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8장. 형제의 난.
“쓰러져?”
“넵. 회장님.”
“상황은?”
“오정 비서팀에서 비밀리에 장례식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폭발하듯 터진 광소가 서재를 울렸다.
분당에 머물고 있는 KI그룹의 임동철 명예회장의 대저택.
요즘 부쩍 기력이 쇠해지면서 좋아하던 골프도 멀리했다.
그런 그가 오랜만에 아주 시원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동생인 오정 임성철 회장의 비보에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형제로서 안타까움 같은 감정은 전혀 없었다.
“아이고 배야……. 묵은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는구나. 크크크크 크크크크크.”
임동철은 진심으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앓는 이를 뽑은 것처럼 도리어 개운하고 시원한 표정이다.
“남의 것을 빼앗아가서 호의호식한 지가 오래 살면 안 되지. 무심하지 않은 하늘이야. 죽기 전에 내 소원을 다 들어줬구나.”
기쁨과 광기가 뒤섞인 채 번들거리는 임동철.
‘서둘러 아버지 뒤를 따라가라. 배은망덕한 새끼!’
임동철은 아직도 지난 과거의 일을 잊지 않았다.
서른 후반에 일찍 오정의 임시 회장을 역임하며 권력을 마음껏 휘둘렀다.
당시 생필품 밀수로 인해 전국민적인 공분을 샀던 오정.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아버지가 뒤로 물러난 시점이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임동철은 자신의 조력자들을 그룹 곳곳에 배치했다.
황태자가 아닌 진짜 황제가 된 셈이었다.
그러나 몇 년 후.
뒤로 물러나 앉아 있던 황제가 현장 복귀를 선포했다.
임동철은 그 사실이 정말 싫었다.
그룹은 젊은 경영인이 경영해야 옳다고 생각했다.
당시 대통령과 그 밑에 군림한 권력자들에게 충성 서약과 함께 거액의 돈을 찔러넣었다.
그 정도면 순순히 먹힐 줄 알았지만 아버지와 권력자들 관계는 생각보다 더 돈독하고 끈끈했다.
뒤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을 알게 된 아버지는 대노했다.
하루아침에 황제의 자리에서 황태자도 아닌 평민으로 강등됐다.
한순간 모든 것을 빼앗겼다.
치밀어 오른 분노에 마음 가는 대로 상황을 악화시키며 살았다.
여자는 물론 술과 마약에까지 손을 댔다.
일신을 망가뜨리면 오정 이름에 타격을 받을 거라 착각한 데서 온 행보였다.
그때만 해도 그룹은 장자 상속이 원칙이었다.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다 보면 아버지가 못 이기고 받아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 또한 착각이었다.
동생인 임성철에게 아버지는 과감하게 권력을 이양했다.
권력 이양 직후 한국에서 쫓겨난 임동철.
겨우 계열사 주식 얼마 정도를 떼어 상속 받았다.
그래도 형이라고 후에 착해 빠진 임성철 회장이 계열사 하나를 떼 줬다.
명목상 주식을 맞교환하는 형식이었지만 누가 봐도 형을 위한 배려였다.
하지만 임성철과 달리 임동철은 태어날 때부터 살모사였다.
지금까지도 고인이 된 아버지와 동생에 대한 원망을 원동력 삼아 살아왔다.
오정이 승승장구할 때마다 배가 아파 죽을 것만 같았다.
부당한 상속 문제에 있어 소송까지 냈지만 패소했다.
분노를 참을 길이 없어 술로 날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동생 임성철에게 전화를 걸어 온갖 악담을 퍼부어줬다.
그래도 형이라고 평생을 참아주고 받아주었던 임성철 회장.
그런 임성철 회장도 얼마 전 ‘호로자식’이라고 퍼부은 말에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길로 쓰러져버렸다.
모두 임동철이 짠 계획된 시나리오였다.
“상속 문제로 시끄러워지면…….”
노구의 몸이 되었지만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한 임동철 명예회장.
그의 눈이 젊은 사람 못지않게 사악한 빛으로 번뜩였다.
동생의 죽음 같은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일신과 자식들만 떵떵거리고 살 수 있다면 그 무엇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들 풀어서 정보 확실히 가져와봐.”
“넵! 회장님.”
“이 집사에게 얘기해서 검정양복도 준비해. 동생이 죽으면 집안 어른으로서 위엄을 보여야지.”
임동철의 입술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씰룩거렸다.
“그리고 샴페인 가져와 봐. 오늘은 한 잔 마시면 잠을 푹 잘 수 있을 것 같아. 크하하하하하.”
***
“특실 모두 통제하십시오. 경호팀에 믿을 만한 자들을 배치하고 의료진 말고 외부인은 누구도 들여보내면 안 됩니다.”
“넵!”
오정 병원에 마련된 회의실.
오정의 비서팀과 경호팀원들은 비서 팀장의 말에 힘차게 답했다.
‘흐흐흐. 드디어 내 세상이다!’
임준형 밑에서 10년 동안 모든 걸 바쳐 충성심을 증명해 온 오광연 제2비서실 비서 팀장.
장한수 비서실장의 견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임준형이 강력하게 보호해 준 덕분.
이제 그 은혜를 갚을 때가 됐다.
생각지 못한 순간 권력이 생겼다.
제2의 장한수 실장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그리고…… 비서실장님에게 보고하던 정보도 차단하십시오. 최종 검열은 내가 하겠습니다. 회장님 비서실에 들어갈 내용은 기본으로만. 다들 무슨 말인지 아시죠?”
은근한 압력.
“넵!”
회장이 될 임준형 라인을 잡은 비서들은 눈빛을 반짝였다.
며칠만 지나면 오정은 완벽하게 임준형 손에 들어올 것이다.
그 뒤로 실시될 논공행상.
새로운 황제가 즉위하면 으레 승진 파티가 열리는 법.
이때 선발 기준은 무조건적인 충성심.
모두 목숨을 걸고 일을 완수해야 할 목적이 생긴 것이다.
삐리릿.
경호팀장의 무전기가 요란스레 울렸다.
“무슨 일이야?”
오광연의 눈치를 보며 경호팀장이 무전기에 대고 물었다.
- 막내 아가씨가 올라가십니다.
‘벌써?’
내용을 듣고 있던 오광연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급보는 미국으로 바로 전해졌다.
임윤아는 누가 뭐라고 해도 오정의 직계였다.
다만 한국 도착 예정 시간이 상상보다 빨랐다.
‘비행기표도 발매하지 않았는데…….’
오광준의 머리가 비상하게 돌아갔다.
정보팀을 이용해 가족들 동선 파악이 수시로 보고됐다.
임준형은 특히 가족들을 견제했다.
그중에서도 임윤아는 요주의 대상이었다.
“동행은?”
- 젊은 남자와 같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남자?’
오광연의 인상이 굳어졌다.
임윤아와 동행하는 남자라면 평범하지 않은 신분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또 짐작되는 한 사람.
“어떻게 할까요?”
같은 팀장급이지만 경호팀장은 오광연의 지시를 기다렸다.
“제가 가보겠습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오광연이 앞장섰다.
차박차박.
그를 조용히 따르는 비서실 직원들과 경호팀원들.
보무도 당당하게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
띵동.
오정 병원 특실이 위치한 7층.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밝고 경쾌한 울림소리가 들렸다.
“하아.”
짧은 한숨을 내뱉는 임윤아.
아버지의 병환 소식에 이미 안색이 좋지 않았다.
생각이 많아 보이는 임윤아.
그녀의 손을 꼭 잡아줬다.
“누나, 힘내.”
오랜만에 누나라고 불러줬다.
작은 키의 임윤아는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봤다.
고개를 끄덕이는 임윤아.
눈빛에 담겨 있는 무한 신뢰.
스르르륵.
문이 열렸다.
그리고.
“어서 오십시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지 않게 경호원이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이어 문 앞에서 고개를 짧게 숙이고 인사하는 사십대 초반의 남자.
“누구세요?”
임윤아가 조용히 물었다.
“제2비서실 비서팀장 오광연이라고 합니다.”
“제2비서팀이라면……. 오빠 직속인가요?”
“그렇습니다.”
고개를 든 오광연.
겸손한 척 내숭을 떨고 있었지만 검은 눈빛에는 건방짐이 가득했다.
“알겠어요. ……비켜주세요.”
임윤아가 엘리베이터 문 밖으로 발을 내딛으려 했다.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미 임준형 직속이라는 말에 쎄한 느낌이 왔다.
예비 황제 아래서 권력을 잡기 위해 틈을 보는 십상시 같은 자.
“지금 뭐라고 했죠? 허락요? 누구에게요?”
어이가 없는 듯 되묻는 임윤아.
“임준형 상무님 지시입니다.”
“!!!”
임준형이라는 말에 또 한 번 놀라며 눈을 부릅뜬 임윤아.
형제의 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조짐이 보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현재 오정의 차기 회장감은 임준형이었다.
그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상속이 이뤄진 상태였다.
특히 그룹 핵심 주식도 다른 형제들보다 더 많았다.
내외부적으로도 경영 승계는 임준형이 확실시 됐다.
그런 만큼 직속 비서팀장이라는 자도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건방질 수 있는 것이다.
임성철 회장의 핏줄이 버젓이 눈앞에 서 있지만 당당했다.
임윤아의 현재 오정에서의 입지를 대변하고 있기도 했다.
다른 형제들 같았다면 이런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형제들로부터 유난히 많은 견제를 받아온 임윤아이기에 벌어진 일이다.
무엇보다 그녀와 친분이 두터운 내가 강력한 견제 대상일 것이다.
임준형은 어리석은 자가 아니었다.
“오 비서님, 비켜주세요. 경고합니다.”
임윤아, 멋지다.
흥분하지 않고 어느새 감정을 추스른 채 차분하게 경고를 날렸다.
움찔 다소 놀라는 오광연.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리고 외부인은 동행할 수 없습니다.”
오광연의 눈동자가 나를 살폈다.
나를 알고 있는 듯한 표정.
“태산 씨는 외부인이 아니에요.”
임윤아도 물러서지 않았다.
미국에서 홀로 생활하며 깡이 제법 생긴 듯했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이며 고집을 부리는 오광연 비서팀장.
두 사람의 기 싸움이 흥미진진했다.
임윤아를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해 한국으로 급히 데려왔다.
임성철 회장을 빠른 시간 안에 봐야만 했다.
건강상태를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급한 조치도 필요했다.
하지만 난 비서팀장 말대로 외부인에 불과했다.
나를 견제하는 임준형이 순순히 들여보내 줄 리가 없었다.
손대균 이사도 이런 상황을 예견해 병실 출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것이다.
오직 직계에게만 허락된 면회.
“마지막…… 경고에요. 비켜주세요.”
밀리지 않는 임윤아가 예전과 달라 보였다.
절대 흥분하지도 않았다.
냉정한 경제인인 아버지의 피를 제대로 이어받았다.
“제 권한 밖의 일이라…….”
쫘아아아악.
다시 한 번 거절하던 오광연의 뺨에 순식간에 작렬하는 임윤아의 매서운 손.
“!!!”
도리어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여릿여릿해 보이는 임윤아의 강단 있는 행동.
속으로 물개박수라도 가열차게 치고 싶었다.
“오광연 비서. 아직 주제 파악이 안 된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말해줘?”
오오! 정말 멋있다.
임윤아 몸에 잠재되어 있던 흑염룡의 다크한 기가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
손자국이 선명한 뺨을 부여잡은 오광연이 당황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모두 비켜주세요.”
임윤아가 엘리베이터 앞을 막고 선 경호원들을 훑으며 조용히 뱉었다.
모두 시선을 회피했다.
순식간에 변신을 거듭하는 임윤아의 팔색조 같은 매력.
나에게만 예뻐 보였다.
“비……켜드려.”
눈에는 분노가 가득했지만, 주제를 파악한 듯 이를 앙다운 오광연이 지시를 내렸다.
사사삭.
경호원들이 재빨리 자리를 비켰다.
또각.
한 발 나아가는 임윤아.
하지만.
“외부인은 절대 안 됩니다.”
뒤를 따르던 나를 막아서는 오광연과 비서팀장.
그의 눈빛은 결연했다.
이렇게 나오면 나도 어쩔 수 없다.
밤에 몰래 날아서 창문을 타고 오는 게 빠를 듯하다.
내 입장이라 해도 위급한 상황인 경우 외부인은 사양이다.
“외부인 아니라고 말씀드렸죠.”
그럼에도 임윤아는 물러서지 않았다.
차디찬 그녀의 목소리.
“아가씨, 이 명령은 사모님께서도…….”
“태산 씨는…… 내 약혼자에요. 임성철 회장님의 사위라고요!”
응? 야, 약혼자? 사위? 내가?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