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35장. 예언. (732/1,284)

735장. 예언.

추푸파 추푸파~♬. 둥두르르~♪.

경쾌한 댄스 리듬으로 가득 찬 지하 연습실.

“하나! 둘! 여기서 턴!”

방음이 완벽하고 신선한 산소까지 공급되는 60평 크기의 공간.

그곳에서 댄스를 지도하는 안무가 진서현이 구령을 넣으며 시범을 보였다.

“하핫…… 학.”

“흐윽.”

타다닥 탁.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에 매진하는 세 명의 소녀들.

M.T.S에서 새로 발굴한 차세대 걸 그룹의 주인공들이었다.

벌써 3시간째 강행군 중이다.

입고 있는 트레이닝 복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입에서는 거친 호흡과 단내가 풀풀 풍기고 숨은 곧 넘어갈 듯 헐떡거렸다.

하지만 세 사람의 눈빛은 불타올랐다.

내년 데뷔를 암시 받았다.

아직 정식 곡을 받은 건 없지만 의지만은 활활 불타올랐다.

진심으로 노래와 춤이 좋아 선택한 길.

학교 정규 수업이 끝나면 바로 회사로 달려와 땀을 흘렸다.

그리고.

둥!

마지막 음이 끝났다.

“흐읍……. 다들 수고했어. 오늘은 여기까지.”

진서현이 숨을 고르며 연습 끝을 알렸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너희들도 수고했다……. 확실히 젊음이 좋구나……. 난 체력 방전이야.”

아직도 에너지가 넘치는 팔팔한 세 소녀를 보며 진서현이 고개를 저었다.

‘한나는…… 진짜 물건이야. 끝내주는 스타가 될 게 확실해.’

진서현의 시선은 센터에 서 있는 이한나를 향했다.

연습하고 있는 세 명의 예비 멤버들은 M.T.S의 초특급 비밀 병기였다.

모두 167cm 이상의 신장을 가졌다.

그중에서도 센터를 담당하게 될 한나는 170cm.

촉촉하게 젖은 생머리는 윤기가 넘쳤다.

힘든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는 얼굴은 자체 발광했다.

다른 팀이었다면 센터가 되고도 남았을 수준의 다른 멤버들과도 월등히 달랐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미모와 분위기가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순수한 눈빛의 눈동자와 은근히 풍기는 성숙한 매력은 이중적이면서 또 치명적이었다.

안무가로 10년을 살아온 진서현의 눈은 틀린 적이 거의 없었다.

‘좋은 곡만 만나면……. 단숨에 퀸이 될 거야.’

지금은 여왕 자리에 FOB가 버티고 있지만 오래 가지 못할 걸 알고 있었다.

더 이상 멤버들에게서 열의가 보이지 않았다.

초창기 때부터 안무를 가르쳐 왔던 진서현도 최근에는 포기했을 정도다.

오랜 팬들은 멤버들의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

불화가 생긴 팀은 그 순간부터 어필돼 왔던 매력이 거품처럼 사라진다.

막상 멤버들은 그 사실을 느끼지 못했다.

속으로 감추고 잘만 포장하면 대중은 모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팬들은 그들이 보이는 에너지 파장을 귀신같이 알아챈다.

특히 FOB 멤버들은 세상 물정에 어두웠고 그만큼 무서운 승자법칙의 냉혹함을 몰랐다.

탑의 자리에 어렵사리 올랐다 해도 한 번 내리막길을 타기 시작하면 지옥까지 직행하는 연예계.

이대로라면 FOB는 내년쯤 이 바닥에서 아예 볼 수 없게 될지도 몰랐다.

지금까지 이미지 소모를 걱정하며 관리해왔지만 그것도 한계에 봉착했다.

“진 선생, 들어가도 돼?”

연습실 문을 열고 황연태 대표가 물었다.

숨소리만 감도는 조용한 연습실.

“네! 오늘 연습은 다 끝났어요.”

진서현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황연태를 맞았다.

다른 업체와 달리 M.T.S는 안무가에게 후한 월급과 보너스까지 지급했다.

4대 보험은 물론 사무직원 못지않은 혜택과 각종 경비도 제공했다.

스르륵.

자동문이 열렸다.

그리고 함께 들어오는 두 남자.

“장 이사님!”

진서현도 얼굴을 보기 힘든 장태산 이사가 함께였다.

“하나 둘. 안녕하세요. 아이 비즈입니다!”

대표와 이사가 함께 연습실에 들어서자 리더인 아서가 반사적으로 자세를 잡고 인사를 했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세 명.

‘아저씨!’

한나의 얼굴에도 반가움이 스쳤다.

오빠를 비롯해 가족 모두를 지옥에서 건져준 키다리 아저씨가 오랜만에 나타났다.

아저씨 덕분에 오빠는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게 됐다.

한나도 본격적으로 자기 인생을 위해 전진하고 있었다.

할머니 건강도 무척 많이 좋아졌다.

아저씨가 제공해 준 약을 복용한 후부터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아저씨 집에서 이사도 했다.

강남에 위치한 40평대 아파트.

이동 편의를 위한 차량 지원 등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다.

모든 게 꿈만 같은 일상.

과거 지옥 같았던 생활을 떠올리면 지금의 생활은 모든 게 즐거웠다.

동갑내기 멤버들과 땀을 흘리는 이 순간도 행복했다.

“다들 힘들지 않아요?”

한나와 눈을 마주치며 장태산이 물었다.

“네에에!”

힘차게 답하는 세 소녀.

“지금 시간이……. 딱 간식 먹을 타이밍이네. 다들 햄버거 좋아하죠?”

“!!!”

햄버거라는 말에 소녀들의 눈이 번쩍 뜨였다.

데뷔를 준비하면서 달걀흰자와 닭고기 가슴살, 샐러드가 주식이 된 지 오래였다.

학교에서도 균형 잡힌 급식을 양껏 못 먹었다.

회사에서 제공한 도시락으로 끼니를 대신해 온 소녀들.

장태산 이사가 말한 햄버거는 악마의 속삭임과 같았다.

“이사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FOB도 햄버거 한 번 먹고 일주일 간 다이어트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황연태가 화들짝 놀랐다.

과거에도 장태산만 나타나면 FOB도 만세를 불렀다.

호텔 뷔페에서 시작해 얼굴을 볼 때마다 뭐든 양껏 먹였다.

세 소녀들은 햄버거라는 말에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 틈에도 씨익 악마처럼 웃는 장태산.

“다들 그거 알죠?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오늘 간식으로 햄버거 풀 세트 제가 쏩니다.”

“꺄아아아악!”

“이사님 만세!!!”

체력 방전 직전까지 몰입한 연습으로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진맥진했던 소녀들은 어디서 힘이 솟는지 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에휴.”

그 모습을 보며 길게 한숨을 쉬는 황연태.

말과 달리 황연태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가끔씩 이렇게 풀어줘야 멤버들 정신건강에 좋았다.

“이사님, 저는 두 세트요!”

안무가 진서현도 얼떨결에 판에 끼어들었다.

언제나 유쾌한 M.T.S.

참 좋은 회사였다.

***

“후후훗.”

“좋은 일 있어? 혼자만 웃지 말고 이 선배한테도 풀어놔봐. 요즘 사는 낙이 없다.”

흐뭇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FOB가 품에서 떠나기 위해 날개 짓을 하고 있었지만 새로운 새싹들이 또 무럭무럭 자라줬다.

한나가 포함된 아이 비즈는 분명 대박이다.

지금껏 대한민국에서 탄생한 걸 그룹들 중 아이 비즈만 한 아우라를 소유한 소녀들은 없었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체계적으로 교육시켰다.

영어는 기본.

중국어와 일본어도 장착했다.

이웃집 개들은 미워도 그들이 만들어 낼 시장은 미워하면 안 됐다.

“인생이 재밌어서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 재미를 나에게도 말해줘 봐. 이 선배도 힘 좀 받자.”

손대균 이사가 장난스럽게 투정을 부렸다.

“선배님……. 저희 아버지보다 연배가 높으신 건 아시죠?”

“그래서! 아빠라고 부르게?”

손대균 이사와 만나는 자리를 가졌다.

오후에 연락이 와 바로 약속을 잡았다.

보고 싶기도 하고 할 말도 있다던 손대균 이사.

그가 애용하는 멤버십 와인바에서 만났다.

“선배님, 처음 만났을 때 보여주신 그 기품과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은 어디로 갔습니까?”

“엿 바꿔 먹었다. 인생 50부터라던데…… 그렇게 치면 이제 나 몇 살 안 먹었다.”

“그럼 제가 형이 되는 겁니까. 지금부터 형라고 부르십시오.”

“그래! 너 잘났다. 태산 형~.”

“…….”

몇 잔의 와인을 연거푸 마신 손대균 이사가 나의 농담을 가볍게 받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관계가 가까워질 거라 전혀 예상치 못했다.

손유리만 두고도 어색해야 맞는 관계인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오래 사귀어 온 친구처럼 나를 대해주는 손대균 이사.

“……많이 좋아하는 거 아시죠?”

“존경은?”

“그건 힘듭니다.”

“왜?”

“친일파시잖아요.”

“끄응…….”

대놓고 까는 나의 발언에 손대균 이사가 앓는 소리를 냈다.

“자수하실래요?”

“간첩도 아니고…… 뭘 자수해!”

“그러니까 그게 아쉬워요. 간첩은 자수해도 되는데……. 왜 친일파들은 그런 장치가 없을까요? 나라를 야금야금 좀먹는데…… 진짜 암적인 존재들이 분명한데…….”

“너 오늘 좀 세다.”

“선배님은 예외입니다. 절 도운 순간부터 애국자가 되신 겁니다.”

“이중 첩자가 아니라?”

“좋은 일 하시는 겁니다.”

“나쁜 놈.”

“감사합니다. 제 주변에 나를 욕하는 분들이 많아서 저는 오래 살 것 같습니다.”

“……내가 말을 말아야지.”

손대균 이사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모습에 나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름 험난한 세상에서 도를 닦으며 살아가는 손대균 이사.

센 발언에도 꿈쩍하지 않고 기품 있는 태도를 고수했다.

혼자서는 벗어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친일파의 길을 걷고 있는 손대균 이사.

그래서 더 괴로운 영혼.

이렇게라도 일부러 찔러 영혼에 쌓인 죽은피를 빼내줘야 숨이라도 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꺼이 악역을 자처했다.

“나국찬이 뭐라고 하디?”

“아셨어요?”

“소문 쫙 났어. 나국찬이 하고 너 뒤를 밟은 애들이 한둘인 줄 알아?”

“어쩐지…… 뒤통수가 따끔따끔 하더라니.”

“네가?”

“제가 괴물입니까. 밤길 가는데 누가 뒤통수치면 어떡합니까. 저 매일매일 집에서 신들께 기도합니다. 오늘도 누가 나를 향해 짱돌을 던지면 막아 달라고 말입니다.”

“푸하하하하하하하.”

갑자기 손대균 이사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전 심각합니다. 테러도 몇 번이나 당했습니다.”

“그 반대편 입장은 생각 안 해 봤어?”

“네?”

“너를 적으로 두고 막상 자신들은 언제 죽을지도 모르고 살잖아. 겁도 없이~.”

묘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는 손대균 이사.

이 아저씨 눈빛 보니 제대로 나에 대해 뭔가 파악한 눈치였다.

씨익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비례 준다고 하던데요.”

“오! 후배 이제 금배지까지 다는 거야?”

“관심 있으세요? 추천해 드려요?”

“네버! 난 절대 정치 안 한다. 내가 지금껏 법조인 하면서 변호한 정치인들이 한둘이었겠냐? 다들 끝이 좋은 꼴 못 봤다.

“의원 좋잖아요. 각종 혜택도 많고…… 권력도 빵빵하고.”

“후배! 우리 솔직해지자. 정치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다. 친일파보다 더 타락한 정치인들이 더 독하게 이 나라를 좀먹고 있는 거야. 일신의 영달을 위해 못 팔아먹을 게 없는 종자들이지. 물론 그중에는 진짜 가슴 뜨겁게 대한민국을 위해 뛰는 이들도 몇몇 있긴 하지만 그 쪽 판에서 살다보면 결국 시간 차이일 뿐 언젠가는 다들 오염된다. 그 바닥 고약함이 마약보다 중독이 심해.”

제대로 정치판을 이해하고 있는 손대균 이사.

“그래도 누군가는 해야죠. 더러운 똥물만 모이는 진흙 범벅 연못에서도 연꽃은 피는 법이니까요.”

“똥물 연못 속의 꽃이라……. 그래야지. 누군가는 해야겠지. 나쁜 놈들 중에서도 덜 나쁜 놈은 있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간간이 그 똥물을 정화해 보겠다고 투신하는 분들도 있고.”

누구라 특정하지 않았지만 우리 모두가 아는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영웅들.

꿀꺽.

잔에 담긴 핏빛의 와인을 비웠다.

“그래서…… 거절했어?”

“당연하죠. 정치인 감투 쓰면 선배님과 이렇게 술 마시면 안 되잖아요. 괜히 잘난 얼굴 신문에 도배될 수도 있고요. 유명 야당 국회의원 타락한 로펌 이사와 은밀하게 고급 와인바에서 심야에 회동하다.”

“크큭. 말 된다. 그런데 유명 야당 국회의원은 아니지 않나? 나야 타락한 로펌의 이사가 맞지만.”

“제가 의원 되면 단박에 스타 됩니다. 파벌 만들어서 계파 수장되고 국민들 위해서 각종 패악들 모조리 뒤집어 놓을 거니까요.”

“됐다. 그게 어디 그렇게 말처럼 쉽냐?”

“왜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깊숙이 뿌리내린 악성 나무들이다. 어지간한 태풍에는 꿈쩍도 안 해. 대통령도 못 하는데 일개 국회의원이?”

“한번 보여드려요?”

내 자존심을 은근히 자극하는 손대균 이사.

“네 눈빛 보니 앞을 막으면 목이라도 벨 기세다.”

“막으면 벨 겁니다. 하지만 참겠습니다.”

“왜?”

“……국민들 스스로의 힘으로 깨어나지 못하면 언제든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될 겁니다. 그때를 기다리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날이 멀지 않아 꼭 올 겁니다.”

“……100년쯤 후면 모를까. 안 온다. 포기해.”

뭔가 예감하고 있는 듯한 손대균 이사의 말.

“못 믿으시겠다면…… 제가 예언 하나 하죠.”

“예언?”

예언이라는 말에 솔깃 관심을 보이는 손대균 이사.

“다음 달에…… 큰 별이 하나 떨어질 겁니다.”

“큰 별? 떨어져??”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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