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25장. 뜻밖의 제안. (722/1,284)

725장. 뜻밖의 제안.

‘갑자기 이곳에는 왜?’

인도에서 암약하는 중국 해외정보부 소속 요원 륭.

그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인상을 썼다.

디왈리 축제 기간의 인도는 혼돈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마지막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몰려든 인파로 모든 곳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넘쳐나는 인파를 헤치고 륭의 발걸음은 빨리 움직였다.

갑자기 전해진 긴급 명령.

다람살라에 있어야 할 중요 인사가 사라졌다.

이슬람과 달리 인도에서 힌두교 신도들로부터 보호를 받는 인물.

인도에서 태어난 석가모니도 힌두교에서는 신으로 추앙했다.

끊임없는 중국의 방해 공작 속에서도 티베트 망명 정부가 보란 듯이 세워졌다.

국경 문제와 티베트 문제로 중국과 인도는 언제나 으르렁거렸다.

강제로 티베트를 점령한 중국에 위구르와 티베트는 목안에 박힌 가시 같았다.

다른 소수민족과 달리 티베트와 위구르는 종교적 신앙으로 단단히 무장돼 있었다.

투옥과 고문, 비밀 살해 등을 통해 탄압해도 독립에 대한 강한 열의가 식지 않았다.

위구르족보다 티베트가 더 문제였다.

살아있는 깨달음의 수행자 달라이 라마 존자가 그들의 정신적 구심점이 됐다.

그런 달라이 라마 존자(尊者)가 느닷없이 뭄바이에 나타났다.

어떻게 감시망을 뚫고 이동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람살라에서 포섭한 망명 정부 고위 인사도 눈치 채지 못한 일이었다.

일정을 싹 비우고 사라졌다는 달라이 라마.

- 상아 사냥꾼 작전을 실시한다!

그때 귀에 꽂은 초소형 이어 수신기에서 들려온 상부 지령.

“!!!”

륭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불교에서 깨달음의 지혜를 상징하는 코끼리.

상아는 코끼리 같은 달라이 라마를 지칭하는 코드였다.

- 사냥 방법은 자유다. 이 시간 이후 그대들은 암흑화된다.

연이어 내려지는 지령.

‘젠장.’

륭은 짜증스럽게 인상을 썼다.

조직에서 말한 암흑화란 바로 투입된 요원들의 모든 정보를 삭제하겠다는 소리였다.

살아도 산 게 아닌 것이 된다.

캐나다 시민권자 여권을 사용하는 륭은 이제 이곳에서 주검이 되어도 중국과 아무 연관이 없게 된다.

운이 좋아 발각되지 않는다면 다행이지만 세상에 흔적을 남기면 조직의 척살 대상이 된다.

스윽.

가슴에 손을 넣어 총을 만지작거리는 륭.

- 대상을 발견했다.

- 나도 발견했다.

세 명이 한 조였다.

륭의 시야에 달라이 라마가 들어왔다.

스윽 스윽.

빽빽한 인파를 헤치며 조용히 다가갔다.

실패는 있을 수 없다.

인도인 복장으로 위장한 륭과 조원들.

목표를 발견한 말벌처럼 사방을 포위하며 접근했다.

“옆에 있는 자도 처리한다.”

조장 륭이 지시를 내렸다.

달라이 라마는 낯선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동양인.

달라이 라마를 보며 적잖이 놀란 표정이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인도인 사이에서 유별나게 튀는 외모의 동양인.

륭은 생각을 더듬으며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옷깃 속에 손을 넣고 발사 준비를 마쳤다.

권총으로 정확히 사살하기 위해서는 근접 거리를 확보하는 게 최선.

약 10미터 거리.

조원들의 모습도 시야에 들어왔다.

씨익.

그때 륭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웃는 오토바이를 탄 남자.

그는 입가에 조소를 지어보였다.

무언가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그의 시선.

“헛!”

륭이 갑자기 신음을 터트렸다.

중국 요원들 블랙리스트 최상단에 올라와 있던 인물이 퍼뜩 떠올랐다.

‘장태산!’

륭의 심장을 강타하고 지나간 이름 하나.

그리고.

- 계획 변경! 모두 흩어져!

륭은 조원들에게 다급하게 지령을 내렸다.

다니엘 장이라 불리는 한국인 장태산.

그가 확실했다.

그와 접촉 시 무조건 상부 지시를 따르라는 명령이 머릿속을 스쳤다.

스윽 스읏.

조원들이 옷깃에서 손을 거두고 재빨리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륭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달라이 라마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파바밧.

뒤통수에 꽂히는 따가운 시선.

보이지 않는 살기에 륭은 몸을 떨면서 빠른 걸음으로 현장을 빠져나갔다.

***

“존자님이…… 왜.”

아니 갑자기 왜!

갑자기 나타난 달라이 라마 존자님을 마주하고 머리가 멍해졌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조우다.

“그러게 말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존자님이 마치 어린 아이처럼 웃었다.

티베트 불교의 정치적 종교적 수장인 달라이 라마 존자.

티베트 밀교 겔룩파의 수장이며 동시에 환생자로 알려져 있는 분이었다.

큰 바다와 같은 넓고 큰 지혜를 가진 스승으로 불리는 존자님이 날 보며 미소를 지었다.

충격이 연속됐다.

중생들의 열반을 위해 이생에서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인물이었다.

그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갑자기 변경된 악마의 다섯 번째 시험.

넘치는 인파 속에서 살기가 감지 됐다.

세 방향에서 정확하게 느껴지는 날카로운 기운들.

아니나 다를까 인도인으로 위장한 중국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품속에 뭔가를 감추고 있는 이들.

존자를 헤치기 위해 나타난 요원들이 분명했다.

상황을 파악한 이상 그냥 있을 수 없었다.

최대한 살기를 담아 그들을 바라봤다.

존자 한 사람을 보호하는 일은 무리가 아니었다.

다만 이렇게 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문제가 생기면 벌어질 소란이 신경 쓰였다.

존자를 제거하기 위해 접근한 중국인들.

오늘 같은 날 그들 신분이 노출되면 세상이 발칵 뒤집힐 것이다.

스으윽.

예견했던 대로 나와 눈이 마주친 자들이 황급히 시선을 피하며 현장을 벗어났다.

누군가의 지시로 움직이는 게 분명했다.

“……갔군요.”

“!!!”

이 양반, 무섭다.

뒤를 확인하지 않고도 살수들이 자리를 떠난 사실을 알았다.

밀교의 대단한 수행자이니 일반인들이 알지 못하는 수행법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하긴 몸에서 웅대한 기운이 연신 감지됐다.

내공과 또 다른 그 무엇.

“존자님. 제가 누군 줄 아십니까?”

정중하게 나를 알고 있는지 물었다.

“물론입니다. 장태산 보살님.”

티베트어로 말하고 있었지만 무리 없이 다 알아들었다.

반스데일의 언어 능력에는 티베트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보살?

- 밀교의 보살이 되시겠습니까?

헐……. 밀교 보살?

심히 당황스러웠다.

최근에 제안받았던 힌두교 신보다 한 끗 더 있어 보였다.

하지만 나와 보살은 어울리지 않았다.

영성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중생들 열반을 위해 힘쓰는 큰마음도 없었다.

- 밀교 보살이 되면 각종 밀교 비법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환생 특전이 주어집니다. 영생을 꿈꾸는 중생들에게 있어 최고의 비기입니다.

너나 누려라, 영생.

“어떻게 절 찾으셨습니까? 존자님과 제가 인연이 닿아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과거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를…… 말입니까?”

다람살라가 어디라고 나를 지켜보고 있었단 말인가.

“보살은 선행으로…… 귀한 삶을 받으셨더군요.”

“!!!”

자애로운 미소를 띠며 나의 회귀한 삶을 정확히 짚어 말하는 존자.

“……그게 보입니까?”

“물론입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회귀자라면 존자는 환생 전문자였다.

밀교 술법으로 영혼을 다른 이에게 소환할 수 있는 능력자.

나의 회귀한 생을 알아보는 건 당연했다.

“타십시오.”

“그럴까요?”

이곳은 대화하기 좋은 장소가 아니었다.

아직도 어디 숨어 쥐새끼처럼 지켜보고 있을 중국 요원들,

언제 다시 총구를 겨누고 들이닥칠지 몰랐다.

스윽.

뒷좌석에 존자가 올라탔다.

인도에 와서 죽어서도 잊지 못할 추억을 참 많이도 쌓았다.

부르르르릉.

시동을 걸었다.

뒷좌석에 달라이 라마 존자님을 태우고 인도의 도로를 달렸다.

길을 여전히 혼잡했다.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보고도 피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클랙슨을 처음으로 눌렀다.

빠라바라밤~♫.

낯설지 않은 클랙슨 소리.

부아아아아앙.

그렇게 난 환생 보살 달라이 라마 존자님과 인도의 도로를 내달렸다.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

한국의 한산한 도로를 질주하는 무법자 폭주족처럼…….

***

“차 맛이 좋습니다.”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갑작스런 만남에도 놀람은 잠깐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타지마할 호텔로 왔다.

나만 소지하고 있는 호텔 특수 코드를 이용해 로열 스위트룸을 이용했다.

총지배인이 허겁지겁 나타나 직접 안내했다.

내친김에 특별 경호를 지시했다.

팰튼 호텔이 누구 소유인지 알고 있는 지배인은 두 말 하지 않았다.

로브로 얼굴을 제대로 가린 달라이 라마 존자님을 모시고 조용한 룸에 들었다.

우선 비치되어 있는 차를 우려내 대접했다.

“전생에 복을 많이 쌓으셨습니다.”

“제가 말입니까?”

“이생에도 마찬가지군요. 부럽습니다.”

물질을 초탈한 존자님의 입에서 부럽다는 말이 다 나왔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존자님의 눈빛.

마치 나의 영혼에 남아 있는 전생의 흔적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

“수행자이신 존자님이 번뇌 넘치는 인간에게서 부러워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수행하는 데도 돈이 많이 들어가는 세상입니다.”

“네?”

존자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당황했다.

물질이 아닌 정신을 단련하는 최상위 수련자라 여겼던 존자님.

그런 존자님 입에서 돈 이야기가 나오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돈은 좋은 겁니다.”

그건 나도 안다.

다만 존자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게 낯설 뿐이었다.

“…….”

“포교를 위해서는 홈페이지와 여러 SNS 계정을 운용해야 합니다. 망명 정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인간 세상을 사시면서 유마 거사 같은 중생 시주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물질은 축복입니다. 부족하면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 그렇군요.”

앉자마자 돈 이야기부터 나누게 됐다.

딱히 목적을 알 수 없는 존자님과의 대화.

“홈페이지에 후원 계좌가 있습니다. 혹시 마음이 있다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게 다 포인트 아니겠습니까.”

“!!!”

분명 카르마 포인트를 언급하고 있는 존자님.

“카르마 포인트를 저도 제법 모았습니다. 전생부터 법보시를 많이 했더니 그게 계산돼 제법 쌓였습니다. 그러나 윤회를 거듭하다보니 사용할 기회가 없더군요. 그래서 교환비율이 높습니다. 복 많이 받으십시오.”

“…….”

말문이 턱턱 막혔다.

게임 머니 교환서도 아니고 카르마 포인트에 교환 비율까지 언급됐다.

“당연히…… 시주를 하겠습니다. 하. 하. 하.”

내색하려 하지 않았지만 어색한 웃음을 터졌다.

교환 비율 높은 존자님의 카르마 포인트를 놓치면 안 될 것만 같다.

“감사합니다. 성불하십시오.”

스톱! 성불도 등선도 난 관심 없다.

이 생 사는 동안 아낌없이, 뜨겁게 이 한 몸 불살라 살다가는 게 목표다.

“존자님, 이렇게 직접 저를 찾아오신 이유가 더 있을 듯한데……. 마저…… 말씀하십시오.”

달라이 라마 존자님에게 바로 본론을 꺼냈다.

시주를 받기 위함만이 아니라는 건 나도 존자님도 알고 있었다.

“……그럼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보살님…… 저와 동맹을 맺으시겠습니까?”

응? 동맹???

회귀의 전설 2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