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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6장. 정신교육.(2) (753/1,284)

756장. 정신교육.(2)

‘설마…….’

리앤장 로펌 KI그룹 담당 수석 변호사 공창준은 눈앞의 상황을 대면하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백화점에서 사소한 시비 정도가 발생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KI 측과 장기 자문 계약을 맺고 있어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했다.

KI그룹은 자문에 관련된 부분에 있어 돈을 아끼지 않는 좋은 파트너였다.

공룡 오정과 관계가 좋지 않은 KI그룹.

나름 리앤장은 줄을 잘 탄 셈이었다.

오정은 리앤장도 건들 수 없는 성역 같은 상대였지만 적당한 선에서 KI의 방패막이 정도는 돼 줄 수 있었다.

오늘 보고 들어온 사소한 사건도 도맡았다.

이런 일에 사람을 불러내는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것도 아니다.

KI그룹 오너 일가의 갑질은 알 만한 상류층 사이에서 아주 유명했다.

명예회장을 비롯해 구속된 회장까지 여성 문제만 해도 복잡했다.

두 사람에게 접근했던 여러 종류의 여성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해 준 일이 많았다.

회장 와이프와 그의 자녀들은 오늘 같은 갑질 사건을 주로 일으켰다.

웬만한 사건들은 매번 적당한 액수를 제시해 합의로 마무리 됐다.

리앤장이 앞에 나서서 해결되지 않을 일은 거의 드물었다.

경찰과 검찰도 알아서 협조를 해주는 편이다.

적당히 뒤를 봐주며 용돈을 쏠쏠하게 챙겼다.

정기 자문료를 제외하고도 이런 사소한 일 처리 때마다 특별 보너스가 지급됐다.

오늘도 호주머니에 들어올 두둑한 보너스를 예상하며 가볍게 걸음한 공창준이었다.

로펌 신입 변호사들을 대동하고 위세를 좋게 한 건 하려 했는데 착오가 생겼다.

“뭐 해요? 저 사람들한테 사과를 받아내야죠!”

임서라가 팔짱을 끼고 앉은 채 공창준에게 따지듯 다그쳤다.

‘하아.’

속으로 짧은 한숨을 토한 공창준.

임서라의 여전한 무식함에 화가 치밀었다.

지금 본인이 누구를 상대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임서라는 황당할 정도로 자신만만했다.

“장태산 대표님, 잘 지내셨습니까.”

공창준은 장태산을 향해 고개를 짧게 숙이며 인사를 했다.

누가 봐도 공손함이 극에 달한 태도.

천하의 리앤장 변호사가 보일 수 있는 최고의 공손한 자세.

쳐다보던 사람 모두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를 아십니까?”

“전에…… 안아 주총 회의장에서 뵌 적이 있습니다.”

“안아 담당이셨어요?”

“네…….”

리앤장이 발을 담그고 있었던 안아그룹.

부장판사로 퇴직하고 꿀을 빨며 지냈던 공창준은 그때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했다.

대한민국 10대 그룹이 주총장에서 저항 한번 못 해 보고 외국 자본에 넘어갔다.

일체 법률적 하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그 뒤에 장태산이 있었을 뿐이다.

그는 천일, 삼룡, 동룡까지 삼켜버린 대한민국 투자계의 대부였다.

외국계 투자자들을 앞세워 국내 그룹을 공중분해 해버린 엄청난 투자대표회사의 주인.

리앤장 손대균 이사가 수석 변호사들에게 특별히 당부한 바도 있었다.

혹시 일을 하다가 장태산 대표와 엮이는 상황이 생기면 무조건 빠지라는 지시였다.

“그럼 긴 설명이 필요 없겠군요. 저기 철없는 아가씨의 폭행과 폭언에 대한 사과와 정신적 배상을 원합니다. 증거자료는 백화점에서 제출해 줄 겁니다.”

의뢰인이 바뀐 듯 행동하는 장태산.

“알겠습니다.”

공창준은 두 말 하지 않았다.

“임서라 양.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한다면 합의를 추진해 보겠습니다.”

공창준은 바로 장태산이 자신의 의뢰인인 듯 대변하며 임서라를 대했다.

“뭐…… 뭐에요? 지금 두 사람 짰어요?”

버젓이 눈을 뜨고 있는 앞에서 벌어진 사태에 임서라는 말까지 더듬었다.

‘이…… 자식 뭐야!’

몇 번 본 적이 있는 리앤장 변호사가 자신의 말을 무시했다.

임서라는 자신보다 장태산에게 더 깍듯하게 구는 공창준을 쏘아봤다.

꿀꺽.

부지점장 안태정도 돌아가는 상황에 놀라기는 마찬가지.

KI 룹의 돈을 받는 리앤장 변호사들이 장태산 대표의 편에서 자신들의 의뢰인을 대하고 있었다.

돈에 영혼을 판다는 리앤장 변호사들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무소불위의 권력 집단인 리앤장.

그런 곳에 몸담고 있는 변호사들이 장태산 대표의 눈치를 봤다.

KI그룹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허대부의 딸마저 장태산 대표에게 한참 밀려보였다.

여유만만한 장태산 대표.

KI그룹 안주인을 겁 없이 현장에 초청하기까지 했다.

“임서라 양을 위한 최선의 조언입니다. 사과하시고 합의하시는 게 신상에 좋을 겁니다.”

공창준은 냉정한 시선으로 임서라에게 말했다.

요즘 KI그룹에 대한 소문이 꽤 좋지 않다.

외국 자본이 주식을 매집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내국인들은 주식을 구입하지 못했다.

압도적 물량으로 주식을 찍어 누르는 세력에 버틸 용자가 없었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 핵심 세력에 장태산 대표가 들어 있을 수 있었다.

오정 임성철 회장과 친분이 대단하다는 소문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런 장태산 대표가 KI그룹까지 노린다면…….

“지금 협박하는 거예요? 당신들…… 지금 제정신이야?”

임서라가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오고 있어. 너희들…… 다 죽었어!’

임서라는 너무 억울하고 분했다.

가방으로 한 번 쳤다고 아주 죄인이 돼 버렸다.

누구 하나 편 들어주는 사람도 없다.

믿고 기다렸던 변호사들까지도 보란 듯이 배신했다.

경호원 최 비서는 상황을 다 지켜보면서도 꼼짝하지 않는다.

“부지점장님, 변호사님들 음료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마치 백화점을 자기 집처럼 편하게 생각하는 듯 행동하는 장태산.

왕처럼 굴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 말에 거북해 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거역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돌아가고 있는 상황.

타다다다닥.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급박한 구두 발자국 소리.

“누구십니까?”

“문 열어 새끼야! 내 딸이 이 안에 있어!”

쫘악!

밖에서 대기 중이던 부지점장 비서의 목소리가 짧게 들리는가 싶더니 곧 뺨을 맞는 듯한 소리가 이어졌다.

덜컹.

그리고 거칠게 열리는 문.

타다다닥.

체격 좋은 경호원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섰다.

“서라야!”

“어, 엄마!!!”

KI그룹 안주인 한선옥이 나타났다.

임서라는 큰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덥석.

누가 보면 전쟁 같은 난리라도 났나 싶을 만큼 한선옥이 달려가 임서라를 안았다.

“어어어어어엉.”

임서라가 기다렸다는 듯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유치원생도 아니고 다 큰 처녀가 우는 모습은 썩 아름답지 않았다.

“내 새끼 괜찮아? 어디 다친 데 없고?”

유난히 자식에 대한 애착이 강한 한선옥.

남편의 잦은 바람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식들을 키워낸 힘이기도 했다.

남편에 대한 보상심리가 강한 만큼 집착은 자식들에 대한 과잉보호로 나타났다.

학교에서 시작된 치맛바람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요란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

모녀의 눈물겨운 상봉에(?)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모녀는 부끄러움을 전혀 몰랐다.

“엄마……. 저기 변호사가 나 협박했어.”

임서라가 손가락으로 공창준을 가리켰다.

“협박?”

눈썹이 치켜 올라간 한선옥이 공창준을 노려봤다.

한선옥의 살기 어린 시선에도 굴하지 않고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는 공창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장태산 뒤에 리앤장의 주인인 손대균 이사가 있었다.

어떻게 해도 추궁 받을 일이 없었기에 배짱을 부렸다.

“공 변호사. 서라 말이 사실이야?”

전직 부장판사 출신인 공창준에게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는 한선옥.

“아닙니다.”

“맞잖아! 당신이 나보고 합의하라고 했잖아!”

임서라가 소리쳤다.

엄마가 옆에 있으니 기세가 등등해졌다.

“합의? 누구 맘대로!”

정확한 사정도 알지 못한 채 흥분한 한선옥도 고함을 터트렸다.

강한 자가 모든 걸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을 한선옥은 직접 보고 배워왔다.

시아버지와 남편이 그 모범을 여실히 확인시켜 줬다.

오정만 아니라면 두려울 게 없었다.

“사모님. 사건을 정확히 파악하시고…….”

공창준은 자신을 하인 부리듯 대하는 모녀를 상대로 인내심을 발휘했다.

“됐어! 우리 딸이 이렇게 아파하잖아. 그게 증거지 다른 게 증거야? 그리고 조금 전 나보고 오라고 했던 건방진 새끼 어딨어! 어떤 새끼야!”

한선옥의 거친 말투와 왕왕 울리는 큰 목소리에 다들 인상을 찌푸렸다.

“접니다.”

장태산이 웃으며 답했다.

“접니다? 야! 니가 뭔데 내 딸보고 사과하라 마라 지랄이야!!!”

한선옥은 통화했던 장태산 목소리를 금방 알아챘다.

눈을 부릅뜨고 삿대질을 마구 퍼부었다.

하지만 여전히 빙긋 웃고만 있는 장태산.

“사모님. 말 조심하셔야 합니다!”

공창준이 살짝 나섰다.

“꺼져! 의뢰인도 못 챙기는 변호사 새끼가 어디서 끼어들어!”

한선옥의 포화는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았다.

눈에 거슬리면 바로 욕을 퍼부었다.

꿈틀.

공창준을 비롯해 따라왔던 리앤장 변호사들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평생 품위 있는 엘리트로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이들이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천재 소리를 들어가며 명문 대학교에 진학했고 졸업하며 변호사가 됐다.

자신감과 자존심으로 살아온 리앤장 변호사들에게 한선옥의 태도는 도를 넘고 있었다.

“한선옥 씨!!!”

부장판사 출신 공창준 변호사가 한선옥의 이름을 또박또박 불렀다.

과거 재판정에서 보였던 위엄이 되살아나는 듯했다.

돈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눌려 있던 자존감이 고개를 쳐들고 튀어나왔다.

“씨이? 너 미쳤어! 내가 니 친구야!”

한선옥의 눈동자가 분노로 번들거렸다.

변호사들도 집지키는 똥개 정도로 여겨왔던 그녀.

‘씨’라는 말끝에 머리가 돌아버렸다.

“하아아. 미치겠네. 무식한 여자하고 내가 지금 무슨…….”

넥타이를 손으로 잡아 풀며 공창준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뭐, 뭐라고 무…… 식?”

한선옥은 공창준의 말에 입을 쩍 벌렸다.

그룹 사모가 된 이후 처음 들어본 막말.

“그만합시다. 앞으로 난 최소한의 상식과 교양도 갖추지 못한 KI그룹 의뢰 안 받습니다.”

“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공창준의 느닷없는 선포에 한선옥이 악을 썼다.

눈에는 핏발이 섰다.

곧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악귀의 모습으로 변했다.

“장 대표님. 다음에 뵙겠습니다.”

공창준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장태산을 향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그럼.”

공창준이 문을 향해 돌아섰다.

그 뒤를 따르는 리앤장의 변호사들.

끼릭.

조용히 문을 열었다.

“멈춰! 멈춰 이 새끼야!”

한선옥이 악을 쓰며 공창준을 불렀다.

하지만 그냥 제 갈 길 가는 변호사들.

“저 자식들 잡아!”

한선옥이 경호원들에게 소리쳤다.

터더덕.

그룹 경호원들이 문 밖으로 나가려는 공창준의 앞을 막았다.

순간 공창준의 눈썹이 꿈틀 살아 움직였다.

“비켜라.”

나직하게 읊조리듯 새어나온 목소리.

그러나 코앞에서 꿈쩍하지 않고 버티는 경호원들.

“이런 양아치 새끼들을 봤나.”

진짜 화가 난 공창준의 목소리가 터졌다.

퍼어억!

바로 구둣발이 앞을 막아선 경호원의 정강이를 찍었다.

“악!”

“별 거지 같은 새끼들이 날 막아? 나 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 공창준이야! 어디서 니깟 것들이 내 앞을 막아!!!”

퍽퍽퍽!

가차 없이 앞을 막아서는 경호원들에게 발길질을 날리는 공창준.

얻어맞고도 경호원들은 손을 쓰지 못했다.

상대가 리앤장 소속 변호사에 전직 중앙지법 부장판사라는 걸 알고도 개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경호원은 지금 룸에서 가장 힘없는 처지의 사람들.

“부지점장. 백화점 보안팀 부르세요.”

“넵! 대표님!”

장태산의 지시에 안태정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리고.

“뭐죠?”

그때 패딩으로 몸을 감싼 여인 한 명이 문 앞에 나타났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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