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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7장. 첫눈 그리고.(2) (744/1,284)

747장. 첫눈 그리고.(2)

“더 이상 이대로 방치할 수 없습니다. 크로얀 제국의 깃발 아래 아무것도 모르는 기사 지망생들이 몰려가고 있습니다. 의탁할 곳 없던 귀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쥬넨 후작가문 멸망 이후 주변 영지들은 모두 제국에 복속됐습니다.”

“전하. 세작들에 의해 파악된 전력도 만만치 않습니다. 귀한 마력 갑옷 수백 벌이 충원됐습니다. 특수한 수련 방법으로 기사들의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변 산맥 몬스터들을 소탕하는 만큼 실력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크로얀 제국 시절 공작 작위를 받았던 팰트론 왕국 왕성.

국왕의 집무실에 세 명의 남자가 함께 자리했다.

국왕 바이클 폰 팰트론이 보고를 받으며 묵묵히 권좌에 앉아 있다.

사십대 중반의 단단한 체격을 가진 바이클 국왕.

뺨을 가로지르는 깊은 검상이 꿈틀거리는 지렁이처럼 흉터로 남았다.

지금이라도 치료가 가능했지만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겼다.

상급 마수를 물리치고 얻은 훈장 같은 상처였다.

몸 곳곳 역시 일부러 새긴 문신처럼 크고 작은 흉터가 많았다.

한 왕국의 국왕이었지만 언제 어느 때건 검을 휘두를 수 있을 정도로 손에서 검을 놓지 않았다.

과거 제국 시절에도 팰트론 가문은 항상 제국의 선봉이었다.

대대로 최상급 마력기사를 배출한 검술의 명문가.

오른팔과 왼팔이라 할 수 있는 두 명의 후작이 보고했다.

그러나 팰트론 국왕은 가만히 듣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과묵한 성격의 내색하지 않는 야심가다.

“마력 갑옷 출처는?”

팰트론 국왕은 왕실 마탑주 요른 후작에게 물었다.

“드워프 제품인 듯합니다.”

“드워프라…….”

“베커 장이라는 황실 수호 공작이 드워프와 엘프들까지 친분이 깊다고 합니다. 엄청난 수익을 안겨 주고 있는 드워프 물품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실력이 대단하다고 했지?”

“……마족이라는 소문까지 돌고 있습니다. 마수도 아니고 마물이 살고 있던 성을 차지했습니다. 인간이라면 결코 그런 전투 능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기사단장 슈트베른 후작이 말을 보탰다.

그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실력이었다.

삼엄한 호위를 받고 있던 아라돈 후작을 단숨에 참살한 베커 장.

기사들 사이에서는 이미 마족의 호위 기사로 암암리에 불리고 있었다.

“후후훗.”

두려움은커녕 호기심 가득한 관심을 보이는 바이클 폰 팰트론 국왕.

“폐하. 사르칸 마탑에서도 장로들을 세 명 파견하겠다 연락이 왔습니다.”

“장로들을 세 명씩이나 말입니까?”

슈트베른 후작이 놀라워했다.

사르칸 마탑이 왕국과 인연이 깊기는 하지만 장로들을 셋씩이나 파견할 줄은 몰랐다.

장로들은 마탑의 핵심 전력이나 진배없었다.

8서클 마법사를 배출하지 못하게 되면 마탑은 그 순간부터 명성을 잃었다.

파견 예정인 장로들은 8서클에 오를 수 있는 후보자들이었다.

그만큼 마탑에서는 그들의 신변을 엄중하게 관리했다.

“슈트베른…… 준비는 끝났나?”

바이클 국왕은 대귀족인 슈트베른에게 가볍게 물었다.

반말로 묻는 바이클 국왕 앞에 누구하나 싫은 내색을 표하지 않았다.

힘으로 지금의 권좌를 스스로 지켜내고 있는 팰트론 국왕이었다.

“전하께서 진군의 명을 내리시면 국경에 주둔 중인 20만 정예병과 기사들이 즉시 출진할 것입니다!”

“마법사들 또한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후작들의 태도는 공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라돈 후작이 죽고 쥬넨 가문의 영지가 황실에 복속되는 순간부터 타협은 있을 수 없었다.

바이클 왕국의 왕비가 아라돈 후작의 여동생이다.

“흐음.”

골똘히 생각에 빠진 국왕 바이클.

“폐하. 복수는 물론 영지 상속 문제까지 명분은 넘칩니다. 검을 뽑아 크로얀 제국 황실의 싹을 잘라 없애야 합니다.”

슈트베른이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결혼식도…… 준비해야겠군.”

그 순간 뜬금없이 이상한 소리를 내뱉는 국왕 바이클.

“…….”

“???”

두 명의 후작은 바이클 국왕의 반응에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전쟁 직전 회의 중에 결혼식이라니!

현재로서는 전혀 연관이 없는 얘기였다.

“아!”

잠시 뒤 왕실 마탑주 요른 후작이 짧은 탄성을 터트렸다.

뭔가 깨달은 눈치.

“역시 폐하이십니다!”

갑자기 격정에 찬 목소리로 바이클 국왕을 찬양하는 요른 후작.

“요른 후작…… 그게 무슨…….”

아직 사태를 이해하지 못한 슈트베른 후작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황녀를 왕세자비로 삼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의 왕국은…… 제국이 된다. 제국!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

희번덕거리는 눈빛에 광오한 웃음을 터트리는 바이클 국왕.

“오! 폐하! 역시 대단한 혜안이십니다!”

슈트베른이 한 발 뒤에 탄성을 터트렸다.

유일한 크로얀 제국 황실 후계자를 왕세자비로 삼게 된다면 그 순간 적통성은 그대로 승계가 된다.

왕국에 그치지 않고 제국이 될 수 있는 발판.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골드 드래곤 사냥을 시작한다! 왕국군에게 진군을 명하라!”

크로얀 제국을 상징하는 골드 드래곤.

제국을 사냥하겠다 선포하는 팰트론 왕국의 바이클.

“명을 받드옵니다!!!”

후작들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만반의 준비를 철저하게 끝마친 전쟁 준비.

남아 있는 건 승리의 축배를 드는 일밖에 없었다.

***

“……적이 움직였다고 했나요?”

“그렇사옵니다. 폐하.”

“아…….”

크로얀 제국 황제 대행 아린이 신음을 흘렸다.

추수가 막 끝난 겨울 초.

숨죽이며 기다려 왔던 전쟁이 드디어 터졌다.

국경을 접하고 있던 팰트론 왕국의 요새 병력들이 출병했다.

목표는 아린이 머물고 있는 아라돈 후작성.

“바이클 국왕이 직접 움직였나요?”

“세작들의 보고에 의하면 마법진을 이용해 기사단들이 곧장 요새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들과 함께 움직일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중요 대신인 카이루 후작이 빠르게 상황을 보고했다.

“겨울이 막 시작됐는데…… 이런 때 공격이라니……. 상식을 벗어난 전술입니다.”

제국 경제를 담당하고 있는 자라스 백작이 고개를 살살 저었다.

전쟁은 보통 이른 봄에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겨울은 전쟁을 하기에 모두에게 시기적으로 썩 좋지 않았다.

혹한으로 인한 각종 질병 그리고 식료품 조달의 어려움으로 병사들의 전투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했다.

“팰트론 가문 특성상 속전속결의 전술을 구상했을 겁니다. 바이클 국왕은 그만큼 실력도 출중합니다.”

카이루 후작이 상대의 전략을 분석했다.

“이거 큰일이군요. 중요 전력 차가 너무 극심하니…….”

“국왕이 직접 움직였다면…… 막강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팰트론 가문 기사단도 함께할 것 아닙니까.”

“크로얀 제국 황실 근위 기사단에도 밀리지 않았다던 그들인데…… 어찌 막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법사들도 움직였겠죠?”

“농성으로 방어할 수도 없겠군요.”

회의장에 모인 귀족들이 소란스럽게 웅성거렸다.

유서 깊은 제국 가문들 몇 곳이 합류했다.

하지만 전력 면에서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한 처지였다.

피부에 와 닿는 전력 차에 동요하는 귀족들을 바라보며 아린은 두 눈을 감았다.

과거 영화로웠던 크로얀 제국의 부활을 반기지 않는 자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잠잠했던 바다에 큰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흐름을 타고 대범하게 넘지 못하면 모든 게 휩쓸려 버릴 게 확실했다.

‘베커…….’

아린은 한 남자를 떠올렸다.

지금 믿을 수 있는 이는 황실수호공작밖에 없었다.

“그래서 항복이라도 하자는 말입니까?”

“!!!”

순간 모두의 시선이 회의장 입구 쪽으로 향했다.

냉랭한 시선으로 말 많은 귀족들을 쳐다보고 서 있는 한 남자.

“가, 각하.”

“그게 아니라…….”

상대를 확인한 귀족들이 크게 당황했다.

황제를 제외하고 그 누구라도 즉결 처분할 수 있는 황실수호공작이었다.

저벅저벅.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유유히 다가왔다.

저벅저벅.

게다가 혼자가 아니었다.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20여 명의 기사들.

모두 은빛 마력 갑옷으로 무장하고 그 위에 붉은 망토를 착용했다.

“그, 근위 기사단!”

“!!!”

황실이 멸망하면서 함께 사라졌던 제국 황실 근위 기사단 복장 그대로였다.

갑옷에 황금빛으로 새겨진 골드 드래곤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들 모두의 걸음 또한 절도가 넘쳤다.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어정쩡한 자세의 귀족들을 압도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실력이 범상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베커 장 황실수호공작이 폐하를 알현하옵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베커 공작의 목소리.

“추우우웅!”

베커 공작 뒤로 도열한 기사들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큰소리로 외쳤다.

가슴에 손을 가져가는 기사단의 예법.

“어서 오세요. 베커 공작님.”

아린의 입가에 거짓말처럼 미소가 활짝 피어났다.

‘도대체…… 저들은 누구?’

아린이 보기에도 결코 범상치 않은, 대단한 기사들의 등장이었다.

“뒤에 기사들은 폐하를 측근에서 수호할 황실 근위기사들입니다. 실력은 모두 상급 마력 기사 수준입니다.”

“허엇!”

“사, 상급!”

어리둥절해 있던 귀족들이 놀라 비명을 토했다.

과거에도 황제의 명을 수행하는 근위 기사단은 상급 마력 기사들만이 입회가 가능했다.

단 열 명만 있어도 웬만한 귀족 가문을 쓸어버릴 수 있는 엄청난 전력이었다.

다들 나이도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는데 겸비한 실력이 엄청났다.

“호위하라.”

타다다닥.

근위 기사들이 공작의 명을 받고 회의장 곳곳을 차지하며 도열했다.

스스스슷.

기사들이 뿜어내는 묵직한 압박감에 귀족들은 숨쉬기도 벅찼다.

조금 전처럼 입을 함부로 놀릴 엄두도 내지 못했다.

“폐하. 어차피 부딪쳐야 할 적입니다. 그들을 꺾지 못하면 황실의 영광은 되찾을 수 없습니다.”

베커 공작은 돌아가는 상황을 다 알고 있는 듯했다.

“알고는 있지만…… 병사들과 백성들이 겪어야 할 고초에…… 마음이 아픕니다.”

공성전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되면 아린의 예상대로 백성들이 많은 피해를 입게 된다.

으레 전쟁에서는 백성들이 화살받이로 내몰리는 것을 알지만 아린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평민의 삶을 살며 밑바닥을 직접 경험한 아린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귀족들에게는 한낱 쓸모없는 존재에 불과한 백성들마저도 붉은 피를 흘리는 같은 사람이라는 걸 너무 잘 알았다.

“심려치 마시옵소서. 백성들의 피해는 거의 없을 것이옵니다.”

“네?”

베커의 말에 아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수십만 병력이 크로얀 제국의 부활을 막기 위해 몰려오고 있었다.

그들이 대동한 마력 갑옷을 착용한 기사들만 해도 1000단위에 육박했다.

거기에 마법사들 수도 무시 못 했다.

이 상황에 승리를 점칠 수 있는 묘책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공성전은…… 없을 겁니다.”

귀족들을 쭉 둘러보며 선포하듯 한마디 내뱉는 베커 공작.

“그럼…… 성을 버리란 말입니까?”

카이루 후작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아닙니다.”

“아니라면…… 무슨 대단한 전략이 있는 것입니까?”

“팰트론 왕국군을 벌판에서 직접 상대할 생각입니다.”

“뭐, 뭐라고요!”

“전면전!!!”

귀족들의 얼굴이 일시에 새카맣게 변했다.

전면전은 아예 생각하지도 못한 전술이었다.

꿈도 못 꿀 만큼 압도적으로 불리한 전력 차.

“저를 믿으십시오. 승리는…… 우리 것입니다!”

***

“베커……. 괜찮겠어요?”

품에 안긴 아린이 걱정스러운 듯 몇 번씩이나 물었다.

가장 높은 성벽의 망루.

휘리리리리링.

겨울바람이 제법 불었다.

망토로 아린을 감싸 안았다.

약간의 마법으로 차가운 바람도 차단했다.

“당연하지.”

전쟁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그동안 이곳에 방문할 때마다 놀고먹지만은 않았다.

언젠가는 터질 전쟁.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

자칫 이곳에서 죽으면 나, 지구도 못 간다.

그렇다고 특별한 인연으로 묶인 아린을 모른 체하며 버릴 수도 없었다.

신들이 짠 시나리오가 어떻게 흐를지 모르지만 날 이곳에 소환한 이유도 분명 있을 것이다.

평행이론 같은 머리 아픈 추론은 사양이다.

회귀와 차원 이동은 다른 듯하면서도 묘하게 같은 결을 띠고 있었다.

결코 평범한 인간의 사고로는 개입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

“눈이 올 것 같아.”

“정말요?”

망토에 싸여 있던 아린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사릇 사릇.

거짓말처럼 굵은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지구에서처럼 이곳 아르펜 대륙에도 첫눈이 내렸다.

“첫눈이에요…….”

아린이 손을 뻗어 하얀 나비처럼 나는 눈송이를 손바닥으로 받았다.

한 제국의 황녀 신분이지만 아직 소녀 같기만 한 아린.

“아린.”

그녀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불렀다.

“네…….”

나를 바라보는 심해 보석 같은 아린의 푸른 눈동자.

“다음 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언제까지나 당신과 함께 첫눈을 맞이하고 싶어.”

내가 들어도 달달한 고백.

프라이팬에 버터를 두르고 그 위에 설탕을 듬뿍 뿌린 것 같은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

아린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스르륵.

망토를 여며 다시 한 번 그녀를 감싸 품에 깊숙이 안았다.

전운이 눈앞에 닥쳤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패배는 있을 수 없다.

나의 여인을 위해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 X랄! 아오! 눈깔을 내가 파야지……. 염장도 가지가지다. 이계 호색 말미잘 바람둥이 같은 XX야!

귀를 파고드는 알파닥의 반가운(?) 음성.

형체도 없는 몸을 비틀며 온갖 반항을 다했다.

어이. 알파닥.

- 왜!

부러우면 지는 거다. 알지?

- 닥쳐! 이 XXX야! 너에게 패배의 저주가 임하기를 마신님께 기도할 거다!

뭐? 뭐라고? 마……신???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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