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6장. 큰 별이 지다. (733/1,284)

736장. 큰 별이 지다.

“얼마나 남았다고?”

“길어야…… 다섯 달 정도라고 합니다.”

“다섯 달이면……. 내년 봄이라는 소린데…….”

“대충…… 그 정도일 것 같습니다.”

“대충?! 그런 게 어딨어! 확실하냔 말이야!”

“넵! 오정 병원장이 그렇게 말했습니다! 주치의 중 한 명인 장생 한방병원 원장도 비슷하게 날짜를 예측했습니다. 선천의 기가 다했다고…….”

“그렇단 말이지…….”

양평에 위치한 오정 일가의 별장.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거실에는 난로가 피워졌다.

호박색 위스키가 담겨 있는 스트레이트 잔을 든 황태자는 생각에 빠졌다.

‘벌써 가면…… 골치 아픈데…….’

아직 승계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임성철 회장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

생기를 다 소모하면서 특히 폐가 안 좋아졌다.

미국 생명공학 재단을 통해서 몇 차례 특별 시술을 받긴 했지만 그 효과가 미미했다.

황태자는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승계 작업이 진행되어 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부족했다.

오정그룹 덩치도 세월이 쌓인 만큼 커졌다.

매번 바뀌는 정권의 눈치를 살피느라 계열사 주식을 이리저리 분산시키다 보니 이제는 풀기 어려운 수학공식처럼 돼버렸다.

또 과거처럼 국민들을 쉽게 속일 수도 없었다.

시대도 바뀌었고 배울 만큼 배운 자들이 많았다.

게다가 인터넷만 뒤져도 관련된 과거 자료들이 넘쳐났다.

오정 힘만으로 밀어붙였다가는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움직이는 정권의 타깃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대로 상속세를 모두 낸다는 건 불가능했다.

오로지 재벌이라는 이유 하나로 반절 이상의 주식 값을 국가에 헌납해야만 한다.

가장 큰 문제는 경영권.

그룹 핵심인 오정전자는 외국 투자자 지분이 50%를 넘었다.

자칫 외국계 회사가 될 수도 있었다.

지금도 돈 냄새를 맡고 각종 해지펀드들이 오정을 흔들기 위해 작업 중이었다.

“대책은?”

“의료진이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중이라고 합니다.”

“확실해?”

“믿을 만한 분들입니다.”

‘그래, 아직 가면 안 돼. 아버지가 든든하게 버텨줘야 해.’

황태자 임준형의 계산은 복잡했다.

최근 아버지께 밉보여 회사 임원에서 물러나 있었지만 다음 주부터 복귀를 명받았다.

꼼꼼한 아버지가 현재 자신의 상태를 모를 리 없었다.

아무리 미덥지 못해도 기업을 물려받을 자식은 임준형 자신뿐이었다.

“그리고……. 사촌 형님 중 한 분이 장태산과 트러블이 생겼습니다.”

“트러블? 누가?”

임준형이 의구심을 표했다.

회장 지시로 은밀히 장태산과는 절대 문제를 만들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그런 상황에 겁도 없이 장태산과 이벤트를 일으켰다는 사촌형.

“임주황 아트캐스트 대표님입니다.”

“임주황? 그 자식이 무슨 사촌형이야!”

임준형이 이름을 듣고 버럭 큰소리를 냈다.

“죄, 죄송합니다.”

여유 있게 보고하던 최측근 비서가 놀라 고개를 숙였다.

“우리 집안의 골칫덩어리잖아. 감히 겁도 없이 아버지께 소송이나 걸고……. 앞으로 보고할 때는 임주황 씨라고 해.”

“넵!”

KI그룹과 오정은 앙숙 관계에 있었다.

같은 족보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서로를 데면데면해하는 사이였다.

“그런데, 뭐가 문제가 됐어?”

임준형이 은근히 관심을 보였다.

아버지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장태산은 보고 내용 1순위였다.

“장태산이 투자한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걸 그룹인 FOB를 노린 것 같습니다.”

“노려? 하아아…… 미치겠네. 개버릇 남 못 준다더니…….”

임준형이 한심하다는 듯 몸을 뒤로 제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과거부터 여성 문제로 복잡한 일들을 여러 번 만들었던 큰아버지 집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사촌형들도 대놓고 여성 문제를 일으켰다.

그럴 때마다 같은 혈육인 오정이 언급됐다.

“회장님께도 보고가 들어갔을 겁니다.”

“장한수 실장이 개코니까 당연하지. 그 일은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붙어봐야 임주황만 개피 볼 거야. 장태산 그 자식…… 은근히 힘이 좋아.”

임준형은 요즘 들어서 장태산에 대해 평가를 달리하게 됐다.

별것 없어 보이는 놈이지만 노는 판이 글로벌했다.

공식적인 대한민국 재계 황태자인 자신을 누르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떠오르는 스타가 됐다.

청와대는 물론 공적 국가 권력도 감히 손을 쓰지 못할 정도였다.

분하지만 오정의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아버지의 비호를 받고 있어 눈엣가시처럼 굴어도 감히 누구도 터치하지 못했다.

‘내가 회장만 되면……. 제대로 손을 봐주겠어.’

임준형은 과거 골프장에서 당했던 수모를 아직도 잊지 못했다.

큰 문제가 없어도 장태산 때문에 아버지에게 몇 차례나 꾸중을 들었다.

그러다 보니 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그리고…… 지금 장태산이 리앤장 손대균 이사와 술자리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둘이…… 친하다고 했지?”

“연배 차이가 꽤 있지만…… 동문이라는 이유로 꽤 친분 있는 선후배로 지냅니다.”

“장태산, 그 자식 알면 알수록 대단해. 혼자 힘으로 그런 인맥을 만들어 내다니…….”

임준형은 쓴 입맛을 다시며 인정할 건 인정했다.

일반 보통 가정에서 태어나서는 절대 이룰 수 없을 엄청난 자산과 인맥을 장태산은 만들어 냈다.

어떻게 보면 장태산과 문제를 만들지 말라는 임성철 회장의 경고가 당연한 말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아직 혈기왕성한 젊음을 소유한 임준형.

곧이곧대로 다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만은 없었다.

누가 뭐라 해도 대한민국 재계 황태자는 자신이어야만 했다.

***

‘큰 별이라면……! 설마…….’

손대균 이사의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요즘 들려오는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소문.

오정의 임성철 회장 건강이 눈에 띄게 악화되었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장태산처럼 그의 운명을 확신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오정 임 회장의 죽음은 쉽게 입에 올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재계의 거장이나 다름없는 그의 죽음은 대한민국에 예기치 못한 여러 파장을 가져올 것이다.

특히 경영권은 누구나 탐을 낼 정도다.

그것만으로도 오정은 임 회장의 죽음을 필사적으로 막을 것이다.

그들이 소유한 자본 정도라면 죽은 자를 살릴 수 없어도 죽음을 미룰 수는 있었다.

“그 발언 너무 센 거 아냐? 임성철 회장님과 꽤 친분이 있다고 들었는데……. 아시면 서운하시겠어.”

“하늘이 정한 운명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후배님, 인도 갔을 때 접신이라도 했어? 뭘 믿고 그렇게 확신해?”

“어떻게 아셨어요. 저 시바신하고 형 동생 하는 사이입니다.”

“시바?”

‘이런 상황에 농담이 나와? 뭐야! 진담이야?’

장태산의 눈빛과 표정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인도의 대표 신 시바까지 언급하며 뻔뻔하게 말하는 장태산.

농담이 분명하지만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아서 더 문제였다.

게다가 헛소리 같은 장태산의 신비한 언변과 능력은 고스란히 재력으로 이어졌다.

지금까지 매달 끊이지 않고 전해지는 엄청난 투자 금액.

일정 금액 이상을 넘지 않는 수준을 정확하게 지켰다.

유지되는 거리와 용인하는 한계가 명확했다.

인간의 끝이 없는 욕망의 깊이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방법에도 능수능란했다.

일송회의 날카로운 칼날을 지속적인 투자 금액으로 점점 무디게 만들었다.

손대균도 그 만한 명목이 있어 장태산을 이렇게 만날 수 있었다.

만약 장태산이 친일파들의 뒤통수를 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일송회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선배님, 용돈 투자 종목 좀 알려줘요?”

“투자? 작전주라도 알고 있어?”

“에이. 싸이즈가 있지 겨우 작전주가 뭡니까?”

“그럼?”

“좀 크게 노십시오. 글로벌 시대에.”

“선물? 환율?”

“선물과 환율은 똑똑한 사람들만 하는 겁니다. 어설프게 덤볐다가는 패가망신합니다.”

“똑똑…… 패가망신! 야! 장태산! 나 리앤장 이사야! 사법 고시도 수석급으로 패스했어! 나 이래봬도 천재소리 듣고 살았어!”

손대균이 발끈했다.

장태산만 만나면 괜히 울컥거릴 때가 많았다.

“그래서요?”

담담한 목소리로 반문하는 장태산.

“……그렇다는 거지”

그 목소리에 위축되는 손대균. 장태산 앞에서는 자랑할 만한 꺼리가 거의 없었다.

“용돈 계속 불리고 싶으시면 이 후배에게 잘하세요. 지금처럼 잘 커버해 주시고,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싶으면 이 후배가 섭섭지 않게 유용한 정보도 좀 드리겠습니다.”

“섭섭? 캬아, 미치겠다. 후배님. 아니 태산이 형.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 나 리앤장 손대균이야. 내 한마디면 검찰총장도 당장 술사겠다고 달려와.”

“그럼…… 저도 전화 한 통 넣을까요?”

“……누구 부르려고?”

“오성 임 회장님? ……아니면 엘자…… 고 회장님? 성북동 허 대부님? 어느 분을 원하세요. 말만 하세요.”

“…….”

손대균은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괜히 인맥 자랑 좀 하려다가 도리어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장태산 입에서 나온 인사들 이름 모두 쟁쟁했다.

손대균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신분들이었다.

“내년 되면 나라 안팎이 시끄러울 겁니다. 선배님도 대비하십시오.”

‘나라 안팎?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신이 통했다고 하기에는 사람이 너무나 멀쩡한 장태산.

보통 때 모습과 다르지 않게 와인을 기울이며 예사롭지 않은 정보를 흘렸다.

“난 모르겠다. 세월 가면 가는 대로…… 시끄러우면 시끄러운 대로 살면 된다. 이것저것 준비해봤자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더라.”

“왜 그러세요. 리앤장 손대균 이사님이.”

“방금 전에 나 대놓고 무시했잖아!”

다시 발끈해 보는 손대균.

“선배님, 좀 예민해 보이시는데…… 그 때세요?”

“뭐라고?”

“요즘 ‘질풍 노인의 시기’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는데……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만 보면 훈수 놓고 싶고 가르치려 드는 아주 고약한 시기라는데 말입니다. 선배님 어느새 그런 나이가 되셨는지…….”

게슴츠레한 시선으로 장태산이 손대균을 놀리듯 쳐다봤다.

“하아아……. 미치겠다.”

긴 숨을 내쉬며 손대균이 잔에 와인을 가득 따라 벌컥벌컥 마셔 넘겼다.

‘질풍 노인의 시기? 재밌는 녀석이야.’

말과 달리 손대균의 마음은 편했다.

이 세상에 이렇게 자신과 허물없이 터놓고 속내를 보일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유일하게 장태산만 선입견 없이 자신을 대했다.

“선배님.”

“왜?”

“리앤장 제가 사면 안 될까요?”

“뭐, 뭐라고?”

갑작스런 장태산의 제안.

“얼마면 될까요?”

눈빛을 보니 농담이 아닌 듯했다.

“갑자기 리앤장을 왜? 삼정 로펌 니 거잖아. 설마…… 인수 합병이라도 하게?”

“리앤장 때문에 나라가 시끄러워서요.”

“…….”

손대균은 말의 의미를 알고 입을 다물었다.

“일본 전범기업 변호부터 시작해 가습기 살균제 소송까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행동에 가슴이 답답합니다. 같은 법조인으로서…… 도가 지나치다 싶기도 하고요.”

뼈를 때리는 장태산의 말.

꿀꺽.

손대균이 한 차례 더 와인을 들이켰다.

사실 손대균의 의지와 상관없이 로펌은 돌아갔다.

모두 다른 이사들이 담당했던 사건이었다.

과거부터 일본 전범기업은 무조건 리앤장 담당이었다.

법조인들뿐만 아니라 고위 퇴직 공무원들 역시 리앤장의 고문으로 몇 년 근무하고 엄청난 수임료를 받아갔다.

그 거액의 대가는 대부분이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리고 얻은 것들이었다.

떳떳하지 못한 것을 알지만 말릴 수 없었다.

대부분이 아버지와 연결된 인맥들로부터 오는 의뢰였다.

“나도 팔고 싶지만…… 누구도 살 수 없다.”

손대균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더 안타깝습니다.”

아무리 큰돈이 있다고 해도 살 수 없는 리앤장 로펌.

자금이나 규모의 문제가 아니었다.

검은 커넥션의 가장 큰 장터 같은 곳이 바로 리앤장이었다.

애초 양심을 팔지 않고서는 리앤장 변호사가 될 수 없었다.

라라라~♫ 라리라~♬.

그때 손대균의 스마트폰이 조용한 클래식 음악을 토했다.

‘이 밤에 누구야?’

생각이 많아지는 밤.

이대로 후배와 와인을 마시다 취하고 싶었다.

그런 바람을 깨고 울리는 벨소리.

회사 전화번호였다.

“누구?”

언짢은 목소리로 손대균이 물었다.

퇴근 후에는 회사 일로 터치 받고 싶지 않았지만 사회인의 일상은 손대균도 예외가 아니었다.

- 정보팀 양찬석 팀장입니다.

손대균도 잘 알고 있는 유능한 정보통.

전직 국정원 출신으로 정보팀에서 꽤 유능한 인재였다.

“그래, 양 팀장. 이 시간에 무슨 일이야?”

- 긴급 뉴스가 들어왔습니다.

“긴급 뉴스?”

손대균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늦은 밤에 회사에서 일부러 전화를 넣었을 정도라면 그 무게가 남다를 소식.

- 방금 전…… 오정 임성철 회장님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뭐라고! 임성철 회장님이!”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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