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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장. 대주주. (738/1,284)

741장. 대주주.

“…….”

병실은 묵직한 침묵에 휩싸였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장태산의 말.

임윤아도 마찬가지였다.

“마, 말도 안 돼.”

임아현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세계적 반도체 업체인 오정전자는 외국인들이 50% 정도 주식을 소유하고 있다.

월가를 비롯해 홍콩, 유럽 투자자들의 대한민국 핵심 투자처였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압도적 기술력으로 탑을 찍는 한국의 대표 기업.

2013년 200조가 넘는 시가총액은 코스피 대장주다.

자신이 바로 ‘그’ 오정전자의 대주주라고 스스로 밝힌 장태산.

경악과 불신, 의혹이 모두의 눈빛에 맴돌았다.

‘최대 주주라고? 그럼 도대체 얼마나 소유했다는 거야!’

임준형은 생각지 못한 장태산의 발언에 미칠 지경이 됐다.

오정전자는 오정그룹의 핵심 사업체였다.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자금으로 다른 계열사들의 주식을 보유하는 구조를 띠고 있었다.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과거보다 계열사 주식 보유량이 떨어진 상태지만 오정전자가 넘어가면 그룹 지배력이 끝장난다.

더욱이 외국인 지분이 50%를 넘긴 상태.

순수 오정그룹 계열사들의 전자 주식 보유 지분은 25%가 맥스다.

경영권 다툼이 벌어진다면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국민연금이 10% 정도 보유하고 있지만 의결권이 제한됐다.

상상하지 못한 장태산의 발언에 임준형의 얼굴은 시시각각 변했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야?’

임아현도 임준형과 심정이 비슷했다.

장태산의 폭탄선언에 무방비로 당했다.

방금 전까지 마구 퍼부었던 망언들이 자동 재생됐다.

적을 잘못 설정했다.

왜 아버지가 그토록 장태산을 중요한 인물로 생각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그가 오정의 목줄을 잡고 있었다.

‘저 자식이…… 대주주?’

주현민은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스러웠다.

오정의 최대 주주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수십조 자산이 필요했다.

달러로 수백억 달러가 넘는 자금이다.

개인이 보유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더욱이 대주주 보유 공시도 안 된 상황.

장태산의 말만으로는 믿기 어려웠다.

‘……호랑이였어.’

황라희는 장태산을 다시 천천히 살폈다.

남편이 애지중지하는 막내딸을 팔아먹듯 넘기려 했던 이유가 명확해졌다.

그저 잘난 청년이 아니라 오정의 목을 물 수 있는 호랑이였다.

그것도 대호(大虎).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됐다.

병실에 있던 오정 가문의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유로운 장태산.

“태산 씨……. 정말이에요?”

임윤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정을 상대로 거짓말할 간 큰 인간이 대한민국에 있나요?”

“그렇죠…….”

임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정에게 밉보이고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이나 사람은 드물었다.

경제인과 언론, 정치인들, 관공서 모두 오정의 통제 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 수십 년 세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키워낸 오정의 장학생과 관리 대상 고위 공직자들.

그 수만 해도 수천 명에 이를 것이다.

“증명할 수 있어요? 공시도 없이 어떻게 대주주라는 말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장태산 씨 소유 투자회사는 겨우 몇 조에 불과한 투자금이 전부잖아요.”

몇 조라는 자금을 ‘겨우’라고 말할 수 있는 오정의 사위 주현민.

오정의 일개 계열사 임원에 불과하지만 나름 동서일보의 정보력을 활용하는 게 가능한 신분이었다.

와이프 임아현의 명을 받고 조사해 장태산 투자금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오정은…… 비자금 없습니까?”

여유만만하게 웃으며 답하는 장태산.

“말장난 하지 말아요. 당장 확인 시켜줘 봐요. 만약 거짓말이라면…….”

임아현은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처음으로 되돌릴 수 없는 상황.

이럴 때는 과감하게 승부수를 띄우는 게 옳았다.

“확인이라…….”

오정 일가의 일원들 눈빛을 한 명 한 명 맞춰보는 장태산.

“그러죠.”

요구를 쿨하게 승낙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티디디딕.

가볍게 번호를 터치하는 장태산.

띠이이이이잇.

신호가 울렸다.

- 하하. 다니엘!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장태산이 스피커폰을 켰다.

상대는 호탕하게 웃으며 전화를 받은 외국인 남성.

“로버트, 내 친구들이 잠시 확인하고 싶은 게 있다고 해서 말이에요. 확인해 줄 수 있습니까?”

- 친구분들이 궁금해하는 게 뭐죠?

“로버트가 투자한 오정 주식이 얼마나 되죠?”

- 흐음……. 그건 업계 비밀인데. 다니엘의 부탁이라면…… 알려줘야지.

‘로버트 라이언!’

임준형은 장태산이 능숙하게 구사하는 영어대화 상황을 지켜보며 한 사람을 떠올렸다.

장태산과 친분이 두텁다는 월가 친구 로버트 라이언.

그가 보유한 천문학적인 투자금은 지금도 계속 불어나고 있었다.

타다닥.

장태산의 전화기 너머에서 컴퓨터 자판기를 두들기는 소리가 분명한 터치음이 부산하고 생생하게 들려왔다.

- 어제까지 보유한 사모펀드를 비롯해 여러 투자 총액의 지분율은 정확히 25%를 조금 넘는군. 수익률은 7% 정도. 수익률이 좋아 계속 보유할 생각이야.

“25……!”

“세상에…….”

“아!”

통화 내용을 듣던 오정 일가 사람들은 놀라 경악성을 터트렸다.

계열사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제외한 오정 일가의 전자 주식 지분은 겨우 10% 정도다.

- 참고로 다른 계열사들도 투자 재미가 있어 자금 집행 중이야.

“그래요? 규모가 얼마나 됩니까?”

- 그것까지는 알려 줄 수 없어. 아무리 친구지만……. 최소한의 영업 비밀은 지켜야 하니까 말이야.

“고마워요. 로버트.”

- 다니엘, 오정 경영에 관심 있으면 말만 해. 다른 투자자들과 협의해 대표로 추천해 줄 수 있어. 난 자네의 능력을 믿어.

충격적인 발언은 계속됐다.

오정전자 말고도 다른 계열사 지분을 비밀리에 보유하고 있다고 밝힌 로버트 라이언.

임준형의 얼굴이 새카맣게 변했다.

황라현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임아현은 죽은 나무처럼 굳어버린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임아진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장태산을 바라봤다.

임윤아만이 존경과 경외에 찬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그건 다음에…… 생각 좀 하죠.”

- 시간 나면 놀러와. 자네에게 조언을 구할 게 있으니 말이야.

“조만간 뵙죠. 그럼.”

띠릭.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

병실을 가득 채운 무거운 침묵.

이제 누구도 장태산이 대주주라는 사실을 의심할 수 없었다.

비록 장태산이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월가의 천재 투자자가 장태산 뒤에 분명 있었다.

한마디로 오정의 경영권이 위태로운 상황.

타개책은 없었다.

오정전자는 한두 푼 하는 사업체가 아니었다.

“자격은 충분히 증명한 것 같은데……. 잠시 임 회장님과 둘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장태산이 다시 한 번 정중하게 물어왔다.

“그래요……. 남도 아닌데. 그 정도는 가능할 것 같군요.”

황라현이 자연스럽게 허락을 했다.

여러 의미를 포함한 ‘남이 아니라’는 말.

그새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장태산이 대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 버렸다.

“10분이면 됩니다.”

장태산이 웃으면서 답했다.

“뭣들 하는 거야. 다들 나가자. 할 말도 있으니…….”

황라현이 앞장서서 병실을 나갔다.

“하아…….”

말없이 뒤를 따르며 한숨을 내쉬는 임아현.

아내의 기가 한풀 꺾인 것을 보자 심각해진 주현민이 장태산을 힐끔 쳐다보며 따라 나갔다.

“……할 말이 많으니 잠시 후에 나 좀 보고 가지.”

임준형이 정신을 차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방금 전 불같이 화를 내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대신 심기 복잡한 눈빛으로 장태산을 바라봤다.

“알겠습니다.”

답하는 장태산의 눈빛은 담담했다.

뚜벅뚜벅.

임준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병실 밖으로 나갔다.

“태산 씨…….”

“조금 후에 봐요.”

“네.”

임윤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졌다.

침대에 누운 임 회장과 장태산만이 남은 병실.

웃음기를 띠고 있던 장태산의 얼굴이 차갑게 식었다.

대주주라는 신분을 밝히기 전까지 그들이 주었던 수모.

“앞으로 기대가 되네.”

혼잣말을 흘리는 장태산.

걸음을 옮겨 침대로 향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있는 임성철 회장을 조용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만 연기하시고…… 이제 눈 뜨시죠. 회장님.”

***

이곳에 오기 전 여러 가지 시나리오의 각본을 짰다.

오정 황태자인 임준형과 임아현 성격에 대해서는 진작부터 파악한 상태.

로버트 라이언과도 미리 말을 맞췄다.

예고 없이 전화를 걸면 바로 ‘보스’라는 호칭을 쓸 게 뻔했다.

최종 신분은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는 일.

로버트 라이언의 친구 정도면 족했다.

계획대로 일이 착착 진행됐다.

임윤아의 포스 넘치는 행동으로 무사히 입성한 병실.

운 좋게 오정 직계들과 조우도 했다.

각개 격파보다도 일거에 쓸어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지금껏 대한민국 슈퍼 갑으로 살아온 그들.

오늘은 하늘 위에 더 높은 하늘이 있다는 걸 가르쳐 주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뜻대로 흘러간 결과에 속은 후련했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했다.

앞으로 도래하게 될 대한민국의 미래.

오정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차명 계좌로 투자한 주식도 상당했다.

오정의 최대 주주라는 말은 허튼 소리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나라고 해도 오정을 경영할 수는 없다.

오정 직계들이 보유하고 있는 인맥은 대단한 무형 자산이었다.

돈으로도 얻을 수 없는 자산.

모두를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게 최선이었다.

꿈틀.

내 말이 끝나자 임성철 회장이 몸을 미세하게 움직였다.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지금 이 상황이 심히 부끄러울 회장님.

“침대…… 편해요? 특실 밥은 따로 나옵니까?”

털썩 침대 옆 보조 의자에 걸터앉았다.

누가 보면 나 혼자 떠드는 모습에 미친놈인 줄 알 것 같았다.

누워 쓰러져 있는 임성철 회장에게 혼자 이런저런 말을 거는 사람은 정상으로 보이지 않을 테니 말이다.

“지금 밖은 난리도 아닙니다. 역시 유명인은 다릅니다. 대통령이 쓰러져도 저 정도는 아닐 텐데……. 그런데 어떻게 병실에 음료수 하나 없습니까?”

오정 직계들만을 위해 따로 준비된 럭셔리 병실.

초특급 호텔 스위트룸 수준이었지만 따듯한 온기는 없었다.

쓰러져 죽어가는 자를 살리기 위한 시설이 아니었다.

오로지 오정의 명예를 위한 공간.

회장이란 신분은 죽어가면서도 품격을 지켜야 하는 것 같다.

“회장님. 앞으로 시끄럽겠죠? 제가 고민이 많습니다.”

눈을 감고 있는 임성철 회장에게 말을 계속 던졌다.

“오정그룹…… 전문 경영인 체제로 가야 하나…… 말입니다. 임준형 상무가 절 싫어합니다. 임아현 부사장도 그렇고…… 오정 예쁘게 포장해서 팔면 값 좀 나을까요?”

부르르르.

말을 계속 이어나가자 임성철 회장이 몸을 떨었다.

씨이익.

나의 입가에 사악한 미소가 번졌다.

“저와 회장님 사이에 뭐가 부끄럽겠습니까. 눈 뜨세요.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시면 바로 집으로 갈 겁니다. 그리고 오정은…….”

대답 없는 침대 위에 누운 환자.

“하나…… 둘…….”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누구나 하는 세 번의 기회.

엉덩이를 들었다.

“고……얀놈.”

귓가에 들려오는 노쇠한 목소리.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는 임성철 회장.

쪽팔림으로 붉어진 얼굴은 쓰러지기 전보다 더 생기가 넘쳐 보였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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