 앞으로 10년 후에나 예견되고 있던 모델이었다.

단순하게 시스템 연결에서 끝나지 않고 사물과의 소통이 가능한 진정한 커넥티드 카.

내심 충격을 받았던 고자룡은 다시 한 번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에너지기술연구원이라는 안내문이 붙은 공간의 문이 열렸다.

뭔가 밖에서 확인했던 것보다 더 대단하고 고급진 그림을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을 빗나갔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생각지 못한 기계 시설이었다.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중앙 현관에 자리 잡고 있는 산업구조물.

그 밖에도 여러 가지 기기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사이사이에 하얀 연구 가운을 착용하고 있는 남녀 10여 명이 바쁘게 움직이며 뭔가 테스트를 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고가의 테스트 장비가 분명한 기기들이 전자불빛을 뿜어냈다.

특수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굴뚝도 눈에 띄었다.

“테스트 결과 나왔어?”

“PM0.01 수준입니다.”

“공기보다 깨끗하네?”

“이산화탄소가 촉매장치를 통해 99.9% 산소로 전환됐습니다.”

“오늘 화로에 뭐가 투입됐지?”

“밭에서 수거한 저분자 합성수지입니다.”

‘지금 무슨 소리들을 하는 거야?’

중년의 남자와 젊은 여성 연구원의 짧은 대화였다.

고자룡은 그들의 대화를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공기가 청정한 실내.

말을 듣고 보니 산소량이 많은 것 같았다.

석유를 원료로 한 저분자 합성수지는 말 그대로 악성 폐기물이었다.

그런 물질을 화로에 투입해 산소를 얻어냈다는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장 회장……. 이게 뭔가?”

고자룡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한옥 연구소 안에 버젓이 놓여 있는 특이한 기계설비들.

“화력발전소와 폐기물 에너지 발전소에 들어갈 전기집진기를 연구하는 시설입니다.”

“전기집진기라면…… 초미세먼지를 제거할 수 있는 시스템 아닌가.”

“맞습니다.”

“흐음…….”

장태산의 설명에 고자룡은 전기집진기를 천천히 살폈다.

환경오염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대두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했다.

언제부터인가 중국에서 불어오는 미세먼지에 대한민국 국민들도 화들짝 놀랐다.

과거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한국 공장들이 배출해 내는 오염물질 양과 차원이 다른 중국.

특히 가을과 봄 사이 중국 쪽에서 불어오는 양자강 바람에 전 국민이 몸살을 앓았다.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환경오염 따위는 과감히 무시해 버리는 중국 정부.

그런 중국 덕분에(?) 국민들 관심사가 환경에 쏠리고 있었다.

‘전기집진기가…… 돈이 될까?’

고자룡은 내심 의문에 빠졌다.

에너지기술연구원이라는 거창한 이름과 달리 사업적으로는 큰 매력 포인트가 없었다.

“현재 화력발전소나 폐기물 에너지 발전소, 쓰레기 소각장 같은 산업 분야에 사용되는 미세먼지 포집기는 싸이클론 방식입니다.”

장태산의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안타깝게도 기존 방식은 10마이크로미터 이하 크기의 초미세먼지는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에 반해 겨울철이나 여름철 전기 사용량이 급증할 시에 화력발전소를 풀가동하게 됩니다. 그때 발전소에서 배출하는 황산화물이 초미세먼지의 재료가 됩니다.”

연구소 직원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장태산의 설명은 자세했다.

세 사람의 눈을 번갈아 맞춰가며 설명을 이어갔다.

“세계 기후 변화가 악순환에 빠지고 있습니다, 바다는 매일 3000만 톤이 넘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면서 산도 농도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온실가스로 인해 시베리아 영구 동토가 녹아내리면서 엄청난 메탄가스가 대기권 안을 채우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중국, 미국 같은 최대 배출 국가들은 기후 변화에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뿜어내는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가 앞으로 50년 후의 환경을 좌우한다는 걸 모르는 겁니다. 지금 자국만 편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전 인류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는 걸 외면한다는 말이 맞을 겁니다.”

장태산은 환경운동가 같았다.

그의 조용한 열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이게 뭐가 문제냐고 생각하겠지만……. 정말 심각한 일입니다. 툰드라의 얼음이 녹으면 빛 반사량이 줄어들고 메탄가스는 왕성하게 배출 돼 지구 온난화는 가속화됩니다. 해수가 이산화탄소를 품으면 심층의 메탄 하이드레이드가 대기 중으로 방출됩니다. 이것 또한 온난화를 발생시킵니다. 이런 순환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나비 효과 따위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당장 산호초가 죽고 슈퍼 독감 같은 질병이 발병하고 해류 순환이 느려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50년 안에 어류 자원의 30%, 포유로 20%, 식물의 70%가 멸종 위기에 처합니다. 그럼에도…… 인류는 자연이 언제나 인간들에게 관대할 거라 착각합니다. 미지근한 물에 몸을 담그다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자연이 죽어가고 있건만…… 그 문제 앞에서 인간들은 죄의식이 없습니다.”

비장함까지 느껴지는 장태산의 설명.

“그런 여러 가지 이유로 지구와 인간 생명 유지를 위한 생태계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 보시는 집진기는 이산화탄소 배출 제거의 핵심입니다.”

‘이산화탄소 제거…….’

고자룡은 뭔가 느낌이 왔다.

생각지 못한 경제 분야 쪽 이야기였지만 장태산의 설명에 어느 때 못지않게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저탄소 녹색 성장 정책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유럽 선진국들은 녹색 경제 정책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미래는 녹색 도시 생태학, 자기 부상열차, 전기 자동차, 탄소 포집과 재사용, 태양열 발전 등이 좌우할 것입니다.”

“태산 씨……. 지금 그 설명은…… 저 기계와 관련이 있는 거죠?”

임윤아가 장태산의 설명을 듣다가 물었다.

고자룡 회장과 연구소 직원이 있는 자리이니만큼 말을 조심했다.

“물론입니다.”

“장 회장님, 조금 전 연구원님들이 나누는 얘기를 듣다보니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전환한다고 하는 거 같은데…… 그게 가능한 얘긴가요?”

고연지도 궁금하기는 마찬가지.

“넵.”

“정말요?”

고연지가 진심으로 놀라며 물었다.

“구태훈 수석 연구관님. 여기 손님들께서 산소 전환이 맞느냐고 물으시는데…… 어떻게 답할까요?”

장태산이 수석 연구관을 불렀다.

“보는 것만 믿어라. 이게 답입니다!”

구태훈 연구관이 웃으며 큰소리로 답했다.

“들으셨죠. 저 기계는 미세먼지를 제거할 뿐만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전환해 주는 기계입니다. 뭔가 느낌이 오지 않나요?”

장태산이 고자룡 회장을 바라봤다.

“…….”

느낌은 오지만 핵심을 잡아내지 못하고 있는 고자룡.

“제가 중요한 정보를 하나 말씀드리죠. 지금 유엔에서 여러 국가들이 모여 내년에 중요한 협약 체결을 위해 준비 중입니다. 그 협약으로 인해 국가와 대형 기업들은 골치가 좀 아파질 겁니다. 왜 그럴까요?”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듯한 장태산의 발언.

“저 기계와 관련된 협약이겠죠?”

임윤아가 역시 센스가 있었다.

장태산은 투자자이자 사업가였다.

첫째, 돈이 안 되는 일에 투자를 했을 리가 만무했다.

“당연하죠.”

“이익 규모가 크나요?”

고연지가 물었다.

열두 고개를 넘어가는 듯한 질문.

“이익이라……. 지금도 유럽 쪽에서는 시장이 큽니다. 그리고 내년 이후에는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한국 기업도 예외가 아닙니다.”

장태산의 알쏭달쏭한 답변.

‘이산화탄소와 산소……. 미세먼지 집진기…….’

미세먼지 집진기만으로도 어느 정도 수익을 가져올 수 있는 사업이긴 했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공기의 쾌적함을 요구하는 국민들 염원을 거스를 수 없었다.

화력발전소와 폐기물 발전소, 소각장, 공장 미세먼지 등만 해결해도 엄청난 사업이 될 것이다.

‘뭔가 더 있는데…….’

고자룡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 무언가를 낚아채기 위해 애를 썼다.

회장이 되면서 아래에서 올라오는 프로젝트를 보고 받는 데만 익숙해져 있었다.

오늘처럼 누구가에게 리드돼 스스로 생각하며 판단해야 하는 일이 낯설었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다.

장태산이 제시한 두 번째 방법.

엘자를 넘기지 않고 사업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도깨비 질문의 답을 찾아야 했다.

“팁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웃는 얼굴로 쳐다보던 장태산이 초등학생 같은 표정의 세 사람을 바라봤다.

“유럽에서는 이미 2005년부터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여러 문제점을 해결하고 3기에 접어들고 있지요.”

“…….”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하는 세 사람.

“미래 기업들은 환경 사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전기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바로 환경입니다.”

장태산의 은근한 질책이 이어졌다.

“미안하지만…… 장 회장, 내 어리석음을 직접 깨트려주게. 정확히 어떤 시장인지 짐작할 수가 없네.”

고자룡이 자신의 무지함을 자인했다.

“저도…… 알려주시면 열심히 공부할게요!”

오정 경영에 뛰어든 임윤아도 열정을 보였다.

“제가 공부라면 한 공부합니다!”

고연지도 밀리지 않았다.

장태산은 여러모로 바쁜 남자가 분명했다.

그리고 이곳에 지금 오정과 엘자의 핵심 인물들이 와 있었다.

엄청난 사업적 특혜가 주어질 게 뻔했다.

고연지는 진심으로 욕심이 생겼다.

오정의 임윤아에게 결코 밀리고 싶지 않았다.

일과 사랑, 그 어떤 것에도.

“탄소 배출권.”

의외로 담담하게 대답하는 장태산.

“???”

아직 이해가 덜 된 세 사람.

“2015년, 내년에 파리기후협약이 체결될 겁니다. 산업화 수준 대비 2도 이상의 평균 기온 상승을 막기 위해 온실가스는 단계적으로 감축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협약에서는 배출 허용량에 맞춰 감축 목표를 달성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징벌을 피하기 위해서는 탄소를 사와야 합니다. 그게 바로 탄소 배출권 거래제입니다.”

명쾌하고 확신에 찬 듯한 장태산의 발언.

“아!”

“아…….”

“하아.”

세 사람의 입에서 탄성이 동시에 터졌다.

우매한 머리가 확 맑아지는 듯한 깨달음의 탄성이었다.

“허용 배출을 초과한 국가와 기업은 잉여 배출권을 구매해야만 합니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OECD 국가 중 7위입니다. 2020년까지 현 배출치보다 30% 감축 목표가 할당될 겁니다. 그리고 내년 1월에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처음으로 실시하게 됩니다. 그게 무슨 의미인 줄 아시겠습니까?”

“!!!”

고자룡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엘자그룹 공장들은 대표적인 탄소 배출사업장이다.

LCD 공장은 생각보다 많은 탄소를 배출했다.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여러 차례 보고는 받았지만 여러 사업에 치여 크게 염두에 두지 않았다.

“내년 배출권 거래제가 시작되면 수요에 비해 월등하게 공급이 부족하게 됩니다. 대규모 화력발전소와 공장 기계 설비를 한순간에 뜯어 고칠 수는 없습니다. 이때 시장을 선점하게 된다면…….”

장태산은 뒷말을 잇지 않았다.

밥을 떠서 먹여주는데 씹지도 못한다면 사업할 자격이 없었다.

“EU-ETS는 정착기에 접어들었습니다. 초기 투자 자본이 많이 들어갔지만 경제가 성장하며 동시에 온실가스는 주춤하게 되었습니다. 그 혜택으로 앞으로 유럽은 탄소배출권 시장을 주도하며 엄청난 이득을 취할 것입니다. 그런 황금알을 낳는 시장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기업인 자격이 없는 것이겠지요.”

장태산이 고자룡을 정면으로 바라봤다.

“엘자 LCD 공장은 내년에 배출권거래제 할당 대상 업체로 지정될 겁니다. 그 전에 설비에 투자하고 감축사업을 시작하면…….”

장난스럽게 빙긋 웃으며 오른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내는 장태산.

꿀꺽.

고자룡이 침을 삼켰다.

엘자 사업장이 문제가 아니었다.

저 설비가 들어가는 사업장에 투자를 하면…….

‘대박이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화력 발전소와 굴뚝 공장 배출량만 계산해도 엄청난 규모였다.

“앞으로 중국도 반강제적으로 시장에 참여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어지는 사업 설명.

‘멋있어!’

임윤아는 장태산의 선견지명 넘치는 사업 수단에 감탄했다.

언제나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움직이는 장태산의 행보.

“내가 구입하겠네! 장 회장, 저 물건! 특허권 나에게 팔게!!!”

고자룡의 목소리가 뚝심 있게 쩌렁쩌렁 울렸다.

절대 놓칠 수 없는 미래 기술과 사업.

“경쟁은 공정해야죠. 오정에서 구입하겠습니다! 최고 가격으로!!!”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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