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2장. 너 몇 기야?
“테러조가 실패했습니다.”
“장태산 때문인가?”
“파견된 정보원들 말에 의하면…… 그가 맞습니다. 모디 주지사를 위기에서 몇 번이나 구했다고 합니다.”
제갈유량이 상황을 보고하고 고개를 숙였다.
쾅!
리장창이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장태산! 장태산! 장태애애애애산!”
그토록 은밀하게 맺었던 계약인 테러 계획이 실패했다.
인도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 이번 테러에 분노했다.
현 총리가 직접 경찰과 군부대에 명령해 모디를 보호하고 나섰다.
이제 암살은 아주 불가능해졌다.
만약 중국 측이 배후에 있었다는 증거라도 나오게 되면 핵전쟁이 터져도 이상할 게 하나도 없었다.
모디가 신의 보호를 받는다는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돌았다.
결국 남 좋은 일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인도 국민회의 쪽도 몸을 사릴 게 뻔했다.
닭 쫓던 개 꼴이 되어 버린 리장창.
“흐흐흐흐흐흐흐…….”
하지만 분노도 잠깐.
리장창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감을 잡을 수 없을 만큼 급격한 심정의 변화.
“그래봐야 놈은 이제 끝이다. 왕 도인이 나섰다. 누구도 왕 도인의 도술을 벗어날 수 없어. 제 아무리 장태산이 날고뛰는 능력이 있다 해도 마지막 도인의 신통술 앞에서는 무용지물……. 이번에는 장태산 반드시 죽는다!”
리장창은 마지막 키인 왕 도인을 철석같이 믿었다.
수십 년 전 문화대혁명 때 빼돌렸던 마지막 중국의 진정한 도인.
그가 부리는 신통술은 칼과 총 따위로 상대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과학과 상식을 벗어난 상상 속에서도 범접하기 힘든 왕 도인의 도술.
“단주님, 뜻대로 되실 것이옵니다!”
제갈유량도 이번만큼은 승리를 의심치 않았다.
왕 도인은 살아 있는 인간이되 인간의 넘어선 그런 자였다.
***
도우?
굵은 나무 지팡이를 들고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할배.
뭐 전래 동화 금도끼 은도끼 얘기 속에나 나올 법한 신선을 똑 닮았다.
새하얀 도복에 수놓아진 회색 태극 문양이 눈에 띈다.
인간 세상 사람이 아닌 듯한 경계를 벗어난 눈빛은 정광이 번뜩였다.
당장 확인한 그의 능력도 대단했다.
시간과 공간을 멈출 수 있는 마법은 이계에서도 전설의 드래곤만 실현 가능한 능력이라고 들었다.
깊은 산 속 우물가에나 있어야 할 그런 도사가 인도 한복판에 나타났다.
옷차림이나 인상으로 보아하니 중국산 도사가 분명했다.
그래도 생기가 느껴지는 것을 보니 아직 이승에 발을 딛고 있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신선이나 귀신은 아니었다.
“제가 도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찾아오신 이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나를 죽일 듯한 살기 따위의 저급한 기운은 애초 없었다.
이승의 일을 떠나 선계에 들어 바둑이나 두고 신선놀음이나 할 만한 양반으로 보였다.
“세속의 연으로 한 가지 청을 이행해야 합니다. 원신에 걸고 맹세를 했기에……. 도우를 열반에 들게 할 생각입니다. 너무 억울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영력을 다해 도우를 열반 시켜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생에서는 좋은 집에 태어나 부귀영화와 무병장수를 누릴 수 있도록 축원도 해드리겠습니다.”
뭐! 열반?
말도 안 되는 웃기는 소리에 어이가 없었다.
부귀영화야 지금 누리고 있는 것보다 더할 수는 없었다.
무병장수는 말해 봐야 입만 아픈 일.
이 정도면 상대가 신선급 반열의 도사라는 것쯤은 알겠다.
처음부터 풍기는 도력이 예사롭지 않다 여겼다.
무엇보다 천지간의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멈추게 하는 능력이 괴이했다.
실재 현상 세계에서 이런 술법을 펼칠 정도라면 신선 중에서도 상급 신이나 가능할 재주였다.
“어떤 방법으로 시간과 공간을 멈추셨습니까?”
흔히 아는 마법이 아니었다.
진정 처음 보는 진짜 도술 기법이 궁금했다.
입맛이 절로 당겼다.
아사신들이 사용했던 어둠의 마법과도 차원이 달랐다.
아직 명맥이 남은 진짜배기들의 술법.
“대대로 문파에 내려오는 천지공허술(天地空虛術)이 담겨 있는 법기를 사용했습니다. 이것입니다.”
도사가 손에 청동 거울 하나를 쥐고 내보였다.
고대 무덤 고인돌을 파내고서야 얻을 수 있을 법한 엄청 오래돼 보이는 청동 거울.
“도명이 어찌 되십니까?”
“도를 아십니까?”
현대를 사는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다소 경기를 보일 만한 도.
도심 한복판을 걷다보면 으레 만나게 되는 도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어찌하다…… 작은 인연이 닿았습니다.”
“허어. 그랬군요. 그런 연유로 리 대인이 그리 부탁한 것이군요.”
리 대인!!!
누군가를 지칭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에 리장창이 떠올랐다.
장인 후보에까지 올랐던 홍콩 갑부.
천지회라는 단체를 이끄는 수장으로 이제는 나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이제는 같은 하늘을 이고는 살 수 없는 철천지원수가 됐다.
인간 대 인간의 은원이 아닌 대한민국과 중국 간의 미래 운명이 걸린 판.
인상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한마디로 리장창의 부탁으로 도 닦은 도사까지 움직인 것이었다.
혼탁하기 이를 데 없이 오염된 중국에 아직 남아 있었던 진짜 도사.
땅도 넓고 인구도 많다보니 없는 게 없는 중국이었다.
“천지공허술은 천지의 운행을 멈출 수 있는 법기가 아닙니다. 다만 도우의 의식과 제 의식을 이 안에 잠시 가둬둘 수 있을 뿐입니다.”
도사는 친절했다.
그를 설득해 부적 같은 걸 만들면 초대박이 날 판이다.
선풍도골의 외모만 봐도 이미 반쯤 먹고 들어갔다.
그러나 안타깝게 리장창이 보낸 특별한 선물이었다.
“도명이…… 어찌 되십니까?”
다시 한 번 그의 도명을 물었다.
“세속의 일에 관여한 제가 어찌 도명을 밝힐 수 있겠습니까. 왕 도인이라 불러주십시오.”
그래, 왕 도인은 한결같이 친절했다.
“왕 도인이셨군요. 제 이름은 장태산이라고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우화등선을 꿈꿔야 할 도인께서는 어찌 저를 핍박하시는지요? 원시천존과 태산노군이 아시면 가만있겠습니까?”
“……선도는 본시 순리를 거스르는 역도(逆道)입니다. 이미 제 원신에 맹세했기에 장 도우를 열반시켜야 합니다. 그 후에 일은 여러 신들이 알아서 처분하실 것입니다.”
왕 도인은 진짜 목숨을 건 듯했다.
리장창과 알 수 없는 계약을 맺은 게 확실했다.
“안타깝습니다. 이 목숨 하나 취하겠다고 살생의 계를 열려하다니…….”
“이 또한 도가 아니겠습니까.”
왕 도인과 더 이상 말해봐야 입만 아플 것 같았다.
입만 열면 ‘도’로 시작해 모든 게 ‘도’로 끝나는 도사.
“그럼 시작하시지요.”
“???”
당당하게 시작하라는 나의 말에 왕 도인이 살짝 당황했다.
다른 사람 같았다면 눈앞에서 벌어진 현상만으로도 기가 죽어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했을 것이다.
갑자기 달리던 차가 멈추고 신선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열반을 시켜주겠다고 말한다.
이 사태라면 백이면 백 정신 줄을 놓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난 달랐다.
한 번 죽어 죽음의 도를 알고 있는 회귀자가 아닌가.
“훗.”
피식 가벼운 웃음까지 나왔다.
우화등선한 신선도 아니고 여전히 도를 닦고 있는 도사 정도가 나를 열반시키겠다고 했다.
이래봬도 지금 당장 마음만 먹으면 상급 신이 될 수 있는 나였다.
혹 악마의 다섯 번째 시험이 이것이라면 참 우스운 일이었다.
이번 시험 수준을 보니 놈의 아이큐가 한참 낮은 듯하다.
날 핫바지로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특이한 도우시구려. 무량수불.”
지팡이를 힘주어 잡으며 무량수불을 읊조리는 왕 도인.
그런데…… 무량수불……이라면, 이거이거 내가 아는 어느 단체에서 많이 쓰는 말인데…….
***
왕 도인은 의외로 담담한 시선으로 장태산을 바라봤다.
도사로 수백 년을 살아왔다.
일찍이 스승으로부터 선단을 물려받아 수백 년을 잇는 삶을 살았다.
문파의 비밀 진법 안에서 도를 깨우치기 위해 면벽수련도 했다.
선단을 형성한 뒤부터는 천지간의 기운만으로도 충분히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었다.
세월이 무상하게 흘렀다.
어느 정도 도를 깨우쳐 진법을 깨고 세상에 나왔는데…….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언제나 맑은 영기가 감돌던 도관에 싸구려 향내가 퍼졌다.
범인들은 올라오기 힘든 도관에 이상한 복장을 한 범인들이 떼로 몰려와 점령하다시피 했다.
연초를 함부로 피우는가 하면 도관을 제 집처럼 어지럽혔다.
평소라면 경을 쳐서라도 내쫒아야 할 도사들이 한쪽에서 음담패설을 나누는가 하면 어울려 연초를 피우기까지 했다.
크게 놀란 왕 도인은 장문인을 찾기 위해 도력을 발산했다.
그리고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당황스럽게도 선단은 고사하고 내단도 형성이 안 된 자들밖에 없었다.
명색이 도를 수련한다는 자들이 고기와 술을 가리지 않고 섭취했다.
벽곡단 같은 건 보기도 힘들었다.
왕 도인은 절실하게 깨달았다.
일신의 도를 깨우치기 위해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진법 속에 안주하고 있었다는 것을.
깊은 번뇌 속에 한숨을 쉬며 왕 도인은 급변한 세상을 살폈다.
진법에 들기 전에는 차고 넘치던 천지간의 영기가 희박해져 있었다.
가장 맑아야 할 공기는 탁한 기운이 넘쳐났다.
영기 대신 오염돼 버린 탁기에 왕 도인은 숨이 턱턱 막혔다.
도력을 펼쳐 살피니 최소 수백 년이 흐른 뒤였다.
스승이었던 장문인과 함께 도를 수행하던 사형제들 또한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깊은 회한을 안고 왕 도인은 산 중앙에 깊숙이 파놓은 진법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대로 우화등선의 도를 깨쳐 인간계를 스스로 버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그 일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번뇌를 털어 내고 등선의 길로 접어들려던 그 어느 날.
도관에 난리가 났다.
팔에 붉은 완장을 찬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도관에 올라와 모든 걸 때려 부쉈다.
수 천 년도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묵묵히 버텨온 도관과 경서가 불타는 걸 산 정상에서 바라보던 왕 도인.
우화등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안타깝게 바라만 봤다.
이 또한 하늘이 정한 생성소멸의 순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뒤 왕 도인은 그 순리를 저버리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비록 타락한 제자들이라 하지만 문파의 한 지붕 아래 살던 도인들이 모두 절벽 끝까지 밀려난 것이다.
무차별하게 홍위병들이 큰 소리로 사형을 언도했다.
후배 도인들은 하나같이 원시천존을 찾으며 울부짖었다.
아직 인세의 업을 모두 벗지 못한 왕 도인으로서는 그 상황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도가 없어진 세상이지만 자신을 도로 인도했던 문파의 종말은 보고 싶지 않았다.
도술을 사용해 벼락과 비바람을 소환했다.
홍위병들은 두려움을 몰랐다.
눈을 부라리고 도의 맥을 끊으려는 악귀처럼 하늘을 보고 악을 썼다.
그들이 서 있던 땅에 수십 번의 벼락을 내리 꽂았다.
그제야 공포를 느끼며 고개를 처박고 벌벌 떨던 인간들.
적당한 순간에 왕 도인은 모습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신선의 등장에 홍위병들은 악귀에서 멍청한 바보가 됐다.
귀신과 사당 같은 과거 유물들을 모조리 허무맹랑한 것이라 주장했던 자들.
그들이 주장해 왔던 지식이 다 거짓이었다는 걸 들켰다.
그때 왕 도인은 리장창을 만났다.
당시 도관을 침탈했던 홍위병들의 젊은 지도자.
그와 단판을 걸어 후인들의 안위를 보장받았다.
도인이 아닌 세속에서 인간의 삶을 영위하며 살 수 있도록 보장하겠다고 리장창이 확언했다.
그것만으로 사문에 대한 의리를 다했다 여겼던 왕 도인.
만족하며 도술을 거뒀다.
우화등선이 임박해 있었던 만큼 살생은 펼칠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리장창이 후배 도사들의 목숨을 대가로 왕 도인에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앞으로 도사들을 보호할 50년 동안 이유 불문하고 반드시 자신의 명을 한 번은 수행해 달라는 것이었다.
왕 도인은 조건을 받아들였다.
그가 이끈 홍위병들은 무지함과 흉포함이 사나운 짐승들보다 더 했다.
왕 도인이 떠나면 죽일 것 같았다.
기간도 적절했다.
50년 세월은 후배 도인들이 자신이 택한 운명대로 세상을 충분히 살다 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무리 없이 체결된 리장창과 왕 도인의 약조.
당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뿐이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생각이 짧았던 결정이었다.
스스로의 원신에게 맹약을 걸었으니 왕 도인은 그 조건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등선인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50년의 세월.
리장창에게서 명이 떨어졌다.
중국에 위협이 되는 한 청년을 제거해 달라는 다소 가벼운 명이었다.
생과 사의 법칙을 모르지 않았던 왕 도인은 거부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세상에서는 끝이라 보는 죽음.
허나 그것은 또 하나의 시작에 불과했다.
한 호흡에 생과 사가 함께 담겨 있다는 걸 범인들은 몰랐다.
잠시 숨을 멈추는 순간 인간은 지수화풍으로 지어진 몸을 떠나 영의 세계에 나는 법이다.
왕 도인은 장태산을 도력으로 반 열반시켜 선계와 인연을 맺어주면 된다 생각했다.
인간 세상의 풍진을 벗고 즐거움만 넘친다는 선계.
그래서 더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으려 했다.
도력의 끝에 다다른 만큼 손짓 한 번에 영과 육신을 고통 없이 분리해 낼 수 있었다.
“그래요, 이제 나와 같이 열반에 드십시다. 내 지금껏 쌓은 도력이 있으니 충분할 것입니다.”
왕 도인은 말과 함께 법기인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었다.
“옴마수수바흐마……. 탈혼(脫魂)!”
비범하게 외쳐지는 비술의 외침.
파아아앗.
은빛 도력이 장태산을 향해 쏟아져 내렸다.
자신의 도력을 의심하지 않는 왕 도인.
하늘을 우러러봤다.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고 천천히 도력을 모았다.
“사조들이시여, 이제 이 왕유 선계에 들려하니 문을 여시어 기꺼이…….”
거룩하게 외쳐지는 왕유의 목소리.
길고 길었던 인간의 삶을 정리하고 육신과 함께 선계에 들기 위한 마지막 순간을 기다렸다.
그가 알고 있는 도술에 의하면 이 정도 도력이면 충분히 선계의 문이 열리고도 남았다.
“지랄하네.”
하지만 그때 귀를 의심케 하는 비웃음 섞인 저급한 말 한마디에 왕 도인은 크게 놀랐다.
황당한 상황에 왕유가 눈을 떴다.
“헛! 어, 어떻게!”
아직 영이 육신과 분리되지 않은 듯한 장태산.
당황해 어쩔 줄 모르는 왕유를 비릿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이! 무당파 너, 몇 기야?”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