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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9장 Yes or No? (706/1,284)

709장 Yes or No?

“후보자들 경호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아직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아니라서 각 지역 경찰국에서 책임지고 있습니다.”

“이상 징후는 없나요?”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그렇군요.”

인도 총리가 머무는 관저.

총리 람지 싱은 연방 경찰국 국장의 보고를 받았다.

다른 나라와 달리 인도 연방 경찰국은 테러와 산업 스파이, 국경 경호 같은 중요 임무를 수행했다.

권한도 막강했다.

“국민들 관심이 뜨겁습니다. 안전에 만전을 기해 주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그러나 씩씩하게 대답하는 경찰국장의 말에도 싱 총리는 불안했다.

“일 보세요.”

“물러가겠습니다.”

경찰국장은 경례를 올리고 집무실에서 나갔다.

“휴우.”

싱 총리는 국장이 나가자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몇 달 뒤면 이 자리를 내어줘야 했다.

인도에서 힌두교가 아닌 시크교도로 처음 총리 자리에 올랐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싱 총리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펀자브 지방의 가난한 시크교도 집안에서 태어나 이를 악물고 공부에 매진했다.

머리가 뛰어나 영국 케임브리지와 옥스퍼드에서 경제학 석, 박사를 취득했다.

그 뒤 고위 공무원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인도준비은행 총재를 비롯해 재무부 장관에 상원의원까지 올랐다.

이후 총선에서 승리한 국민회의파의 대부인 소냐 간디의 지명으로 총리에 올랐다.

누가 봐도 완벽한 인간 승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길게 버텨온 시간이었다.”

싱 총리의 독백이 집무실에 낮게 울려 퍼졌다.

신에 대한 헌신과 인간에 대한 봉사를 윤리의 척도로 삼는 시크교도.

하지만 싱 총리는 지금껏 양심을 속이고 살아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신이 정한 율법을 저버렸던 것.

양심을 팔지 않고서는 결코 총리가 될 수 없었다.

지난 10년 동안 국가의 번영을 이끌고 파키스탄이나 중국과도 우호적으로 지냈다.

경제 학도로서 펼치고 싶었던 정책을 바탕으로 인도의 비약적 성장을 일궈냈다.

하지만 한계는 명확했다.

낡은 이념과 종교적 색채로 뭉친 거대 제국은 움직임이 둔했다.

뿌리 깊은 계급적 차별로 인권 문제는 바닥을 기었다.

영국에서 유학했던 싱 총리는 인도를 개혁하고 싶었다.

사실 영국 유학조차 모두 다 그들의 계획 덕분이었다.

수천만 명의 시크 교도들의 표를 얻기 위해 시작된 싱에 대한 지원.

특출한 머리와 눈치 빠른 싱이 기회를 잡았다.

유학 뒤 예상했던 대로 긴 세월 동안 승승장구했다.

총리까지 오면서 보고도 눈을 감은 불합리와 불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게 어렵게 오른 총리 직위.

이 자리 또한 그들에 의해 주어졌다.

길고 긴 세월 동안 인도를 통치했던 정치 세력.

몇몇 가문과 사업가들, 고리 대급업자들이 주축이 되어 창당이 된 인도국민회의.

수십 년 동안 인도를 독재하에 두고 통치했다.

싱 역시 인권을 탄압하고 부정 축재를 일군 세력에 붙어 총리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무늬만 총리였기에 생각했던 것만큼 많은 개혁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동원해 어느 정도 성과는 봤다.

“모디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야.”

싱 총리도 알고 있는 라루 모디 총리 후보자.

나름 청렴결백하고 능력도 뛰어났다.

눈에는 신념이 가득 했고 심장에는 인도에 대한 사랑이 넘쳤다.

인도를 위해서는 그가 꼭 필요했다.

하지만 위대한 가문에서 그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방금 전 보고했던 경찰국장 또한 그들의 사람이다.

핵심 관료들 대부분이 마찬가지.

그들은 새로운 변화를 원하지 않았고, 국민이 깨어나는 걸 두려워한다.

다행히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발달하며 인도인들이 정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타락한 정치인들은 결코 바라지 않는 변화들.

싱은 총리에서 물러나도 더 이상 여한은 없었다.

다만.

띠리리리릿.

개인 스마트폰이 울렸다.

액정에 뜨는 이름.

“싱입니다.”

- 나마스테.

“나마스테.”

조용히 인사가 오갔다.

싱은 살짝 긴장했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오면 항상 두려움이 함께 밀려왔다.

태어날 때부터 힌두교를 믿지 않았던 외국 여인.

어느새 인도를 다스리는 보이지 않는 권력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신과 운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에 의해 사라진 정치인들 수가 수백 명에 달했다.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의 가문이 다스리던 공포의 독재 시절 수십만 명의 인도인들이 자유를 부르짖다 신의 품으로 돌아갔다.

- 총리, 해 줄 일이 있어요.

“하명하십시오.”

인도의 최고 권력자나 진배없는 싱 총리도 극도의 겸손을 보였다.

- 조만간 좋은 사건이 벌어질 것 같아요.

“!!!”

‘설마…….’

싱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그녀의 밝은 목소리에서 불길함을 감지했다.

“제거입니까?”

- 싱…….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말아요. 정치를 하는 순간 인도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나요? 내 남편도 그렇게 신의 품으로 돌아갔어요.

여인의 남편은 타밀 반군에 의해 연설 도중 테러를 당해 사망했다.

그러다 보니 여인은 정치인들 생명에 대한 안위나 존중은 안중에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 큰일이 벌어져도 놀라지 말아요. 수습 방안은 세워져 있으니 총리는 마무리만 해주면 돼요.

“알겠습니다.”

- 그래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깔끔한 솜씨 부탁해요. 그럼.

통화는 짧게 끝났다.

“……자비로운 신들이시여.”

무거운 집무실 공기를 울리는 싱의 뜨거운 목소리.

총리인 그도 이쯤 되면 신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

Yes or No?

노래 제목도 아니고 시바신……. 사업할 줄 안다.

신이 개입할 정도라면 작은 사건이 아닐 것이다.

그것도 인도 총리 선출에 관한 정치 문제.

미국과 러시아, 중국에 이어 단일 국가로는 파워가 남다른 인도.

브릭스(BRICS)라 불리는 신흥경제국의 한 축이었다.

그런 인도 총리 선거에 뜻하지 않게 개입하게 생겼다.

쉽지 않은 일이고 어쩌면 총 맞아 죽을 수도 있다.

이 동네 돌아가는 꼴도 대한민국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지역감정!

이게 장난 아니다.

거기에 더해 힌두교와 이슬람교와의 첨예한 대립은 수시로 피를 불러왔다.

정치도 아직 중진국 수준이다.

기득권이라 불리는 인도국민회의의 부정부패는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에 대항하는 인도국민당.

국민들의 관심으로 정권이 바뀌고 있지만 타성에 젖은 부정부패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부우우우우우웅.

차는 도시를 질주했다.

대답을 선뜻 하지 못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 정도는 예상했지만 신까지 개입된 거래일 줄은 몰랐다.

“라루 모디 후보는 신들께서 여러 손으로 쓰다듬는 자식입니다. 인도와 세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신을 믿는 믿음과 신심으로 따르는 자가 총리가 되어야 합니다.”

라훌의 목소리에는 강한 신념이 담겨 있었다.

사업적으로도 연결이 되어 있는 게 확실했다.

내가 아는 라루 모디 총리는 경제 발전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인도의 빈곤퇴치를 위해 계급 차별을 철폐하기를 부단히 원했다.

동시에 서방 자본들을 끌어들여 인도에 부족한 제조 시설 확충을 꾀했다.

상당히 유능했던 정치인 라루 모디 총리.

라훌 회장이 밀어도 될 만한 인물이다.

“대답은…… 내일 하겠습니다.”

일단 한 발 뺐다.

바로 답을 하기에는 사이즈가 컸다.

“알겠습니다.”

라훌 회장은 재촉하지 않았다.

이것도 거래라면 거래였다.

그리고 나는 세상에 한쪽만 만족스러운 거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각자 가진 힘에 의해 결정되는 상대적인 거래.

“일어나십시오.”

리무진 차량 내부는 운전석과 뒷좌석이 격실로 차단된 상태다.

특별한 이들의 특별한 대화를 위해 고안된 개인 차량.

라훌 회장이 바닥에서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1월에 첫 번째 차량이 출시된다고 들었습니다.”

“삼룡 기술진들의 도움으로 빠르게 준비되었습니다. 여러 신들께서 우리를 축복하고 계십니다.”

본격적으로 사업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인도에서 차 팔아봐야 얼마 남지도 않는다.

인도인들 소비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지만 아직은 미미했다.

다만 박리다매의 이점이 존재했다.

중국과 대적할 수 있는 미래 소비자들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 밑밥을 두둑이 까는 시기다.

그나마 인도는 중국과 달리 상식이 통하는 국가다.

하층 계급민들에게도 투표권을 줄 정도로 민주사회의 기본 틀이 잡혀 있다.

그에 반해 중국은 여전히 미개했다.

일당 독재의 전형적인 폐단이 어느 날 그들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이다.

경제와 문화, 정치는 따로 놀 수 없는 융합력의 산물이다.

개발도상국까지는 어찌어찌 따라올 수 있겠지만 시민이 깨어나고 변화되지 않는 이상 영원히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보이지 않는 이치가 전반에 다 깔려 있음을 중국인들은 몰랐다.

“모두 회장님의 능력 덕분입니다.”

지난 과거 생에서는 삼룡을 인수했던 아스맛그룹.

라훌 회장은 도둑놈 중국 경영자들과 달리 돈만 빼먹고 튀지 않았다.

꾸준히 투자금을 지급했고 퇴직자들도 다시 받아들였다.

호되게 당한 삼룡차 노조들도 파업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밥그릇이 깨져 봐야 갖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는 법.

그걸 모르는 대한민국의 연대 같은 자동차 노조의 앞날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번 기회에 회장님과 다양한 사업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싶습니다.”

“투자를 말하는 겁니까?”

라훌 회장도 관심을 보였다.

“아스맛그룹이 추진하고 있는 금융과 무역, 부동산, 항공우주산업과 농기계 전 부분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투자한 기업들 중에는 유수한 IT 기업들도 존재합니다.”

인도는 막 깨어나는 잠룡이었다.

미래에 미국과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대국이었다.

투자처로는 최상의 국가인 셈이다.

이 정도면 내정도 안정되어 있는 편이다.

“다니엘님이 이렇게 관심이 많을 줄 몰랐습니다.”

라훌이 감탄의 눈빛을 보냈다.

“현명한 투자자는 옥석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점에서 아스맛그룹은 최상의 상품입니다.”

“높은 평가에 감사드립니다.”

인도 중년 아재 말투가 참 멋있다.

말투와 옷차림, 생김새 모두 묵직한 분위기의 인도 부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졸부들이 판을 치는 중국과 격이 달랐다.

그사이 차는 뉴델리의 고풍스런 주택가로 들어섰다.

한눈에 봐도 오래된 건물들.

영국 점령 당시 건축된 게 확실한 빅토리아풍의 저택들이 많았다.

역사가 존재하는 건물들 사이로 차가 움직였다.

물론 해가 져도 느린 걸음으로 도로 위를 오가는 소들은 여전했다.

한국에서 봤다면 오늘 저녁 식탁 위에 육회, 갈비찜, 곰탕으로 조리됐을 식재료인 소가 이곳에서는 천국의 들판을 거닐 듯했다.

소를 잡아먹었다고 오해를 산 이교도들을 힌두교인들이 때려죽이기도 하는 응징의 나라답게 이곳 소들은 진짜 축복받았다.

부으으으으응.

리무진 차량은 금세 돈으로 도배한 고택 앞에 도착했다.

역시 입구에는 우람한 덩치의 경호원들이 기립해 있었다.

“이곳은 어딥니까?”

“별장입니다.”

“별장요…….”

창밖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공기가 좀 탁하긴 했지만 이 정도라면 인도에 별장 몇 개 사 놓아도 좋을 것 같았다.

끼익.

딸깍.

현관에 대기하고 있던 집사가 문을 열었다.

“경호원들은 따로 편하게 쉴 곳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리무진을 타고 따라온 한국 경호원들 얼굴은 잔뜩 상기된 표정이다.

이런 영국풍의 럭셔리 고택들을 처음 구경할 테니 그럴 만도 했다.

스케일 자체가 한국 부자들과 차원이 달랐다.

“오늘 경호는 여기까지입니다. 숙소가 준비되어 있다고 하니 푹 쉬세요.”

“넵!”

경호원들도 가벼운 목소리로 힘 있게 답했다.

“들어가시죠.”

라훌과 함께 저택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넓은 마당에 깔려 있는 잔디와 높이 치솟는 분수가 인상적인 라훌의 별장.

스르륵.

신들의 문양이 장식된 현관문이 활짝 열렸다.

파아앗!

순간 눈이 부셔왔다.

인도 전통 복장인 샤리를 착용한 엄청난 미녀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이마에 붉은 점 빈디가 없는 것으로 보아 처녀.

“샬루, 인사 드려라. 아빠가 말했던 다니엘 장이시다.”

처녀는 라훌의 딸이었다.

“나마스테……. 라훌 샬루라고 합니다.”

“나마스테. 다니엘 장입니다.”

정중한 인사에 방긋 웃는 그녀.

쿵쾅쿵쾅 심장이 뛸 정도로 매혹적인 인도 처녀.

- 시바가 묻습니다. Yes or No?

회귀의 전설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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