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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5장. 정신교육. (752/1,284)

755장. 정신교육.

“왜 목소리 깔고 그래. 나야.”

- 네, 검사님.

“검사님? 헐……. 장 변. 나라고!”

구서현은 상대의 반응에 어이가 없어 스마트폰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

분명 장태산의 번호가 맞았다.

그러나 평소와 달리 근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장태산이 낯설었다.

검사님이라는 호칭은 평소에도 쓰는 말이지만 편한 말투로 응대하던 장태산이었다.

그런 장 변이 오늘따라 어려운 선배를 대하는 듯한 말투로 존경심까지 가득 담아 전화를 받았다.

의정부로 발령이 난 뒤 서로 일이 바빠지면서 만날 시간이 거의 없었다.

몇 번 신세 한탄하는 내용으로 전화 통화를 한 게 전부.

오늘은 오랜만에 약간의 여유 시간이 생겼다.

또 중앙지검 형사부로 인사명령이 떨어져 소식을 전하려 전화를 한 터.

이번 발령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사실 중앙지검 쪽은 엘리트들이나 가는 곳이었다.

조직에서 아예 퇴출될 지경이었던 구서현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자리였다.

얼마 동안은 의정부에서도 평범한 형사 사건만 처리하고 있었다.

전혀 승진할 케이스가 아니었다.

때문에 이번 발령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했음은 짐작하고도 남았다.

중앙지검 검사들 뒤에는 대부분 고위 관료나 정치인, 재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구서현은 퍼뜩 장태산을 떠올렸다.

통영에서 의정부까지 끌어 준 장태산.

그 말고는 자신을 이렇게 물심양면으로 밀어줄 인간이 주변에는 없었다.

며칠 동안의 휴가도 함께 주어졌다.

그 고마움을 전하고 싶기도 해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검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중앙지검.

그곳에 들어가서야 진짜 검사 노릇을 제대로 한 번 시도할 수 있었다.

중앙지검에서 다루는 대부분 사건들의 주인공은 강남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상류층들.

그들의 목숨을 쥐고 흔들 수 있는 힘을 가진 강력한 자리이기도 했다.

- 어디십니까?

“나? 지금 학동 사거리.

- TS 명품 백화점에 있습니다.

“나보고 그쪽으로 오라고? 도대체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장 변! 무슨 일 있어?”

구서현은 평소와 다른 장태산 태도를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뜬금없는 대화의 연속.

- 검사님도 폭행죄 취급하시죠?

‘어! 사건이구나.’

구서현은 장태산의 힌트가 담긴 말에 바로 일이 생겼음을 알아챘다.

통영에서도 사이비 교단을 비롯해 깡패들을 탈탈 털었던 전력을 갖고 있는 검사직무대리 장태산.

그가 구서현의 현장 방문을 청하고 있었다.

“기다려. 바로 갈게.”

심심하면 큰 사건을 하나씩 물어오기도 했던 장태산.

구서현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타다닥.

그리고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TS 명품 백화점은 뛰어서 5분 남짓.

몸 풀기 딱 좋은 거리였다.

***

“…….”

장태산의 입에서 나온 검사라는 말에 순간 임서라는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집안이 아무리 재벌가여도 대놓고 검사를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순간의 질투와 욕심이 만들어 낸 참사.

‘도대체 이, 이게 뭐야?’

임서라는 그제야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살폈다.

방금 전까지 눈이 뒤집혀 보이지 않았던 주변에 운집한 사람들의 시선.

자신이 VIP임을 알고도 부지점장은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장태산 변호사에게 아부를 넘어 복종하는 태도를 취하기까지 했다.

단 한 번도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자세였다.

그만큼 장태산이란 남자가 대단한 권력을 쥐고 있다는 의미.

“검사까지 오는 거야?”

“한 여사는 이 사실 아는 거야?”

“전화해 봐.”

“딸내미 성깔 보니까 좋은 집안으로 시집가기는 글렀네.”

“이래서들 가풍을 따지는 거야.”

몇몇 강남 사모님들이 웅성거렸다.

임서라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시집가기 어렵겠다는 말까지 언급되자 일이 너무 커진 게 피부에 와 닿았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들어 자주 들어오던 선자리가 뜸해졌다.

강남 바닥이 그만큼 좁았다.

오늘 이 일도 금세 살이 붙어 소문이 퍼질 게 뻔했다.

“짜증나!”

속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표출하는 버릇을 그대로 드러내버린 임서라.

이 정도 상황이면 대부분 사람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알아서 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오늘은 일진이 사나운 듯 뜻대로 되는 게 없었다.

그제야 주춤주춤 발을 뒤로 뺐다.

어설픈 본능이 빨리 이곳에서 도망가라고 속삭였다.

“언니. 왜? 이제 조금 쫄려?”

허보영이 임서라를 지켜보다 웃으며 물었다.

어엿한 로스쿨 생이지만 오늘은 꼭 악동 같았다.

“닥쳐!”

자존심이 상해 빽 소리치는 임서라.

‘저 곰탱이는 뭐 하는 거야!’

최 비서가 로펌에 연락을 하고 멍하니 대기 중이었다.

꼴이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았다.

최 비서는 임서라의 개인 경호원과 운전기사를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도 바보는 아니었다.

이미 자신이 나설 수 있는 판이 아니라는 걸 진작 눈치 챘다.

이제는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시간.

“대화가 길어질 것 같습니다. VIP 귀빈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부지점장이 주변 상황을 의식한 듯 자리 이동을 권했다.

다른 지역 백화점에서 실력을 인정받아 몇 달 전 강남 한복판에 있는 명품 백화점에 발령을 받아온 터.

눈치껏 판단하고 입을 열었다.

위기라고 생각했던 일이 기회로 변했다.

장태산 대표 정도 되면 사람들의 입방아가 꽤 신경 쓰일 것이다.

“그러죠.”

장태산이 답했다.

“나도~.”

갑작스런 조우와 예기치 못한 사건에 흥미를 느낀 허보영도 기꺼이 동행하기를 원했다.

“흥!”

차가운 콧소리로 대답을 대신하는 임서라.

“따라오십시오.”

부지점장이 정중한 태도로 앞장섰다.

또각 또각.

뚜벅 뚜벅.

그 뒤를 따르는 여러 사람의 발걸음.

이내 구경하던 사람들 시야에게 멀어졌다.

“한 여사? 자기 큰 딸 백화점에 있는 거 알아?”

- 누구? 서라?

“지금 모르긴 몰라도 아주 대단한 사람들하고 큰일이 났어.”

- 큰일?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강남 사모 중 한 사람이 신이 난 듯 떠들었다.

“그래. 누군지 몰라도 분위기가 장난 아니야. 서라가 밀린 거 있지.”

- 무슨 소리야? 우리 서라가 왜 밀려! 뭘 잘못했다고!

KI그룹 회장 사모인 한선옥이 갑작스러운 전화에 당황했다.

“잘 모르겠고. 자기가 와 봐야겠어. 상대 쪽에서 검사도 부르고……. 서라 상황이 좋지가 않아.”

- 검사를…….

청담동 뷰티 살롱에서 코스를 밟고 있던 한선옥은 금방 짜증 섞인 목소리가 됐다.

성격이 자기를 닮아 거침이 없는 큰딸.

쇼핑 중에 사고를 친 듯했다.

‘우리 집안을 뭘로 보고! 가만두지 않을 거야!’

남편의 부재로 이래저래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한선옥.

시아버지 또한 몇 달 전 임성철 회장 병문안을 다녀온 뒤부터 골골 했다.

안팎으로 조용할 날이 없이 시끄러웠다.

‘본때를 보여줘야 해.’

마음을 단단히 먹은 한선옥.

관리를 받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모님 갑자기…….”

“오 실장. 나 바쁜 일이 생겼어. 오늘은 여기까지.”

한선옥은 신경질적으로 옆에 있던 수건을 들어 마사지 중이던 얼굴을 거칠게 닦았다.

“서 비서. 그룹 비서팀에 연락해. 서라가 무슨 일에 연루된 것 같은데 빠르게 처리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사모님.”

“차도 대기시켜.”

“넵!”

대기 중이던 여 비서가 답했다.

툭.

얼굴을 닦던 수건을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내던지는 한선옥.

뒤에 서 있던 뷰티 직원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끝까지 강남 사모들 중에 교양 없는 아줌마 1순위다운 행동이었다.

띠리리리리리릿.

급하게 스마트폰 단축 번호를 누르는 한선옥.

- 엄마!

임서라가 아이 같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서라 너 지금 어디야?”

- 히잉. 나 지금 TS 명품 백화점에 갇혔어.

임서라는 우는 소리를 냈다.

“뭐라고? 갇혀! 누가! 감히! 어떤 새끼들이 내 딸을 가둬! 지점장 바꿔!”

한선옥이 다짜고짜 악을 썼다.

- 전화 받아봐.

임서라가 누군가에게 스마트폰을 건네는 소리가 들렸다.

- TS 백화점 부지점장 안태정입니다.

“야! 너 미쳤어? 목이 몇 개라도 돼? 니가 뭔데 우리 딸을 가둬! 당장 보내지 못해!”

한선옥은 바로 반말로 소리를 지르며 부지점장을 윽박질렀다.

“죄송합니다. 제가 개입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딱 잘라 거절의 의사를 밝히는 부지점장.

‘이것들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나!’

한선옥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백화점 VIP인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부지점장의 말투를 모를 리 없었다.

- 따님과 해결할 문제가 있습니다. 오셔서 심심한 사과와 위로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 누구야!”

- 와보시면 압니다.

“거기서 기다려! 너희들……. 내가 오늘 따끔하게 교육시켜 줄 테니까!”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소리치는 한선옥.

“경호팀도 불러!”

“넵!”

‘제대로 KI그룹의 힘을 보여주겠어! 절대 용서 못 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한선옥이 독기를 뿜어냈다.

“내 옷 가져와! 눈치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관리를 맡아하던 뷰티 살롱 직원에게 버럭 화를 내는 한성옥.

“죄, 죄송합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전담 여성 직원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뛰어 나갔다.

***

“차가 맛있습니다.”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초콜릿도 맛있어요~.”

“감사합니다.”

“여기는 처음 들어와 보네.”

호텔을 연상케 할 만큼 화려하게 꾸며진 공간.

부지점장의 안내를 받고 자리에 앉았다.

고급 차와 각종 부식거리가 제공됐다.

쇼핑과 사건으로 지친 쌍둥이들도 당분을 섭취하며 기분을 풀었다.

허보영도 마찬가지.

“당신들 이제 싹 죽었어!”

아직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된 싸가지가 다리를 꼬고 앉아 오만한 태도를 보였다.

엄마에게 이르는 모습이 아직 철없는 꼬맹이 같았다.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임씨 집안사람들의 모습을 다시금 확인한 셈이다.

느긋하게 다음 순간을 기다렸다.

어차피 오늘은 주아를 위해 시간을 넉넉히 할애한 날.

“약속 없어?”

“친구들에게 좀 늦는다고 연락 했어.”

“몇 달 후에 시험 아냐? 요즘 합격률이 50%라던데…… 자신 있어?”

“어느 정도 끝냈으니까 걱정하지 마.”

한국대 로스쿨까지 진학했다면 실력은 기본 보장이 됐다.

“입질 온 로펌은 없고?”

“당연히 많지. 리앤장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못 모셔가서 난리야.”

잘나가는 로스쿨생은 대형 로펌에서 입도선매로 예약했다.

“다행이네.”

“뭐가?”

“갈 곳 없으면 우리 로펌에서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입사시키려고 했거든.”

“……은근 기분 이상해진다. 스카우트도 아니고 구제?”

“우리 로펌은 실력과 함께 인성도 보거든.”

“나 정도면 합격 아냐?”

친구 먹은 후로 많이 편해진 허보영.

“하는 거 봐서.”

“나도 됐거든!”

물려받을 재산이 수조 단위가 넘는 사람임에도 반대편에 앉아 있는 싸가지와 인성 자체가 비교 불가능했다.

“부지점장님, 팸플릿 없습니까?”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자리에 앉아 서비스를 받았다.

시간은 잘도 흘러갔다.

이 모든 것들이 공짜가 아니었다.

나의 1초는 KI그룹이 벌어들이는 초당 수입과 비교를 할 수가 없었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차분하게 쌓이고 있는 청구 비용.

아무것도 모르는 싸가지는 여전히 팔짱도 풀지 않고 우리들을 노려봤다.

개과천선이 많이 요구되는 여성.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제대로 된 정신교육이 필요했다.

똑똑.

“부지점장님. 리앤장 로펌에서 변호사님들이 왔습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나를 보며 입장 승낙을 구하는 부지점장.

“들어오라고 하세요.”

“넵!”

부지점장이 나의 개인 비서처럼 움직이며 문을 열었다.

그리고 들어오는 세 명의 리앤장 변호사들.

“왜 이제 와요!”

바로 짜증을 내는 싸가지.

“차가 막혔습니다.”

담담하게 대꾸하는 수석 변호사.

바로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살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헛……!”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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