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장. 형제의 난(2)
“윤아가?”
“방금 병원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언제 온 거야? 비행기 표 예약 안 했다고 했잖아?”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한 것 같습니다.”
“자가용 비행기? 회사 비행기?”
“……장태산이 같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장태산!”
오정그룹 본사 임준형이 머무는 상무실.
제2비서실 소속 비서가 들어오는 소식을 그때그때 보고 중이었다.
임성철 회장 명령으로 대내외적으로 자리를 잠시 비운 채였지만 방은 그대로다.
다른 상무실보다 규모가 훨씬 큰 임준형의 사무실.
급하게 올라오는 각종 보고를 들으며 임준형이 인상을 썼다.
그룹 덩치는 거대했지만 운영 방식은 중소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결과의 책임은 그룹 오너에게 있는 구조.
오너의 최종 확인 사인이 없으면 누구도 앞으로 나서서 책임지려 하지 않았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것일 뿐, 아직 상무 직위가 유효한 임준형은 아버지가 쓰러진 틈을 타 그룹을 일시에 장악했다.
눈치 빠르게 임준형 뒤로 붙은 사장단.
자연스럽게 임준형에게 보고하고 그에 따른 지시를 받았다.
협력해 오는 사장단 덕에 임준형은 무난하게 회사 일을 처리했다.
엄격한 오정의 경영 수업은 이 바닥 업계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다.
등기 대표 이사까지는 아니었지만 형식적으로 임준형은 대리청정이 가능한 황제가 됐다.
“그래서…… 들여보냈어?”
“그렇게 됐다고 합니다.”
“오광연이 뭐 한 거야! 내가 외부인 안 된다고 했잖아!”
임준형이 버럭 호통을 쳤다.
임성철 회장의 갑작스런 병환은 개인 신변 문제에 국한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경제를 흔들 수 있는 지대한 문제였다.
통제되지 않는 몇몇 언론사가 사냥감을 좇아 취재경쟁에 나섰다.
괜한 구설수에 오르내릴 수 있었다.
“……막내 아가씨가…… 장태산을 가족이라고 했답니다.”
“가족?”
바로 말뜻을 알아듣지 못한 임준형.
“장태산을 약혼자라고…….”
“뭐? 약혼자? 장태산이?”
임준형은 그제야 의미를 알아채고 어이가 없어 실소했다.
“네.”
“미친.”
임준형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둘 다 무슨 꿍꿍이야.’
장태산은 도저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였다.
자수성가로 부를 축적한 능력 있는 투자자에 이제는 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설마!’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는 불길한 생각 하나.
임성철 회장이 이대로 사망하게 되면 상속은 자연스럽게 법정상속으로 결정된다.
“차 준비시켜!”
한가하게 회사에 앉아 회장 대행 노릇을 할 때가 아니었다.
막내 여동생 임윤아의 빠른 등장은 변수가 됐다.
지금 당장 임성철 회장의 신변에 문제가 발생하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되는 존재가 임준형.
그룹 승계 작업이 마무리 되지 못한 상태였다.
“넵!”
비서가 대답하고 빠르게 밖으로 튀어나갔다.
“장태산……. 이 자식 오정을 노리는 거였어! 감히 오정을!”
세상 물정 모르는 임윤아를 꼬드겨 오정에 접근한 만큼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잘못하다가는 계열사 중 큰 거 하나 떼어줘야 할 판이었다.
두 여동생을 견제하기도 바쁜 이 시국에 생각지 못한 다크호스의 등장.
임준형의 얼굴은 급작스러운 스트레스로 시커멓게 굳어지고 있었다.
***
스르르르.
오정 병원 VVIP 특실.
막바지 가을 단풍이 물들고 있는 붉은 빛의 병원 정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특실.
굳게 닫혀 있던 두 번째 문이 열렸다.
오정의 소유주인 임씨 가족들을 위해 남겨 놓았다는 병실은 호텔 프레지덴셜 스위트룸과 비교해도 될 정도였다.
띠이 띠이 띠이.
각종 의료 장비들에서 흘러나오는 전자음이 병실을 채웠다.
급한 불은 껐다지만 여전히 심각한 상태의 중환자인 임성철 회장.
그는 눈을 감은 채 죽은 듯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얼마 전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
“아빠…….”
위엄으로 임준형 비서를 몰아세우던 임윤아가 아니다.
다시 여린 여인으로 돌아와 애처롭게 아빠를 불렀다.
목소리에 담긴 여러 복잡한 감정들.
차마 나는 침대 가까이로 다가가지 못했다.
오로지 임윤아를 위한 시간이었다.
언제나 든든하게 곁에서 버텨줄 줄 거라 믿었던 아빠의 병환.
생사가 오가는 길목에서 세상을 살면서 쌓아올린 그룹 회장이라는 직함 같은 건 별 의미가 없어 보였다.
침대 위에 쓰러진 사자.
어제까지 세계를 호령하던 한 거대 그룹의 주인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환자로 전락해 있었다.
권력무상(權力無常)의 현장이 따로 없었다.
“아빠아……. 흑.”
대답 없는 임성철 회장의 모습에 임윤아는 참았던 눈물을 토했다.
앞서 보였던 행동과 달리 많이 여린 임윤아.
한걸음 다가가 그녀를 부드럽게 안아줬다.
“흐으윽……. 흑.”
품에서 기대오며 눈물을 흘리는 임윤아.
막연히 상상만 해오던 현실이 눈앞에 닥치자 단단하게 버티지 못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
“우리 아빠…… 어떡해요. 이제 다시는…….”
임성철 회장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걸 임윤아도 모를 리 없었다.
대한민국 최고 의료진도 더 이상 손쓰지 못하고 있는 임성철 회장의 상태.
급작스러운 변수로 인해 내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물론 걱정 되지는 않았다.
육신에 호흡만 붙어 있다면 다시 소생시키는 건 일도 아니다.
저승사자 방문 시 맡아지는 특유의 칙칙하고 젖은 듯한 공기 냄새도 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보고 있을 그들.
“이리 와요.”
임윤아를 부축해 임성철 회장 가까이로 더 다가갔다.
그러나 생각보다 상태는 더 심각했다.
심근경색으로 인해 몸의 기능이 거의 다 바닥을 드러낸 상태.
선천의 기를 다 소모한 만큼 당장 숨을 거두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오정을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인물.
기업을 꾸리는 데 들어갔을 임성철 회장의 엄청난 에너지.
일개 범부들이 떼로 몰려 아무리 입방아를 찧어대도 이 한 사람을 넘어설 수는 없었다.
임성철 회장은 그야말로 하늘이 허락한 진정한 갑부(甲富)였다.
졸부나 범부는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전생의 업을 쌓아 이생에서 양껏 누렸던 복락.
“아빠. 윤아 왔어요. 일어나 봐요……. 저 시집가서 손주들 낳으면 용돈 주신다고 했잖아요. 이렇게 누워 있으면 난 어떡해요…… 아빠…….”
부녀간의 사랑이 내 생각보다 더 끈끈했던 것 같다.
가슴이 미어지는 임윤아의 목소리.
조용한 병실에 숙연함까지 더해졌다.
“…….”
그러나 임성철 회장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영혼이 육신과 분리되기 직전.
“포인트 생명에 투자.”
침묵에 가까울 정도로 낮은 목소리로 공간에 대고 입을 열었다.
- 카르마 포인트를 죽어가는 임성철 회장을 위해 투자하시겠습니까?
기다렸다는 듯 들려온 알림음.
이제부터 나도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임성철 회장이 깨어나는 순간부터 그 뒤에 이어질 업은 나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수락한다.”
파아앗.
내가 쌓았던 카르마 포인트 일부가 임성철 회장에게 쏟아졌다.
다른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포인트가 생명의 기로 변환되어 임성철 회장에게 투입됐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
좀 더 안정적이게 바뀐 바이탈 신호.
호흡이 육신을 빠져나갈 뻔한 고비는 넘겼다.
물론 지금 바로 깨울 생각은 없다.
이제는 하늘과 인간들을 속여야 할 순서.
지금부터 임성철 회장은 침대에 누워서 지내야 할 것이다.
아내와 자식들, 심지어 의료진도 몰라야 한다.
“우리 아빠 어떡해요? 별일 없는 거죠? 곧 깨어나시겠죠?”
눈물범벅이 된 임윤아가 나를 보며 물어왔다.
“걱정 마. 지치신 거야. 그래서 잠시 쉬고 있는 중이시고.”
“네…….”
두 손으로 푸석해진 임성철 회장의 손을 잡는 임윤아.
그룹 회장에 갑부라고 해서 세끼 먹고 사는 일이 다르지 않다.
하물며 아프면 가족밖에 없는 것도 다를 게 없다.
또각또각.
저벅저벅.
그때 밖에서 구둣발 소리가 들렸다.
스르르릇.
이중문이 열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어? 윤아야. 언제 온 거야?”
나도 안면이 있는 여자가 들어왔다.
강한 인상의 오정 둘째 딸 임아현.
최근 오정모직 부사장으로 승진했다던 그녀는 아우라부터 남달랐다.
언론은 실제 카리스마의 반도 전달하지 못했다.
성별이 달랐다면 오정의 차기 주인이 되었을 관상이었다.
아쉽게도 성별 때문에 관상의 힘이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고 있었다.
가업은 조상의 은덕도 함께 필요했다.
출가외인의 법칙이 선대 조상들의 계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언니…….”
“울었어? 그래. 네 마음 이해해. 아빠가 유난히 막내인 너를 예뻐했잖아.”
위로 같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어법을 사용하는 임아현 부사장.
그녀의 눈빛에서는 슬픔의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미래에 대한 희망에 가까운 기이한 열기마저 느껴졌다.
늙은 사자가 수명을 다해가면서 사자의 굴을 차지하기 위해 시작된 은밀한 경쟁.
본격적으로 오정이 불러올 형제의 난이 발발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이분은 누구? 여기에 어떻게 들어와 있는 거야?”
임아현 부사장이 나를 훑으며 인상을 약간 찌푸렸다.
말로는 나를 모르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나를 있는 듯한 눈빛이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임아현 부사장의 남편인 주현민이 물었다.
동서일보 사주의 아들인 그도 오정 일가 일원이 되면서부터는 그렇게 힘을 쓰지 못했다.
평생 2인자로 살 운명인 셈이다.
“형부, 이분은…….”
“장태산이라고 합니다.”
“!!!”
내 이름을 듣자마자 크게 놀라는 주현민.
그가 아내인 임아현 부사장을 바라봤다.
지시를 받는 본능적인 행동.
“장태산 씨? 이름 많이 들어봤네요. 아빠가 몇 번 언급하기도 하고…… 윤아가 좋아한다는 소문도 들었어요.”
임아현이 내숭을 떨었다.
나를 훑는 그녀의 눈빛은 경계심을 잔뜩 품고 있다.
“과찬이십니다.”
겸손한 자세를 유지했다.
“그런데…… 가족이 아니니 병실에 계시면 안 될 것 같아요…….”
임아현 시선이 천천히 임윤아에게로 옮겨갔다.
한마디로 축객령을 내리겠다는 태도.
“약혼자 신분이야.”
“약혼자?”
“처제! 그게 무슨 말이야?”
임아현과 주현민이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
“아빠가 그랬어. 태산 씨를 ‘우리 장 서방’이라고. 그래서 불렀어. 비록 약혼식은 올리지 않았어도 난…… 태산 씨와 결혼할 거야.”
임윤아, 세다.
당당하게 가족들 앞에서 나와의 결혼까지 언급했다.
“결혼? 너 미쳤어?”
임윤아의 말에 임아현가 펄쩍 뛰었다.
괜히 기분이 확 상했다.
“안 미쳤는데.”
차분하게 받아치는 임윤아.
파파팟.
불꽃 튀는 두 자매의 시선.
“일단 오늘은 내보내. 이 일은 가족회의를 통해서…….”
“내 인생이야.”
“임윤아!”
“아빠 누워계셔. 소리 낮춰.”
“여보…… 여기 병실이야.”
“그래서 어쩌라고! 임윤아. 너 무슨 꿍꿍이야? 설마 장태산 끼고…….”
임현아는 뒷말은 잇지 않았지만 의심 가득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언제 봤다고 장태산!
예의 없게 반말이다.
“나 공부 정리하고 한국으로 올 거야. 그리고…… 그룹 일에 본격적으로 나설 거야.”
“뭐, 뭐라고???”
더 당황한 임아현.
이 발언, 나도 의외다.
보통 단단하게 마음먹은 게 아닌 듯하다.
“아빠 깨어나실 때까지 오정은 내가 지킬 거야…….”
“네가…… 그룹 일에 대해 뭘 안다고?”
임윤아의 포부에 임아현이 목소리까지 떨며 물었다.
“언니보다 내가 학벌이 좋잖아.”
대놓고 디스도 할 줄 아는 임윤아.
오늘따라 여러 번 나를 감동(?)시켰다.
“그룹 일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학벌하고 전혀 상관없어!”
임아현이 화를 참지 못하고 발끈했다.
“괜찮아. 내 곁에는 태산 씨가 있으니까…….”
임윤아가 동의를 구하듯 나를 뜨거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와 반대로 날카롭게 나를 노려보는 임아현.
바로 옆에서 얼떨떨한 표정으로 안색이 점점 굳어가는 주현민.
그리고.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병실 문 쪽에서 들려온 또 다른 목소리.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