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장. 뒤통수와 뒤통수.(3)
“적이다! 폐하를 보호하라!!!”
“저쪽이다!!!”
타다다다닥.
병사들이 우왕좌왕 사방으로 흩어지며 달려나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카르스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베커 공작으로부터 철저한 황실 수호를 명받았다.
전장에 나가 싸우고 싶었지만 황실 수호 역시 중요한 임무인 탓에 전쟁터는 탈만에게 양보했다.
퍼버버버벙!
화르르르르르르.
화염 마법이 터졌다.
“크하하하! 황녀를 내놓거라! 우리는 팰트론 왕국의 기사들이다!”
광분한 기사들의 외침이 뒤를 이었다.
미친놈들이 분명했다.
아린 황녀 수호를 위해 상당수의 기사들도 함께 남았다.
그 틈으로 침투해 황녀를 납치하려 협박하는 팰트론 왕국 기사들.
‘저들이…… 손님이란 말인가?’
검을 뽑아든 카르스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분명 베커 공작이 떠나기 전 중요한 손님이 찾아올 거라고 했다.
하지만 저들은 아무리 봐도 손님이 아니라 적이다.
“모두 나를 따르라!!!”
혼란 중에도 카르스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집중했다.
휘하 기사들을 이끌고 황녀가 머물고 있는 집무실로 내달렸다.
하지만.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나? 크크크.”
일단의 기사들이 앞을 가로막으며 나타났다.
황녀의 집무실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나가야 할 거대한 홀.
20여 명의 기사들이 마법사들과 함께 엉켜 입구를 막았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카르스는 분노했다.
“어디긴 어디야. 곧 우리 왕국의 노예가 될 놈들이 살고 있는 땅이지.”
“크크크크.”
적진의 심장부를 침투한 팰트론 왕국의 기사들에게서는 두려움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검과 망토를 물들인 붉은 피.
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경비병들.
“네놈들을…… 용서치 않으리라!”
파아앗.
카르스 손에 들린 검에서 새파란 빛이 터졌다.
“오! 빛깔 좋군!”
“마력만큼 실력도 좋은가?”
“저 자식 가죽을 벗겨보면 알겠지. 케케.”
기사가 분명했지만 하는 짓은 용병 만도 못한 놈들이 비웃음을 터트렸다.
“황실을 모욕한 놈들이다! 모두 죽여라!”
뒤를 따른 기사들을 향해 떨어진 카르스의 명령.
“충!!!”
카르스 밑에서 검술을 습득한 기사들이 힘 있게 답했다.
그리고 박력 있게 튀어나가려는데…….
콰득!
순간 팰트론 왕국의 기사들 무리에서 맨 앞에 서 있던 한 기사의 몸뚱이에 혈선이 길게 그어졌다.
쩌어억.
천천히 쪼개지는 기사의 몸뚱이.
단단한 마력 갑옷은 물론 안쪽 몸통까지 정확히 두 쪽이 났다.
쏟아지는 붉은 핏물 사이로 아직도 펄떡이는 심장과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이 가득 찬 내장이 한꺼번에 홀 바닥에 쏟아졌다.
역한 피비린내가 물씬 퍼졌다.
“허억!”
“헛!”
그 모습을 지켜보던 습격자 무리가 비명을 질렀다.
붉은 망토를 착용한 기사가 어느 결에 나타났는지 모를 만큼 순식간에 곁에 자리했다.
검에서는 붉은 마력의 기운이 피어났다.
“사, 상급 마력 기사!”
놀라는 팰트론 왕국 습격자들.
‘도대체 저런 살기는 어디서…….’
카르스 역시 눈앞에서 벌어진 참상에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일검을 휘둘러 적을 저토록 잔인하게 베어낸 자.
그는 불과 얼마 전 베커 공작이 새로 임명한 황실 근위기사였다.
일정 이상 마력을 쌓게 되면 표출되는 마력은 소유자의 성품을 담게 된다.
지금 보인 붉은 마력은 살기가 진득하게 담겨 있었다.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았지만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실전을 수련한 자가 분명했다.
터더더덩.
뿐만 아니라 천정 쪽에서 홀 바닥으로 가볍게 내려앉는 나머지 여섯 명의 기사들.
역시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우뚝 서는 모습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멋있었다.
포스가 황실 근위기사다웠다.
“으으으…….”
그제야 습격자들은 전신을 옭아매는 공포에 신음을 지렸다.
말로만 듣던 제국 황실 근위기사단의 재림.
이곳에 당도하기 직전 몬스터들을 도살하기라도 한 듯 근위기사들에게서는 강렬한 적의와 살기가 느껴졌다.
“감히…… 황실을 침공하다니.”
완전 무장한 근위기사의 차갑고 서늘한 목소리.
“수, 숫자가 적다! 모조리 처단하고 황녀를 확보하라! 국왕 전하께서 적들을 물리치고 곧 당도하실 것이다!!!”
두려움도 잠시.
바깥 전투 상황에 대해 알고 있는 습격자들이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현재 내성을 공격해 침투한 자들은 기사급만 100여 명.
결코 패배할 리 없는 규모였다.
“후훗. 과연 그럴까?”
기사의 몸을 두 쪽 냈던 근위기사가 차갑게 비웃었다.
“흐흐흐. 네놈들이 발악해도 승리는 이미 정해져 있다!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면 선처를 해주지.”
용기를 되찾은 습격자들.
자신들을 있게 한 용맹한 팰트론의 국왕을 믿는 데서 나온 기세였다.
“너희들의 국왕은 이곳에 오지 못한다.”
“뭐, 뭐라고?”
“아무리 용맹하다 해도 시체가 되어 걸을 수는 없지 않나?”
“다, 닥쳐!”
“건들지 말아야 할 분을 화나게 만든 죄는 결코 가볍지 않을 것……. 너희들이 가게 될 길, 너희의 왕도 그 뒤를 따라 곧 가게 될 것이다. 지옥으로!”
근위기사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말이 흘러나왔다.
“닥치라고!!!”
입으로 떠들어대는 기사를 보자 눈이 뒤집힐 만큼 분노한 습격자.
“다 죽여! 다 죽여 버려!”
협박을 받은 자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
“검진 발동!”
그때 근위기사의 입에서 검진 발동이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파아아앗.
거의 동시에 사방으로 터지는 일곱 가닥의 붉은 빛.
“참하라!”
명을 내린 근위기사가 몸을 날렸다.
그 뒤를 따라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나머지 근위기사들.
“아!”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카르스는 신음을 터트렸다.
넓은 홀을 가득 채우며 강림한 일곱 개의 붉은 별.
촤아아아앗.
“크아아아악!”
빛이 번뜩이자 뒤에 비명이 이어졌다.
후두두둑.
사방으로 흩어져 떨어지는 유성우의 파편 같은 팔과 다리들.
빨간 피분수가 조각 난 육신의 파편에서 비처럼 흩뿌려졌다.
***
“그대들의 실력을 보고 싶군.”
“명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밤중의 전투는 아무리 급박한 전쟁이라 해도 금기시 됐다.
자칫 피아를 구분하지 못해 대형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팰트론 왕국 바이클 국왕은 어떤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달마저도 모습을 감추고 사라진 밤.
수천 개의 모닥불이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창과 검, 방패를 든 정병들이 국왕의 명을 기다렸다.
투르르르르르.
콧김을 뿜으며 기사를 태운 말들이 신경질적으로 투레질했다.
그리고 왕은 사르칸 마탑의 장로들에게 공격할 것을 조용히 권했다.
자존심 강한 마탑의 장로들이지만 바이클 국왕 앞에서는 온순한 양이 됐다.
왕국과 동맹을 맺은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국왕의 실력을 인정하고 존중했다.
바이클 국왕 몸에서 풍겨 나오는 극강의 마력.
오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면 팰트론 왕국은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될 것이다.
왕국이 아닌 제국의 호칭을 쓸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되는 것.
탑주가 최대한 왕의 명령을 따를 것을 당부했다.
“제 견문도 넓혀 주십시오.”
왕실 마탑주 요른이 국왕 옆에서 살살 웃었다.
7서클 마법사 세 명이 펼치는 대규모 공격 마법은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왕국간의 전쟁 때나 한 번 구경할까 말까 했다.
“미력하나마 도움이 되겠습니다.”
사르칸의 수석 장로가 미소로 화답했다.
너무나 간단하고 쉬운 전쟁이었다.
베커 공작이라는 놈의 실력이 아무리 출중하다고는 해도 이런 대규모 전쟁에서는 개인의 능력은 반딧불이 수준일 수밖에 없다.
오늘 밤, 황녀의 군대는 기사들의 말발굽 아래 짓이겨 질 것이다.
전장의 분위기는 고요한 긴장 가운데서도 열기가 느껴졌다.
도열한 병사들도 빨리 공격 명력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어서 빨리 전쟁터 한복판으로 뛰쳐나가 적의 피로 온몸을 적셔야 피로가 풀릴 것 같은 이 밤.
“그대들의 노고를 잊지 않겠다.”
파라라랏.
분지 구릉 위에 자리를 잡은 만큼 세찬 겨울바람이 간간이 휩쓸었다.
온전히 그 바람을 맞으며 권좌에 앉아 있는 바이클 국왕.
그의 눈빛에서 흥미를 느끼는 기운이 엿보였다.
사실 그도 마탑 장로들의 다중 공격은 처음 구경했다.
견문을 넓힐 기회.
병사들의 사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바로 공격을 시작하겠습니다.”
“허락한다.”
처벅처벅.
마법사들이 간격을 벌리고 자리를 잡았다.
스윽.
머리 위로 치켜 올라가는 상급 마력석이 박혀 있는 마나 스태프.
“잠자는 마나여! 그대의 친구가 원하고 바라오니…….”
“나의 뜨거운 마나여…….”
“불의 마나여…….”
장로들의 입에서 각기 다른 마법 영창이 시작됐다.
메모라이즈 해두었던 평범한 마법이 아닌 마나와의 조화가 필요한 7서클 공격 마법을 발현하기 위한 주문어들.
위이이이이이잉.
마나 스태프의 마력석을 중심으로 대기의 마나들이 감응을 시작했다.
파아아아아앗.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스태프의 빛들.
맹렬하고 거대했다.
“오오…….”
“으으으.”
반신반의하며 지켜보고 있던 병사들의 입에서 하나같이 신음이 흘러나왔다.
“…….”
호위기사들도 격동하기는 마찬가지.
자신들의 마력까지 마법사들 주문에 반응하며 요동을 쳤다.
그리고.
“화염의 낙뢰!!!”
“용암의 폭풍!!!”
“불의 비!!!”
장로들이 자신 있어 하는 7서클 화염계 마법이 동시에 완성됐다.
파앗! 파앗! 팟!
마나 스태프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계 마법진이 캄캄한 허공에 붉게 수놓아졌다.
“와아아아아아아!”
자신들 머리 위에서 발광하는 정체 모를 룬어가 가득 찬 거대한 붉은 마법진에 왕국군은 열광했다.
적에게는 두려움의 상징이지만 같은 편에게는 신의 축복 같은 징조.
7서클 광범위 화염계 마법은 전쟁의 승패를 한순간 뒤바꿀 수 있었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세 명이 펼치는 마법이다.
적을 살려두지 않겠다는 마법사들의 의지가 담겨있었다.
쇄애애애애애앳.
완성된 마법이 적진을 향해 날아갔다. 룬어들이 불덩이로 변했다.
팟! 파바바바밧! 파아아아앗!
수백 수천의 화염의 각종 불덩어리들이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이며 지옥에 내리는 불의 비로 완성됐다.
어둠을 물리치고 붉은 대낮으로 주변을 환히 밝힌 7서클 화염 마법.
그 어떤 누구도 피할 방법은 없었다.
거대한 폭과 크기 때문에 인간의 발걸음으로는 그 범위를 벗어나는 게 불가능했다.
지켜보는 모두가 숨을 죽였다.
엄청난 쾌속으로 적진을 향해 날아가는 마법을 따라 모두의 시선이 함께 움직였다.
앞 다투어 지상으로 떨어지는 화염 마법들.
마른침을 넘기는 소리조차 없었다.
잠시 후에 펼쳐질 화염지옥을 상상하기 바빴다.
그런데 그 순간.
지이이이이이이이이잉.
갑자기 황녀의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적진 위로 펼쳐지는 거대하고 반투명한 방어막.
퍼버버버버버버버버버벙.
쏟아지던 화염 마법이 적진 상공에서 방어막에 부딪치며 화려하게 터져나갔다.
“헛!”
“내 눈!!!”
지켜보는 이들의 눈을 멀게 할 만큼 강력하게 마법과 마법이 부딪쳤다.
팰트론 왕국의 병사들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음에도 피부에 느껴지는 뜨거움이 장난 아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뜨거움이 사라졌다.
고개를 들어 전방을 확인한 병사들.
“!!!”
모두 입을 떡 벌렸다.
엄청났던 7서클 화염계 마법에도 꿈쩍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적의 방어 마법진.
“이, 이게 무슨…….”
“허엇!”
마법을 펼친 사르칸 마탑 장로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7서클 마법사들이 펼친 공격 마법을 거뜬히 막아낼 수 있는 방어 마법은 오직 하나.
8서클 마법사의 방어 마법밖에 없었다.
“흐음…….”
신음을 흘리는 바이클 국왕.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그도 직감했다.
위이이이이이잉.
파아아아아아앗!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갑자기 왕국 군이 도열한 분지 양쪽 산에서 거대한 진동과 함께 어마어마한 마법진 수십 개가 생성됐다.
뒤이어 등장하는 낯선 그림자들.
마나 파동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는 요른.
“에, 엘프!!!”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