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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7장. 정신교육.(3). (754/1,284)

757장. 정신교육.(3).

‘이게 뭐야?’

구서현은 장태산을 보기 위해 백화점으로 달려왔다.

문자로 간단하게 위치만 알려준 장태산.

백화점 VIP 대기실에 있다 했다.

뭔가 사건에 휘말렸구나 하는 생각에 땀을 잔뜩 흘리며 다급하게 뛰어왔다.

뛰어오는 동안 꽤 큰 사건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으로 직접 확인한 상황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다.

덩치 산만한 경호원들이 중년 남자에게 구둣발로 까이고 있었다.

복도에서 언뜻 듣기로는 전직 부장판사 출신으로 현재 리앤장 변호사라고 했다.

엄연한 폭행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어 구서현이 제지에 나섰다.

검사가 이런 상황을 보고 넘어가면 그것도 도리가 아니었다.

“멈추세요. 지금 이건 엄연한 폭행행위입니다.”

구서현이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누구십니까?”

공창준이 구서현을 쳐다보며 까칠하게 물었다.

“중앙지검 형사부 부부장 검사 구서현입니다.”

“처음 보는데…… 이번에 발령 받으셨나 봅니다.”

공창준은 폭행행위라는 말에도 쫄지 않았다.

“네.”

“리앤장 수석 변호사 공창준입니다.”

경호원을 까다가 아무렇지 않게 곧바로 악수를 청하는 공창준.

전직 부장 판사답게 포스가 남달랐다.

“인사는 나중에 정식으로 드리겠습니다.”

구서현도 만만치 않은 태도로 나갔다.

상대의 전직이 판사였을지 몰라도, 어차피 현재는 변호사일 뿐이다.

전관예우가 어디까지 통할지 몰라도 구서현은 상관없었다.

통영에서 죽다 살아 난 후부터 성격이 더 단단해졌다.

‘법대로 원칙대로’가 구서현의 인생 모토가 됐다.

“하하. 구 검사님 앞으로 기대가 큽니다.”

공창준이 멋쩍게 손을 빼며 웃었다.

표정과 달리 눈빛은 싸했다.

“구 검사님. 보내드리세요.”

그때 장태산이 끼어들었다.

“아니 그래도…….”

“전 괜찮습니다.”

폭행당한 경호원이 고마운 듯 표정을 풀며 입장을 전했다.

“알겠습니다.”

“경호원이 무례하게 제 앞을 막아서 순간 흥분했습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그럼.”

공창준은 장태산과 구서현의 관계를 대충 눈치 채고 바로 입장을 정리했다.

여기 더 있어봐야 머리만 아파질 게 빤했다.

뚜벅뚜벅.

리앤장 변호사들이 공창준을 따라 그렇게 자리를 떠났다.

“뭐 해. 바보처럼 서 있지 말고 그룹 법무팀 언제 오는지 확인해봐!”

“넵!”

한선옥을 따라온 여 비서가 빠르게 대답했다.

한선옥은 이대로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부부장 검사 따위가 무슨 힘이 있다고.’

검사라는 말에 잠시 당황하긴 했지만 부부장이라는 말에 한선옥은 한시름 놓았다.

그룹 차원에서 관리하는 검사는 최소 부장급은 됐다.

지검장을 비롯해 총장까지 줄이 닿아 있었다.

“흠.”

안으로 들어선 구서현은 실내에 감도는 묘한 분위기를 느꼈다.

장태산과 함께 그간 얘기로만 전해 듣던 쌍둥이 동생들도 보게 됐다.

그 곁에는 미모가 꽤 출중한 한 여성도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는 인정머리라고는 없어 보이는 냉담한 중년 여인과 그녀의 딸로 짐작되는 젊은 여성이 묘한 대립 각을 형성하고 있었다.

“장 변호사님. 무슨 일인가요?”

평소와 다르게 분위기에 맞춰 구서현도 사무적으로 입을 열었다.

눈칫밥 먹으며 검찰 생활한 덕에 그간 남다른 촉이 제법 쌓였다.

“저기 앉아 계시는 여성분이 아무 이유 없이 여동생 팔을 가격했습니다. 그럼에도 도리어 사과와 심심한 위로를 여동생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닥쳐! 너희들이 먼저 싸가지 없게 나왔잖아!”

임서라는 엄마를 믿고 무서운 게 없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여기 CCTV 복사본을 가져왔습니다.”

그때 백화점 직원이 노트북과 USB를 들고 들어왔다.

어느새 준비된 CCTV 화면.

불리한 증거 등장에 임서라는 입을 다물었다.

“경찰 수사가 먼저지만 일단 제가 한 번 보겠습니다.”

“신분증 있어요?”

한선옥이 까칠하게 나왔다.

“여기 있습니다.”

구서현이 검사 신분증을 내밀었다.

“실물이 났네.”

비서가 건네준 신분증을 확인하면서도 한선옥은 오만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현직 여검사를 앞에 놓고 인물 운운하며 평가까지 했다.

‘이게 강남 아줌마 클래스인가?’

구서현은 어이가 없는 시선으로 한선옥을 쳐다봤다.

중앙지검 부부장 검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겁 없는 아줌마.

타닥.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백화점 보안 문제 때문인지 화질이 꽤 좋았다.

그리고.

턱!

임서라가 장주아 손목을 치고 지나가는 장면이 보였다.

누가 봐도 고의적인 태도였다.

“피해자 상태는 어떻습니까?”

“생각보다 안 좋습니다.”

장태산이 장주아 손목을 걷었다.

그 순간 선명하게 보이는 새파랗게 물든 멍.

“!!!”

장주아가 화들짝 놀랐다.

아프긴 했지만 이 정도로 심한 멍이 든 줄은 몰랐다.

“멍이 저 정도로 들 정도면 최소 전치 2주야. 도대체 얼마나 세게 때린 거야!”

의대생 장주희가 임서라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무……슨 소리야! 그깟 핸드백에 살짝 부딪쳤다고 그런 멍이 왜 들어!”

임서라도 멍을 보고 적잖이 놀랐는지 빽 하고 소리쳤다.

“진단서 발부받아 경찰에 고소하면 될 것 같습니다.”

구서현이 적당한 수준의 약을 쳤다.

“지나가다 부딪칠 수도 있는데 고소? 마음대로 해봐! 누가 겁날 줄 알아!”

한선옥이 콧방귀를 꼈다.

타다다다닥.

그때 밖에서 여러 사람의 급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허겁지겁 급하게 나타난 네 명의 중년 남자.

“사모님 찾으셨습니까.”

한선옥을 확인하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법무이사님 얘들이 지금 협박하는데 단체로 콩 밥 좀 먹여요.”

손가락으로 장태산과 나머지 일행을 쭉 훑으며 가리키는 한선옥.

“협박요? 누가 감히……. 어! 너……. 네가 왜 여깄어?”

검찰 차관급 검사장으로 퇴임한 지 얼마 안 된 KI그룹 법무팀 이사 엄철동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구서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오랜만이네요. 엄철동 감찰국장님.”

별 감정 없이 엄철동을 향해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구서현.

그런 구서현의 눈빛에 서늘한 한기가 스쳤다.

***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짧은 순간 틈틈이 나타나는 등장인물이 많았다.

한 번 잘못 스친 핸드백 사건이 몰고 온 후폭풍.

백화점의 하루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새로이 등장한 인물로 인해 구서현 검사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됐다.

감찰국장이라는 말에 바로 감이 잡혔다.

검찰 서열 15위에 해당하는 차관급 인사.

법무부에 파견되어 일선 검사들의 비위를 감찰하는 중요한 직책이다.

하지만 본래 의도됐던 좋은 취지 대신 검사들을 위한 호위병 신세가 됐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신으로 똘똘 뭉친 검찰.

조직을 위해 어지간한 비리는 서로들 눈감았다.

언론에 대서특필되어야 그때나 퇴직 정도로 마무리 하는 식이다.

성폭행 영상에 버젓이 얼굴이 찍혀도 검사라는 이유만으로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기 일쑤.

고소자와 피해자를 협박해 범죄를 무마시키는 무소불위의 대표 집단이었다.

일반인이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면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바빴을 위대한 검사들은 조직의 명예 앞에서 기꺼이 양심을 팔았다.

2014년에는 그 모양새가 끝장을 달렸다.

과거와 달리 보수를 가장한 타락한 정권이 집권하자 자기들 세상처럼 굴었다.

국민을 위해 쓰라고 검을 쥐어줬건만 도리어 국민들을 위협했다.

정치권의 충견이 되어 사정없이 국민들의 권리와 정의를 물어뜯었다.

대부분 스폰을 받지 못하면 고위 검사가 되지 못했다.

술과 여자를 마다하지 않는 정치검사들.

똥과 어울리는 된장이 되어 대한민국을 어지럽혔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정의로운 척은 다했다.

법과 정의의 수호자라는 의무는 사라지고 돈과 권력에 눈먼 검사들이 판을 쳤다.

마음이 아팠다.

통제되지 못한 권력을 쥔 괴물은 쉽게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세상에 두려운 게 없는 그들.

그리고 오늘 그 진면목을 목도하게 됐다.

“구서현, 네가 왜 여기에 있어! 통영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KI그룹 법무이사가 구서현을 보며 어이없어했다.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도 눈빛은 귀신이라도 본 듯 놀란 채였다.

“모르셨어요? 저 며칠 전에 중앙지검 형사부로 발령받았어요.”

씨익 웃으며 가볍게 대답하는 구서현 검사.

“뭐라고? 중앙지검? 누구 마음대로!”

“퇴직하신 분이 그건 왜 궁금하세요. 조직을 떠났으면 관심 끄세요.”

“야! 구서현!”

구서현 검사를 통영까지 보낸 장본인들 중 한 명이 확실했다.

“야가 아니라 구서현 검사입니다. 지금 모욕죄 구성 요건에 해당되는 발언을 하신 건 아시죠? 예의를 지켜주세요. 선배님.”

차분하게 조곤조곤 따지는 구서현 검사.

멋졌다.

저런 모습 보자고 내가 중앙지검에 꽂았다.

손대균 이사님을 비롯해 여러 라인을 움직였다.

중앙지검에는 저런 강골이 필요했다.

한 번 물면 절대 놓지 않을 분노의 이빨을 소유한 구서현 검사.

파파밧.

살벌한 기운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너……!”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손가락으로 계속 구서현 검사를 가리키는 KI그룹 법무이사.

똥개는 똥개끼리 뭉친다는 말이 떠올랐다.

“재차 경고합니다. 한 번만 더 현직 검사에게 그런 식의 발언을 하시면…….”

한 박자 쉬며 빙긋 웃는 미녀 검사.

“손가락 분질러 버린다. 이 개새끼야.”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세워 보이며 똑바로 엄철동을 쳐다보는 구서현 검사의 화끈한 면모.

“!!!”

전직 감찰국장 엄철동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조직에 몸담고 있었다면 눈에도 안 들어왔을 일개 여검사의 찰진 반항.

으드득.

엄철동의 이 가는 소리가 침묵 속에 잠긴 공간에 울렸다.

“건방진 계집. 예전부터 겁 대가리 없이 설쳐대더니 아직 그 버릇을 못 고쳤구나.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흐흐흐.”

엄철동이 구서현 검사를 노려봤다.

뭔가 머릿속으로 음모를 획책하는 눈치였다.

“엄 이사님! 아는 검사야?”

“검찰 시절 직속 부장을 무고로 고소한 계집입니다. 통영으로 쫒아냈는데 아직 조직에서 근무하나 봅니다.”

구서현 검사에 대한 엄철동의 평가.

“그래? 어쩐지 싸가지가 없어 보이더니……. 쯧.”

예상한 대답이라는 듯 혀를 차는 한선옥.

얼마 전에 접한 보고서를 통해 파악한 KI그룹 회장의 부인.

이름은 한선옥.

‘선옥’이라는 이름과 달리 아무리 봐도 개과천선이 힘들 것 같은 인물이다.

인간으로 태어났음에도 개만도 못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이 많은데 그 부류에 속했다.

결코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런 여자를 위해 나선 법무이사도 마찬가지.

확실히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했다.

저 집안은…… 풀뿌리 하나 남겨 놓지 말고 제거해 버려야 했다.

“사모님, 아가씨 모시고 집에 가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고 보고하겠습니다.”

한선옥에게 믿음직스럽게 아부를 하는 엄철동.

“그럴까요? 호호호. 내가 이래서 엄 이사님을 좋아하잖아~.”

이제야 상황 돌아가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한선옥과 임서라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번 사건은 자신들이 이겼다고 생각하는 눈빛이다.

이대로 흘러간다면 전직 법무부 감찰국장 빽이 정말 대단한 것이다.

“서라야 가자. 수준 떨어지는 것들과 한공간에 같이 있었더니…… 멀미가 난다.”

“엄마도 맡아져? 정말 숨 냄새조차 역겨워.”

코를 쥐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녀.

타다닷.

경호원들이 두 사람 옆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느긋한 표정으로 나가려는 모녀를 바라봤다.

딱 눈이 마주쳤다.

“흥!”

“뭘 봐! 기생오라비 같이 생겨가지고.”

끝까지 날 실망시키지 않는 모녀.

“아직 내 얘기는 시작도 안 했는데……. 그냥 가면 섭하지~.”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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