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5장. 다섯 악마의 시험.(3)
“어떻게 됐나요?”
인도 수도 뉴델리에 위치한 고풍스런 대저택.
대대로 전통이 내려오는 유서 깊은 가문이다.
저택 안 은밀한 곳에서 여인의 조용한 목소리가 들렸다.
“예상대로 신전에 왔습니다.”
“그래요…….”
“그를 위해 좋은 음식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간사한 음색을 가진 남자의 목소리가 답했다.
“실행자는 믿을 만한가요?”
“물론입니다.”
“발각되면 안 됩니다.”
“천민 출신을 총리로 삼을 수 없다는 신실한 브라만입니다.”
“바로 죽지는 않겠죠?”
“물론입니다. 장에서 서서히 활동을 시작해 며칠 동안 복통을 호소하다 죽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특히 날이 덥습니다. 축제 기간 신전의 음식들은 쉽게 상하기도 합니다. 흐흐흐.”
음모를 꾸미는 대화.
“그래요. 저도 전에 신전 음식을 먹고 고생했던 적이 있어요.”
이마에 붉은 점이 그려진 노 중년의 여인.
한때 인도를 다스렸던 철의 통치자였다.
천민과 같은 대우를 받는 외국인이었지만 남편 가문의 힘으로 완벽하게 신분이 세탁됐다.
인도를 수십 년간 지배했던 국민회의 당수.
내년에 있을 선거에서 승리의 깃발을 잡기 위해 그녀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과도 손을 잡았고 악신에게 영혼을 팔았다.
보통 인도인들과 달리 신심이 그렇게 두텁지 않았다.
남편이 피살된 직후부터 신을 믿지 않게 된 그녀.
겉으로는 신실한 신의 종처럼 행동하고 말했지만 사실 그녀는 무신론자였다.
“곧 연락이 올 겁니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나요?”
“다음 계획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걱정 마십시오.”
코나락 로이 국민회의 부총재가 비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래야죠. 총리는 내 아들의 권좌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인도는 우리 간디 가문에 의해 지켜질 겁니다.”
단호한 눈빛을 보내는 여인 타냐 간디.
인도의 권력이었던 남편과 그를 키워낸 위대한 시어머니를 동시에 암살로 잃은 비운의 여인.
혼란도 잠시, 외국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인도 의원이 되었고 무너지던 국민회의를 지탱하고 있다.
신을 믿지 않는 만큼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파란만장한 인도 정치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빈틈이 많은 선한 마음을 버렸다.
“총재님 뜻대로 되실 겁니다.”
이제는 실세에서 물러난 총재였지만 코나락 로이는 경의를 아끼지 않았다.
코나락 로이를 정치계에 발탁한 이가 바로 눈앞의 타냐 간디였다.
“정치 자금은 어떻게 되고 있나요?”
“중국에서 큰 도움을 줬습니다.”
“다행이군요.”
“여러 기업과 신전에서도 기부금이 들어왔습니다.”
“모두 다 기억해 놓으세요. 우리 간디 가문은 결코 은혜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비밀문서로 보관해 뒀습니다.”
“총리는 어떤가요? 그가 요즘 말을 듣지 않더군요.”
“씽은……. 이제 물러날 자입니다. 아무 힘도 없습니다.”
“그자가 죽는다면 총리에게 어느 정도 책임을 묻도록 하세요.”
“그리하겠습니다.”
“그런데 중국 쪽에서 부탁한 게 있다고 했나요?”
타냐 간디가 관심 있게 물었다.
예상보다 중국의 도움이 컸다.
돈뿐만 아니라 SNS 작업은 물론 고급 청부업자들을 선별해 보내줬다.
공짜는 아니었다.
“다니엘 장이라는 자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니엘 장이요?”
“투투자동차의 한국계 투자자입니다. 미국 월가의 로버트 라이언의 절친으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우리 적이군요.”
타냐 간디는 몇 마디 전해 듣고 바로 그를 적으로 규정했다.
아스맛그룹의 라훌 회장은 모디의 추종자다.
그런 아스맛그룹의 투자자라면 당연히 간디 가문의 적인 것이다.
“총선이 끝나면 아스맛그룹은 해체될 것입니다.”
“그래야죠. 감히 일개 그룹 따위가…….”
서슬 퍼런 타냐 간디의 확정적 발언.
적으로 규정된 자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철의 여인다웠다.
“그런데…… 다니엘이라는 자가 라훌 회장과 모디와 접촉했다고 합니다.”
“접촉요?”
“뉴델리에서 만났습니다.”
“왜요?”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 지금 다니엘이라는 자는 어디에 있나요?”
타냐 간디가 예리한 눈빛을 반짝였다.
적으로 규정했지만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버트 라이언은 인도 입장에서 중요한 월가의 전설적인 투자자였다.
“그게…… 사라졌습니다.”
“사라지다니요?”
“라훌 회장의 별장에서 모습을 감췄는데…… 찾을 수가 없습니다. 같이 따라왔던 한국 경호원들은 아직 별장에 머물고 있습니다.”
“흐음…….”
인상을 찌푸리는 타냐 간디.
“사방에 눈을 깔아놨습니다. 곧 소식이 올 겁니다.”
“빨리 찾아봐요.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요.”
정치 활동을 하면서 기감이 예민하게 발달한 타냐 간디.
그녀의 기감 덕분에 국민회의는 위기를 여러 번 돌파했을 정도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합장하며 답하는 코나락 로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부총재도 최선을 다해주세요.”
“오직 신의 영광이 간디 가문에만 머물 것입니다.”
아부를 감추지 않는 코나락 로이.
부와 권세를 얻기 위해서 그 또한 악마에게 영혼을 판 자였다.
***
미친!!!
뚫린 입이라고 말이 잘도 튀어 나왔다.
이곳은 사제들이 짱 먹는 신전파의 본거지였다.
그런 곳에서 카스트 제도 최고 계급인 브라만 사제를 향해 ‘이놈’이라고 일갈하다니.
파바바밧.
대번에 신전 안 사람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신이 특정인에게 내린 음식을 보란 듯이 내가 가로챘다.
사제 입에서 불경한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신에 죽고 신에 사는 신자들이 가만히 있으면 그게 이상했다.
소에게 해를 가했다고 이슬람인들을 불태워 죽인 이들이 힌두교 신자들이다.
더욱이 이곳은 신전 안.
“신을 모욕하다니…….”
“오! 시바시여!”
신자들은 신벌을 두려워하며 벌벌 떨었다.
사제를 향한 모욕은 그들에게 있을 수 없는 대사건.
“다니엘…… 어찌…….”
모디 주지사도 놀라 내 이름을 불렀다.
지금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한다.
이 일이 밖으로 알려지면 주지사 입장도 곤란해질 것이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푸자라 불리는 신의 공물에 독이 들어 있다.
나의 눈에만 보이는 독성이 풍겨내는 에너지 파장.
상당히 독한 물질이 섞인 게 확실했다.
“네 이노오오오오오오옴!!!”
뚱땡이 브라만 사제 입에서 분노의 사자후가 터졌다.
사제로 태어나 이런 황당한 경험 처음일 것이다.
카스트 제도가 엄격한 인도 사원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사건.
아무래도 이 새끼 지금 나를 호구로 보는 것 같다.
“감히 신께서 축복한 귀한 음식을 가로채다니! 어서 무릎을 꿇지 못할까! 너에게 신벌이 내릴 것이다! 내 가족과 너를 향해…….”
“닥쳐!! 새꺄.”
“…….”
“!!!”
힌두어로로 내뱉은 욕은 기가 막히게 찰졌다.
모디 주지사와 사제, 주변에서 불구경하듯 쳐다보던 신자들의 표정이 볼 만했다.
디왈리 축제 기간의 집단 멘붕 사건.
사실 나도 미치고 환장하겠다.
이놈의 주둥이가 통제가 안 된다.
이건 아마도…….
시바 신상이 눈에 딱 들어왔다.
뭔가 신상 입가 모양새가 오묘하게 나를 비웃고 있는 느낌적인 느낌.
이런 사태를 계획한 시바가 현재 벌어지는 상황을 즐기고 있음이 확실했다.
기분 완전…… 시바다.
“주지사는 뭐 하는가! 당장 이놈을 무릎 꿇리라!”
사제의 눈이 뒤집어졌다.
모디를 다그쳤다.
누가 봐도 난처해진 주지사 모디.
시바가 나를 오른팔로 안아 준 특별한 존재임을 그는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시바신과 관련 있다는 걸 이 자리에서 증명할 방법이 없다.
이럴 때는!
“네가 저지른 죄를 아직도 모르는가!”
자력갱생의 시간.
독을 탄 음식을 제공한 사제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뭐, 뭐라고!”
새끼가 쫄았다.
내공을 살짝 담아 은근히 뿌려줬더니 금세 쪼는 사제.
살찐 가슴살이 출렁거렸다.
가슴골과 주변에 털까지 수북이 나 있어 심히 보기 좋지 않았다.
이런 걸 보면 인도신들 취향 참 독특했다.
신부님이나 스님처럼 정갈한 복장을 입으면 좋으련만 두툼 비계 맨살이라니…….
스윽.
내 손에 들린 독이 든 푸자를 사제 코앞에 내밀었다.
“먹어.”
반말을 베이스로 쫙 깔았다.
“!!!”
사제 눈빛이 사정없이 떨렸다.
“왜? 못 먹겠어? 신의 축복이 담긴 귀한 음식이잖아!”
악동처럼 웃었다.
“다니엘!!!”
모디가 불경한 나의 행동을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넌 가만 있거라!”
아니나 다를까 그에게도 한 마디를 갈겼다.
그래 시바.
이제 막 나가자는 거지?
“허어! 이런 불경하기 그지없는 자를 봤나!”
지켜보던 다른 사제가 나섰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모양새가 사제들 중에서도 우두머리인 듯했다.
“너도 한패냐?”
“…….”
태어나 단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을 반말에 그의 입이 닫혔다.
그런데 눈빛이 맑다.
이 사제는 한통속이 아닌 것 같다.
“뭐, 뭣들 하는가! 어서 저놈을 무릎 꿇리라! 시바신께서 노하시면 분노가 너희들에게도 임할 것이다!”
신성력이라고는 개뿔도 찾아볼 수 없는 놈이 시바를 팔았다.
이계 오크들한테 던져 주고 싶은 놈.
터더덕.
흩어져 있던 신도들이 순식간에 나를 포위했다.
“감히!”
“신께 불경을 저지른 이단 같은 놈!”
특히 남성 무리들이 날 죽일 듯 노려봤다.
무리 중 누가 주먹을 뻗으면 당장 떼로 달려들 것만 같은 살벌한 분위기.
“모두 물러가라!!!”
복부에서부터 제대로 터져 나오는 사자후.
“크윽!”
“컥!”
신음을 흘리며 귀를 감싸고 한 걸음 물러서는 사람들.
내공을 쥐꼬리만큼 섞었을 뿐인데 일반인들 귓구멍을 자극하기에는 충분했다.
“!!!”
사제들도 크게 당황했다.
나름 수행이란 것을 하는 자들이다 보니 뭔가 느꼈을 터.
“누구냐! 너에게 이 독이 든 음식을 건넨 자가!”
손에 든 음식을 들고 사제를 다그쳤다.
“헛!”
놈의 입에서 당황한 신음이 터졌다.
“무, 무슨 헛소리냐!”
“독…….”
“그게 무슨…….”
모디를 비롯해 가까이 서 있던 사제들이 크게 놀랐다.
“어디서 감히 그따위 헛소리를 하느냐!”
음흉한 사제 놈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큰소리를 쳤다.
분위기가 요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걸 눈치 챘다.
“지금 네가 한 말을 책임질 수 있느냐!”
고위 사제로 짐작되는 인물이 목소리에 힘을 팍 주며 물었다.
“물론이다.”
“증명하라!”
고지식한 사제 같으니.
보아하니 검사 기관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독을 쓴 듯했다.
방법은 하나.
“시바신이 증명해 주실 것이다!”
파이어!
말과 함께 시바신 청동상에 마법을 걸었다.
화르르르르르.
시바신의 조각상 불 모양의 조각에서 진짜 불길이 타올랐다.
동시에 시바신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기운.
“시, 신의 불길!”
“시바신이 강림하셨다!!!”
“오! 신이시여!”
순식간에 게임 끝.
신도들이 마법 불길에 무릎을 꿇고 시바신을 찬양했다.
“시바시여…….”
고위 제사장도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감히 불꽃을 바라보지 못했다.
이제 남은 건 음흉한 사제 놈.
스윽.
손에 든 음식을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씨익 입가에 저절로 번지는 악마의 미소.
공포에 휩싸인 사제 놈의 두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조용히 한마디 했다.
“알지? 맛있는 건 반반인 거~.”
회귀의 전설 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