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4장. 당신은!!!
“당신에게 죽음의 신 야마를 축복하는 여동생 야미 여신의 사랑스런 마음으로 티카를 찍습니다. 앞으로 신의 품으로 가는 날까지 건강과 무사의 축복이 함께하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라훌 야스맛 회장의 뭄바이 저택.
디왈리 축제 마지막 날.
평소 즐겨 입던 비단으로 지은 사리를 입고 라훌 샬루는 남자의 이마에 붉은 티카를 찍었다.
바이 두지라 불리는 마지막 날에는 남자 형제를 위해 여자 형제들이 신의 이름으로 안녕과 장수를 빌어주는 의식을 행했다.
집안에 찾아온 남자 손님에게 샬루는 얼굴을 붉히며 의식을 행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와 형제들이 흐뭇하게 바라봤다.
지금 의식을 받고 있는 다니엘은 아스맛그룹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됐다.
차기 총리가 될 모디 주지사를 몇 번의 위급한 상황에서 구했다.
사업적 측면에서 다니엘과 협력하면 얻게 될 잠재적 이익이 엄청났다.
“여러 선한 신의 이름으로 당신께 감사드리는 바입니다.”
인도 본토인이 아님에도 합장한 채 정중하게 의식을 행하는 다니엘.
그의 다정하고 따뜻한 목소리에 샬루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파밧.
짧은 순간 그의 눈과 샬루의 눈이 마주쳤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다니엘의 밝은 눈동자에서 샬루는 자신을 봤다.
“아닙니다. 제가 영광이었습니다.”
“당신께 내 안의 신이 선물을 드립니다.”
다니엘이 의식을 끝내고 품안에서 작은 선물 상자를 꺼냈다.
‘의식에 대해 전부 다 알고 있는 걸까?’
샬루는 감동과 기쁨으로 심장이 뛰었다.
힌두교에서는 다른 종파 사람과의 결혼을 반대했다.
평생 섬기고 두려워해야 할 수많은 신들에 대해 타 종파는 이해를 못 했다.
그러나 다니엘은 좀 달랐다.
신께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모습은 진실했다.
힌두어는 물론 의식 진행에도 막힘이 없었다.
힌두교 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의식 끝난 뒤 답례를 했다.
서로 우정을 다지는 마지막 날에는 의식이 끝난 뒤 반드시 남자 형제가 여자 형제에게 답례를 해야 했다.
“열어 보거라. 샬루.”
엄마가 웃으며 상자를 열어보라고 재촉했다.
“……네.”
예상치 못한 선물에 샬루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 형제에게 선물을 받는 정당한 자리인 만큼 그 자리에서 바로 풀어 봐도 괜찮았다.
사락.
샬루는 고급스러운 포장을 풀고 상자를 열었다.
파아아아앗.
그 순간 눈부실 정도로 밝게 터져 나온 강렬한 빛.
“오!”
“아…….”
“문스톤!”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던 가족들 입에서 경탄이 터졌다.
몇 캐럿은 될 것 같은 티끌 하나 없는 원석이 박혀 있는 펜던트와 황금 목걸이.
한눈에 봐도 대단히 가치 있는 보물이었다.
‘이 귀한 걸…….’
샬루는 진심으로 감동했다.
문스톤은 길흉을 점치는 데 사용한다고 알려졌다.
보름달이 높이 뜨는 깊은 밤에 돌을 입에 물고 있으면 신의 계시가 귓가에 들린다고 사람들은 믿었다.
동시에 문스톤을 몸에 소지하고 있으면 진정한 사랑에 눈뜨게 되며 늘 그 사랑을 지켜준다고 해 러브 스톤이라고도 불렸다.
대개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주고받는 문스톤을 다니엘이 선물했다.
더욱이 다니엘이 선물한 문스톤은 특별해 보였다.
스리랑카에서나 발견되는 값비싼 문스톤처럼 여러 가지 빛을 품고 있었다.
그동안 봤던 문스톤과 분명히 달랐다.
“다니엘님, 기왕이면 목에 걸어주십시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라훌 회장의 말에 다니엘이 샬루를 보며 물었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샬루.
두근두근 심장이 달리는 말발굽처럼 뛰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가족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다니엘이 샬루의 목에 목걸이를 걸어줬다.
“하아.”
목에서 느껴지는 다니엘의 손길에 샬루는 자신도 모르게 짧은 한숨을 토했다.
태어나 처음 가늘고 긴 목을 가족이 아닌 낯선 남자에게 맡기고 있었다.
그것도 샬루가 마음에 두고 있는 상대에게.
“잘 어울리는구나.”
라훌 회장이 활짝 웃으며 만족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런 귀한 선물을 하다니……. 샬루 감사 인사를 드려라.”
엄마도 한마디 거들었다.
“귀한 선물을 허락한 당신의 신께 감사드립니다.”
샬루가 합장을 하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당신의 신이 부족한 선물을 받아줘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정중하고 예의바른 다니엘의 듣기 좋은 목소리에 샬루는 미소로 화답했다.
“자, 그럼 이제 식사를 할까요?”
라훌 회장이 분위기를 바꾸며 식사를 권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집안의 안주인인 라훌의 아내가 딸들과 함께 주방으로 들어갔다.
“피로가 풀리셨습니까?”
“회장님 덕분에 개운합니다.”
라훌 회장은 다니엘의 표정을 살폈다.
어제 저녁 이곳으로 오는 도중 갑자기 차에서 내렸다는 다니엘.
보고를 받고 크게 놀랐다.
운전사도 못 알아 챌 정도로 멍한 얼굴로 다니엘이 갑자기 도로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피로가 누적되어 잠시 정신줄을 놓은 거라 생각했다.
대로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큰 사달이 났을 뻔했다.
“오늘까지 푹 쉬십시오.”
“오전까지는 쉬고 오후에는 잠시 구경을 나갈까 합니다.”
“어디를 가신단 말씀입니까?”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구입하려 합니다.”
“그럼 샬루와 함께 백화점에 가십시오. 제가 경영하는 백화점에는 괜찮은 물건들이 많습니다.”
“아닙니다. 그런 선물 말고…… 자그마한 기념품이면 됩니다.”
‘가족들에 대한 사랑도 깊은 남자야.’
라훌 회장은 진심으로 다니엘을 좋아하게 됐다.
함께하면 할수록 끌렸다.
“그럼 경호원을…….”
“아닙니다. 시바신을 오른팔로 안은 저를 신들의 땅에서 누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의 신실함에 경의를 표합니다.”
라훌 회장은 진심으로 다니엘의 신심을 찬탄했다.
“아빠~.”
그때 식당에서 들려오는 활기 넘치는 막내딸 샬루의 목소리.
“가시죠.”
라훌이 다니엘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언젠가 진정한 가족이 되기를 소망하면서.
***
“나마스테.”
“나마스테~.”
길거리에 사람들이 넘쳤다.
눈이 마주치면 인사하기 바쁜 이들.
아작.
입안에 씹히는 길거리 요리 바다 파브.
으깬 감자와, 향신료, 바나나, 칠리 등이 들어간 튀김이 빵과 함께 씹히는 식감이 예술이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여행이었다.
라훌 회장의 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시내로 나왔다.
바이 두지를 위해 샬루에게 목걸이를 걸어주던 순간이 계속 떠올랐다.
아공간에 있던 녀석들 중 괜찮은 목걸이 하나를 골랐다.
나의 손길이 스치자 파르르 가볍게 떨던 그녀의 가느다란 목선.
붉은 뺨과 달달한 체취가 연신 코끝에 맴도는 듯했다.
외출하겠다는 나를 따라 나서겠다고 하던 샬루를 말렸다.
그녀와 같이 동행했다가는 인연이 예상외로 깊어질 것 같았다.
샬루의 눈동자에게 예사롭지 않은 뜨거움을 느꼈다.
라훌 회장 가족도 샬루 못지않게 나에게 관심이 많았다.
이방인인 나를 회장 가족은 가슴을 열어 친구로 맞아줬다.
어설픈 인연으로 전락시킬 수 없었다.
빵! 빠바바방!
인도의 도로는 언제나 혼잡했다.
“왕유……. 신계에 가서 봅시다!”
왕유의 우화등선까지는 누가 봐도 좋았다.
현실은 신계에 가봐야 알바생에 지나지 않겠지만, 진실을 알기 전까지는 충분히 행복할 것이다.
조만간 한 번 찾아가볼 생각이다.
왕유는 우회등선하면서 나를 길가에 그냥 버렸다.
그나마 법기라 말하던 청동 거울과 지팡이를 남겼다.
이끌리듯 차에서 내렸던 나는 바보가 돼 있었다.
의식의 공간에 가두었다고 하더니 진짜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차들이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빵빵 울렸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진작 교통사고로 죽었을지도 모른다.
어리바리 초짜 신선.
신계에 방문해 내가 누군지 확실히 각인시켜 줄 생각이다.
“……진짜 볼 게 넘치네.”
라훌 회장이 오토바이를 빌려줬다.
척 봐도 고급 진 녀석.
특수 번호판을 보고 인도 경찰들은 나를 불러 세우지 않았다.
혼잡한 도시에서는 오토바이가 짱이다.
뭄바이 필름 시티도 구경했다.
뭄바이는 인도 영화계의 핵심이었다.
발리우드 스타들은 못 봤지만 그들의 코믹한 영화를 떠올리며 시간을 보냈다.
영국 식민지 시절 인도인과 개는 출입금지라는 문구를 푯말에 새겼다는 타지마할 호텔도 보고 왔다.
웃기게도 그 호텔, 내 소유다.
팰튼 호텔 계열사다.
흐뭇한 마음으로 호텔에서 커피도 마셨다.
알게 모르게 세상에 나의 소유 재산이 많아졌다.
이제 몇 년 더 모으면 차일드 가문 턱 정도는 될 것 같다.
빠밤 빰빰!
“휘이이이~ 휘이이~.”
그때 한 무리의 여성들이 오토바이 경적을 울리며 타고 가는 게 보였다.
남자들이 휘파람을 불어댔다.
곱게 치장하고 잘록한 허리를 드러낸 미녀들.
그녀들의 미소가 햇살에 반짝였다.
오토바이에 달고 있는 색색의 깃발은 축제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걸 알렸다.
신화와 남미 못지않은 정열이 넘치는 도시.
손에 들린 음식을 입에 털어 넣었다.
“이번에는 기차역에 가볼까.”
뭄바이 도시 여행은 만족스러웠다.
머릿속에 갈 곳을 떠올렸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기차역 중 하나로 불리는 차트라바티 시바지 기차역.
철컥.
오토바이에 올랐다.
스윽, 헬멧도 착용했다.
자동차를 이용했다면 불가능했을 이동 거리.
키리리리릭.
스타트 스위치를 눌러 시동을 걸었다.
어느새 시간은 저녁이 되어 갔다.
기차역을 구경하고 초파티 해안가를 따라 라훌 회장 집으로 돌아가면 일정이 끝났다.
길가에서 부모님과 여동생들에게 줄 기념품도 구입했다.
가격 좀 나가는 선물보다 이제는 작은 선물들이 기억에 남을 듯했다.
두르르릉.
묵직한 배기통음이 울렸다.
덩치가 큰 녀석답게 다른 오토바이들 배기음과 소리부터 달랐다.
철컥, 기어를 바꾸고 오른손 레버를 가볍게 당겼다.
스윽.
그 순간 갑자기 앞을 막아서는 그림자 하나.
“!!!”
진짜 깜짝 놀랐다.
자칫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던 상황.
예민한 나의 감각에 기척이 잡히지 않은 사람의 등장이었다.
말 그대로 형체 없는 그림자의 등장.
“괜찮으십니까?”
수도승으로 보이는 남자다.
날씨가 차가워 그런지 로브 같은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괜찮습니다.”
생각보다 구수한 목소리다.
“???”
순간 느껴지는 맑은 영의 기운.
의문스러운 시선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목적이 있어 날 찾아온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 확신에 가까웠다.
지이이잉.
마음속에서 울리는 진한 영적 파동.
어설픈 왕유 도사와는 아주 차원이 달랐다.
말로만 듣던 인도의 수행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아예 시동을 끄고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 조용히 물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묘한 말과 함께 모자를 천천히 벗는 남자.
노년에 들어선 듯한 얼굴이다.
천천히 미소를 띠는 그의 표정은 정말 자애로웠다.
그리고 온전히 드러난 남자의 얼굴.
“아니……. 존…….”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