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장 What 시바?
“맛이 어떻습니까?”
“흐음……. 용정차는 언제 마셔도 좋습니다.”
“특별히 상무위원들을 위해 제조한, 공기가 깨끗한 지역의 유기농 밭에서 재배한 차입니다.”
“하하. 어쩐지 맛이 더욱 특별하다 싶었습니다.”
홍콩의 바다가 보이는 리장창의 저택.
리장창은 최대한 공손한 표정으로 손님을 접대했다.
바느질을 하지 않은 한 장의 하얀 천으로 만든 도띠를 두르고 그 위에 인도 북부 귀족이 즐겨 입던 셰르와니를 착용한 중년의 남자가 흡족한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로이 부총재님의 입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항상 호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부족할 따름입니다.”
두 사람은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나눴고 뜻을 전하는 데 막힘이 없었다.
옥스퍼드에서 유학한 코나락 로이 부총재.
뱅골 최상급 브라만 계급 출신으로 다음 해에 있을 인도 총리 선거에 나갈 마누 간디 총제를 뒤에서 밀고 있는 인도국민회의의 부총재였다.
로이 부총재는 그 어느 때보다 비밀스럽게 리장창과 만남을 가졌다.
역사적으로 인도와 중국은 특정 영토를 두고 계속 잡음이 오가는 사이였다.
국민들 대다수가 상대국에 호의를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입장은 달랐다.
인도 정치 명문가이자 독재자를 배출한 바 있는 네루 간디 가문 출신은 천지회와 보이지 않는 우호관계에 있었다.
가끔 국민들의 관심사를 돌리기 위해 중국과 전쟁 분위기까지 몰고 갔지만 모두 다 짜고 치는 도박판 같은 것이었다.
“이번에도 도움을 많이 받고 갑니다.”
“더 도와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충분히 감사합니다. 불가촉천민들인 달리트들에게도 선물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기도 합니다. 과거 같았다면 감히 그놈들이 뭘 요구할 수나 있었겠습니까?”
“맞습니다. 무지한 자들에게 투표권이라뇨. 그래서 중국에서는 공산당원들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발전이 그래서 더 경이롭지 않습니까.”
“아직은 부족하기만 합니다. 부총재님이 많이 도와주십시오.”
“걱정 마십시오. 총재님도 이번 도움을 기뻐하실 겁니다.”
‘타락할 대로 타락한 놈들 같으니…….’
만면에 웃음을 띠고 대화를 나눴지만 리장창은 결코 인도인을 좋아하지 않았다.
국경을 맞대고 있어 어쩔 수 없이 관계를 유지하며 지내야 했다.
중국도 내부적으로 불만이 터질 때마다 인도 쪽 국경을 자극했다.
확정되지 못한 국경으로 인해 소란이 잦았다.
어차피 두 국가 모두 핵을 보유하고 있어 전면전은 꿈도 꾸지 않았다.
다만 서로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질 때마다 국경 문제를 적극 활용했다.
그럴 때마다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관리가 더욱 필요했다.
천지회에서 5억 달러를 뇌물로 제공했다.
선거철만 되면 인도는 불법선거가 아주 판을 쳤다.
땅이 넓다 보니 전국 29개 주에서 7차례나 투표가 이뤄졌다.
100만 곳이 넘는 투표소와 1000만 명의 선거 관리 요원이 동원되는 인도 선거.
미국 대통령 선거보다 더 많은 비용이 지출됐다.
그런 비용 중 상당수가 바로 금품 살포 비용에 사용됐다.
평소 하층민들이 맛보기 힘든 음식 박스나 현금을 살포해야 그나마 표로 돌아왔다.
SNS 댓글부대를 적극 동원해 수시로 가짜뉴스를 생산해 냈다.
“계정 수천 개도 준비해 뒀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로이 부총재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돈보다 절실하게 필요했던 SNS 홍보.
자칫 걸리면 선거에 역풍이 부는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멈출 수는 없었다.
SNS가 발달하면서 과거처럼 인도 언론사들을 동원해 통제할 수 있는 여론이 아니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스마트폰 사용자.
총리 선출에 이웃 나라들도 관심이 많았다.
중국과 적대국인 파키스탄까지 인도 선거 여론전에 뛰어들었다.
인도 총리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국가 간 이해관계가 달라졌다.
“그런데…… 한 가지 더 부탁할 일이 있습니다.
로이 부총재가 은근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떤 부탁이신지요?”
리장창이 눈빛을 반짝였다.
‘속이 달았군. 흐흐.’
리장창은 이미 로이가 부탁할 내용이 무엇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총리 유력 후보인 라루 모디는 카스트 제도 하위 계급인 간치 출신이었다.
거리와 기차에서 음료와 차를 팔며 대학을 졸업한 그는 구자라트주 총리직까지 이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다 보니 하층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SNS를 동원해도 그의 지지세를 꺾지 못했다.
만연한 인도의 정치적 부패에 질려 있던 유권자들이 똘똘 뭉쳤다.
이대로라면 카스트 고위 계급들과 대부호들이 주축인 인도 국민회의의 마누 간디는 당선이 힘들었다.
대대로 친가와 외가가 총리를 배출한 대단한 명문가였지만 이미 과거의 영광이었다.
일정 이상의 표를 획득하기는 누가 봐도 힘들었다.
남은 방법은 단 하나.
“소문을 들었습니다.”
“소문이라 하심은…….”
“실력 좋은 킬러들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를 제거해 준다면…… 중국 자본과 기업의 인도 진출을 보장해 드리겠습니다.”
엄청난 인구 대국인 인도 시장을 노리고 있는 중국 정부.
번번이 국민들의 감정에 막혀 진출이 어그러지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인도 정권이 나서준다면 일은 쉬워질 것이다.
“도와드려야죠.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요?”
“어려운 조건은 아닙니다.”
“말씀해 보십시오.”
“한국에서 진출한 삼룡자동차를 퇴출시켜 주십시오.”
“삼룡자동차라 하면…….”
“아스맛그룹의 투투자동차의 합작회사입니다.”
“음,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로이 부총재도 선뜻 답을 주지 못했다.
아스맛그룹은 인도의 10대 그룹이었다.
구체적인 이유도 없이 쉽게 건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스맛그룹에 투자한 다니엘 장이라는 자가…… 저의 철천지원수입니다.”
***
처벅처벅처벅.
척척척.
여러 명의 발걸음 소리가 뒤섞여 울렸다.
내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네 사람의 씨큐리티 소속 경호원들.
인도에 왔다.
델리공항이라 불리는 인디라간디 국제공항.
청주공항에서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해 직항으로 날아왔다.
비자는 미리 발급받지 못해 도착비자를 이용했다.
11월의 첫날.
인도의 날씨도 어느새 가을 냄새가 물씬 났다.
위도가 낮아 아직 더울 거라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저녁 시간이 되자 온도가 낮아져 생각보다 쌀쌀했다.
감색 슈트를 착용하고 공항 로비를 걸었다.
말로만 듣던 인도 공항 벽면의 수인(手印)들이 보였다.
각종 수인을 맺은 손들이 황금색으로 빛났다.
낯선 여행지는 언제나 설렘을 안겨줬다.
인도의 첫 인상이 나쁘지 않다.
코로 파고드는 매캐한 공기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다니엘님, 여깁니다!”
그리고 나를 초청한 50대 인도 중년 아재가 손짓을 하며 아는 체를 했다.
반갑게 손을 흔드는 모습이 정말 나를 반기는 것 같다.
누가 인도 갑부 아니랄까 봐 10여 명의 경호원과 수행비서를 대동한 라훌 아스맛.
뭄바이가 집이라면서도 수도인 뉴델리로 날 불렀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다짜고짜 인도로 와 달라는 청이 있었을 뿐.
라훌 아스맛은 앞으로 나의 중요한 고객이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인도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특히 삼룡자동차와 합자를 한 만큼 중요한 투자처였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중요했다.
그리고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상류층 사람들은 오고가는 신뢰를 중요시 했다.
“나마스테.”
가까이 다가가 공손하게 힌두교식 인사를 했다.
“나마스테.”
활짝 웃으며 마주 인사해 오는 라훌 아스맛.
와락.
인사가 끝나자 라훌 아스맛이 나를 격하게 껴안았다.
카스트 제도에서 외국인들을 거의 천민과 같은 수준으로 보는 인도 상류층 거물의 격한 반응.
딱딱한 남자의 촉감은 반갑지만은 않았다.
“이렇게 빨리 와줄 거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내 안의 신이 당신께 빛처럼 가라 소리쳤습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시바신의 축복이 함께하실 겁니다.”
- 시바신이 당신에게 카르마 포인트로 비행기 사용료를 지급했습니다.
역시 시바는 다르다! 찬양합니다 시바!
쉬바, 또는 시바라 불리는 신은 야훼와 달리 포인트에 쪼잔하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이곳에서 나눌 대화가 아닙니다. 가시지요.”
“네.”
초대를 받고 온 입장이었다.
저벅저벅.
일행들과 빠르게 공항 밖으로 나왔다.
대기하고 있는 리무진 몇 대가 보였다.
차자작.
인도 경호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었다.
라훌 회장과 차량의 뒷좌석에 올라탔다.
외국에 나왔으니 이 정도 리무진은 타줘야 맛이었다.
한국에서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부우우웅.
좌석에 등을 기대자마자 차는 바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공항을 빠르게 벗어나는 차량 행렬.
공항을 벗어나자 곧이어 보이는 느린 걸음의 소들.
인도에 왔음이 실감 났다.
신들의 고향이라는 영혼의 수행처.
“무슨 일입니까?”
라훌 아스맛 회장의 격한 반가움의 표시도 잠시였다.
그의 눈가에 비치는 근심.
“다니엘, 인도 정치를 좀 아십니까?”
“어느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 내년에 총선이 실시된다는 것도 알겠군요.”
“물론입니다.”
뜬금없는 질문부터 해오는 라훌 아스맛.
주제가 정치였다.
기억을 더듬었다.
인도를 통치할 다음 대 연방 총리라면…….
“제가 밀고 있는 분이 계십니다.”
“그래요?”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지만 고민이 됐다.
만약 내가 알고 있는 그분이 아니면 골치 아팠다.
내가 알고 있는 인도 총리는 유명한 남자다.
낮은 신분 출신임에도 정치권에서 살아남은 대단한 인물이다.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인도의 부흥을 이끌었다.
“갑작스런 부탁이라는 걸 알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제가 도울 일이 있겠습니까?”
진심으로 의문이 들었다.
인도 선거는 과거 대한민국 선거 못지않게 부정이 넘쳤다.
돈과 물질로 표가 매매됐다.
국가 기관이 개입되어 투표함이 바꿔치기 되기도 한다.
그런 악조건을 뚫고 당선되는 인도 총리가 참 대단했다.
어떤 후보를 지지하건, 라훌 회장이 나를 불렀을 정도라면 그건 분명 자금 문제일 가능성이 컸다.
제아무리 대기업 회장이라 해도 정치권에서 한 번 찍히면 인도에서 살아남기가 힘들 것이다.
“돈 문제는 아닙니다.”
라훌이 내 속을 꿰뚫듯 말했다.
“흐음…….”
다음 질문은 하지 않았다.
드러내지 않은 감춰진 뭔가가 있었다.
내가 쉽게 개입할 수 없는 그 무엇.
“……라루 모디 후보자를 도와주십시오.”
하~.
천만다행이다.
다음 대 인도 총리가 되는 라루 모디.
흰 수염이 인상적이고 권위적이지 않은 지도자였다.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한국 대통령들과 스스럼없이 친분을 쌓았고 기업 진출을 도왔다.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후보자를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말입니다.”
라훌 아스맛이 나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스릇.
넓은 공간의 리무진 뒷좌석에서 갑자기 무릎을 꿇고 내 발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라훌 아스맛.
“!!!”
“신께서 청하십니다……. 시바께서 오른팔로 안아주신 당신만이 후보자를 지켜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다니엘님……. 부디 신의 청을 거절하지 말아주십시오!”
- 시바가 묻습니다. Yes or No?
What 시바?
회귀의 전설 2부