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7장. 50보와 100보. (724/1,284)

727장. 50보와 100보.

사박사박.

타지마할 호텔의 지하 5층 가장 안쪽 주차장.

달라이 라마가 나타났다.

딸깍.

문을 열고 수행자 비서가 황급히 나타나 차 뒷문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합장하고 열린 뒷문을 통해 차에 오르는 달라이 라마.

만면에 흡족한 미소가 피어나 있었다.

“가셨던 일은 잘되신 것 같습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최측근 비서가 달라이 라마의 얼굴빛을 살피며 물었다.

“전생에 쌓은 인연 공덕이 작지 않았습니다.”

“제 수행이 낮아 조마조마했습니다. 중국 요원들이 존자님을 향해 걸어가는데…….”

“이런, 그러셨군요. 다 제 잘못입니다.”

“아, 아닙니다.”

수행비서가 당황했다.

“조금만 더 중국 측에 정보를 제공하세요. 곧 끝날 것 같습니다.”

놀랍게도 최측근 수행자 비서는 이미 오래 전 중국 측에 포섭된 이였다.

그리고 모든 돌아가는 일은 달라이 라마 존자의 계획 안에 있었다.

“수행이 부족하니…… 당분간 일만 배 수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최측근 수행자 비서는 자신의 부족함을 탓했다.

“일만 배 수행이 도움이 된다면 그리 하십시오. 그러나 알면 족한 것에 마음을 붙잡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담담한 일상 언어와 같은 존자의 가르침.

“……알겠습니다.”

수행자 비서는 존자님의 한마디 말에 금방 깨달음을 얻었다.

아직도 부족한 수행의 참길.

옆에서 수십 년을 모셔왔지만 윤회를 거듭한 존자의 깨달음은 한량없었다.

“이번에 만난 거사는 깨달음의 깊이가 대단했습니다.”

부우우웅.

차가 출발하자 달라이 라마는 만남을 갖고 온 거사에 대해 만족스러운 소감을 전했다.

‘걜와 린뽀체의 관심을 받는 그분은…… 누구란 말인가.’

뭄바이 방문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다.

존자님은 느닷없이 예정에 없던 누군가를 만난다는 말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만남 대상이 누군지 정확히 몰랐다.

존자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감수하고 그와 접촉했다.

다행히 일은 잘 마무리 된 듯했다.

존자님의 얼굴에 만족한 듯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고귀한 지도자라는 뜻을 가진 존자님의 다른 호칭인 걜와 린뽀체.

수행자 비서는 오늘 같은 칭찬을 존자님 입에서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마음 수행이 끝에 이르러 혼침(昏沈)과 도거(掉擧)를 극복해 버린 존자님.

매순간 평상심을 유지하는 존자가 감추지 않고 드러내는 기쁨이 낯설었다.

고승급의 친우를 만난 듯했다.

“그분께서…… 그 정도로 수행이 높습니까?”

“수행이 높고 낮음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마음이 통하면 그만인 것을.”

어리석은 질문이었다.

그러니 돌아오는 답은 명료했다.

수행자 비서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깨달음은 부족하지만 존자가 불편하지 않도록 일거수일투족을 보필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임을 잊지 않았다.

기뻐하는 존자의 모습에 비서도 마음이 흐뭇했다.

“저녁 공양 시간입니다. 가시다 공양을…….”

“전 됐습니다. 바로 다람살라로 가면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공양을 거르시면…….”

만남을 가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연세가 있는 존자께서 식사를 거르면 금방 기력이 쇠할 수도 있었다.

대화를 나누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었기에 공양까지 챙기지 못했을 것을 비서는 걱정했다.

“끄윽.”

그때 뒷좌석에 앉아 있던 존자가 시원하게 트림을 했다.

밀폐된 자동차 안에 퍼지는 다양한 냄새.

수행비서는 더 이상 다른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꾹 닫았다.

“부족한 시간에…… 저녁 공양만은 반드시 대접하고 싶다 어찌나 청하던지…….”

오랜만에 들어보는 존자님의 변명.

상황을 대충 짐작한 비서는 그저 빙그레 미소만 지었다.

오늘따라 존자의 그런 모습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옴을 여실히 느끼면서…….

***

“이건 도도희 대표님~ 선물.”

“으흐. 역시 우리 회장님! 바쁜 와중에도 선물을 잊지 않았네요~.”

도도희에게 인도 면세점에서 구입한 문스톤 목걸이를 선물했다.

“문스톤이네요.”

옆에서 선물을 기다리며 유세라 상무가 아는 체를 했다.

“파키스탄 문스톤이네요. 비싼 거 아니에요?”

도도희도 아는 눈치다.

“아무리 비싸봐야 회사 기둥인 도 대표님에게는 한없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대표님~ 수상해요?”

도도희가 예리한 시선으로 날 훑었다.

순간 움찔했다.

“뭐……가 말입니까?”

“설마 그 짧은 시간에 인도 거부 가문의 젊고 아리따운 미녀와 썸을 탄 건 아니죠?”

“!!!”

귀신이다.

“맞네. 맞아.”

도도희 눈빛이 확신에 찼다.

눈빛이 요사하게 빛난다.

도도희 눈치는 구미호도 못 따라올 정도다.

“설마, 회장님이 전설급 바람둥이도 아니고 가는 곳마다 미녀를 만날까. 난 아니라고 봐. 그렇죠 대표님~.”

믿음 넘치는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는 유세라 상무.

유세라 상무님, 사람 그렇게 쉽게 믿고 그러는 거 아닙니다.

“맞다니까. 내가 회장님과 벌써 몇 년째 손발을 맞춰봐. 딱 보니까 딱이네.”

“아니라니까. 인도 축제 기간이라 바빴을 거야. 그냥 가신 것도 아니고, 여러 사업 문제 때문이잖아.”

“언니는 회장님 믿어?”

“응~ 난 믿어. 회장님이 돌을 물이라고 해도 난 믿을 거야.”

갑자기 사이비 교주가 된 기분이다.

저런 절실한 믿음에 보답할 수 있는 건.

“인도 총리가 국빈급 손님에게 선물한다는 다즐링에서 생산하는 프레지던트 차입니다. 가끔 건강 생각해서 커피 말고, 이것도 드십시오.”

귀한 차를 재빨리 내밀었다.

라훌 회장이 나에게 선물한 차였다.

나도 마셔봤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덕에 풍미가 남달랐다.

“회장님밖에 없어요. 이렇게 건강까지 챙겨주시고……. 저 겨울에 호주 여행 가는데 꼭 그거 다시 사올 게요!”

뭐지! 이 복수의 느낌은?

“캉가루 그거? 크크크.”

도도희 대표가 뭘 아는 듯 웃었다.

“회장님, 다 필요 없을 때까지 오래오래 사셔야죠.”

갑자기 유세라 상무가 심각한 표정을 하고 날 봤다.

“그게 무슨…….”

“제가 어제 유명한 식당에 갔는데 그곳에 마음에 확 와 닿는 글이 눈에 띄더라구요.”

“어떤…… 글입니까?”

“회장님하고 상관없겠지만…….”

살짝 뜸을 들리는 유세라 상무.

“아! 그거!”

도도희 대표도 함께 봤는지 두 눈을 크게 떴다.

“회장님 ‘없다’ 시리즈 아세요?”

도도희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네?”

“10대에는 뭐가 없을까요?”

“…….”

밑도 끝도 없는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스러웠다.

놀리듯 씨익 웃는 도도희.

“10대는 철이 없고~ 20대는 답이 없고~ 30대는 집이 없고~ 40대는 돈이 없고~ 50대는 일이 없고~ 60대는 낙이 없고~ 70대는 이가 없고~ 80대는 처가 없고~ 90대는 시간이 없고~! 마지막 100세는 뭐가 없을까요?”

가락까지 붙여 노래처럼 흥얼거리며 날 놀리듯 쳐다보며 묻는 도도희 대표.

중얼중얼 읊어대는 말들 모두가 다 맞는 말이라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요즘 세상을 풍자한 유쾌한 유머 같았다.

“그게 뭡니까? 설마…….”

“100세는 ‘다 필요 없다~’입니다.”

“아!”

하긴, 세상 살만큼 산 100세에 뭐가 더 필요할까.

인생을 풍자한 유머 같았지만 한 편으로는 씁쓸했다.

인생사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진리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말들입니다. 10대부터 철이 있었고 20대에도 답은 넘쳤고 돈과 일은 죽을 때까지 함께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지금 생각할 여력이 없겠네요. 우리 회사 모토가 뭡니까. ‘오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입니다.”

“역쉬! 우리 회장님! 이 박력에 내가 반했다니까~.

도도희가 엄지 척을 내밀었다.

인도에서 일을 마무리하고 국내로 돌아왔다.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일이 반복됐다.

라훌 회장을 비롯해 미래 총리인 모디 주지사와 상상하기 힘든 인맥을 쌓았다.

인도의 주신 시바와도 거래를 제대로 텄다.

앞으로 사업은 양심만 팔지 않는다면 대박이 날 게 확실했다.

존자님과의 만남도 흐뭇하게 마무리됐다.

처음에는 내용을 알지 못해 부담스러웠던 친구 동맹도 무난하게 맺었다.

존자님은 나에게 전혀 부담을 주지 않았다.

갑자기 기도 중에 불보살의 계시로 나를 만나기 위해 왔다고 식사 중에 말씀해 주셨다.

수행자임에도 거리낌 없이 고기를 잘도 드셨다.

소고기와 돼지고기 섭취가 쉽지 않은 인도.

두툼한 양고기 스테이크를 두 접시나 해치우셨다.

이것저것 달달한 후식도 챙겨 드시며 만족해하던 존자님.

고기 써는 솜씨가 예술이었다.

내가 살짝 놀라 바라보자 수행자를 위해 직접 생명을 해치지만 않는다면 크게 영향 받지 않는다고 했다.

오신채라는 것도 특별히 구별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중생들이 제공하는 음식은 수행자가 구별 없이 받아 섭취하는 것이 옳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그렇게 존자님과의 만남은 끝이 났다.

다만 라훌 회장 집에서 복병을 만났다.

내가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라훌 샬루가 눈물까지 글썽이며 섭섭함을 표했다.

내심 나와의 데이트를 기다렸던 눈치였다.

미안했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순간에는 샬루와 노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그 틈에 라훌 샬루가 방학이 되면 한국을 방문해도 되느냐고 물었다.

기대에 찬 그녀의 눈빛을 저버릴 수 없었다.

흔쾌히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맛집 투어를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나의 약속에 눈물을 거두고 웃던 인도 미녀.

미녀의 미소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무기였다.

시바나 야훼나 인간 남자 심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긴급회의 준비는 끝냈습니까?”

11월이다.

곧 다가올 2014년.

이것저것 준비할 일들이 산재했다.

과거 생 2014년도에도 큼직한 사건들이 참 많았다.

알고 있는 만큼 대비해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넵!”

“인도 투자 건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앞으로 세계 공장은 중국이 아니라 베트남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그리고 인도 쪽으로 가게 될 겁니다. 미리 준비한 자들만 맛있는 열매를 딸 수 있습니다. 모두 실수 없이 준비해야 합니다!”

라훌 회장이 곧 투자 상담 팀을 보낸다고 했다.

어설프게 준비해서는 안 됐다.

중요한 만큼 말에 힘을 담았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한 다짐.

“확실히 준비하겠습니다!”

도도희가 힘차게 답했다.

“회장님 뜻대로 될 거예요.”

유세라 상무가 언제나처럼 믿음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이들 말고도 나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많았다.

그 숫자는 수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내가 뒤에서 경영해야 할 그룹들 역시 한두 곳이 아니었다.

저벅저벅.

회장실로 갔다.

스르르륵.

부드럽게 열리는 문.

언제나 나를 반기는 컴퓨터들.

창밖으로 떨어지는 붉게 물든 노을과 햇살이 비쳐 들었다.

어느새 계절은 늦가을로 접어들었다.

붉게 물든 노을을 보며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는 내가 없는 동안에도 꺼지지 않았다.

화면에 보이는 세계 각국의 환율과 선물, 주식 그래프.

오늘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인간들은 치열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띠리리리릿.

그때 울리는 전화.

인도에 있는 동안에는 조용했던 스마트폰.

거짓말처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울렸다.

스마트폰 화면을 봤다.

가명으로 저장된 이름 하나.

“여보세요.”

- 회장님, 접니다.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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