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9장. 정신교육.(5).
“아이씨……. 짜증나!!!”
엄마와 함께 뒷좌석에 앉은 임서라가 잔뜩 짜증이 나 투덜거렸다.
VIP대기실에서 큰소리 빵빵 치던 모두가 대책 없이 나가 떨어졌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
장태산의 이름을 들은 직후부터 아예 입을 다물었다.
생각이 많은 듯 잔뜩 찡그린 얼굴이다.
‘도대체 그 자식이 뭔데?’
임서라는 장태산의 정체를 아예 짐작도 하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전직 검사장급 변호사에게 욕까지 날렸다.
리앤장 수석 변호사는 장태산에게 고개까지 숙였다.
백화점 직원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대표라도 되는 듯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엄마도 결국 마지막엔 쓰러질 뻔했다.
“엄마! 그 자식 그냥 놔둘 거야?”
임서라가 눈을 감고 이마를 짚고 있는 한선옥을 흔들며 물었다.
“입 좀 닥치고 있어!”
“어, 엄마.”
처음 듣는 엄마의 거친 말에 임서라는 순간 얼어붙었다.
집에서 얼굴 보기 힘든 아빠를 대신해 무한 사랑으로 자신을 키워온 엄마.
자식들에게 유독 관대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모든 걸 해결해 주던 든든한 엄마 한선옥.
그런데 지금은 평생 본 적 없는 모습으로 화를 내며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했다.
“서라야. 잘 들어.”
낮은 음색의 한마디.
한선옥은 임서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
임서라는 아직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엄마를 봤다.
“KI그룹이 잘나가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보다 잘난 놈들이 세상에는 많아. 오정처럼 말이야.”
차분하게 설명을 이어가는 한선옥.
“응…….”
“장태산도 그런 놈들 중 한 놈이야. ……너 동성이 알지?”
“동성이? 오동성?”
“그래.”
“내 친구였잖아.”
과거형으로 일축해 말하는 임서라.
약에 취해 거리를 뛰어다니던 동영상이 풀린 직후부터 그를 볼 수 없었다.
뭔가에 홀린 듯 이후 집안까지 완전히 망해 넘어져 버렸다.
한때는 눈이 맞아 뜨거운 밤을 보내기도 했던 사이였지만 이제는 지우고 싶은 과거이기도 한 존재.
“오동성 집안을 박살낸 게 누군지 알아?”
“…….”
“장태산, 아까 그 자식이다.”
“지, 진짜?”
임서라는 심장이 바닥으로 뚝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오동성네 집안이 쫄딱 망한 얘기로 안주를 삼아 친구들끼리 많이 웃기도 했다.
남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데서 온 행동이었다.
갑자기 보이지 않는 공포가 엄습해 왔다.
“사실이야. 장태산은 청와대도 못 건드려. 동룡그룹이 외가인데 그놈이 박살냈어. 그 정도로 잔인한 놈이 장태산이야.”
“아…….”
후회가 밀려왔다.
작은 질투가 불러온 엄청난 실수는 곧바로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어 버렸다.
마지막에 앞을 막아섰던 건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는지도 몰랐다.
그 기회마저 다 날려 버렸다.
하물며 닥치라고 소리까지 쳤다.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겪게 된다. 눈치를 배워야 해. 없는 것들은 밟아도 되는데……. 우리와 비슷하거나 좀 더 강한 자들과는 시비를 만들지 마.”
임서라의 머리칼을 매만지며 한선옥은 친절하게 남은 설명을 이어갔다.
나름 인생 교육을 시키는 자리였다.
“미안해……. 나 때문에…….”
“괜찮아. KI그룹은 오정과 달라. 할아버지가 든든하게 버티고 있잖아. 오정도 우리를 어떻게 못하는데…… 장태산이라고 별 수 없을 거다. 그러니까…… 윽.”
자상하게 딸을 달래던 한선옥의 얼굴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꾸르르르륵.
그리고 갑자기 한선옥의 복부가 꿀럭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으으읍!”
한선옥은 갑작스런 복통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엄마!!!”
임서라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했다.
“윽!”
하지만 그것도 잠깐.
꾸르르르르르르르륵.
한선옥보다 더 심하게 임서라의 배가 꿀렁거렸다.
“악!”
임서라 역시 배를 붙들고 비명을 질렀다.
후두둑.
금세 이마에 맺히는 식은 땀.
“차……. 차 세워!”
한선옥이 급하게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소리쳤다.
“사모님. 지금 한강 다리 윕니다!”
“화, 화장실!”
한선옥은 다른 말이 들리지 않았다.
무조건 급하게 화장실을 찾았다.
“네?”
“화, 화장실……. 윽!”
아랫배를 자극하는 엄청난 통증에 한선옥의 얼굴은 이미 새카맣게 변했다.
정신마저 아득해졌다.
딸이고 뭐고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빨리 화장실로 가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화장실요?”
운전기사는 몹시 당황했다.
갑자기 한강 다리 위에서 화장실을 찾을 수는 없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어지간히 다급한 모양이었다.
“나도…… 화장…… 으윽!”
임서라는 배를 움켜잡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얼굴색이 황달을 앓는 사람마냥 노랗게 변해 있었다.
뜨뜻하게 뒷좌석에 들어온 히팅시트가 복부의 고통을 더 자극했다.
차 안 공기도 히터로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하게 데워져 있는 상태.
얼굴은 줄줄 흐르는 식은땀으로 다 젖어 있었다.
뿌우우욱.
그 순간 옆에서 새어나오는 질퍽한 방귀 소리.
동시에 코를 뚫고 들어오는 꿉꿉하고 지독한 X냄새.
“!!!”
괄약근에 힘을 잔뜩 주고 있던 임서라가 순간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오바이트 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저도 모르게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상태.
뿌우우우우웅. 뿌직.
진한 젖은 방귀 소리와 함께 시원하게 바지를 적시는 걸쭉하고 뜨거운 감촉.
“으윽!”
운전하던 기사의 얼굴도 노랗게 변했다.
어릴 적 사용하던 시골 재래식 화장실에서 맡았던 진한 추억의 냄새가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스르르륵.
살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재빨리 창문을 여는 운전기사.
X냄새와 뒤섞인 암모니아 가스가 아주 화생방 수준이었다.
“푸아아아아.”
기사는 입을 한껏 벌려 급하게 바깥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뿌우웅 뿌득.
이미 포기한 듯 두 눈을 감고 그대로 시원하게 마무리를 해버리는 한선옥.
뿌드드드득.
눈물인지 땀인지를 흘리며 엄마를 따라 영혼을 가출시켜 버린 임서라도 묵직하게 배에 힘을 줬다.
어차피 버린 몸.
몹쓸 배의 갑작스런 통증이라도 사라지기를 바랐다.
휘리리리링.
한강 다리 위를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이 진한 구린내를 싣고 멀리멀리 퍼져갔다.
“야…… 멈춰!!! 멈추라고!!!”
장태산을 잡기 위해 지검장과 약속을 잡고 중앙지검으로 가던 엄철동.
갑자기 꼬이기 시작한 장 통증 때문에 악을 썼다.
“네?”
운전기사가 당황해하며 물었다.
“크으으윽…… 화…….”
푸드드드드드득.
갑작스런 복통과 함께 어쩔 도리도 없이 쏟아진 급설사.
엄철동은 단 몇 초 만에 결판이 났다.
어이없는 상황에 사색이 된 엄철동.
“으윽!”
막을 틈도 없이 오바이트해 버린 운전기사.
엄철동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 부끄러워 질끈 두 눈을 감아 버렸다.
살아 있는 게 부끄러운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가 다 악몽 같았다.
***
“크크크크크크……. 크크큿.”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장 회장. 왜 그래? 좋은 일 있어?”
아침 일찍 회사로 찾아온 조 이사님.
내가 계속해서 실실 웃음을 흘리자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듯 물어왔다.
“지독할 거 같아서요.”
“뭐가?”
“냄새가요.”
“냄새? 방귀 꼈어?”
“그게 아니라……. 크크크크흐흣.”
생각만으로도 짜릿했다.
정말 치욕스러울 상황, 완벽한 나만의 스타일로 한 방 먹인 복수.
모든 타이밍이 완벽했다.
내 경고를 무시하고 끝까지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던 모녀.
가볍게 마법 저주를 걸었다.
인간들을 괴롭히는 101가지 사악 마법 중 한 가지를 펼쳤다.
3서클의 평범한 마법에 불과하지만 마법에 당하는 순간 생지옥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흑마법까지는 아니지만 설사의 저주를 내리는 마법.
지구에서 그 마법을 눈치 챌 인간은 아무도 없다.
정확히 시간 계산을 마쳤다.
바로 설사가 찾아오면 백화점 화장실을 찾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적당히 20분 정도의 여유 시간을 사이에 뒀다.
길 위에서 오도 가도 못한 상황에서 맞닥뜨리게 될 지극한 고통(?).
수치와 모멸감에 운전기사에게는 영원히 갑질을 못 할 것이다.
차에서 똥을 싼 모녀에 대한 소문이 밖으로 퍼지기라도 하면 강남에서 살 수 없게 될 것이다.
엄철동도 마찬가지다.
놈에게는 특별히 더 지독한 형벌을 내렸다.
모녀가 일반 설사 수준이라면 놈은 특급 설사로 선사했다.
몇 달간 화장실을 끼고 지내게 될 것이다.
병원에 가봐야 약도 없다.
마법으로 인한 설사는 현대 의료 과학으로 치료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먹는 순간 벌써 쫙쫙.
강제 다이어트 모드에 돌입하게 된다.
“실사 자료 나왔습니까?”
“진짜 칠 거야?”
“당연하죠.”
“장 회장. 나 진짜 너 무섭다.”
“왜요?”
“네 눈 밖에 나면 영혼까지 탈탈 털어버리잖아.”
몇 년 동안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날 지켜본 조윤태 이사님이 진짜 두려움을 드러냈다.
농담이 아닌 듯했다.
“내 사람은 안 뭅니다.”
“진짜지?”
“배신하지 않으면 말입니다.”
“보고도 배신하면 미친놈이지.”
조윤태 이사님이 미친놈이란 단어에 악센트를 강하게 넣었다.
“회사가 맛있네요.”
서류를 확인하며 입맛을 다셨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알짜배기였다.
“식재료 분야에서는 대한민국 탑이다.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도 마찬가지고. 현 정권에 찍혀서 잠깐 문제가 있었지만 원만하게 해결됐다.”
KI그룹은 먹음직스러웠다.
삼룡처럼 돈을 퍼붓지 않아도 알아서 굴러갈 기업 집단이었다.
“덩치가 크네요.”
“이것저것 몇 년 동안 M&A로 키웠잖아. 감옥에 있는 임주혁 회장이 능력은 있어.”
“그래봤자. 어둠 속 거래죠.”
“그게 능력 아니겠냐.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으로 사업하다가는 구멍가게도 유지 못 해.”
현실은 안타깝지만 조윤태 이사님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의 성장은 권력과의 검은 커넥션을 통해 이뤄지는 법.
선진국이라고 해도 다를 게 없었다.
독일과 미국 같은 기업들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성장했다.
“이 수준이면…… 여름이 오기 전에 가능하겠네요.”
“임시 주총 소집 날짜까지 더하면 초여름에는 끝난다. 덩치가 커서 시간이 걸려.”
“소 잡는 데 시간은 더 드려야죠.”
머리를 맞대고 KI그룹을 먹기 위한 회의에 돌입했다.
“전에도 말했는데…… 장 회장. 도대체 어디까지 삼킬 거야?”
“뭘 말입니까?”
“대한민국 대표 기업들 모두 먹을 건 아니지?”
“겁나세요?”
“……이건 단위가 다르잖아.”
로버트 라이언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 파악한 조윤태 이사님은 나의 다음 행보에 다소 진장하고 있었다.
하나둘씩 수중에 들어오고 있는 기업들.
나도 조용히 뒤에서 돕는 수준에 머물고 싶었지만 현 오너들의 마인드가 아주 엉망이었다.
그룹의 형태를 갖추게 되면 그때는 일개 개인 자산에 그치지 않게 된다.
그룹이 흔들리면 수많은 직원들과 그들의 가정도 함께 흔들릴 수밖에 없는 산업 구조.
“독일 속담에 ‘개인들 각자는 자신 운명의 대장장이’라고 했습니다. 잘못한 게 있다면 뜨거운 용광로에 들어가 반성해야죠.”
“그것하고 그룹 인수 하고는 무슨 상관이야?”
“민족을 위해 살신성인하는 자세로 제가 직접 성실한 관리자로서 부실한 회사를 맡아주는 것뿐입니다.”
“말은 진짜 잘한다.”
“변호사잖아요.”
“…….”
고개를 내젓는 조윤태 이사님.
띠리리리리릿.
오늘도 어김없이 울리는 전화벨.
화면에 뜨는 이름에 미소가 지어졌다.
“변호사 장태산입니다.”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